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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신더의 서재입니다.

남궁세가에서 시작하는 강호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3.07.03 15:51
최근연재일 :
2023.10.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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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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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6화

DUMMY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더라면 몰라도 생물학적인 아버지이자 사부인 좌평이기에 단번에 의도를 파악하고 눈살을 찌푸릴 뻔했다. 하지만 좌성군은 빈틈을 보여주는 대신 의관을 가다듬고 발걸음을 옮겼다.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그래. 이야기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을 테니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좌평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고 무엇을 선택할지 알았지만, 좌성군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관망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더냐.”


“한쪽이 명백하게 잘못했어도 정파 간의 싸움에 끼어드는 건 위험부담이 큽니다. 설령 중재하더라도 양측 모두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만큼 본파에 괜한 불똥이 튈 겁니다. 물론 화산이 패배할 리는 없습니다만, 백로는 진흙탕을 멀리하는 법입니다.”


원하는 대로 말하지 않았을 뿐, 자신의 자리까지 내던질 생각은 없기에 좌성군은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좌평의 구미에 맞도록 덧칠했다. 하지만 좌평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무덤덤했다.


“양측에서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면 굉장히 귀찮아질 텐데.”


“은밀한 제안이라면 점잖게 거절하시고, 공개적으로 손을 내밀면 고민하십시오.”


“고민하라?”


“고민할수록 무림이 소란스러워질 테니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부득이하게 거절한다고 말씀하십시오. 두 문파가 화산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명예까지 챙길 수 있으니 일거양득입니다.”


“네 말이 참으로 옳다. 하지만 네 사숙이라는 자들은 어디 붙어야 한다고 부화뇌동하고 있으니 가슴이 아플 따름이구나.”


자기 권력을 확고하게 하는 데만 모든 신경을 쏟는 작자인지라 좌평이 뭘 원하는지 훤히 보였다. 하지만 좌성군은 더욱더 고개를 숙였다.


“문주님의 심려를 제가 어찌 짐작하겠습니까.”


“사태가 이러한데 문파의 중진이라는 작자들은 방탕한 생활만 이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좌성군은 마치 자기 잘못인 양 고개 숙였고, 좌평은 입꼬리를 뒤틀어 희미하게 웃더니 순식간에 미소를 거둬들이고 근엄하고 엄숙하게 명령했다.


“그러니 너는 하산하여 화성촌으로 향하라. 가서 화산을 좀먹으려는 사이한 것들을 모조리 배격하라. 이를 어기고 몰래 접선할 이들이 생길 수 있으니 네가 믿을만한 이들로 데려가서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도록 하라.”


한 마디로 돈줄을 옥죄어 기강을 잡겠다는 뜻이지만, 좌성군은 반드시 해내겠다며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찧었다.


“문주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아무리 첩의 자식이라지만, 피가 이어진 부자 관계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제 관계라고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딱딱했다.


하지만 좌평은 이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여겼고, 좌성군은 굴욕이나 다름없는 명령을 감내할 날이 오래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좌평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화성촌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사숙들의 뒷주머니를 털어다가 문주님께 바치면 된다는 소리 아닙니까.”


“허어, 흑우야. 문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리가 있겠느냐. 우리는 화산파의 정기를 흐트러트리는 사이한 자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줄 뿐이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투덜거리는 오혁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기에 너털웃음을 터트렸지만, 좌성군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고자 세심하게 행동하면서도 문주의 명령에 따라 사숙들의 뒷주머니를 강탈했다.


모든 것은 화산의 영광을 위하여.


이렇게 되뇌지 않으면 불쑥 떠오르는 회의감이 온몸을 휘감았기에 좌성군은 사제들의 마음이라도 편해지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화산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렇게 좌성군은 사제들을 다독이면서도 얼마 남지 않은 그날이 빨리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혈인들의 공세와 함께 화산파의 무능한 일대제자들이 일소되고, 자신이 모든 권력을 틀어쥐게 되는 그날을. 그리고 오악검파가 아닌 팔대문파의 일원으로 우뚝 서게 될 영광의 날을.


