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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님의 서재입니다.

수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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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작품등록일 :
2020.10.12 23:01
최근연재일 :
2020.12.30 23:30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2,568
추천수 :
5
글자수 :
433,747

작성
20.10.3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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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의심(2)

DUMMY

“아현병원에서 제 소중했던 사람이 죽었어요.”



???!!!



“소중한 사람이라면 혹시 가족입니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말씀드릴게요.”



세진의 표정이 슬퍼 보인다. 그러고 보니 세진이 지금껏 가족 이야기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이상하게도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일부러 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난번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꺼냈을 때도 그녀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되기는 했지만 약간은 서운한 감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혹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말하기를 꺼리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아현병원은 서울에서도 꽤 알아주는 병원이다. 가끔 어디 회장님이나 국회의원들이 경찰 조사를 받기 전 아프다며 병원에 드러누울 때 자주 언급되는 병원이기도 하다.

만약 세진이 말하는 소중한 사람이 그녀의 가족이라면 적어도 찢어질 만큼 가난에 허덕이는 불우한 가정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 간의 불화?

방에 가둬진 적이 있다고는 했으나 그건 어린 시절 잠깐이었더랬다. 무엇보다 세진은 너무 잘 자랐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배려심이 깊으며 무엇보다 순수하다. 7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만을 보고 배워온 나로서는 이 나이에 저런 순수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아니면 설마...


3대로 내려오는 어마무시한 조폭 집안?!?!?!



너무 갔다.

더 이상 생각을 말자.



‘뭐,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말해 주겠지.’



“저기 현재씨,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아닙니다. 사람마다 사정이 있는 거니까... 세진씨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고마워요. 나중에 꼭 말해줄게요. 꼭.”


“넵...”


“아, 현재씨! 그러지 말고 다음 미션 확인해봐요. 아까 제가 미션 PASS 권을 얻었잖아요! “


“아 그렇죠. 한번 확인해 볼게요.”



[다음 미션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예.


[중안일보 한방만 기자를 찾아가세요.]



“뭐야, 미션이 점점 성의가 없어지네요. 이제 말도 짧아지고 두구두구두구... 뭐 이런 멘트도 안 나오고.”


“이런 씨ㅂ...”


“네?”


“넹?”


“아니 방금 혹시 욕하신 겁니까?”


“넹? 욕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분명히 들었는데 쌍시옷 발음...”


“아, 그거. 쌍시옷 발음의 욕이 아니라 신발이요 신발. 갑자기 신발 끈이 풀려서요.”


“저기... 구두 신고 계신 것 같은데.”


“헉”



세진의 얼굴이 붉어진다.



‘풉. 귀엽군. 좀 더 놀려볼까.’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투명 끈이라도 달려 있나 보죠?”


“장난치지 마세요. 제가 욕하는 거 보신 적 있어요?”


“네, 방금요...”


“아니라니까요!!!”


“하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상하게 점점 미션이 쉬워지는 느낌이네요.”


“그러게요. 정말 이상하네요...”


“근데 한방만기자는 도대체 누굴까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인데.”


“...”


“세진씨?”


“아 네, 네. 잠깐 딴 생각 좀 했어요.”


“세진씨 내일 시간 된다고 하셨죠? 저도 일괄 휴무라 쉬는 날이니 그날같이 가보죠. 저 혼자 가도 되기는 하지만 세진씨가 워낙 궁금해하셨으니.”


“네. 그러죠. 내일. 근데 어떻게 찾으시게요? 아마 보안 때문에 외부인이 들어가지는 못할 텐데.”


“마침 중안일보 다니는 제 친구가 한 명 있어요. 제 사정도 대충 아니 그 친구 통해서 연락을 취해보도록 하죠.”


“그거 참 잘됐네요.”


“네. 친구 덕을 이렇게 보네요.”


“이럴 때 서로 돕는 거죠 뭐~”


“오늘은 데려다줄게요.”


“아니요. 혼자 갈게요. 잠시 들를 곳이 있어서.”


“아 그러세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네. 다음에 꼭 데려다주세요~!!!”


“넵. 그럼 내일 봐요!!! 연락할게요.”




