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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님의 서재입니다.

수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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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작품등록일 :
2020.10.12 23:01
최근연재일 :
2020.12.30 23:30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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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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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433,747

작성
20.11.02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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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의심(4)

DUMMY

[수면 시계를 부숴버리세요.]



!!!!!!!



“이걸 부숴버리라고?!?!?!”


“아니 무슨 이런 미션을·.”


“어린아이에게 선물 줬다 뺐는 것도 아니고 참 황당하네요.”


“그러게요. 멋대로 왔다가 멋대로 보내주라니...”



수면 시계를 부숴라.

무슨 의미일까?

미션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시계를 사용할 수 없고 한다고 해도 시계가 부서진 상황에서 나에게 이용권을 선사할지도 미지수다.


넋을 놓고 시계를 바라본다.


이 물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왜 하필이면 나에게 찾아온 걸까.

말없이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으니 세진이 재촉한다.



“현재씨, 이대로 포기할 거에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근데 왜 가만히 있는 거예요. 다시 잠 못 자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건 아니지만 딱히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방법이 없으면 방법을 찾아야죠!”



세진의 표정은 꽤나 다급해 보인다. 평소 그렇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조급하거나 다급한 모습을 보일 때는 필히 이유가 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전사적인 구조조정을 앞두고 각 팀의 팀장과 임원들은 조급한 모습을 보인다. 내가 이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되도록, 무슨 성과 하나라도 더 내기 위해서, 팀원들을 달달 볶는다.


고로 세진이 다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불면증을 겪을 내가 정말 걱정되거나,

둘째, 내가 수면시계를 계속 사용해줘야 하는 이유가 있거나.


무엇이 맞는지는 솔직히 아직까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저한테 시계를 줘보세요. 이번에도 잘하면 PASS 권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 PASS 권을 얻은 것은 우연 아니었나요?”


“우연이 두 번 반복될 수도 있는 거죠.”


“네, 알겠습니다. 시계 여깄습니다.”



다시 한번 시계를 넘겼다. 세진의 말이 맞다. 이대로 부수어 버리기에는 찝찝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아직 시계의 비밀을 풀지 못했으며, 한때 그만 사용해야겠다고 다짐도 했었지마는, 막상 이 시계가 당장 없어진다고 하니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무엇보다 또다시 찾아올 불면증이 두렵기도 하다.


세진을 바라본다. 그녀는 시계를 이리저리 조작하고 있다. 아무 버튼이나 누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전문가의 손길... 처럼 느껴진다.



“아이 ㅆ!!!”


“헉.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평소의 세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최근에 몇 번 보았다. 사람이 어떻게 욕을 안 하고 살겠느냐마는, 세진의 입에서 쌍시옷 발음이 나오면 왠지 모르게 당황스럽다. 어쩌면 지금껏 나에게 보여줬던 모습들이, 포장지에 잘 둘러싸여진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처럼 아무 버튼이나 막 누르다가 성공한 것 같긴 한데...”


“성공한 것 같긴 한데...?”



우연이 두 번 반복되었다. 세진은 말없이 시계 화면을 보여준다.



[강제 PASS는 연속 최대 2회까지 허용됩니다. 미션을 완료하세요.]



“연속 2회까지라... 아현병원과 한방만기자 미션 두 가지를 이미 PASS 시켜버렸으니 이용권이 2회 연속으로 사용된 것이 맞네요.”


“이거... 혹시 뭐 고장 난 거 아닐까요?! 분명 이럴 리 없는데...”


“고장 났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겠네요. 아까 병원 계단에서 시계랑 같이 구르기도 했으니.”



수면 시계.


그것은 나의 우울한 세상에 한 줄기의 빛처럼 다가왔다. 가장 힘들고 어둡던 시절 갑작스럽게 내 앞에 나타났다.


