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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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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1.10.01 13:59
최근연재일 :
2022.06.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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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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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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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22,879

작성
22.03.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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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3. 입산 (1)

DUMMY

죽으로 허기를 달랜 윤평은 남궁소형과 함께 마을을 거닐었다.


가운데를 지나는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처럼 길가에는 여행객을 노린 가게가 대다수였다.


비단길이 막혔다지만 남들이 꺼리는 길을 굳이 찾아가는 청개구리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상인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법이기에 그런 이들을 위한 마을이었다.


이산연과 싸운 마을처럼 이곳도 중원에서 쉬이 보기 힘든 이름이었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윤평은 입에 붙지 않는지 몇 번 발음하다가 포기했다.


“가가. 저길 보세요. 파사장삼을 입은 사람들이에요. 거짓말이 아니었네요.”


척 보기에도 이국적인 물건을 가득 싣고 동쪽으로 수레를 모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남궁소형의 말대로 파사장삼을 입은 채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마을은 작지만 의외로 볼거리가 풍성한지라 한 시진이 넘도록 돌아다닌 두 사람은 가볍게 점심을 해결하고서는 객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평소처럼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대신 두 사람 사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누군가 잘못해서 싸운 것도 아니고, 한쪽이 삐쳐서 입을 열지 않느라 생긴 적막도 아니었다.


그저 윤평이 새로운 지식을 익히고 고심하느라 생긴 적막일 뿐이었다.


윤평은 지금까지 누구에게 체계적인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만큼 일신에 지닌 무력에 비해 기초적인 지식이 부족한 상태였다. 물론 체득에 가까울 만큼 익힌 무공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이번 대련으로 인해 얻은 교훈이 있는 만큼 윤평은 남궁소형에게 무공의 기초를 배우기로 했다.


“그럼 시작할까요?”


“네. 준비되었습니다.”


하지만 행서를 써도 초서가 나오는 악필인 만큼 서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데다가 진지하게 새로운 지식을 익히는 일도 군역을 질 때나 했으니 벌써 십 년이 넘었던 만큼 머리가 꽉 막힌 느낌이었다.


그래도 남궁소형이 귀한 시간을 내어 자신을 가르치는 만큼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머릿속이 뒤죽박죽 꼬인 느낌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초식이란 무엇인가요?”


“검법을 비롯한 무공의 기초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지닌 행동을 초라고 하며, 초를 세분화해서 행동이나 움직임마다 나눈 것을 식이라고 합니다.”


“잘하셨어요. 그럼 보법과 신법 그리고 경공의 차이점에 대해 말씀해보시겠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친 내용을 전부 확인하려는 것처럼 묻는 모습이었기에 윤평은 긴장했다. 그러면서도 차분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갓 사자소학을 배우는 학동과도 같았기에 남궁소형은 엷게 미소를 지었다.


“두 개의 설명이 미흡하고 하나는 제대로 설명하셨지만 경공만 제대로 설명하셨으니 불합격이에요. 그러니 벌칙 하나.”


그러면서도 귀로는 윤평의 내용을 듣고 제대로 평가했으며, 불합격이라는 말에 윤평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보법은 싸울 때 간격을 유지하고 확보하기 위해 쓰는 것이며, 신법은 보법을 포함한 몸놀림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정석적인 대답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실 불합격이 나올 때마다 적립하는 벌칙은 그리 과하지 않았지만 남궁소형의 가르침을 헛되이 들었다는 말이나 다름없기에 윤평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봐.”


그 후로도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고, 세 개의 벌칙을 추가로 적립한 윤평은 잠시 쉬며 머리를 식히려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궁소형과 이야기하며 무슨 벌칙이 나올지 살짝 담소를 나누기도 했지만 불쑥 찾아온 불청객의 목소리에 하던 일을 멈춰야만 했다.


“무슨 일이지?”


문을 열어주자 불청객은 윤평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방분만으로도 모자라서 갑작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윤평은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두안민은 이렇게 인사하는 것이야말로 의무라는 것처럼 당연하고 담담하게 인사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사죄다.”


“사죄라니?”


