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알신더의 서재입니다.

남궁세가에서 시작하는 강호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3.07.03 15:51
최근연재일 :
2023.10.05 19:30
연재수 :
75 회
조회수 :
69,846
추천수 :
994
글자수 :
403,950

작성
23.09.14 19:30
조회
527
추천
11
글자
13쪽

58화

DUMMY

기자철이 검을 휘두르자 백도진은 눈을 비비고 싶었다.


혈기가 불처럼 타오르는 만큼 검에서도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그뿐만이 아니라 거대한 파도처럼 일렁이며 다가왔기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혈교의 쓰레기들에게 목숨을 내줄 생각이 없는지라 숨을 가다듬었다.


진기를 끌어올리자 온몸에 힘이 차올랐고 본능은 당장에라도 힘을 분출하고 싶어서 달아올랐다. 하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이성은 거대한 파도처럼 쳐들어오는 혈기의 빈틈을 찾았다.


검이라는 무기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거대하고 잘 단련된 몸의 근력 그리고 전신에서 끌어올린 진기를 십분 활용해서 찔렀다.


쿠구궁!


누구 하나 물러날 생각 없는 강 대 강의 충돌인지라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여파가 어마어마했다.


혼자 감당해낸 만큼 뒤에 있던 무인들은 피해가 없었지만, 백도진은 너덜너덜해졌다. 칼끝을 망치로 때린 듯 뭉툭해진 데다가 충돌을 감당하지 못하고 칼날의 이가 나갔으며 여파로 인해 온몸에 날카로운 자상이 가득 새겨졌다.


물론 백도진만 다친 게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힘을 막아내고서도 버틴 만큼 백도진의 찌르기 역시 강력했기에 기자철도 오른팔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뒤를 지키느라 온몸에 상처 입은 백도진과 다르게 겨우 팔 하나에 불과했지만,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팔이 망가진 만큼 누가 낫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기자철은 팔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화내는 대신 혈인의 머리통을 잡았다.


그리고.


“우웩.”


멀쩡하게 서 있던 혈인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며 바짝 마른 목내이로 변했고 핏물을 한 움큼 토해내며 쓰러졌지만, 흉한 모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뼈가 드러났음에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상처에 시뻘건 기운이 몰려와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상처가 난 적 없다는 듯 복구되었다. 말 그대로 기사(奇事)지만, 백도진은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기자철을 바라보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거참, 저것도 혈신인지 헌신짝인지 하는 놈한테 바친 공물인데 니가 날름 처먹어도 돼?”


“벌레치고 많이 알지만, 알 필요는 없다.”


샘솟듯 뽑아내던 혈기마저 회복된 건 아닌지라 이전보다 느려졌지만, 상처 입은 백도진에게는 그마저도 위협적이었다. 속으로는 치사하다거나 거지 같다는 둥 쉴 새 없이 온갖 욕을 퍼부었다.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힘도 많이 빠졌지만, 검이 망가져서 저놈의 목을 날려버릴 수 없잖아.’


싸울수록 검이 아니라 고철로 변하는지라 이대로 싸우면 답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백도진은 공격을 흘리며 텅 빈 옆구리를 걷어찼다.


“큭.”


백도진은 걷어찬 발등에 통증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고, 기자철은 옆구리에서 전해진 묵직한 통증 때문에 뒤로 물러났다.


둘 다 물러난 건 변함없지만, 백도진은 웃었고 기자철은 눈살을 찌푸렸다.


기자철이야 벌레에게 얻어맞아서 기분 나쁘기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걷어차고서도 통증을 느낀 백도진이 웃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아픔보다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외공이 통한다는 점이 중요했고, 맨몸으로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기에 기세를 북돋우고자 웃었다.


“으하하하!”


“하찮은 벌레 주제에!”


백도진이 일부러 크게 웃자 기자철은 벌레에게 무시당했다고 여겼기에 더욱더 분노했다. 하지만 웃음조차 의도한 만큼 백도진은 신중하게 움직였다.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목숨이 위태로워질 게 자명했지만, 백도진은 무지막지하게 날뛰는 본능을 따라 몸을 움직이며 기자철의 공세를 피하더니 날카롭게 벼린 이성을 제어해 빈틈에 주먹과 발차기를 꽂았다.


“더럽게 단단하네.”


진기가 바닥난 상황이나 다름없지만, 착실하게 수련을 쌓아온 외공은 위기 상황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그렇기에 투덜거리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고, 기자철이 뒤로 물러나려는 낌새를 보이자마자 소리쳤다.


“혈인을 모두 몰아내라! 저놈이 회복하면 골치 아파진다!”


“벌레 주제에 비겁하구나!”


“비겁은 개뿔. 일 대 일 싸움에서 먼저 피 빤 놈이 누군데!”


