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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신더의 서재입니다.

남궁세가에서 시작하는 강호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3.07.03 15:51
최근연재일 :
2023.10.05 19:30
연재수 :
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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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48
추천수 :
920
글자수 :
40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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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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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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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0화

DUMMY

“오랜만이에요. 가가.”


“가가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정식으로 혼담을 넣었고, 시부모님께서 허락해주실 게 뻔하니 미리 가가라고 부른들 문제 될 게 없지요.”


“제 혼사는 제 의사가 중요한 법이에요.”


백도진은 두 사람을 보며 옛 추억을 떠올렸다.


바야흐로 15년도 더 전, 소림에서 수련하던 어린 백도진은 거미와 나비를 발견했다.


거미는 거미줄이라는 함정을 파둔 채 나뭇가지 위에 숨어서 먹잇감이 걸리기만을 기다렸고, 나비는 나풀거리면서도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그때는 어깨에 물동이를 지고 있던지라 결말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결말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무의식중에 팝콘을 떠올렸다.


그러다가도 그때의 거미줄처럼 거미 아가씨 주변을 둘러싼 무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까 본 이들처럼 막무가내로 기세를 뿜어대지는 않았지만, 저렇게 우르르 몰려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거슬리는지 혀를 찼다.


그러는 와중에도 당은혜는 양정수만 바라봤다.


“그렇게 완강하게 거절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대신 당문으로 초대하겠습니다. 이것마저 거절하시지는 않겠지요?”


“거절하겠어요.”


양정수가 초대를 거절하자마자 당은혜는 충격받은 사람처럼 휘청였고, 무인들은 쌍심지를 돋웠다. 백도진은 얘들이나 아까 걔들이나 다를 바 없다며 혀를 차더니 한 명이라도 나서면 머리통을 깨부수겠는 마음가짐과 함께 용천혈에 진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당은혜의 목소리가 한발 빨랐기에 누구의 머리통도 깨지지 않았다.


“그만! 누가 멋대로 움직이라고 했죠?”


목소리가 높지 않으면서도 위엄있기에 한 가문을 통솔하는 주인마님이 되기에 충분한지라 백도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정중하게 인사한 데다가 이름도 밝혔으니 예의는 있네. 게다가 가족보다 정수를 위하는 마음도 좋고, 낭만도 있어.’


예의 바르고, 정수를 사랑하며, 눈빛에 낭만이 가득한 건 좋았다. 그렇다고 정수의 부인으로 괜찮냐고 물어본다면 당은혜의 기반에 독이 듬뿍 담겨있어서 괜찮지 않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저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백도진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인지라 우아한 몸짓으로 고개 숙였다.


“그리고 아주버님께도 죄송하다는 말을 올리겠습니다. 저를 과보호하는 사람들이니 부디 용서해주세요.”


“아주버님이라뇨!”


“가가와 결혼한다면 가가의 의형이신 백 대협께 아주버님이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잖아요.”


백도진을 걸고넘어지자 양정수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당은혜는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사냥감의 약점을 찾고서도 후벼파지 않으면 사냥꾼 실격이듯, 당은혜는 다시금 백도진을 걸고넘어지려 했다. 하지만 백도진은 손뼉을 치며 이목을 모으더니 정중하게 허리 숙였다.


“당문의 초대는 기쁩니다만, 굉장히 애석하게도 좀 전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굉장히 꺼려지는구려.”


“불미스러운 일이라뇨?”


“아까도 정수의 외모를 보고 넘어온 꼬마 숙녀가 초대를 거절하자마자 독부터 뿌리더구려. 이만하면 대답이 되었소이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처럼 냉기를 풀풀 풍기는지라 그녀의 호위무사들마저도 몸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백도진은 황궁에서 더 음습한 투기(妬忌)를 경험했고, 양정수는 누님이나 어머니의 기세보다는 못하다고 여겼기에 담담하게 흘렸다.


그 모습을 본 당은혜는 한층 더 양정수가 마음에 들었는지 풀풀 풍기던 냉기를 거둬들이며 환한 미소를 보여줬고, 백도진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런 일을 겪으셨다니 함부로 초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네요. 다음에는 정식으로 초대할 테니 그때는 와주시겠어요?”


