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알신더의 서재입니다.

남궁세가에서 시작하는 강호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3.07.03 15:51
최근연재일 :
2023.10.05 19:30
연재수 :
75 회
조회수 :
69,844
추천수 :
994
글자수 :
403,950

작성
23.09.01 19:30
조회
587
추천
11
글자
13쪽

48화

DUMMY

지부장이 어르고 달래며 돼지 재산을 강탈하는 동안 개방은 여전히 날뛰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방은 혈인이 나올 때마다 나섰다. 일류 고수도 몇 없어서 싸울 때마다 피를 흘렸지만, 피를 흘릴 때마다 무너진 평판이 돌아왔다.


그건 분명히 축하할 만한 일이지만, 차갑던 바람이 시원해지는 와중에도 제대로 된 인사조차 없다는 게 정말 괘씸했다.


그러니까 정걸 장로의 힘을 빌리는 대신 내가 직접 골려줘야지.


갑자기 왜 이러냐고? 석 달 동안 꾸준히 수련한 덕에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파악할 수 있었거든.


수파리와 정반합 둘 중 어떤 방식을 따르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꾸준하게 수련하고 절제하던 삶의 방식이 흔들렸기에 전보다 음습해졌고 충동적으로 행동했다.


그래도 소림의 무공인 만큼 다행히도 성욕이 솟구치지는 않았다. 예쁜 사람이 가득한 기루에서 성욕이 솟구쳤다면 색마라고 낙인찍혔을 테니 정말 다행이야.


아무튼, 괴롭히기로 마음먹었으니 일단 분타주가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부터 파악해야지. 왜냐면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손자도 말했거든.


우선, 개방은 난데없는 모함에 시달렸다. 분타주는 이걸 해결하고자 동분서주했고, 혈인과 싸우며 먹칠을 걷어냈다. 처절하게 피 흘린 만큼 이전보다 더 드높아진 명예에 콧대가 높아졌다.


개방이 처한 상황을 정리하니 분타주의 생각이 눈에 잡힐 듯 보인다. 급한 불은 껐으니 나처럼 약한 문파 출신에게 진 사소한 빚은 늦게 갚아도 생각하는 모양이네.


그렇다면 갚을 생각이 들 때까지 쿡쿡 찔러줘야겠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인 만큼 사람이 필요했다. 때마침 눈꼴 시려하는 데가 보여서 슬그머니 제안했고, 하오문과 도철문은 기다렸다는 듯 사람을 보냈다.


어디서 하소연도 못 할 만큼 더럽고 치사하게 괴롭혀주마.


***


개방의 일결제자 동산은 배가 불렀다.


자신이 개방의 제자인 걸 알고 음식을 권한 사람들 덕에 실제로도 배가 불렀지만, 지금 제 처지가 만족스러웠기에 배가 불렀다.


누명 쓰기 이전이었다면 지금처럼 배부르게 먹는 건 언감생심이고, 타구봉을 어깨에 짊어진 채 대로를 활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혈인과 싸우며 명실상부 중경 최고의 문파 자리를 차지했기에 일결제자인 자신도 어깨를 활짝 펴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주루 창가에 앉아 그 모습을 보던 백도진은 벌써 겉멋 들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 그 겉멋이 사라질 걸 잘 아는 만큼 환하게 웃더니 손짓했다.


그러자 손짓을 따라 사파 무인들이 움직였다.


“언제부터 거지들이 대로를 활보할 수 있게 된 건지 모르겠네.”


“땟국물 줄줄 흘리면서 거리 한복판을 지나다니다니 민폐잖아.”


슬그머니 나타나서 길을 막고 비아냥거리는 놈들을 단매에 때려잡고 싶었지만, 동산은 겉멋에 취해 있어도 주제 파악을 할 줄 알았다.


여기서 먼저 손을 쓰면 사파들이 들고 일어나서 다시 개방을 규탄할 테고, 사파와 적잖은 관계를 맺은 이들도 이때다 싶어서 개방의 기세를 꺾으려 들 터였다.


