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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님의 서재입니다.

수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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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맨션
작품등록일 :
2020.10.12 23:01
최근연재일 :
2020.12.30 23:30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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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수 :
43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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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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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낯선사람과의 키스

DUMMY

[이번 미션은 두구두구두구···

지나가는 여성에게 키스하세요!^^ 굳럭!]



“이런 미친!!! 이거 진짜 미친놈 아니야?!?!?!”



길거리에 지나가는 여자는 많다.

근데 내 여자는 없다.

내 여자가 아닌 여자에게 키스하는 것은.



‘깜빵 각이지 뭐···’



이전에 어느 기사에서 본 적 있다.

‘길거리에서 난생처음 마주친 이성과 스킨십을 할 수 있다’라는 항목에 50% 이상의 남성이 ‘예’라는 대답을 선택했다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주변을 봐도 대부분 남성이 여성보다 스킨십에 관대하다. 신체 구조 및 임신의 과정상 여자처럼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남자에게는 딱히 없기 때문이다.



강현재도 남자다.

머릿속으로는 지나가는 여성에게 키스는 물론 몇 단계는 더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쓰레기라도...’



그 정도 자제력은 있다.


머릿속의 불순한 생각에 행동 정신을 발휘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범죄다.



그렇다면.



‘강제 패스지~ PASS~~~’



이전에 한 번 미션 패스를 해본 적이 있다. 물론 이후 더 고난도의 미션이 제시되기는 했지만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할 일이다.



‘그래. 적어도 지금 이 미션은 아니야.’



PASS 클릭.



[강제 PASS 권이 모두 소진되어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미션을 클리어해주세요.]



“오, 마이, 갓... 뭐 맨날 체험권이야?!”



수면 시계를 처음 이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강제 PASS 권 역시 첫 1회 무료인 듯하다.



“아니, 이럴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던가. 그럼 아껴 썼지... 젠장.”




*** 한시간 후



지금 머릿속에서는 천사와 악마.

아니, 이성과 본성이 싸우고 있다.



“딱 한 번이야. 아무나 붙잡고 키스한 다음에 도망가버려!”


“절대 안 돼. 그건 범죄야.”


“그냥 해버려! 한번 보고 말 사람인데 어때.”


“무슨 소리야?! 너 미쳤어?! 자제하지 못하는 행위는 동물의 행위나 다름없다고.”


“그럼 이대로 포기할 거야? 이거 포기하면 넌 다시 거지 같은 불면증에 시달리게 될 텐데?”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이성을 찾아 강현재.”


“니가 양심껏 살았다고 지금껏 너에게 돌아오는 게 있었어?”



두 마음이 끊임없이 싸우는데 문득 제3의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사실 수면 시계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근 몇 주간의 편안한 수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근데 이상하다.

수면에 대한 욕구 때문이 아니다.

한 단계씩 해치워 나가는 데서 오는 성취감.

한번 맛보니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은 미션들.


어서 이 미션을 얼른 클리어하고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한다. 다음 단계는 또 어떤 황당한 미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 미치겠다.


물론 언제든 이 게임을 그만둘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굳이 그만둬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머릿속에서는 악마가 천사를 이긴 듯하다.



매의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데이트 차림의 여성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듯한 여성도 마찬가지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그런 사람을 찾아야 한다.



찾았다.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도서관에 가는 듯한 차림의 여성.



다가간다.

다가간다.



여자 앞에 섰다.


여자는 무슨 일이냐는 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는 여자의 턱선까지 닿을락 말락 하는 앞머리를 귀 뒤로 넘긴다.


여자는 당황한다.



“마지막 기회야. 지금 니가 그 행동을 하면 더는 돌이킬 수 없어!!!”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있을 때, 갑자기 작아졌던 천사가 커졌다.


이성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약 30초간 뇌의 지배를 받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어쩌면 뉴스에 나오는 범죄자들의 또한 방금의 강현재처럼 뇌가 가출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기는 싫다.



“아, 죄송합니다. 머리에 뭐가 묻어서요.”


“아, 네...”



나는 미친 사람이 아니다.



“그래, 수면 시계를 끊어보자.”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네 마리.