이 시계를 던지고는 자취를 감춰버린 김혜성박사의 말처럼, 어찌 보면 인생에서 커다란 행운이었다. 어릴 때부터 운이 지지리도 없던 내 인생에서 남들이 가지지 못한 행운을 얻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 적어도 그때의 나는 충분히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세진씨, 제 시계 주세요.”


“네? 아, 여기요...”



뭔가를 더 만지고 있던 세진이 시계를 넘긴다. 나는 시계를 받아 들고 10초간 가만히 응시한다.모처럼 행복을 느끼게 해줬던 내 수면 시계.


안뇽.



“에라잇!”



퍽퍽퍽-



시계를 내동댕이치고 발로 마구 짓밟는다. 오늘은 새로 산 구두를 신고 왔지만 신발 밑창을 걱정하는 마음 따위는 조금도 들지 않는다. 한번 결정했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실천해야 하는 법. 중간에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일을 그르치기 일쑤다.


그렇게

시계를 완벽하게 부숴버렸다.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은근슬쩍 기대했던 이용권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미션이라고 해놓고 이렇게 이용권도 안 주다니... 예상은 했지만 괜히 먹튀 당한 기분이긴 하네.’



“어머, 현재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세진이 실망 반, 화남 반이 섞인 표정으로 소리친다. 아니, 반반 섞인 표정으로 소리치는 것 같다. 나를 걱정하는 표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멋대로 의심하면 안 되는데.

소중한 내 여자친구인데.

내가 믿어야 하는데.



“시계를... 제가 망가뜨렸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그런 짓을... 제가 말했잖아요.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고. 방법이야 찾으면 될 거라고!!!”


“제가 시계를 계속 사용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제가 시계를 사용하면 세진씨한테 득이 되는 게 있습니까?”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현재씨 불면증이 계속될까 걱정했어요. 걱정하는 마음은 여자친구로서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나를 걱정했다는 그녀.

그녀의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




*** 1시간 전



친구 김기자와 통화 중인 강현재.



“야,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내가 너한테 왜 전화했냐면. 너 여자친구 이름 이세진이라고 하지 않았냐?”


“맞아 이세진. 그건 왜?”


“니가 지난번에 알아봐 달라고 했던 수면 시계 나도 좀 알아봤는데...”


“뭐? 빨리 말해봐 빨리!!!”


“알았어. 내가 방금 수면 시계에 관련된 기사를 찾았어.”


“근데?”


“니말대로 1년 조금 더 전에 수면 시계 관련된 기사 하나가 났었어. 근데 사이트에 올라가자마자 폐기된 기사 물이었지.”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하라니까!!!”


“아, 알겠어 알겠어. 근데 너 놀라지 마. 글쎄 그 기사를 쓴 사람이, 니가 오늘 만나고 싶다고 했던 한방만 부장님이야.”


“뭐?!?!?!”



담당 기자가 한방만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근데 있잖아, 삭제된 기사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어.”


“두 개라고...?”


“응. 5월 28일 자로 둘 다 담당 기자는 한방만. 하나는 수면 시계출시 기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단 사진으로 보내 줄게.”



띠링-


[기자기자 김기자 : 사진]



떨리는 마음으로 카톡을 클릭했다. 기자에게서 온 사진은 두 개다. 하나는 기자가 말했던 수면 시계출시 기사.



[삼일전자는 오는 10일 수면 활동을 제어할 수 있는 수면 시계를 출시한다고 28일 밝혔다.

최근 몇 년 사이 불면증 환자가 급증하는 사회 현상에 따라, 수년 전부터 삼일전자 신제품 개발 TF팀이 수면 시계 개발에 착수했다.

탑재된 LED 화면상에서 날짜와 시간을 선택하고 저장하면, 자신이 어떤 장소에 있든 지정된 시간에 숙면을 취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아는 내용이군.’



[시계의 출고가는 개당 3,000만원이며, 이미 1차 예약 판매는 끝난 상황이다.]



‘뭐, 3,000만원?! 이게 그렇게 비싼 물건이었다고?!’