동산의 생각이 아니라 분타주에게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1 대 5로 싸울 생각은 없는지라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꾸짖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너희들이잖냐!”


“목소리 좋네. 평소에는 작게 말하는 척하더니 아주 그냥 사기꾼이었네.”


“지금까지 쭈그리고 다녔으니 어깨를 펴고 싶겠지. 그런데 다른 놈들은 다 골목으로 다니는 데 왜 너 혼자만 대로를 활보하냐? 혹시 우리랑 싸우려고?”


“캬~ 무섭다. 여기서 우리가 잘못 건드리면 우르르 몰려와서 몰매 놓을 심산이었던 거야? 거지새끼가 아니라 개새끼였네.”


“어이쿠, 무서워라. 이러다 치겠다? 우리가 널 때릴 수는 없지만, 넌 우리를 때릴 수 있다. 이거냐? 요즘 기세가 올랐다고 사파가 아주 그냥 개좆으로 보이는 모양이지?”


살이 토실토실하게 올랐던 돼지의 살만 발라내고 뼈에 붙은 고기만 넘겨주던 지부장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손색이 있지만, 도철문도들의 입담도 제법인지라 백도진은 감탄했다. 그만큼 동산의 인내심이 바닥나려는 순간에 개방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나대느냐!”


개방의 지원군이 오면 싸워도 된다는 말을 들었기에 도철문도들은 본격적으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어디긴 길가지. 너 병신이야? 아니면 이제부터 거리를 지나다니려면 개방 허락을 받아야 해? 명성 좀 얻었다고 콧대가 하늘을 찌르네.”


“이거 무서워서 살겠나. 우리 같은 사파 따라지들은 뒷골목이나 전전하라는 말이네.”


“이러다가 우리처럼 깨끗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쫓겨나겠어. 조만간 중경이 거지소굴로 변하겠네. 일개 분타가 이런 수준이니 총타가 있는 개봉은 아예 거지소굴이겠어.”


지금까지 자신들이 혈인과 싸울 땐 뒷짐 지고 있던 놈들이 안전해지자마자 튀어나와서 제멋대로 지껄이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총타까지 들먹이며 비아냥거리자 더는 참을 수 없는지 타구봉을 꺼냈지만, 손을 움직이기 전에 젓가락이 비수처럼 날아와서 바닥에 꽂혔다.


“거참, 술맛 떨어지게 웬 소란들이시오.”


거지들은 물론이거니와 미리 알고 있던 도철문도들마저도 놀라서 고개를 돌렸고, 백도진은 두 무리를 쓱 훑어보더니 손을 내저었다.


“길 한복판에서 싸우지 말고 갈 길들 가시오.”


계획을 설명해줄 때는 악동과도 같았기에 친근함마저 느꼈건만, 그때와는 다른 사람처럼 무심하면서도 위압적인 눈빛에 도철문도들은 총관의 경고를 떠올리며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그 기세를 도철문도만 받은 게 아니라 개방도들도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좋군. 싸울 의사는 없어 보이니 다들 조용히 헤어집시다.”


백도진의 기세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약했기에 동산은 다른 이들처럼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욕당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감사합니다. 돌아가자.”


숫자는 물론이거니와 질적으로도 유리한 만큼 싸워도 괜찮았다. 하지만 여기서 싸우면 그간 쌓아 올린 평판을 자기들 손으로 무너트리는 일이나 다름없으니 백도진의 권유대로 물러나는 게 최선이었다.


물론 동산에게는 사파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도망치듯 떠났다는 굴욕감이 남았지만, 그 동산마저도 개방에 있어서 이게 최선이라는 걸 알았기에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백도진은 한 번으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주루 뒤를 걷던 개방 제자가 하오문도들에게 둘러싸였다. 우연히 술 사서 돌아가던 백도진이 그 광경을 보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개방도를 구해냈다. 그러다가 술병이 깨지면서 개방 제자가 술을 뒤집어쓰기도 했지만, 백도진은 미안하다며 술 한 동이를 사줬다.