“너는 전사였다. 날 한 눈에 알아봤지. 하지만 난 싸우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무지에 대한 사죄다.”


말하는 투는 변하지 않았기에 사죄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두안민처럼 자존심 강한 무인이 제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인 것만으로도 마음이 전해졌기에 윤평은 물론이거니와 남궁소형도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목적은 그뿐인가?”


“아니다. 약속을 지키러 왔다.”


약속이라는 말에 윤평은 잠시 의아했지만 남궁소형은 기억하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속은 가가께서 패배했을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니던가요?”


“아니다. 시체라도 보내주겠다고 했다. 시체는 아니지만 보내준다.”


“고마워요.”


시체라는 말을 연달아 쓴 덕분에 어감이 썩 좋지 않았지만 약속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만큼은 도움이 되는 일이기에 남궁소형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럼 어디로 가는가.”


“십만대산.”


쉽게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지만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한 두안민을 믿기에 윤평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윤평의 믿음과는 반대로 두안민을 위시한 마적들의 표정이 굳어졌고, 윤평과 남궁소형 역시 일이 잘못되었을 때를 대비해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의외군.”


“의외라니?”


다른 말도 아니고 의외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윤평은 다시금 의아함을 표출했다. 그러자 두안민은 손을 내저어 수하들을 진정시키고서는 말을 이었다.


“가끔 중원에서 오지만 너희랑 소리가 다르다. 더 둥근 느낌.”


윤평은 둥근 느낌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남궁소형은 두안민이 무엇을 듣고 말했는지 알 수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두안민이 들은 것은 복건 사람들의 말투이리라.


비록 멀고 사고도 많긴 했지만 간신히 얻은 거점 아닌 거점이 바로 복건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라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복건에서 직접 사람을 불러 십만대산으로 데려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저희보다 더 남쪽에서 오신 분들이니 말투가 다를 수밖에요.”


“그런가. 그리고 굳어진 이유는 또 있다. 너희는 어디로 가지?”


남궁소형은 짧은 말에서도 한 가지 정보를 더 알아낼 수 있었다.


두안민과 마적들이 십만대산의 사람들과 단순하게 마주친 것뿐만이 마주친 것뿐만이 아니라 모종의 관계를 맺었다고 여겼다.


말투가 귀에 익을 정도라면 한두 번 마주친 것이 아닐 텐데 상호 간의 협정이 없다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십만대산이 강하다고 할지언정 마적 떼가 대막을 주름잡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명령하거나 삼킬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여긴지라 거래 대상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겁설이신 선규화 님을 뵈러 간다.”


남궁소형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윤평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미 목적지를 밝힌 이상 이제 숨기고 말 것도 없는 상황인지라 윤평은 담담하게 말했고, 두안민은 표정을 굳히더니 이내 눈살을 찌푸리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쉬이 볼 수 있는 표정이었건만 무뚝뚝한 두안민이 대답을 듣고 다채롭게 표정을 바꾸자 윤평과 남궁소형은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안민은 잠시 고개를 젓더니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툭 내뱉었다.


“진짜 손님이었군. 미안하다.”


진짜 손님이라는 말에 남궁소형은 잠시 당황했지만 뒷골목에서도 이런 방식을 종종 사용했던 만큼 윤평은 단숨에 무슨 말인지 알아채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신기하군.”


“뭐가 신기하지?”


“장성 밖에서 돌아올 때,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그 분이었지. 그런데 장성을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그 분과 아는 사이라니 신기할 수밖에 없지.”


그 말을 들은 두안민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분이라면 윤평처럼 강인한 전사를 좋아하니 초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사로서 호감을 품은 것과 혈풍단의 일원으로 해야 하는 일은 엄연히 구분해야 하는 만큼 두안민은 질문을 던졌다.


“그 분께서 주신 증표가 있나?”


“없지.”


그러자 두안민은 통과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더니 중원의 말이 아닌 다른 말로 수하들에게 지시하고서는 정중하게 고개 숙였다.


“손님. 환영한다. 백랑의 사자 소속 달로화적 두안민. 이제부터 손님을 모시고 간다.”


