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좀 살아보려고
“작가님. 대본 속도가 너무 느리세요.”
이곳은 JBS 사옥 회의실.
회의실 안은 답답한 공기와 한숨으로 가득 찼다.
불투명한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나의 불투명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 같았다.
근래 들어 연이은 히트작을 내고 있는 드라마 명가 JBS.
2년 전에 나와 계약할 때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땐 오히려 자신들을 선택해줘서 감사하다고 허리를 굽히는 쪽이었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나는 내가 천재작가인 줄로만 알았다.
그 유명한 박종범 작가 밑에서 보조 작가로 일하며 ‘넌 나보다 낫다.’라는 말을 듣지 않았는가.
이후 JBS에서 주최하는 단막극 공모전에 지원했는데 웬걸, 덥석 대상을 받고 계약까지 했다.
‘그 이후론 승승장구였지.’
마치 날개가 달린 듯 작가로서 큰 영예를 안았다.
내가 쓴 단막극은 무려 해외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으며, 그다음 차기작으로 집필한 미드폼 드라마는 백상예술대상에서 OTT 부문 작가상까지 받았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토록 원했던 글을 쓰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내 마음은 풍족해졌다.
앞으로도 그처럼 잘 풀릴 줄로만 알았다.
빌어먹을 내 몸이 고장 난 걸 뒤늦게 알기 전까진 말이다.
‘아으, 지금도...!’
목은 항상 뻐근했으며, 허리는 디스크 판정을 받고야 말았다.
글을 쓰다가도 침대에 누워 신음을 내기 일쑤였다.
그뿐 아니라 부모님의 사고 이후로 글에 대한 집중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몸과 마음이 둘 다 고장 나버린 기분.
새 작품을 시작할 땐 아이디어로 머릿속이 반짝였는데, 이제는 긴고아를 쓴 손오공처럼 몸과 머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 덕에 마감은 습관처럼 미루게 됐고, 그 일은 수없이 반복됐다.
결국 2년이란 집필 계약 동안 60분짜리 대본은 겨우 4부까지밖에 안 나온 상황.
이미 계약금까지 받았는데 시간은 흘러 지금 이 지경까지 와버렸다.
“작가님. 이런 식으로 자꾸 대본 딜레이되면 저희도 곤란해요.”
기획피디인 차민주는 한껏 차가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저 눈빛의 의미는 명확했다.
한때 유망주였던 작가는 지금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중이다.
뭐라고 대답해야 옳을까.
부쩍 심각해진 몸 상태로 더 이상은 대본 집필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왔는데.
억울하다.
몸만 성했어도 지금쯤 대본 탈고는 물론이고 황금 시간대 편성까지 나 있을 거다.
몸만 성했어도 이런 취급을 받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젠장...’
공격적인 말투의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저희, 다음 달에 계약 만료인 거 아시죠?”
“네, 압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게, 몸이 너무···.”
차 피디는 긴 한숨을 내뱉으며 내 구부정한 자세를 쳐다봤다.
나는 철저한 을이 된 구부정한 자세로 조심스레 물었다.
“계약 연장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그녀는 준비한 듯 말했다.
“아, 정 그러시면···. 음, 어쩔 수 없죠.”
“어쩔 수 없다는 건...?”
“작가님 몸 컨디션이 지금, 도저히 집필이 불가능한 상황이시니까...”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던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마침표를 찍듯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탁! 하고 책상에 내리꽂으며 말했다.
“다른 작가님을 붙일 수밖에요.”
“···예?!”
내가 쓴 대본에 다른 작가를 붙인다니.
애써 안 보이게 덮어놨던 내 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자존심을 가장 짓밟을 수 있는 행위였으니까.
“작가님. 저희 다 잘 되자고 이러는 거 아시죠?”
거짓이다.
저런 교묘한 말로 우위를 점하려는 농간일 뿐.
“아니 그래도 그건 좀 아니죠.”