‘젠장, 내 인생은 왜 이런 거야. 그나저나 요즘엔 그 여자가 안 나타나네.’



그간 꿈에서 몇 번 봤다고 정들었나 보다.



‘아니다. 여자는 됐고. 얼른 다른 업계로 이직해야 하는데. 맨날 공고만 보고 지원을 안 하네. 국내 패션은 이제 내리막길밖에 없는데 내 인생처럼... 어휴 내일 회사 가면 또 매출 안 나온다고 깨지겠네.’



양은 지금껏 수백 번 세어봤다. 그런데 양 1,000마리는 고사하고 100마리까지 간 적도 없다. 중간에 자신도 모르게 다른 생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주로 인생 걱정, 세상 걱정, 내일 걱정이다.



‘그나저나, 잠은 또 왜 안 드는 거야. 뭐야 벌써 3시잖아?! 젠장, 젠장.’



괴롭다.




***



수면 시계를 사용한 지 약 20일 만에 처음으로 밤을 새웠다. 아니 이틀 밤을 꼬박 새웠다. 회사에서 미치도록 오던 잠이 집에 가 침대에 누우면 말똥말똥해진다. 그리고 잠이 올 때쯤 잠을 청하려 하면 또 잠이 안 든다. 무한반복이다. 잠자는 법을 완벽하게 잊은 듯하다.


오랜만에 밤을 새우니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 같다.



“어머 강 대리님, 얼굴이 왜 그러세요?!”


“아, 요즘 잠을 잘 못 자서요.”


“여자라도 생기셨나? 오홍홍.”


“여자는 무슨... 아닙니다.”



때리고 싶다.



‘아니 이 여자는 잘못이 없지...’



불면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 못 한다. 잠이 오는데 잠이 들지 않는 상황을.




***



하루 종일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퇴근길 주위를 둘러보니 나 빼고 다들 행복해 보인다. 자신은 왜 이런 삶을 사는지, 끊임없는 자기 연민에 휩싸인다.



미치도록 자고 싶다.



“그래. 눈 딱 감고 딱 한 번만.”



이건 범죄가 아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해를 가한 상황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공격하는 행위는 정당방위다. 세상은 나에게 불행을 줬고, 이건 나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정당방위다.


그저, 살기 위한 몸부림.



무작정 앞에 있는 여자에게 다가간다. 이틀 전과 같은 상황이 재현된다. 여자의 머리를 귀 뒤로 넘긴다.



“씨발 이새께 안 꺼져?!?! 꺄악, 여기 이상한 사람 있어요!!!!”



사람들이 쳐다본다. 누군가 카메라를 꺼내 들려는 제스처를 취한다.



‘젠장, 어려운 상대를 골랐군. 증거는 남기면 안 되지.’



무작정 뛴다. 계속 뛴다. 초등학교 시절 잠깐 동안 육상 선수로 뛰었던 경험을 살려.



‘이쯤 되면 다 따돌렸겠지?’



어서 두 번째 타깃을 찾아야 한다. 타깃은 바로 내 눈앞에 있다. 노란색 허리까지 닿는 곱슬머리가 매력적이다.


이제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시늉은 생략한다.


그냥 바로 다가가.



짜악 –



“아악!!!”


“지금 뭐 하시는 거에요!!!”


“자기야, 무슨 일이야.”


“아니 이 사람이 갑자기 내 얼굴을...”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남자가 나타나 여자의 어깨를 감싼다. 몸집은 나의 세 배정도, 키는 10센티미터 정도 크다. 노란 머리에 눈썹 피어싱과 양팔 전체를 감싸고 있는 화려한 용 문신.

비주얼이 그냥 뒷동네 깡패다.


좆됐다.


남자친구 있는 사람은 건드리면 안 되는데.



퍼억-

퍽퍽퍽-



“헉헉...”


“눈에 띄지 마라. 한 번만 내 눈에 더 띄면 그땐 진짜 뒤진다.”


“...”


“가자, 애기야~”



아주 어린 시절, 아빠 지갑에 있는 만 원을 몰래 꺼내 썼다는 이유로 아버지께 한 시간 동안 맞았던 기억 이후로 누군가에게 이렇게 맞아본 적은 처음이다.


여자친구 없는 것도 서러운데,

아프다.