***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만큼 더운 여름이 숭산에도 도착했다. 여기가 이만큼 더우면 산 밑은 얼마나 더울지 상상하기도 힘들겠다는 말이 튀어나올 수도 있지만, 그런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소림 특제 동인(銅人).


어디 불가마에서 갓 나왔는지 곁에만 있어도 살이 익을 것처럼 지글거린다. 즉, 얘 때문에 덥다는 말이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다.


그 이유를 알려면 며칠 전 법각 대사님의 가르침부터 시작해야 한다.


“수파리와 정반합. 두 가지는 진행 방식은 다르지만, 시작은 똑같더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죽도록 구르고도 무사한 걸 본 법각 스님은 눈빛을 빛냈다. 훌륭한 자질을 지닌 대학생을 목격하고 척척석사 과정으로 인도하려는 교수님처럼.


그래서 더 불안했다.


“올바른 가르침이 있어야 틀을 깰 수 있고, 정반대로 나아가더라도 외도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반박할 수 없는 정론이 튀어나왔지만, 이단공과 함께 발달한 본능은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외쳤다.


이성 역시 본능의 제안이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친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힘든 수련이 들이닥칠 것도 알고 있었기에 본능을 억눌렀다.


젠장.


“그동안 시주의 수련을 살펴본 결과 동중정(動中靜)과 정중동(靜中動)을 구사할 줄 알지만, 깊이가 얕아서 감정이 격해지면 쉽게 표출한다는 게 보이더구나. 그렇다면 제대로 된 동중정과 정중동을 익혀야 하지 않겠느냐.”


학부생을 석사 과정으로 이끄는 교수처럼 설득하는 대신 법각 대사님은 내 앞에 소림 특제 동인을 데리고 오셨고, 수련이 시작되었다.


얘가 뜨겁긴 해도, 하는 수련은 별거 없다.


얘가 가만히 있을 때는 나도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다가, 불시에 움직일 때 대응하면 된다.


지금처럼.


“흡!”


온몸이 쇳덩어리라 맞으면 더럽게 아픈데다 무지막지하게 빨랐다. 무엇보다도 사람과 달리 동작의 징조가 없는 만큼 무지막지하게 까다로워서 힘들다.


가만히 서 있는 중에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기에 정중동을 수련할 수 있고, 움직이고 난 다음부터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해야 하기에 동중정을 익힐 수 있다.


그런데 더럽게 힘들다는 게 문제지.


“후.”


쇳덩어리에 처맞고 뒤로 나뒹굴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동인은 한 각을 꼬박 채울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일어나자마자 짧게 숨을 내뱉어서 호흡을 정돈해야만 했고, 호흡을 정돈하자마자 발을 구르며 공격을 피했다.


법각 대사께서도 내가 구르는 모습이 안쓰러우셨는지 틈틈이 조언해주셨다.


“나무아미타불. 아직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구나. 완전한 부동심을 이룩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아라. 육안은 쉽게 미혹 당하지만, 심안은 올바로 볼 수 있다.”


“정중동과 동중정은 표리일체다. 따로 떼어놓고 바라보지 마라. 자연스럽게 둘을 다룰 수 있어야 비로소 정중동과 동중정을 익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금언에 소림 특제 고약이 더해진 덕에 날이 갈수록 뒹구는 횟수가 적어졌다. 처음에는 한 각 동안 예닐곱 번씩 나뒹굴었지만, 며칠 지나자 대여섯 번으로 줄어들면서 강해지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성장하는 만큼 수련이 험해졌다.


처음부터 가만히 있는 일, 즉, 정중동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동인이 인지하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법각 대사님이 잡아내기 시작하며 고통이 두 배로 늘어났다.