“그때는 오늘보다 더 진득하게 생각하고 거절할 테지.”


“아주버님은 농담도 잘하시네요.”


“농담 같소?”


“네.”


남의 말을 들을 생각이라는 게 머릿속에 없는 모습인지라 백도진은 이맛살을 콱 찌푸렸다. 하지만 진짜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만큼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손을 내저었다.


“그나저나 성도에는 어쩐 일로 오셨나요? 일전에 시부모님 되실 분들께 편지 드렸을 땐 합비에 계셨던 걸로 아는데.”


“난주로 가는 길이에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시다시피 당문의 힘이라면 거기까지 가는 마차도 구할 수 있어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양정수는 제 부모님께 연락드렸다는 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당은혜는 그걸 알면서도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백도진은 물론이거니와 호위무사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지만, 결국 당은혜가 한발 물러나고야 말았다.


“서방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부녀자로서 따를 수밖에 없네요. 부디 좋은 여행 되시길.”


양정수는 무슨 서방님이냐고 말하려 했지만, 당은혜가 깊이 허리를 숙이며 물러났기에 한숨만 내쉬었다.


“거참, 너도 고생이 많겠구나.”


“이런 고생은 바라지 않았어요.”


“얼굴값 한다고 생각해.”


“이런 얼굴값은 하고 싶지 않아요.”


양정수가 투덜거리자 백도진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더니 등을 두드렸다.


“기개 있는 아가씨였으니 떼어놓기 힘들겠지만, 잘해 봐라.”


“너무하시네요.”


“그렇지. 그런데 네가 아무리 내 동생이라지만, 남녀상열지사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너랑 그 아가씨가 해결할 일이지.”


구구절절 옳은 말이지만, 평소에 이상한 말도 자주 하던 백도진인지라 미덥잖았다. 그렇기에 양정수는 어린아이처럼 볼을 부풀리다가도 이내 표정을 되돌렸다.


“후우, 그래도 성도를 떠나면 괜찮겠죠. 다시 붙잡히기는 싫으니까 빨리 가요.”


난주까지 가는 길이 험한 만큼 상행이 드물었기에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걸어갔다. 두 사람 모두 건장한 무인인 만큼 경공을 쓰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그 정도로 급하지 않았기에 남들보다 조금 빠른 선에서 그쳤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사천은 처음인 만큼 중원에서 볼 수 없는 풍경과 음식 그리고 술을 즐기다 보니 속도가 날 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순조롭게 북상할 수 있었다.


백도진은 아쉬움의 잔해를 털어버리기 위해, 양정수는 소매에 묻은 독을 털어버리기 위해 관광하듯 풍광을 즐기며 움직였다.


어느덧 송진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한 양정수는 눈앞에 거대한 산맥을 두고서도 무사히 사천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의 바람은 절반만 이뤄졌다.


“어머, 우연이네요.”


“사천당가의 공녀께서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근처에 괜찮은 약초 산지가 생겼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가가와 아주버님을 뵙게 되었네요.”


저렇게 강조하는데 우연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우연이라는데 대놓고 부정할 수 없는지라 양정수는 쓴웃음을 삼켰다.


“험한 산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 필시 귀한 약초겠군요.”


“귀하지는 않지만, 말씀하신 대로 산이 많아서 품질이 좋네요. 내일 직접 확인하고 싶은데 도와주시겠어요?”


양정수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눈빛과 함께 주변을 둘러봤지만, 성도에서 만났을 때처럼 호위무사들이 없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은 다른 볼일이 있어서 송반현으로 되돌아갔어요. 도와주세요.”


제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다가오는 만큼 밀어낼 수밖에 없었지만, 아무리 당가의 여식이라고 한들 겨울 산에 혼자 보낼 수는 없는지라 양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백도진에게도 도움을 청하듯 고개를 돌렸지만, 백도진은 씩 웃더니 양정수가 입을 열기도 전에 거절했다.


“둘이 잘 다녀와. 눈 조심하고. 곰은 아직 동면할 테니 괜찮겠지만, 호랑이는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형님?”


“남녀상열지사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고 말했잖아. 이번 기회에 진득하게 이야기해 봐. 그러고도 달라붙으면 도망치자.”