빈말로라도 백도진의 상황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무지막지한 공격을 받아내며 온몸에 상처를 입은 데다가 치명상을 피했다지만 지금까지 착실하게 쌓아온 외공도 한계를 맞이했다. 그래도 물러날 생각은 없는지라 악을 쓰면서 달려들었다.


“죽어!”


백도진의 공세가 거세지는 만큼 기자철도 위기에 몰렸지만, 자신이 벌레에게 밀린다는 걸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그는 끝까지 검을 놓지 않았다. 그럴수록 백도진의 주먹이 몸에 꽂혔고, 무인들이 혈인을 막고 있기에 너덜너덜해진 몸을 수복할 수도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명백히 불리한 상황이건만, 기자철은 자신의 상식에서 벗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짓이겨주마.”


검을 집어던져서 백도진을 물러나게 한 기자철은 한껏 으르렁거리더니 불꽃이 일렁이는 파도를 다시 만들었다.


백도진은 이게 마지막임을 직감했기에 마른침을 삼키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바닥까지 긁으며 진기를 끌어올렸다. 무인들 역시 여차하면 백도진을 도우러 가기 위해 긴장의 끈을 더욱더 동여맸다.


그 순간 산을 울리는 호각 소리에 모두가, 심지어 기자철마저 고개를 돌렸다.


청성을 지키기 위해 모인 무인들은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고 대응하고자, 기자철은 호각의 의미를 알고 명령과 자존심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백도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다가 빈틈이 보이자마자 단숨에 품 안으로 파고들어서 호쾌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사람의 얼굴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주먹도 으스러지는 소리를 들었지만, 백도진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기자철이 다시 일어나리라고 직감했기에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얼굴을 얻어맞고 휘청인 기자철이 정신을 차리려는 그때 백도진의 주먹이 다시금 기자철의 얼굴로 날아갔다.


말 그대로 최후의 일격인 만큼 관전하던 이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주먹이 얼굴에 닿기 전에 백도진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모두가 망연자실하는 와중에도 장규보와 양정수를 비롯한 몇몇 무인들은 백도진을 날린 이에게 달려들려고 했으나, 어마어마한 압력에 무릎을 꿇지 않는 게 전부였다.


그런 와중에도 순식간에 사위를 정리한 이는 기자철을 보며 혀를 차더니 백도진에게 길게 읍하듯 포권했다.


“손에 쥔 승리를 빼앗아서 미안하오.”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은 와중에도 백도진은 몸을 일으키더니 침을 뱉었다. 죽은 피를 한가득 토해냈지만, 입가를 닦지 않은 채 흐릿해진 눈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려고 애썼다.


“미안한 걸 알면 살살 좀 해주지.”


“이 머저리가 날려 먹은 게 워낙 많아서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구려.”


“여유가 넘치시네. 그래서 죽일 생각이오?”


“본교의 행사를 번번이 방해한 당신을 죽이고 싶지만, 이 머저리랑 다르게 머리에 피가 쏠리지 않았으니 걱정 놓으시구려.”


진심으로 죽이고 싶은지 순식간에 살기가 휘몰아쳤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지만, 온몸이 바스러지기 직전인지라 백도진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다시금 죽은 피를 내뱉었다.


“거참, 저놈도 제 이름은 밝혔는데, 가기 전에 이름이나 알려주고 가쇼.”


“차주호. 이 이름을 다시 들을 때가 죽을 날이니 똑똑히 기억하시구려.”


백도진은 대답 대신 중지를 치켜들었다.


유서 깊은 욕설인지라 차주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죽이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백도진을 건드리지 않은 채 기자철을 데리고 도망치듯 떠났고, 백도진은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정신줄을 놓았다.


***


“으윽.”


“가가! 아주버님께서 일어나셨어요!”


정신이 들자마자 온몸에서 전해지는 격통에 백도진은 신음을 흘렸고, 곁에서 지켜보던 당은혜는 곧장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아픈 와중에도 목이 말랐는지 백도진은 머리맡을 더듬었고, 양정수가 가져온 물을 한 모금 삼키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여긴 어디냐.”


“아직 청성이에요.”


“그래.”


무사히 지켜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입력되자마자 눈앞이 흐려졌지만, 백도진은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너희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 말을 하고 싶었기에 백도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쓰러져서 잠들었고, 싸움으로부터 닷새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눈을 떴다.


이번에도 자그마한 소란이 일어났지만, 두 번째인 만큼 백도진도 양정수와 당은혜를 진정시켰기에 크게 번지지 않았다. 다만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이나 청성의 속가제자들이 감사 인사를 전하느라 조금 번잡스러워졌지만, 장진모와 장규보가 오자 순식간에 소란이 사그라졌다.


“원시천존. 일어나셨구려.”


“터가 좋아서 그런지 이런 중상을 입고도 용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목 밑으로는 살결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붕대가 둘둘 감긴 상황이지만, 백도진은 일부러 농담처럼 말했다.