나는 올라오는 혈압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그러자 오히려 반문이 날아왔다.
“그럼 어떡할까요, 작가님?”
“예?”
“작가님 이대로면 대본 완고 나올 때까지 1,2년. 아니 더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몸 상태 악화되면 아예 스톱될 수도 있고요. 작가님. 정말로 대본 집필,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몸 괜찮으세요?”
차 피디는 다시 한 번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아니, 저건 걱정이 아니다.
걱정을 빙자한 미묘한 협박일 뿐.
마치 너에겐 지금 선택권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
“저희가 자선단체가 아니신 거 잘 아시잖아요. 아시다시피 작가님은 계약금도 이미 받으셨고...”
그렇다.
계약금과 대본 둘 중에 하나는 내려놔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드라마 작가가 제작사와 계약 체결 시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12부가 넘는 대본을 2년 안에 뚝딱 만들어내는 것도 몹시 고된 일인데, 거기다 기간 내에 편성이 불발될 시에는 미리 받은 계약금 또는 대본 둘 중 하나를 뱉어내야 하는 것이다.
피 같은 대본과 피 같은 돈.
이것은 작가에게 인질을 잡아두고 벌이는 공갈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작가도 사람인지라 돈 없이 살 수 없었고, 작가는 예술인이라 내 새끼 같은 대본을 두고 나올 수도 없었다.
‘좆같다, 정말...’
머리가 찌근거렸다.
디스크 때문이 아니라 그냥 모든 게 지긋지긋해졌다.
꿈을 이뤄가면서 언제까지고 적당히 힘들고, 나날이 행복해질 줄로만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타고난 운명선을 벗어날 순 없더라.
‘넌 딱 여기까지다’라고 신이 내 앞에 선을 그어놓은 것 같았다.
어쩌면 지금 온몸이 결린 이유가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분에 넘치는 짐을 온몸으로 지고 있어서.
꿈을 이룬다는 핑계로, 현실을 산다는 핑계로 내 몸을 과로하고 있었다.
‘그래, 이건 사는 게 아니야.’
때마침 차민주 피디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결정하세요, 작가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죠. 이젠 느리게 좀 살아보려고요.”
*
해가 지는 어둑한 하늘.
JBS에서 빠져나온 나는 어느덧 버스에서 내려 구축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빼곡한 성냥갑처럼 연이어 붙어있는 정육면체 박스들.
지금껏 살아온 인생처럼 다닥다닥 촘촘히도 붙어있었다.
‘이게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의 결과물인가.’
작가로서 이뤄낸 두 개의 작품 덕에 전셋집을 얻었다.
온전히 내 힘으로 얻어낸 서울의 아파트였기에 자부심도 들었다.
그런데 왜일까.
지금 나는 몹시 고독하다.
내 직업이 고독한 걸까 이 사회가 고독하게 만드는 걸까.
보조 작가에 합격했을 때는 석양이 지는 불그스름한 하늘만 봐도 아름답다고 핸드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첫 공모전에 당선됐을 때는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파는 붕어빵 냄새만 맡아도 가슴이 설렜다.
또, 극본상을 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빈 껍질만 남은 것처럼 허무하다.
나는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온 걸까.
뭘 위해서 악착같이 몸을 갈아가면서까지 살아왔을까.
집 안에 틀어박혀 글만 쓰느라 남은 친구는 단 한 명뿐.
그것도 시골에 살아 몇 년에 한번 겨우 볼까말까 했다.
‘진짜 다 때려 치고 내려가볼까.’
진지한 마음이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내 삶을 온전히 살아보고 싶었다.
아무리 시골 텃세가 무섭다지만 친한 친구가 한 명쯤 있다면 그런 것쯤이야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타이밍도 좋았다.
드라마 계약뿐만 아니라 아파트 전세 계약도 다음 달이 만료였으니까.
마치 우주의 기운이 모이는 절묘한 시점이었다.