그 외에도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일어났고, 비슷한 일인 만큼 태진원은 보고서를 읽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이 많은 거리 혹은 사파의 구역 경계에 거지가 지나가면 항상 그보다 많은 숫자의 사파 무인들이 몰려와서 시비를 걸었다. 그리고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면 백도진 혹은 양정수가 나타나서 양측을 쫓아낸다.


한 번만 벌어져도 수상쩍은 시선을 보낼 만한 일이 여러 번 일어났기에 태진원은 백도진의 수작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백도진이 왜 이런 수작을 부리는지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어서 머리를 싸맸다.


명성이 필요해서? 그럴 리가 없다. 이런 일로 얻을 수 있는 명성은 보잘것없으니까.


하지만 이 모략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행동에서 백도진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물며 다 비슷해서 자신이 아니더라도 금방 들통날 모양새━


“들통난다?”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 입 밖으로 생각을 내뱉고야 말았지만, 이게 정답임을 확신했다. 물론 태진원의 이성은 이런 방식 말고도 백도진이 자신을 부를 방법이 있다며 만류했지만, 본능은 그를 부채질했다.


“들어가쇼. 설죽실이오.”


자신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하오문도가 문을 열어줬다. 감정을 감출 생각이 없는지라 살기에 가까운 불쾌함이 태진원에게 쏘아졌지만, 그는 고개만 끄덕이고서는 쏜살같이 계단을 올랐다.


“어서 오시오.”


“사람 참 복잡하게 부르십니다. 할 말이 있으면 그냥 사람을 보내면 될 것을.”


“뭐 좋은 일이라고 대대적으로 초대하겠소. 게다가 내 거처가 거처인지라 부르면 오히려 폐가 될 텐데.”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건 이해할 수 없었지만, 폐가 된다는 말은 이해했다. 그러나 태진원은 자신이 본능을 따라 여기까지 왔기에 백도진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을 까맣게 잊고 이성의 지시를 따랐다.


“어떤 용건인지 들을 수 있습니까.”


“이야기하기 전에 한잔합시다. 여기도 내일이면 다시 개장한다는데 여길 공짜로 쓸 수 있는 날도 오늘뿐이잖소.”


“죄송합니다만, 급작스레 자리를 비운 만큼 빨리 용건을 해결하고 싶습니다.”


백도진은 아쉬워하며 술병을 내려놓았다. 이상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정상적인 행동이었지만, 묘하게 신경을 거스르는지라 태진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거참,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용건을 말하겠소이다.”


백도진은 술잔마저 치웠다.


“이왕 싹 다 치운 김에 솔직하게 물어보겠소. 왜 인사 안 하고 지금까지 시치미 떼셨소?”


인사? 인사라니?


겉모습은 거지지만, 정보 조직의 일원이자 존경받는 무인인 태진원의 이성은 인사라는 말속에 무슨 의미가 숨어있는지 궁리했다. 하지만 없는 의미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넌지시 던지는 말마다 손사래를 따라 바닥에 처박혔다.


“저기 관청 담장 너머의 놈들처럼 말 빙빙 돌리지 마시오. 도움을 받았으면 인사를 하는 게 도리 아니오?”


지금까지 있는 줄도 몰랐던 혈교의 끄나풀을 박멸한 것도 백도진 덕이었고, 끄나풀의 끄나풀이 남아서 개방을 괴롭혔다는 걸 알게 된 계기도 백도진 덕이었다. 그렇기에 고맙다고 인사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태진원의 이성은 과부하를 견디지 못했다.


“겨우 인사 때문에 이 난리를 피운 겁니까?”


“겨우 인사라니 말이 심하시오.”


“인사를 받으려면 조용히 찾아오면 될 일이잖습니까. 지금 백 대협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커다란 후폭풍을 몰고 왔는지 아십니까!”


“거참, 말 잘하네. 인사를 받으려면 조용히 찾아오라고? 미쳤냐? 이봐, 분타주 양반. 내가 칭찬을 구걸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찾아가. 당신이 날 찾아와야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하던 존대가 사라지고 백도진이 기세를 뿜어대자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태진원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머리뿐만이 아니라 손발마저도 치명상에 대비해 차갑게 식었지만, 그의 이성이 대비하던 움직임은 일절 없었다.


