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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님의 서재입니다.

수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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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작품등록일 :
2020.10.12 23:01
최근연재일 :
2020.12.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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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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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3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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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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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의 여자(3)

DUMMY

경기 4283.


어제 탔던 택시 번호다.



‘그래.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걸 수도 있어. 어제 술을 좀 마셨기도 했고. 맞다. 태수가 택시 사진을 찍어서 보냈었지. 사진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자.’



[정태수: 야 사진 여기에도 보내 놓는다. 경기 4283!!]

[사진: ‘경기 4283’이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번호판이 부착되어 있는 회색 택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내가 택시 강도의 피해자가 될 뻔했다는 사실도 물론 소름 돋는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날 택시에서 내가 꿨던 꿈에 더 소름이 돋는다.

그 여자는 자신을 구해달라고 했으면서 결과적으로 나를 구했다.


그가 택시 강도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정말 현실에도 존재하는 사람이 맞다면, 나를 구한 그녀는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일에 집중이 안 된다.



“저기 윤 대리님?”


“네.”


“혹시 꿈속에서 만난 사람을 실제로 본 적 있어요?”


“네? 아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역시 그런 경험은 없겠죠?”


“혹시 강 대리님 본인 이야기인가요?”


“아 뭐 그런 건 아니고···.”



‘그래. 누가 들어도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만두자.’



“이전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고?”


“네. 뭐 대충 그렇다고 쳐요.”


“그럼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운명 아닐까요?”


“네? 운명이요? 아니 이야기가 왜 갑자기 그렇게 흘러가는 거죠.”


“네 운명이요. 제가 드라마를 즐겨봐서 그런가. 왜 드라마 ‘또 오해영’ 보면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막 꿈에서 먼저 보다가 현실에서 딱 마주쳐서 놀라는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아. 너무 설렌다~.”



‘윤 대리님이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드라마에서나 등장하는 그런 운명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네 그럼요.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천생연분이 있어요. 애초에 운명의 상대가 없이 태어난 사람은 태어난 지 100일 안에 죽는대요.”


“저는 그런 운명이나 미신은 안 믿는 스타일입니다.”


“사실 저도 처음부터 운명을 믿었던 것은 아니에요. 유일하게 딱 하나 가지고 있던 제 신조가 ‘우연히 3번 마주치면 운명이다’라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정말로 그런 운명의 상대를 만났어요.”


윤 대리의 남자친구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윤 대리 정도 되는 여자와 사귀려면 분명 멋진 사람이겠지?

깔끔한 정장에 포마드 헤어. 키는 180 남짓. 그러나 마르지 않고 적당한 근육으로 덮여 있는 몸. 롤스로이스 신형 자동차를 끌고 회사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그런 사람.


딱 그런 사람과 어울린다 윤 대리는.



아무튼 뭐. 전혀 연고 없던 사람을 세 번이나 마주쳤다면 정말 대리님 생각처럼 운명의 상대일 수도 있겠다.



‘꽤 오래 사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혼은 언제 하시려나?’



“처음 그를 만난 건 10년 전 캠핑장이었어요. 대학생 때 과 친구들이랑 강원도 양양으로 캠핑을 갔는데 텐트를 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거에요. 그래서 4명이 끙끙대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분이 나타나셨죠.”


“첫 만남이 굉장히 낭만적이네요. 정말 드라마 같군요.”


“네 맞아요. 그분이 저희 텐트 치는 것을 도와주시고 캠핑하는 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가르쳐주셨어요. 덕분에 제가 캠핑에 흥미를 가져 지금도 취미로 즐기고 있어요. 암튼 그때는 그 모습에 반했었죠.”


“요즘처럼 버튼 하나로 설치할 수 있는 원터치 텐트가 일반적인 시기였다면 그런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했겠네요.”


“네 맞아요. 그것도 사실 그때 그 시기라는 타이밍이 딱 들어맞았던 거죠. 그날 내 친구들과 그와 함께 온 친구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다음날 서로 쿨 하게 헤어졌어요.”


“근데 어떻게 연락이 다시 된 거죠?”


“일부러 연락을 한 건 아니에요. 그 후로 2년 뒤, 8년 전 어느 날 또 마주쳤어요. 제가 남자친구에게 실연당하고 포장마차에서 혼자 소주를 먹고 있는데 그가 왔어요.”


