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2화 신이 내린 의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5년 후인 1950년, 한반도는 6.25 한국전쟁이라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6.25한국전챙 1.4 후퇴 직후 부산 피난민 촌]
“여보게 정 씨! 내 손 좀 한 번 봐주슴둥?”
평안도 쪽에서 내려와 난민촌에 조그만 약방을 연 정일승. 그는 찾아온 사내를 힐끔 쳐다보며 어눌한 평안도 말투로 말했다.
“그랍시다. 좀 봅시다! 이런 동상이 심하게 걸렸구먼!”
“난리 통에 걸려쁘지. 1.4 후퇴 때 아이 그라쓰까. 그때 억수르 추웠잖 슴매! 가라앉힘약 같은 거 없지비?”
“왜 없갔어. 내 약을 하나 줄 테니 발라보소.”
정일승은 약이 들어 있는 나무 상자를 열어 이리저리 살펴보고서 약이 떨어진 것을 알아챘다.
“어! 약이 그새 다 떨어졌구먼. 만철아! 게 있나?”
“네! 아브지!”
열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소년이 기운차게 대답하고는 부리나케 뛰어왔다.
“광에 가서 약상자 좀 가져 온나! 퍼떡 댕겨온나!”
소년은 뛰어왔을 때처럼 또 재빨리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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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승의 약국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늘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길게 줄을 설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게 다 뭔 사람들이래유?”
타지 사람이 이곳을 지나다 신기한 듯 물었다.
“아니 이 사람 소문도 못 들었남?”
“무슨 소문유?”
“저 집 주인 양반이 하늘이 내린 의원이라니께”
“그래유? 아니 얼매나 무신 병을 잘 고쳐서 그란 소문이 나쓸까유?”
“아 글씨 동상이라는 동상은 다 고쳐분다니께.”
“동상은 약도 없다는데 참 신통하고먼유. 난리 통에 동상 걸린 사람들 천지삐깔인디. 저 양반 부산에 돈이란 돈은 다 쓸어모으게 생겼네유.”
타지 사람에게 대꾸해주던 동네 사람이 답답하다는 듯 한 마디 더 보탰다.
“이 양반아. 동상뿐이 아녀.”
“또 뭐유?”
동네 사람은 은근한 말투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왜 그 여인네들··· 애 못 나는 병 있잖여. 글고 사내 구실 못 하는 양반들도 다 거뜬하게 힘 쓴다니께. 글고 또 어디 뿌러진 데 착착 붙여 불고 피부병 곪은 데··· 암튼 신통하다니께”
“하이구메. 그게 참말이여. 암튼 신통하네. 신선이 나셨네 신선이 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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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어 사람들이 떠나간 정일승의 집 안마당.
텃마루에 걸터앉은 정일승이 오랜만에 아들을 불러 옆자리에 앉게 했다.
정일승은 먼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철아!”
“네! 아브지!”
정일승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명심하그라! 이 아브지는 꿈이 있대이.”
만철은 눈을 끔뻑거리며 아버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부지 꿈이 뭐데요?”
“저 넓디넓은 중국 동북 평원 한가운데 하얼빈 땅 밑을 파믄 그 꿈이 나올 긴데. 그거믄 이 땅이랑 중국 땅이란 다 우리 것이여!”
“우리 꺼?”
“그렇지! 우리 꺼! 바로 제국의 땅이 된다 그 말이여.”
“제국의 땅이요?”
“우리 제국은 말이여. 쬐끄만 섬에 갇혀 살아서는 안 되는구먼. 맨날 바람에 지진에 화산에 홍수에 시달리면서 살아서는 안 되는 민족이라는 말이여.”
“그라지요. 아버지 말씀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구먼요.”
“만철아!”
“네! 말씀하셔요.”
“혹시나 아버지가 그 꿈을 이루지 못허고 죽으면 말이다···”
“······”
“네가 내 대를 이어서 제국의 꿈을 이루란 말이다. 꼭 그래야 하는 거여.”
“명심허겠구먼요.”
<서장 끝-다음 회 1장 1화 두개의 탑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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