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6화 가장 안전한 곳
첫 번째 꿈처럼 두 번째 꿈도 마치 현실처럼 생생했다.
‘정우진! 네가 왜 거기서··· 이시이 마사토? 너는 도대체 누구냐?’
한결은 커다란 의문 속에서 뒤척이다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한결의 집 옥탑방에 따뜻한 아침 햇살이 찾아들었다.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잠든 한결의 눈가에 부드럽게 닿았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는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면서 눈을 뜬 한결.
---잘 잤냐?---
“엉? 누구?”
[············]
그랬다. 지금 한결은 혼자가 아니다.
“아··· 누군가 했네. 잘 잤어요?”
---나 기다렸냐? 어째 반기는 것 같은데---
“이제 믿기로 했어요.”
---이제 의심이 사라졌단 말이지.---
“솔직히 아직도 얼떨떨하지만··· 안 믿을 수도 없고··· 해서 일단 믿어보기로 했어요!”
--- 김 한 결 ---
목소리가 갑자기 진지하게 바뀌었다.
“깜짝이야! 갑자기 심각하게 남의 이름을 부르고 그래요. 심장 벌렁거리게?”
---이 어린 놈의 새끼가! 그게 남의 이름이야. 내 이름이지---
“아··· 네···”
---사실 나는 말이다---
“점점 더 심각해지시네”
---지금 네 놈 몸에··· 아니지··· 내 몸에 들어왔지만··· 썩 즐겁지 않아!---
“흐흠! 사실 나도 썩 좋은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살아봅시다···요.”
---야 야! 대충 산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허··· 무슨 문제 있어요?”
---앞으로 사는 게 단순하지 않아. 너도 느끼겠지만 이놈의 세상은 갈수록 뭣 같아지거든---
“에이! 언제 세상이 좋았던 적이 있었나요. 다들 ‘라떼가 좋았네’ 하잖아요.”
---하긴 네가 지금 뭘 알겠냐! 그저 제멋대로 살아온 놈이---
“지금 자기 얼굴에 똥칠하고 있는 거 아십니까요.”
---넌 항상 우유부단하지. 그래서 말이다. 한가지 다짐을 좀 받자---
“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를 꼭 믿어야 한다. 약속할 수 있겠냐?
“자꾸 겁부터 주고 그러십니까··· 요.”
---대답부터 해라---
“알았어요. 이제부턴 무슨 말을 해도 다 믿을게요. 형!”
---형?---
“형이라고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좀 어색하지 않냐---
“딱히 달리 부를 말도 없잖아요.”
---하긴 내가 너보다 15살이나 많으니··· 그래라---
“형! 앞으로 우린 어떡해요. 자꾸 이상한 꿈도 꾸고”
[··················]
“왜 말이 없어요?”
---잘 들어라. 앞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전쟁 나요?”
---전쟁이면 차라리 낫지. 이 땅은 지옥으로 변하거든---
“지옥?”
---너 게임이나 영화에 나오는 좀비 알지?---
“좀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흠 사실 좀비하고는 좀 달라. 아냐 아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목소리, 아니 형의 말속에서 뭔가 두려움이 느껴졌다.
“혹시 겁나는 거 있어요?”
---아니라니까. 딴 얘기하자---
“지금 하고 싶은 얘기가 그거 아니에요?”
---그게 뭔데?---
“좀비가 창궐하고 세상은 종말로 치닫는다. 말하자면 좀비 아포칼립스!”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진짜? 설마 했는데. 내가 그렇게 황당한 망상론자가 되다니! 으···”
---문제는 바이러스다!---
“거봐. 이럴 줄 알았어.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서 인류가 멸망한다는 거네. 맨날 웹소설만 읽고 살았어요?”
---현실이 소설보다 끔찍하다는 걸 알 때가 올 거다. 이놈아!---
“아이고!”
---웬 죽는 소리냐---
목소리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그가 내 머릿속에 갑자기 나타나서 지금까지 한 말은 모두 다 사실이었으니까.
“사실 형 말 다 믿어요. 아까 형이 무슨 말을 해도 다 믿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형이 미래가 지옥이라니 살맛이 나겠어요.”
---흐흠---
“형 덕분에 좀 잘살아볼까 했는데··· 에궁, 차라리 그냥 노숙자로 속 편하게 살아볼랍니다.”
---야! 방법이 전혀 없는 게 아냐---
“에이···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바이러스가 퍼져서 좀비 투성이 세상이 온다면서요.”
---좀비하고는 좀 다르다고 했잖아. 아무튼 지옥을 막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잘하면?”
---내가 죽기 전에 알아낸 사실 몇 가지가 있어. 내가 그때보다 과거로 왔으니 아직 시간이 있다---
“형! 혹시 모든 일이 정우진과 관련된 것 아냐?”
목소리가 조금 놀라며 말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꿈에 정우진이 나왔어. 지난번 꿈도 아주 이상했고.”