“윤 대리님은 소주 안 드시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와인을 즐기는 정도지만 그때는 나름 주당이었어요. 어쨌든 그때 날 위로해줬고, 나는 그에게서 안정감을 찾았고, 그렇게 다시 한번 쿨 하게 헤어졌죠.”


“그래서 세 번째 만남은요?! 아까 우연히 세 번 만나면 운명이라고···”


“세 번째 만남은···”



꿀꺽-



“세 번째 만남은···”


“빨리요!!!”


“그건 다음 기회에 말해 줄게요. 원래 이런 이야기 한 번에 다 풀면 재미없잖아요~”


“아 윤 대리님~!!!”


“후훗. 이제 일에 집중하시죠. 또 팀장님이 보면 잔소리할 테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가 서늘하다.



“이것들이··· 하라는 업무는 안 하고 또 노닥거리고 있어?!”


“앗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안녕은 무슨 안녕이야. 강 대리, 지난주에 내가 지시했던 건은 어떻게 됐어? 윤 대리는 매장에서 RT 요청 온건 다 처리했고? 주말이라 요청 많이 왔을 건데 타이밍 놓치면 팔릴 상품도 못 판다고!!”


“네,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삐삐삐삐. 네 안녕하세요 영업팀 윤 미정입니다. 요청해 주신 RT 건으로 전화 드렸는데요.”

※RT: 회전을 뜻하는 Rotation의 약자로 판매 효율을 위해 매장 간 재고를 회전하는 것.


“죄송합니다. 오전 안으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역시 월요일 아침은 월요일 아침이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윤 대리와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또 그리 나쁘진 않은 월요일이다.



‘7년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벽이 있는 느낌이었는데 드라마 이야기 운명 이야기에 이렇게 단숨에 허물어지다니.’



그렇지만 강현재는 여전히 운명을 믿지 않는다.

운명이 있고 신이 있다면 내 삶에 좀 더 행복을 느꼈을 테니까.




“어머 강 대리님 이게 뭐예요!!!!!”


“네? 왜 그러시는··· 헉!!!!!”


“와 강 대리님 그림 진짜 잘 그리신다~ 뜻 밖의 재능 발견?”


“옴마이가앗···!!!”



검은 생머리에 하얀 피부 오뚝한 코 핑크빛 입술.

여기에 어제 자 기억으로 추가된 하늘색 원피스.


어젯밤 강현재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준 사람.

자신도 모르게 업무 스케줄 다이어리에 꿈속 여자의 모습을 그려버렸다.


“스케줄러에 꽉 채워 그렸다는 건 나의 한 달을 모두 너에게 바친다. 뭐 이런 의미인가~? 으흐흐.”



후배 앞에서 참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다.


한참 업무에 집중하고 있던 윤 대리마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내 그림을 관찰한다.



“강 대리님한테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근데 혹시 이 아름다운 여자분이 아까 꿈속에서 봤다던···.”


“으아아아악!!!”


“읍!”



반사적으로 내 손으로 윤 대리의 입을 막아버렸다.



“저, 저기 그 얘기는 비밀로 해주세요. 저 정말 미친놈 취급당한다니까요.”



윤 대리에게만 들리도록 조용히, 그러나 다급하게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비밀을 지켜주는 보답으로 나중에 저도 예쁘게 한 장 그려주세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수줍음이 아닌 창피함으로부터 오는 부끄러움.



“두 분 이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속닥속닥 하시는 거예요! 저도 알려주세요오~”


“20대는 어려서 알 수 없는 우리만의 비밀이랄까?”


“저기 윤 대리님이 그렇게 이야기하시면 제가 진짜 이상한 사람 되잖아요!!!”


“후훗. 귀엽긴. 제가 강 대리한테 이 여자 닮은 사람으로 소개시켜준다고 했어요.”


“무슨 일이야? 왜들 여기 모여 있어?”



커피를 들고 자리로 가던 김 차장이 궁금한 듯 묻는다.



“차장님 이거 보세요. 강 대리님이 알고 보니까 그림을 엄청 잘 그리더라구요!”



‘제발··· 제발 그만해라 후배야···’



“오~ 정말이네? 웹툰 작가 뭐 이런 거 해도 되겠는데? 여기에서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재능이 아닌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겁니다.”