덕분에 수련이 끝나자마자 드러누워서 잠들기 일쑤였지만, 해가 짧아지기 시작할 무렵에는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시진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한 시진을 안정적으로 버티는 걸 목적으로 삼았고, 두 분 대사님은 그 모습을 보고 안주하려 든다고 여기셨기에 새로운 무리를 가르치기 위해 고심하셨다. 하지만 굉장히 애석하게도 수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웃지 마라.”


“제가 언제 웃었다고 그러십니까. 한창 발전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해서 애석해하고 있는 표정이 안 보이십니까.”


“허허. 거짓말을 일삼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던데 백 시주는 현생에서 지옥을 맛보고 싶은 모양이로군요.”


“진짜 아니라니까요!”


나는 정말, 진실로 아쉬워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등급전에서 내가 캐리하며 5연승, 10연승씩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수련할 때마다 강해지고, 강해지는 만큼 재밌으니 더 수련하고 싶은 게 당연지사건만, 두 분께서 내가 기뻐한다고 생각하시니 억울해서 미칠 것만 같다.


“그런데 제가 왜 나서야 합니까?”


“나야 모르지. 방장이 너를 콕 집어서 지명했는데 이유가 필요하더냐. 너도 명색이 속가제자인데 사문에 도움이 되어야지.”


그렇게 말씀하시니 내가 방장의 명을 거절하는 되먹잖은 놈처럼 느껴졌다.


“제가 짐승도 아닌데 나 몰라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알아야 마음의 준비라도 할 것 아닙니까.”


“몰라.”


“예?”


“모른다고. 알면 귀찮아질 테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애초에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알고 싶으면 네가 방장한테 가서 물어봐라.”


일개 속가제자가 소림 방장에게 왜 호출했는지 물어본다? 아무리 내가 막 나가는 척하면서 살아왔다지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짓은 철저하게 구분하면서 살아왔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머리 밀어야 하는 건 아니죠?”


“밀어야 하면 내가 전날 직접 밀어주마. 그러는 김에 불적(佛籍)에 이름을 올리는 건 어떠냐. 정자배 아해들이랑 나이 차이가 좀 있지만, 심하게 차이 나지도 않으니 금방 친해질 수 있겠지. 게다가 네가 제자를 받으면 귀찮은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될 테니 일거양득 아니냐.”


내가 소림에 각별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속세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가족도 생겼고 챙겨야 할 아이들도 있는 몸입니다.”


“쳇.”


어린아이처럼 삐진 법유 대사님을 달래고자 질 좋은 곡차 두 동이를 바치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왜 두 동이냐고? 법각 대사님도 눈치를 주셨거든.


다행히도 나는 머리 밀리지 않은 채 본산으로 갈 수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오랜만에 뵙습니다. 시주님.”


“나무아미타불. 오랜만에 뵙습니다. 심정 스님. 저도 소림의 속가제자입니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백팔 나한의 수좌이자 나한전주인 심정 스님이 나를 맞이하는 점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심정 스님은 그 일보다 내 뒤의 법유 대사님과 법각 대사님에게 신경 쓰셨다.


“크흠, 솔직히 말해서 자네가 할 일은 없네. 하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회담장 뒤를 지켜주게나.”


갑자기 헛기침하며 설명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두 분이 뒤에서 ‘눈에서 빔’이라도 쏘신 모양이지만, 뒤돌아봤다가는 나도 ‘눈에서 빔’을 맞을 테니 참아야지.


“알겠습니다.”


두 분은 내일부터 혹독하게 수련시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고, 나는 심정 스님을 따라서 회담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여기 내가 필요 없다는 깨달음을.


소림에 무슨 일이 생기면 소림의 제자들이 먼저 나서야 하는 게 옳지만, 향화객들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제자들도 평소처럼 움직였다. 그런 와중에 여기만 조용해서 무슨 일인지 알아볼 생각조차 접었다.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조용히 심정 스님을 따라가던 와중에 한 줄기 바람이 불었고, 갑작스러운 바람에 놀라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쥔 순간.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난 호호백발 노도사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너 뭐 하는 놈이냐.”


“그···, 남궁세가의 무사부이자 소림의 속가제자인 백도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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