***



퀘엥-



잠을 못 잤다. 남아 있는 이용권을 잘못 계산한 탓이다. 그러나 오늘 한방만 기자를 찾아가 미션을 클리어하면 이용권 5개를 얻을 수 있다. 이전과 똑같이 밤을 새웠지만,

믿을 구석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심리적 안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물론 지금 나에게는 수면 시계가 있으니 ‘있고’쪽이다.



‘오늘 하루만 어떻게 버텨보자...’



세진과는 중안일보가 있는 여의도 중심가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2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긴 걱정되는 현재. 순간 세진이 나타난다.



“현재씨, 늦어서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무슨 일 있던 건 아니죠?”


“아 그게 사실 오늘 몸이 좀...”



풀썩-



“세진씨 괜찮아요?!?!?! 저기, 누가 119좀 불러주세요!!! 정신 차려봐요 세진씨.”



“과로인 것 같습니다. 충분한 휴식 취하면 금방 괜찮아지실 겁니다.”


“과로 때문이라구요···?”



세진은 프리랜서 작가다. 직장인들은 항상 프리랜서를 꿈꾸기 때문에 프리랜서라고 하면

그들이 직장인 보다 덜 피로한 삶, 시간이 충분히 여유 있는 삶을 영위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프리랜서도 하나의 직업이다. 끊임없이 고뇌해야 하는 직업이며 일반적인 직장인보다 낮은 수준의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가지는 경우가 대다수.

편협한 사고 때문에 작가=한가한 사람

고로 세진=한가한 사람

이라는 공식이 의도치 않게 머리에 박혀 있었다.


지금껏 세진은 항상 모든 스케줄을 나에게 맞춰주었다. 내가 편한 시간, 내가 편한 장소. 생각해 보면 세진이 제대로 작업할 시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와 헤어진 후 밤새 글을 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연희랑 헤어졌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까? 사람이 끊임없이 잘해주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당연한 것인 줄 안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진심에 변함없이 감사할 줄 알며, 받은 것 보다 더 많이 베풀기도 한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나는 그 소수에 들지 못한 것 같다.


연희에게도, 세진에게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현재씨... 여기가 어디죠···?”


“세진씨, 깼어요? 몸은 좀 괜찮아요?”


“네, 괜찮은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과로랍니다.”


“아...”


“요즘 일이 많았으면 말하지...맨날 나만 생각 했었나 봐요. 미안해요 정말로...”


“현재씨 잘못 아니 에요. 제가 스케줄 관리를 제대로 못 한 거죠.”



착하다.

너무 착하다.

이 여자는 너무 착해서 내가 끊임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든다.



잠시 바람을 쐬러 옥상에 올랐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아 예. 여기요.”



30대 중반 언저리로 추정되는 단발머리 여자는 깊은 한숨과 함께 담배를 태운다.



“이 병원 다니세요?”


“아, 아니요. 여자친구가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 때문에 왔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옷스타일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로 봐서는 입원 환자 같지는 않은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생기가 없어 보인다. 마치 이틀 밤을 새우고 난 내 모습처럼.



“병원 어떻게 오셨어요?”


“저는 그냥 상담받으러요.”


“아 예...”


“제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나요?”


“아니요 그런 거까지는 아닌데. 살짝 피곤해 보이셔서요.”


“그렇죠... 사실 요 근래 3일 동안 한숨도 못 잤거든요.”


“헉 3일씩이나요?!”


“네.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이해해주세요. 저도 너무 힘들어서요...”


“네... 저도 불면증 겪어봐서 그 고통 잘 압니다.”



‘안색이 안 좋은 것을 다른 사람 양해까지 구해야 하는 세상인가... 요즘 세상 참 살기 힘들다.’



여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전 봤던 얼굴이 좀 더 수척해 보인다.



‘이게 없었다면 나도 저 꼴이었을지도...’



내 팔에 단단히 채워진 수면 시계가 오늘따라 더 기특해 보인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짧은 대화가 끝나고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이런 침묵을 견디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저,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반가웠습니다.”



서둘러 옥상을 빠져나온다.



