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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신더의 서재입니다.

남궁세가에서 시작하는 강호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3.07.03 15:51
최근연재일 :
2023.10.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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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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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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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9화

DUMMY

백도진은 답답했다.


낭만 없는 정파 무인은 마피아 혹은 깡패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지만, 남궁호처럼 제대로 된 무인을 만나지 못했기에 답답해했다.


물론 소림에는 낭만을 품은 승려들이 과할 만큼 가득했고, 소림을 제외한 다른 칠대문파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가능성마저 무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세에는 없었다.


정걸이나 상관흠 등 정도를 걷는 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드넓은 중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 한 명 정도는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거기에 4형제나 남궁세가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까지 더해진지라 낭만을 아는 정도 무인을 향한 갈망이 더욱더 깊어졌다.


하지만 미운 짓을 해도 밉지 않은 정걸과 다르게 진짜 미운 짓을 해버리는 태진원을 눈앞에 두자 그간 쌓였던 말이 터지고야 말았다.


어쩌면 지금까지 승려처럼 살아온 반동이 정륜공의 이단공과 맞물려서 표면으로 드러났지만, 원인이야 어쨌건 이런 생각 또한 진심인지라 백도진은 모욕을 멈추지 않았다.


“거지면 거지답게. 승려면 승려답게. 그렇지 않을 거면 왜 거지처럼 살지? 깨끗한 옷을 입고 남들처럼 떵떵거리면서 살아. 개방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고.”


태진원이 귀를 씻으며 일어나서 당장 생사결을 청해도 모자랐다. 중경 분타의 이름으로 척살령을 내려야 겨우 수지타산이 맞을 만큼 어마어마한 폭언이었지만, 힘의 논리에 압도당한 그는 이를 갈며 백도진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공을 세웠으면서도 내세우지 않아야 존경받을 수 있는 거야. 제 입으로 자랑해 봐야 푼수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인데 단꿀을 빨아? 사파가 가득한 동네에서 살다 보니까 머릿속까지 사파처럼 변했냐? 어? 미쳤어? 이딴 인간한테 분타주랍시고 꼬박꼬박 존대한 내가 미친놈이지.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충동에 휩싸인 만큼 백도진의 말은 거칠었다. 하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인지라 태진원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덤벼. 덤비라고! 주먹을 휘둘러!’


백도진은 그가 덤비길 바랐다. 그가 주먹을 휘두른다면 기꺼이 맞아줄 생각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지금까지의 무례를 정중하게 사과할 생각도 있었다.


만약 태진원이 모욕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른다면 가짜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아직 껍데기를 깨고 나오지 못했을 뿐이라는 뜻이었다.


그 말인즉슨 태진원이 진짜 정파의 무인이며, 낭만을 품고 있는 무인이라는 뜻과 다름없는지라 정중한 사죄에 더해서 무릎까지 꿇을 용의도 있었다. 하지만 태진원은 주먹을 휘두르기는커녕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염병. 주먹은 아니더라도 욕이라도 시원하게 할 줄 알았는데.”


백도진이 쓸쓸하게 중얼거리는 동안 태진원은 뒷문으로 나갔고, 문평식은 백도진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설죽실로 들어갔다.


“일이 뜻대로 풀리셨습니까?”


“풀리긴.”


분타주가 돼먹잖은 놈이라는 걸 확인했으니 뜻대로 풀렸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낭만의 니은 자도 찾아볼 수 없는 놈인지라 백도진은 투덜거렸다.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일어난 백도진은 떠날 채비를 위해 아래로 내려가려다가 난간 바로 앞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간 함께 한 정이 있어서 알려주는 건데, 개방 조심해라.”


“예?”


문평식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묻자 백도진은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는 같은 정파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모양인가 봐. 여기 개방보다 너희가 더 정파답네.”


“저희는 사파답게 비겁합니다만.”


“넌 그래도 여자랑 아이들 지키겠다고 나한테 고개까지 숙였잖냐. 정파인 척 위선 떠는 가짜보다는 너희가 낫지. 때려잡기도 편하고.”


때려잡기 편하다는 말에 문평식은 쓰게 웃었지만, 백도진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무튼 조심해라. 저놈들도 니들이랑 다를 바 없으니까. 아니지. 아까 말했듯 위선 떠는 놈들이라서 니들보다 더 지독할지도 모르겠다.”