달로화적이라는 단어가 참 어색하긴 했지만 이미 중원에서 보던 것과는 이질적인 이름을 많이 본 데다가 장성을 넘어 십만대산으로 향하는 만큼 어색하게 여기는 대신 예를 갖춰서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한다.”


“잘 부탁해요.”


윤평과 남궁소형이 차례대로 인사하자 두안민은 고개를 끄덕였고, 밖에서 수하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정중한 몸짓과 함께 두 사람을 안내했다.


“그럼 가자.”


어느새 수하들이 말을 몰고 온 것뿐만이 아니라 안장 옆에 짐을 몇 덩이씩 쌓아둔 모습에 윤평은 감탄했다.


두 사람이 무식하게 사막을 배회하며 천운에 힘입어 위위위에 도착했을 때보다 이 마을까지 오는 여정이 훨씬 편했다. 이제는 이들이 제대로 준비해서 안내하는 만큼 전보다 더 편안한 여정이 되리라고 여겼기에 윤평은 한시름 놓았다.


윤평의 생각대로 십만대산으로 향하는 여정은 편했다.


밤이 되면 커다란 천막을 만들어서 잠자리를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늦은 밤에도 개의치 않고 덮쳐오는 모래 섞인 바람과 더위까지 막아주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여행 중에 먹는 음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한 음식을 매 끼니 먹다 보니 윤평은 한결 편안해졌다.


덕분에 말을 타고 움직일 때마다 남궁소형에게 배운 무공의 기초를 되새기며 체득하는데 힘쓸 수 있게 되었지만 남궁소형의 표정은 조금 복잡했다.


십만대산과 모종의 연합이라고 여겼던 예측이 빗나가고 십만대산의 일부라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장성의 끝인 가욕관을 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감숙성 내부인 데다가 중원의 끝이라고 일컬어지는 돈황이나 옥문관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시선에서 보자면 복건 말고도 감숙에 십만대산의 세력이 침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인지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런 속내를 드러냈다가는 십만대산에 도착하자마자 포위당해 그대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만큼 그녀의 머릿속은 더욱더 복잡해져만 갔다.


하지만 남궁소형의 속내가 얼마나 복잡하던 시간은 흘렀고, 일행은 돈황과 옥문관을 지나서 더욱더 서쪽으로 나아가더니 거대한 분지와 드넓은 초원을 거쳐 십만대산에 도착했다.


“도착했다.”


“대단하군.”


“십만대산의 위용은 언제 봐도 대단하다.”


이제 십만대산의 초입이건만 장엄한 산세는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은 북경과 비견할 수 있을 만큼 대단했다. 그렇기에 담담하게 설명하는 두안민의 목소리에도 자부심이 담겨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평은 그런 모습에 감탄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물론 십만대산의 위용에 감탄하기도 했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렇게 먼 거리를 이토록 빨리 달려온 너희 솜씨에 감탄했다.”


대서에 사막을 진입했으니 이래저래 이동한 시간을 가늠한다면 세 순(旬)하고도 이레가 지났건만 그 사이에 거대한 사막을 가로질러 십만대산에 도착했으니 감탄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당연한 일이다. 안으로 들어간다.”


두안민은 가볍게 일축했지만 그 속에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던 만큼 윤평은 슬그머니 웃었다. 하지만 이어진 행동과 주변의 반응을 보고서는 그간 살짝 놓고 있었던 긴장의 끈을 동여맬 수밖에 없었다.


“간다.”


녹색 바탕에 은으로 칠한 초승달과 그 주변을 감싼 일곱 개의 별이 그려진 깃발을 가장 위에 게양하더니 그 밑에는 붉은 선이 대각으로 그려진 하얀 바탕에 푸른 늑대가 그려진 깃발을 게양했다.


그러자 커다란 세 개의 문 중 오른쪽 문이 열리더니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고, 깃대를 받아든 두안민이 앞으로 나아가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백랑의 사자 소속 달로화적 두안민이 겁설의 손님을 모시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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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23. 입산 (5) +4 22.03.14 1,329 30 13쪽
140 23. 입산 (4) +4 22.03.12 1,361 32 14쪽
139 23. 입산 (3) +4 22.03.11 1,376 3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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