‘세진씨는 잘 자고 있으려나...’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응?”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누군가 뒤에서 빛의 속도로 뛰어온다. 뒤를 돌아보는 강현재.



퍼억-



“헉?!”



부웅-



강현재를 향해 달려오던 단발머리가 가녀린 두 손으로 있는 힘껏 남자를 민다. 그대로 굴러떨어진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안녕.’



쿠당탕탕탕탕탕탕탕탕- 탕.




***



“으음...”



눈이 부시다. 여긴 어디지.


눈을 뜨려고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눈을 동그랗게 뜬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세진씨···?”


“현재씨!!! 괜찮아요? 눈 좀 떠봐요!!!”



겨우겨우 실눈을 떴다 감았다 10번 정도 반복한 후 에야 비로소 눈앞이 선명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세진 말고도 간호사 한 명, 의사 한 명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가벼운 뇌진탕입니다.”


“뇌진탕이요···?”


“다른 환자분께서 옥상 밑에 쓰러져 있는 환자분을 발견하셨어요.”


“현재씨,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무슨 일이었지... 아! 누가 갑자기 나를 계단에서 밀었어요.”



그래.

기억난다.

그 망할 놈의 여자가 갑자기 나를 계단 밑으로 밀었다.



‘도대체 갑자기 왜지···?’



“CCTV가 있으니 저희 쪽에서 한 번 확인해 보죠. 확인 후 연락 드리겠습니다.”


“선생님, 현재씨는 괜찮은 건가요?!”


“네. 쓰러진 후로 이미 다섯 시간이나 휴식을 취하셨으니 좀 정신이 들면 퇴원하셔도 됩니다.”


“다, 다섯 시간이나 쓰러져 있었다구요?!”


“네. 다섯 시간이요. 이세진씨도 퇴원 하셔도 됩니다. 대신 두분 모두 당분간 무리하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넵...”



그렇게 병원에 온 지 약 7시간 만에 우리는 병원 문을 나서게 되었다.



“CCTV 확인해 준다고 했으니 곧 연락 올 거예요. 근데 도대체 누가 뭐 때문에 현재씨를...”


“그러게요... 딱히 누구한테 원한 살 만한 일은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은데.”


“영 찝찝하네요...”


“그나저나 세진씨는 몸 좀 괜찮아요?”


“네, 저는 아까 괜찮아졌어요. 현재씨는요?”


“저도 뭐 다섯 시간이나 잤더니 지금은 멀쩡합니다.”


“다행이네요. 잠들었다가 눈을 떴는데 옆 침대에 현재씨가 누워있어서 깜짝 놀랐지 뭐에요?”


“하하하. 저도 놀랬습니다. 갑자기 밀리니까 몸이 붕 뜨는데 죽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었지 뭡니까.”


“그렇게 떨어졌는데 가벼운 뇌진탕인게 신기할 따름이네요.”


“제가 워낙에 천하 무적이라!!!”


“아 근데 오늘 저 때문에 한방만 기자님 못 만나서 어떡해요.”


“그거야 뭐... 제가 알아서 할게요. 세진씨는 신경 쓰지 마세요.”


“하... 벌써 가을 날씨네요.”



‘앗, 생각해보니 이때쯤이면!”



“세진씨, 지금 한강 갈래요?”


“갑자기 한강이요?”


“네. 오늘부터 불꽃 축제 시작이라는데.”


“흠...”



‘뭐지... 불꽃을 안 좋아하나.’



“아니요. 현재씨.”


“아, 안 좋아하시는구나...”



“한강 말고 다른 데 가요 우리.”



‘다른데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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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팀장을 고발하라(2) 20.10.23 34 0 12쪽
12 팀장을 고발하라(1) 20.10.22 36 0 12쪽
11 꿈 속의 여자(3) 20.10.21 40 0 12쪽
10 꿈 속의 여자(2) 20.10.20 40 0 11쪽
9 꿈 속의 여자(1) 20.10.20 43 0 12쪽
8 그땐 몰랐던 것들 20.10.18 47 0 12쪽
7 나폴레옹 수면법(2) 20.10.17 57 0 13쪽
6 나폴레옹 수면법(1) 20.10.16 6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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