“거지들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매번 밀리면서도 계속 부대꼈으니까요.”


“하하하. 그래. 그런 거였구만. 나만 모르고 있던 거였어.”


위선의 가면을 쓰고 사파보다 더 지독하게 행동하는 정파. 협박과 살인을 손쉽게 저지르면서도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사파. 어디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없기에 백도진은 쓰게 웃었다.


***


“어흐, 뻐근해라.”


“형님, 괜찮으세요?”


“그래. 오랜만에 말하려니까 턱이 말을 안 듣네. 고생했다. 그리고 미안하다.”


“괜찮아요.”


산길은 험하지만, 분지 안은 길이 잘 닦인 만큼 중경에서부터 성도까지 대략 보름 정도 걸렸다. 그동안 여러모로 생각하느라 입을 열지 않았고, 정수에게도 걱정을 끼쳤다.


“그나저나 크긴 엄청나게 커다란 도시구나. 성벽은 아직 멀었는데 여기까지 마을이 있네.”


합비나 낙양 그리고 중경 등 내가 가본 큰 도시는 좋게든 나쁘게든 옛날 도시였다. 커다란 성벽이 경계가 되어서 안과 밖을 나누고, 그 안에서도 또 경계를 나눈다. 하지만 성도는 규모가 더 컸다.


규모가 큰 만큼 사람이 많겠지만, 정수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난주로 가려면 성도에서 상행에 끼어드는 편이 가장 좋잖아.”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지만, 표정에 수심이 가득하다. 덕분에 길 가던 아가씨들이 정수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지만, 친근한 내 얼굴 덕에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했다.


쟤 빼고.


“호호호. 듣던 대로 아름다운 분이시네요.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따라오세요.”


가슴팍에 사천당문을 상징하는 글자인 당(唐)자를 당당하게 써붙인 무인 둘을 양옆에 데리고 다니는 모습만으로도 어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신경을 거스르는 건 저 꼬마 아가씨가 우리의 거절을 염두에 두고 있지도 않다는 점이었다.


건방지네.


“거절하겠소.”


“뭐라? 나는 네게 묻지 않았다.”


심기 불편한 목소리가 튀어나오자마자 뒤에 서 있던 당가 무인들이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지만, 알 게 뭐람. 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 무릎이 구부려졌고, 용천혈로 진기를 뿜어내며 과할 정도로 힘차게 쏘아졌다


내가 갑자기 움직일 줄 몰랐는지 꼬마 아가씨의 눈이 놀람을 가득 담으며 커다래졌지만, 내가 노리는 건 네가 아니란다. 주제도 모르고 건방지게 기세를 뿜어댄 놈들이지.


주인이 물라고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이빨을 드러내다니 건방진 개새끼들이네. 이런 놈들에게는 훈계가 필요하다.


허리춤에 찬 칼의 무게감이 묵직하게 전해졌지만, 훈계에 칼은 필요 없는 만큼 가볍게 주먹을 뻗었다. 오른쪽에서 서 있던 놈 옆구리와 턱에 한 방씩 먹여준 다음 쓰러지는 머리통을 잡고 풍차 돌리듯 넘어가면서 나를 눈으로 좇으려는 놈의 머리통을 무릎으로 찍었다.


음, 깔끔하네.


“쯧. 사냥개 교육이나 잘 시키쇼.”


사람이 좋게 설명했는데 소매에 손을 넣어? 게다가 독을 뿌려? 아주 그냥 미쳤구나. 개가 문제가 아니라 꼬맹이부터 문제였어.


하긴, 전생에서도 나쁜 개를 고치려는 프로그램에서도 개 문제보다는 사람 문제가 더 많았지.


그러니까 너도 교육 좀 받자꾸나.


“죽여━”


“그래. 한마디만 더 해 봐. 유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으니까.”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응. 잘 알지. 저기를 좀 봐.”


모가지를 쥔 손에 살짝 힘을 줘서 방향을 비틀자 개 같은 년이 독을 뿌린 결과가 드러났다. 평범한 일상을 구가하다가 갑자기 독 맞고 쓰러져서 경련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프다.


“개새끼 두 마리도 못 다루는 주제에 대신 훈계해줬다고 지랄하는 꼬맹이지. 아니지. 미안하구나. 너도 개새끼인데 사람 취급하면 저 사람들한테 미안하지.”