맞는 게 이렇게 아픈 줄 몰랐다.



‘진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그렇지만 강현재의 이성은 이미 가출한 지 오래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틀 동안 수면을 박탈당한 사람에게는 잠시 동안의 이성의 가출이 허용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야.”



마지막 세 번째 타깃을 찾는다. 뺨은 이미 퉁퉁 부어올랐다. 약 10%의 이성은 돌아온 듯한다.



‘남자친구도 동성친구도 안 만날 것 같은 혼자인 사람...’



그때 붉은빛의 뾰족구두가 눈에 들어온다. 눈앞이 흐려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어폰을 끼고 스벅 아메리카노를 한 손에 쥐고 있다. 보통 약속이 있는 사람은 길거리에서 혼자 커피를 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런 여자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중이다.


찾았다.

세 번째 타깃.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이 이끌림의 정체는 첫 번째, 두 번째 타깃을 노렸을 때처럼 단순히 가출한 이성일 것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리라.



저벅저벅-



세 번째 타깃보다 약 두배 빠른 걸음으로 걸어 드디어 거리가 1미터 이내로 좁혀졌다.



“저기요, 툭툭.”



여자의 어깨를 치며 내 존재를 각인시킨다.

왜 이번에는 무작정 잡고 보지 않냐고?

왜냐하면 세 번째 타깃에게는.



“저랑 키스 한 번만 해주세요. 한 번만 해주시면 원하는 거 다 해드릴게요. 부탁드립니다.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아니 그냥 저기 어디 아프리카 불우이웃 돕는다고 생각하시고 딱 한 번만 호의를 부탁드립니다...”



‘구걸하기’로 방법을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강현재의 ‘구걸’을 들은 여자가 몸을 돌린다. 그녀가 서서히 얼굴을 드러낸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이런 미친 부탁에 응해줄 리 없다. 단 3초 동안, 여자가 고개를 완전히 돌리면 키스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10%의 이성이 다시 사라졌다.



...!!!!!!!!!!



그런데 얼굴을 본 순간,

강현재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꿈속에서 봤던 그 여자가 내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꿈속에서 검정 생머리가 아닌 현실 세계의 어느 클럽에서 봤던 갈색 웨이브 진 헤어스타일을 하고.




***



중독이라 했던가?



“나는 중독이 아니야. 언제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만둘 수 있어. 다만 지금은 그만둬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하는 거야.”



학계에서는 중독자들의 심리적 체계를 부정 체계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은 언제든 그 행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하며 행위를 지속하기를 원한다.


중독은 무언가의 ‘결핍’으로부터 시작되고, 긴장성에 의해 유지된다. 사랑받고 있을 때는 긴장하지 않는다. 사랑을 잃어버릴수록 긴장성은 배가 된다. 그때 우리는 중독을 경험한다.



중독자의 부정 체계는 생각보다 대단하다.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세상이 술 팔고 담배 팔고 도박장을 만들고 PC방을 만들었으니 내가 이렇게 된 거야.”


“네가 나한테 잘해줬으면 내가 이렇게 돼? 이게 다 당신 때문에 생긴 문제야.”



중독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중독에 빠진 상황을 자신의 의지 문제가 아닌 세상의 탓으로 돌린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중독에서 빠져나오기는 더더욱 힘들다.



강현재라는 사람 역시 중독이란 것이 꽤나 잘 스며드는 타입이었다.

어쩌다 게임 하나에 빠지면 내리 10시간은 기본이요, 여자 친구와의 여행에서도 폰 게임만 주구장창 하다가 싸운 적도 많다.

퀘스트를 하나씩 클리어하고 레벨이 한 단계씩 오를 때마다 느껴지는, 현실 세계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쾌락감 때문이다.


대학 시절 첫사랑과의 짧은 연애 후 첫 이별을 경험하고 나서는 약 3개월간 술에 빠져 살아 하루라도 술을 먹지 않으면 손이 덜덜 떨린 적도 있다. 그래도 심각한 중독은 아니었는지 새로운 사랑을 하면서 자연스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연애도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그는 지금 게임과 술, 담배 이후 또 다른 중독을 경험하고 있다.




수면시계는 매일 오후 11:30 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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