---그래?---
“놈이 일본 자위대 책임자 이시이 마사토라고 하던데”
한결의 입에서 이시이 마사토라는 이름이 나오자 목소리는 한동안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10분 정도 침묵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한결은 목소리가 사라져버린 줄 알고 초조와 불안에 떨었다.
* * *
[10분 후]
---우진이 새끼 이야기만 나오면 내가 좀 긴장해서 말이야. 이해해라---
‘도대체 우진이랑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결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혹시라도 목소리가 사라질까 봐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형···”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해야 하는지 말해주마---
“네··· 형···”
목소리와 한결의 대화는 아주 오래오래 이어졌다.
아침부터 저녁 그리고 밤이 새도록.
* * * * * * * * * * * *
[1년 후]
-서울 강남 임페리얼 호텔 스카이라운지
몸매가 잘 드러나는 연한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서윤주.
그녀는 갑자기 찾아온 정우진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자기가 여기엔 웬일이야?”
“예쁜 마누라 보고 싶어서···”
“듣기 싫지는 않네!”
우진은 손가락 하나를 펴서 위를 가리켰다. 위층에는 두 사람만의 침실이 있었다.
윤주의 두 뺨이 살짝 상기되었다.
“지금 나 바빠요. 빨리 가 봐야 해.”
우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손가락을 접어 재빨리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요즘 잘 돼가?”
“재밌어. 내가 이 방면에 재능이 있나 봐.”
“평가가 좋은 것 같던데. 아버지가 아주 좋게 보고 있어. 곧 경영까지 맡길 것 같아!”
윤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버님이? 나를 싫어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야. 아버지가 요즘 윤주를 눈여겨보고 계시더라고.”
“그래? 하지만 내가 입사 1년 만에 경영을 맡는 건 조금 이르지! 낙하산이 너무 빨리 펴져도 문제가 생기거든!”
“하하핫! 그렇지. 아버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참 한결이 소식 좀 들었어?”
윤주는 우진이 갑자기 화제를 바꾸는 통해 약간 당황스러웠다.
“나야 잘 모르지. 내가 어떻게 그 사람 소식을 알 수 있겠어.”
우진은 그런 윤주의 변화를 예리하게 감지했다.
“한결이 얘기 나오니까 민감한걸?”
“민감하긴.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 얘기는 왜 꺼내는 거야?”
“나름 꽤 잘 지내더라고. 폭삭 망한 후에 빌빌거리며 살 것 같았는데···”
“그래? 난 몰랐는데 정말 잘 지내는 모양이네. 우진 씨가 신경을 쓸 만큼···”
우진은 손을 조금 과장되게 내저으면 말했다.
“하하핫!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고. 펀드를 운영하겠다고 회사를 세웠더라고.”
“펀드?”
“가만있자 이름이··· 한결 자산운용이라나 뭐라나.”
윤주는 적잖이 놀랐다.
“자산운용사? 그 사람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러게 말이야. 무슨 주식이 대박이 났다네.”
한결에 관해 띄엄띄엄 던져주듯이 말하는 우진.
윤주는 그의 말이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주식이 대박이 나도 그렇지. 좀 알아듣게 설명해 봐.”
우진의 얼굴에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기사 검색해봐.”
---부르르르---
이때 우진의 핸드폰이 울렸다. 우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래 어떻게 됐어?”
“알았어. 곧 갈게!”
우진은 전화를 끊고 바로 일어섰다.
“급한 일이 있어서 바로 가 봐야 해. 늦을 거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윤주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성큼 걸어 나가는 우진의 뒷모습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괜찮아. 이 정도는. 얼마든지 ··· 괜찮아···’
* * * * * * * * * * * *
김한결이 세운 회사 한결자산운용은 설립된 지 불과 1년 만에 국내 자산운용사 투자금 규모 5위로 올라섰다.
김한결은 이때부터 신의손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한결은 마법처럼 숫자를 기하급수로 불려나갔다.
한결은 알리바바에 투자한 지 고작 5년 만에 2000배 수익을 울렸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테슬라 등 세계 경제 흐름을 좌우하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 신성장 혁신기업들은 예외 없이 한결자산운용의 투자 리스트에 올랐다.
각 언론 매체들은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다국적 제약회사가 천문학적 수익을 거두었지만, 실제로 가장 재미를 본 기업은 한결자산운용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한결자산운용이 창업 7년 만에 세계 1위 자산규모 7000조 원인 블랙독에 버금가는 자산을 축적했을 거라는 증권가 찌라시가 돌았다.
그리고 한결자산운용은 공사를 시작한 지 7년 만에 여의도 한복판에 101층짜리 사옥을 완공했다.
한결은 사옥에 ‘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결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옥을 가장 안전한 집처럼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그곳이 바로 홈이었다.
<제1장 끝-다음 2장 1화 덤으로 받은 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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