“감히━”


“그래서 내가 네 목을 못 비틀 것 같아?”


꼭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야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지. 그래도 아직 4형제랑 비슷한 나이인 만큼 너무 심하게 몰아칠 수 없으니까 적당히 훈계해야지.


“해독약은 가지고 있냐?”


“···있어.”


대답하기 싫은지 고개를 끄덕이려다가도 목이 잡혀서 움직일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약이 있다니 다행이네.


“가서 해독약 먹여. 허튼짓 벌이면 각오가 되어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게. 굳이 말로 해주자면 세상을 거꾸로 보게 될 거야. 네 눈으로 직접 볼 수 없겠지만,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알겠어.”


거참, 친절하게 말해줬는데도 덜덜 떨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네. 그와 별개로 건방진 꼬맹이는 떠는 손으로 사람들에게 해독제를 먹였다.


그와 별개로 해독약 먹고 경련을 멈춘 사람들이 벌벌 떨면서 손사래 치는 모습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얼마나 행패를 부리고 다녔으면 피해를 보고도 저렇게 굽실거릴까.


거대한 문파나 세가는 지역의 왕처럼 군림한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지만, 유쾌한 경험은 아닌 만큼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젓고 말았다.


“기분 더럽네. 이래서 네가 성도를 싫어한 거였구나.”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맞죠. 게다가···.”


“게다가?”


“저쪽의 직계가 저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데릴사위로 삼겠다고 한동안 난리를 피웠거든요.”


“생각보다 훨씬 큰일이잖아. 말해줬더라면 온몸을 비틀어서라도 경로를 틀었을 텐데.”


“저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으니까요.”


잘잘못을 따지자면 지금까지 넋 놓고 있던 내 잘못이 더 크니 여기 일은 내가 처리해야겠지.


“아직 덜 자란 강아지야. 똑똑해 보이니 오늘 일로 교훈을 얻었으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처럼 친절한 사람이더라도 다음은 없다는 걸 명심하려무나.”


꼬맹이는 분한지 눈을 부릅뜨고 부들부들 떨었다. 교육은커녕 간신히 얻은 교훈도 걷어찬 모습인지라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남의 집안일에 신경쓸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닌지라 가볍게 손을 내저어서 쫓아냈다.


하지만 꼬맹이는 갈 때도 곱게 가지 않았다.


“하찮은 명성을 얻었다고 까불지 마! 사천당가의 앞마당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줄 알아?”


하찮은 명성이라. 명성 그 자체에는 별 관심 없지만, 무슨 명성을 얻었는지는 궁금하네.


“내가 명성을 얻었다고? 그럴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혈교의 끄나풀을 때려잡은 건 혼란을 막기 위한 대외비인 만큼 개방과 하오문이 철저하게 틀어막고 있을 터였다. 그런 만큼 내 이름이 알려질 리가 없는데.


“흥! 내가 말해줄 것 같더냐!”


허세가 절반쯤 들었지만, 나머지 절반에는 독한 심보가 가득 차있는 눈빛이었다. 꼬맹이를 어루만지는 대신 기절한 놈을 깨워서 가볍게 어루만져주면 술술 불겠지만, 그렇게 수고를 들일 만큼 알고 싶은 건 아니다.


“그래. 그러면 입 꾹 닫고 있어. 언젠가 내 귀로 들을 날이 오겠지.”


꼬맹이는 이럴 줄 몰랐는지 씩씩거렸다. 말하고 싶겠지만, 네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겠지. 그러니까 이미 열차는 떠났단다.


아무튼 꼬맹이와 이별하고 계획을 수정했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조금 우회해서 성도 북쪽으로 향했지만, 애석하게도 사천당가의 움직임이 한발 빨랐다.


“사천당가의 당은혜라고 합니다. 철면괴협(鐵面怪俠) 백도진 대협을 뵙습니다.”


거참, 예의도 바르시지.


“정중한 인사 감사합니다. 철면괴협이라는 별호는 처음 듣지만, 백도진입니다.”


내 인사가 끝났으니 정수도 인사해야할 텐데 조용하다. 그래서 돌아보니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저 아가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 눈빛이 심상찮은데?


그와 동시에 저 아가씨가 정수를 데릴사위로 데려가려는 아가씨임을 깨달았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야 말았다.


“아.”


직계라면 가주 딸이라는 소리니까 정수가 당 가주의 사위라는 소리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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