“야 인마. 뼈는 인마 땅에 묻어야지 왜 죽어서까지 회사에 묻히려 그래. 요즘은 회사가 내 평생을 책임져 주는 시대가 아니야~ 아. 물론 팀장님한테는 비밀?”



삐비빅. 문이 열렸습니다.



“거기들 모여서 또 뭣들 하고 있어!!!”


“앗 팀장님이다!!! 그럼 오늘 하루도 화이팅! 나중에 저도 그려주세요~!”


“강 대리, 나중에 나도 한 장 멋있게 그려줘~ 화이팅!”



타다다다닥-


마치 학창시절 선생님께서 교문을 열면 약속이나 한 듯 순식간에 일제히 자리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보는 듯한 광경이다.


팀장 성격이 그지 같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권력이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가 그의 위치에 걸맞은 업무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지 않게 수면 알람을 맞춰야겠다.’



어제는 자려고 누웠을 때 알람을 맞춰야 하는 것이 생각나 두 시간이나 허비해버렸다. 이제부터는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생각날 때 미리미리 알람을 맞추기로 했다.



‘어디 보자. 취침 시간 오전 00시 00분. 수면 시간은 7시간. 확인.’



띠링

[무료 이용권이 모두 소진되어 더 이상 이용할 수 없습니다.]



‘앗! 이용권을 다 썼잖아? 그렇다면.’



딸깍-


띠링

[미션지가 도착했습니다. 확인 버튼을 눌러 확인하세요!]



클릭.


[이번 미션은? 두구두구두구. 뭘까요?]



‘이런 장난은 더 이상 사절이라고.’



[두구두구두구. 이번 미션은 사무실에서 소리 지르기~]



“뭐?!?!?!”


“강 대리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요즘 참 이상하다니까.”



[지금부터 10분 안에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세요. 단 사람이 열 명 이상 있는 밀폐된 공간이어야 합니다. 보상은 사용권 5개~ 그럼 행운을 빌어요. 굳 럭!]



‘이 좁은 사무실에서 소리를 지르라니···.’



아까 그림 그렸을 때와는 다른 클라쓰로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다.



‘어차피 요즘 미친놈 된 거 그냥 눈 딱 감고 해볼까.’



하나


두울


셋.



“으아아~···”


“저기 강 대리님?”


“예에히~~~?”


“???”


“???”



‘아이 썅. 돌쇠도 아니고 예히가 뭐냐 예히가!!!’



“풉. 아 죄송해요. 저기 내가 RT처리하다가 창고 전산에는 잡히는데 블락 처리되어 있는 건들이 있어서요. 이거 물류 팀이나 센터에 물어봐서 상황 파악 좀 해 줄래요? 품번은 메신저로 알려 줄게요.”


“앗 네, 알겠습니다.”


“근데··· 혹시 아까 하품하신 거예요?”


“아 네··· 월요일이라 좀 피곤해서요.”


“아핫 그렇군요. 풉.”



‘쪽팔려. 쪽팔려. 쪽팔려!!!’



아무리 남 눈치 안 보고 살아왔다지만 한 층에 80여 명이 앉아있는 이 사무실에서 눈치 보지 않고 소리 지를 위인은 못 된다. 지금 당장 퇴사를 할 생각이라면 모를까.



‘가만. 생각을 해보자. 만약 지금 내가 이 미션을 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더 이상 수면시계를 사용할 수 없는 건가?’



고민이다. 만약 이 수면 시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다면 나는 이제 내 의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지금처럼 평온한 삶을 이어 나갈 수 있을까?



3분


2분


1분.



띠링

[미션에 실패하셨습니다. 다음 미션으로 넘어가시겠습니까?]



‘뭐야. 실패하면 다른 미션이 나오는 거였잖아? 괜히 사무실에서 아주 미친놈으로 두고두고 놀림당할뻔했군. 역시 사람은 참을성이 있어야 해. 암 그렇고말고.’



다행히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다음 미션을 진행하겠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YES’ 버튼을 클릭한다.



[다음 미션이 제시됩니다. 이번 미션은 바로.]



‘그래 이번 미션은?!’



···



“뭐라고?!?!?!”




수면시계는 매일 오후 11:30 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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