[삼일전자 관계자는

“현재 약 10개의 수면 시계만을 시범적으로 고가에 출할 계획이며, 10월 이후 파격적으로 낮춰진 가격으로 물량 제한 없이 공급할 예정입니다. 수면 시계가 곧 전 세계 불면증 환자들에게 행복을 쥐여 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편, 신제품 개발팀 이세진 ]



“응? 이세진...? 이세진이 왜 여기서 나와.”


“그래서 그게 나도 의문이야. 궁금해서 나도 좀 찾아봤는데 사진이 없어서 동일인인지는 모르겠어.”


“지워진 이유가 뭘까...”


“나도 의문이야. 물론 동명이인일 수도 있지만, 니가 수면 시계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꺼낸 시점과 이세진을 만난 시점이 거의 비슷하니까.”


“근데 이 뒤에 기사는 어딨어? 이세진 뒤에.”


“없어. 그게 끝이야.”


“뭐?”


“나도 모르겠는데 그게 끝이야. 부장님이 저장하면서 실수로 날렸거나, 누군가가 일부러 지운 거겠지.”



아닐 거다.

세진과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


근데 궁금해 미치겠다. 저 뒤에 있는 내용은 무슨 내용이었을까?



“아무튼 빨리 두 번째 기사도 봐.”


“그래. 알겠어.”



[배우 이무영(31)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경찰서는 오늘 28일 오전 6시쯤 이씨가 청담동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인이 발견해 신고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 중이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무영씨는 이미 지난 1월 한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구조된 적이 있다.


한편, 수면 시계는 오는 10일 10개 한정으로 출시된다.]



“배우 이무영 기사잖아? 이건 나도 작년에 봤지. 한때 떠들썩 했으니까.”


“가장 마지막 문장 보이지.”


“응. 보여.”


“저 기사가 삭제된 후 올라온 기사에는 딱 저 문장만 없어.”


“그게 왜? 어차피 이무영과는 관련 없는 내용 같은데···”


“보통 기자들은 기사에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기사 맨 아래에 ‘한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기재하거든. 저렇게 기재해 놓으면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알아서 추리해주니까.”


“이무영의 죽음은 악플에 의한 자살이라고 밝혀졌었잖아. 이무영의 죽음이 사실 수면 시계와 관련 있었다는 거야?”


“응. 그리고 무언가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거지. 가능성일 뿐이지만.”


“이세진... 배우의 죽음...”


“너. 근데 한방만 기자가 담당이었던 거 알고 나한테 부탁한 거야?”



알고 부탁했을 리가 없다. 단지 수면 시계 화면에 뜬 미션이 그것일 뿐이었으니까. 그 물건이 시키는 대로 하고자 한 것뿐이니까.



“아니 그게 사실은...”



기왕 이렇게 된 거 기자한테 그간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놨다. 언제 어떻게 수면 시계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사용하면서 내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그리고 세진씨를 만나면서 겪었던 일들까지 모두. 다만 주관적인 감정은 섞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만 말했다.



“와 진짜 그런 시계를 네가 가자고 있다고? 니 인생에 진짜 놀라울 일이다 놀라울 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어쩌다 이 시계를 얻어서...”




***



세진에게 약간의 의심을 품은 채로 집에 돌아왔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니 약간의 후회가 밀려온다. 오늘 밤, 아니면 평생 또다시 찾아올 불면증이 걱정되기도 하고, 그렇게 내 발로 부숴버린 3,000만원이 아깝기도 하다.



이제 세진과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무지 모르겠다.




수면시계는 매일 오후 11:30 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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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팀장을 고발하라(2) 20.10.23 34 0 12쪽
12 팀장을 고발하라(1) 20.10.22 36 0 12쪽
11 꿈 속의 여자(3) 20.10.21 41 0 12쪽
10 꿈 속의 여자(2) 20.10.20 41 0 11쪽
9 꿈 속의 여자(1) 20.10.20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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