“지금 내가 굉장히 충동적이며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이성을 따라서 행동했을 때보다는 몇 배는 나은 결과라고 확신해.”


정걸 장로에게 재밌는 일이 있다며 불러놓고 물 만 밥만 던져준 다음 중경 분타주에게 푸대접받은 이야기를 구성지게 풀어냈다면 태진원은 물론이거니와 중경 분타의 출셋길이 막힐 터였다. 그렇기에 백도진은 확신하며 말할 수 있었지만, 백도진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태진원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금 대협께서 초래한 일은 중경 분타를 깡그리 불사를 수도 있습니다. 혈인에 맞서 싸웠고, 피를 흘렸으며, 돌아오지 못한 형제들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단꿀을 제대로 누리기도 전에 모욕이 쌓이다 보면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말을 듣고 있던 백도진은 태진원도 알 수 있을 만큼 차갑게 웃었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예측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는 점에, 그리고 훌륭한 정보원이나 강한 무인일지는 몰라도 의기천추를 기치로 삼는 개방의 제자답지 않다는 점에 차갑게 웃었다.


“할 말은 많지만, 하나로 귀결되는군.”


백도진은 더 참을 수 없는지 치워뒀던 술을 가져와서 넘치도록 따랐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래도 이왕 술의 힘을 빌리게 되었으니 하나씩 조목조목 짚어주지.”


백도진과 같은 고수가 겨우 술 한잔에 취할 리 없다는 건 태진원도 잘 알고 있지만, 기세가 사그라들었어도 눈앞에 맹수가 있다는 점만큼은 변함없는지라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혈인과 맞서서 피 흘리며 싸워?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보답이 없다고 남의 피 빨아먹는 새끼들을 그냥 놔둬? 그런데 단꿀? 미쳤냐? 의기천추라는 개방의 기치는 똥통 밑바닥에 처박았어?”


폭언인지라 태진원은 부들부들 떨었지만, 애석하게도 백도진에게는 마지막 한 방이 남아있었다.


“정도를 걷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쪼잔하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궁세가에서 시작하는 강호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평일 19시 30분 연재입니다. 23.07.03 594 0 -
75 후일담 +3 23.10.05 474 8 7쪽
74 완결 +1 23.10.05 507 10 12쪽
73 73화 +1 23.10.04 461 10 13쪽
72 72화 +1 23.10.03 446 9 12쪽
71 71화 +1 23.10.02 462 11 13쪽
70 70화 +1 23.09.29 484 10 13쪽
69 69화 +1 23.09.28 484 9 13쪽
68 68화 +2 23.09.27 501 9 13쪽
67 67화 +1 23.09.26 491 9 12쪽
66 66화 +2 23.09.25 511 11 12쪽
65 65화 +2 23.09.22 536 12 12쪽
64 64화 +1 23.09.21 523 11 13쪽
63 63화 +3 23.09.20 513 11 12쪽
62 62화 +1 23.09.19 511 12 13쪽
61 61화 +1 23.09.18 550 10 13쪽
60 60화 +2 23.09.16 552 10 12쪽
59 59화 +1 23.09.15 557 12 12쪽
58 58화 +1 23.09.14 527 11 13쪽
57 57화 +2 23.09.13 562 13 12쪽
56 56화 +1 23.09.12 547 13 12쪽
55 55화 +1 23.09.11 546 11 13쪽
54 54화 +1 23.09.09 542 12 12쪽
53 53화 +1 23.09.08 547 11 12쪽
52 52화 +1 23.09.07 519 12 12쪽
51 51화 +1 23.09.06 548 12 12쪽
50 50화 +1 23.09.05 560 12 12쪽
49 49화 +1 23.09.04 553 12 12쪽
» 48화 +1 23.09.01 588 11 13쪽
47 47화 +1 23.08.31 626 1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