“자네 말대로 터가 좋은 모양이야. 덕분에 자네 같은 협객이 와서 청성의 미래를 지킬 수 있었으니 말일세. 정말 고맙네.”


장진모와 장규보가 동시에 고개를 숙이자 백도진은 양손을 들어서 만류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지라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자네가 쾌차한 다음으로 미뤄야겠네. 몸조리 잘하게나.”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나가려던 장진모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백도진 앞으로 돌아왔다.


“소림의 속가제자라고 하던데 어느 고인께 배웠는가?”


“기본적인 무공이야 다른 이들과 같이 배웠습니다만, 정륜공은 법유 대사님께 배웠습니다.”


법유 대사의 이름을 듣자마자 장진모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땡감을 한입 가득 씹어도 저보다 나을 정도기에 백도진은 속으로 혀를 찼지만, 아무것도 못 본 척 고개를 숙였고, 장진모는 서둘러 빠져나갔다.


싸움이 벌어진 날로부터 보름이 지나고 나서야 백도진은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 있었고, 천천히 수련하며 몸상태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장진모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백이 넘는 혈인이라니, 말로만 들어도 끔찍합니다.”


“무작정 달려드는 만큼 차륜전을 통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네. 하지만 저들의 의도를 알 수 없어서 꺼림칙하다네.”


혈인이 아무리 상대하기 힘들다지만, 인형에 가까운 만큼 청성이라면 능히 격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백도진은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지만, 이 가설이라면 혈교의 수상쩍은 행동을 전부 설명할 수 있었다. 게다가 불가능한 것을 전부 제외하고 남는 게 있다면 그건 아무리 말이 되지 않더라도 진실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기에 백도진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습격 자체가 목적인 것 같습니다.”


“습격 자체가 목적이라고?”


“일단 청성을 괴롭히기에는 충분한 전력이었지만, 멸망시키기에는 부족한 전력이었습니다. 게다가 청성이 가장 바라지 않던 식으로 습격했으면서도 마지막에는 청성이 가장 바라는 대로 전면전을 펼쳤습니다. 저들이 멍청해서 이런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테니 다른 이유를 모두 쳐내면 습격 자체가 목적이라는 이유만 남습니다.”


“힘을 과시하기 위함인가?”


억측은 금물인지라 백도진은 일단 고개를 저었다.


“이유를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단 저들이 힘을 휘둘렀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과연. 소모품으로 청성과 당문을 동시에 압박했으니 소문이 퍼지면 간악한 이들은 혈교와 붙어먹으려들 테고 부화뇌동하는 이도 생길 터이니 미리 단속해두는 게 좋겠군.”


“놔두십시오.”


“놔두라고? 어째서?”


“저들이 힘을 보여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반응이 있으리라고 기대할 겁니다. 하지만 겨우 이런 일로 움직일 만큼 청성의 이름은 가볍지 않다고 소문을 내면 저들을 엿 먹일 수 있잖습니까.”


“만약 우리가 움직이지 않기를 바란다면?”


“청성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당가가 움직일 테니 괜찮습니다. 게다가 사천에는 청성과 당문만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아, 아미.”


가깝고도 먼 이웃 문파를 떠올린 장진모는 법유 대사 이름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을 콱 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궁세가에서 시작하는 강호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평일 19시 30분 연재입니다. 23.07.03 594 0 -
75 후일담 +3 23.10.05 474 8 7쪽
74 완결 +1 23.10.05 507 10 12쪽
73 73화 +1 23.10.04 461 10 13쪽
72 72화 +1 23.10.03 446 9 12쪽
71 71화 +1 23.10.02 462 11 13쪽
70 70화 +1 23.09.29 484 10 13쪽
69 69화 +1 23.09.28 484 9 13쪽
68 68화 +2 23.09.27 501 9 13쪽
67 67화 +1 23.09.26 491 9 12쪽
66 66화 +2 23.09.25 511 11 12쪽
65 65화 +2 23.09.22 536 12 12쪽
64 64화 +1 23.09.21 523 11 13쪽
63 63화 +3 23.09.20 513 11 12쪽
62 62화 +1 23.09.19 511 12 13쪽
61 61화 +1 23.09.18 550 10 13쪽
60 60화 +2 23.09.16 552 10 12쪽
59 59화 +1 23.09.15 557 12 12쪽
» 58화 +1 23.09.14 528 11 13쪽
57 57화 +2 23.09.13 562 13 12쪽
56 56화 +1 23.09.12 547 13 12쪽
55 55화 +1 23.09.11 547 11 13쪽
54 54화 +1 23.09.09 542 12 12쪽
53 53화 +1 23.09.08 547 11 12쪽
52 52화 +1 23.09.07 519 12 12쪽
51 51화 +1 23.09.06 548 12 12쪽
50 50화 +1 23.09.05 560 12 12쪽
49 49화 +1 23.09.04 553 12 12쪽
48 48화 +1 23.09.01 588 11 13쪽
47 47화 +1 23.08.31 626 1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