당은혜를 앞에 두고 당당하게 도망치자며 제안하는지라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야기가 잘못되더라도 누가 나쁘다는 게 아닌 만큼 도망도 괜찮은 선택지임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양정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당은혜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부름 보낸 이들은 길어야 이레면 돌아올 거예요. 그러니 그 전에 가가로부터 약조를 받아내겠어요.”


“그러면 이레까지 제게 약조를 받아내지 못하시면 어쩌시겠어요?”


“시부모님을 직접 찾아뵙고 진지하게 말씀드릴 생각이에요.”


이번에도 일방적인 구애인지라 부담스러웠지만, 양정수는 이번 기회를 살려서 당은혜를 떼어내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면 빨리 가요. 오늘은 아쉽게도 산지기 영감이랑 같이 가지만, 꼭 길을 외울게요. 내일부터는 가가랑 단둘이 다니고 싶거든요.”


너무나도 노골적인지라 양정수는 뭐라고 말하는 대신 옷을 여몄다.


“겨울 산은 특히 추워요. 그렇게 가면 힘들어진답니다. 마침, 우연히도 남은 장포가 하나 있는데 이걸 입으세요.”


마침, 우연히 남는 장포가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그리 춥지도 않았지만, 양정수가 거절하기도 전에 두툼한 솜 장포를 입혔다.


“감사합니다.”


자신을 위해 준비한 게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고마운 건 마찬가지인지라 양정수는 고개를 꾸벅 숙였고, 당은혜는 활짝 웃더니 양정수의 손을 꼭 잡고 산을 올랐다.


“어휴, 청춘이네. 청춘이야.”


길잡이 노릇하게 된 산지기 영감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고용주 심기를 거스를 생각은 없는지라 슬쩍 당은혜의 눈치를 봤지만, 당은혜는 양정수의 손을 잡고 있는 게 너무 행복한지 산지기를 재촉하지도 않았다.


***


“눈이 펑펑 오네.”


송진촌에 머문 지 나흘이 지났다.


아가씨는 진짜 길을 외웠는지 이튿날부터 산지기를 데려가지 않은 채 하루에도 두어 번씩 정수와 함께 산을 올랐다.


오늘도 아침 해가 뜨자마자 정수를 데리고 산을 오른 만큼 점심때가 되어야 도착할 테니 느긋하게 수련하면서 기다려야겠네.


그렇게 밖으로 나가니 눈이 내렸다. 거참, 펑펑도 쏟아지네.


비가 눈 앞을 가릴 때도 수련했는데 함박눈이 내린다고 수련 못 하는 건 아닌 만큼 몸을 움직였다.


“음.”


남들 앞에서 성장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제자리걸음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제자리걸음이 아닌 만큼 제대로 수련하고 있다는 뜻이니 성장이지. 암, 그렇고말고.


그나저나 겨우 두 시진 지났을 뿐인데 내 주변 말고는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가 탐스러운 만큼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게 보기 좋았다. 게다가 객잔 뒤뜰에는 나 혼자뿐인 상황. 이건 못 참지.


눈치 볼 필요가 없는 만큼 온몸에 힘을 빼고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푹신한 눈이 두껍게 쌓인 만큼 크고 무거운 내 몸도 받아준 데다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가움이 몰아치는 이 감각이 너무나도 좋았다.


지금까지는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쓰레기나 다름없었는데 처한 상황이 달라지니까 시원하고 푹신하고 좋네. 그래도 등이 시려서 여기서 팔다리를 휘젓거나 뒹굴기는 힘들겠다.


하긴 그런 건 연인 있는 애들이나 하는 거지.


“켁.”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콧속으로 눈이 들어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참, 좋게 생각한 지 몇 초나 되었다고 바로 하얀 쓰레기로 변해버리다니 나도 참 간사하네.


아무튼 이대로 들어가면 그냥 눈밭에 뒹군 아저씨가 될 테니 다시 수련해서 땀을 빼야겠다. 잭잔 안이 시끄러운 걸 보아하니 정수랑 아가씨가 돌아온 모양이네.


나흘 내내 들러붙는 아가씨도 참 대단하고, 나흘 내내 철벽 치는 정수도 참 대단하고 둘 다 대단한데 그냥 사귀어라. 좀.


쯧.


둘 다 답답하네. 저걸 못 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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