‘그래, 해보는 거···.’
그때였다.
‘잠깐, 이 냄새는?’
거리에 붕어빵을 파는 포차가 보였다.
군밤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손 바쁘게 밀가루 반죽을 붕어빵 틀 안에 넣고 있었다.
···내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어서 와요. 추우니까 일로 어서 바짝 들어오고.”
인자한 할아버지는 골라보라며 손으로 메뉴판을 가리켰다.
종이에 대충 매직으로 끄적인 붕어빵 메뉴.
-팥, 슈크림, 고구마 : 3개 천 원.
‘오, 3개 천 원이라.’
물가가 부쩍 오른 요즘 3개 천 원이면 거저먹는 수준이었다.
서울엔 2개에 천 원인 곳이 거의 대다수였으니까.
‘쩝. 옛날엔 5개에 천 원이었는데.’
나는 어느새 고인 침을 꿀꺽 삼키고 주문을 했다.
“저, 붕어빵 팥으로 3개만 주세요.”
“으이!”
기합인지 대답인지 모를 음성을 내뱉은 할아버지는 말을 덧붙였다.
“시간 좀 걸릴 텐데. 괜찮어?”
“그럼요. 이거 못 기다리면 죽어야죠.”
“으이! 좋아!”
할아버지와 실없는 소릴 주고받은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오기 전 먼저 붕어빵을 주문해 먹고 있는 어린아이와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뜨거어.”
“어휴, 천천히 먹어! 입천장 데인다.”
뜨거워도 잘도 먹는 남자 아이.
정공법으로 붕어빵 머리부터 먹는 것이 모범생 같았다.
아이는 호-호- 입김을 내뱉으며 입을 활짝 벌리더니 지금 무슨 맛 붕어빵을 먹는지를 친절히 알려주었다.
‘생크림 맛이네.’
어느새 할아버지의 기합 소리와 함께 내 단팥 붕어빵이 포근한 종이봉투에 담겨 나왔다.
“으이! 하나는 서비스여.”
“예? 아, 감사합니다!”
서비스로 인해 무려 4개가 들은 붕어빵 봉투.
왠지 습관처럼 봉투 안에 코를 가져다 박고 냄새를 흡입했다.
‘아. 이 냄새야.’
재료도 별거 안 들어갔으면서 붕어빵 냄새는 왜 이리 좋을까.
게다가 먹음직스런 붕어빵의 비주얼.
사람 팔의 정맥처럼 보일 듯 말듯한 몸속의 팥이 가히 매혹적이다.
나는 제일 위에 올라간 바삭하고 따끈따끈한 한 놈을 꺼내 한입 베어먹었다.
물론, 꼬리부터 말이다.
“엄마, 저 아저씨 이상하게 먹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팥이 들어있지 않은 붕어빵 꼬리를 음미하고 있는데 아이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붕어빵 할아버지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크게 외쳤다.
“저 아저씨는 어른이라 그려!”
“어른은 꼬리 조아해여?”
어느덧 꼬리만 남긴 붕어빵을 조막손으로 쥐고 있는 아이가 물었다.
“그게 아니라! 어른들은 회사에서 맨날 데이거든! 그래서 꼬리부터 먹는겨. 꼬리는 덜 뜨겁거든. 뭔 말인지 알겠냐 꼬맹아?”
“아니여?”
아이는 영문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남은 꼬리를 입 안에 쏙 넣었다.
어린 것이 먹방을 해도 될 실력이다.
포차를 나온 나는 뜨거운 입김을 뱉으며 할아버지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일주일 뒤.
최소한의 짐을 챙긴 나는 무작정 버스에 올라탔다.
유일한 친구인 유시진에게는 일체 언급도 안 한 채.
‘귀농. 까짓 거 한번 해보지 뭐.’
그러나 사실 얼마나 힘든 일일지 예상은 간다.
그럼에도 이런 결정을 취한 것은 이제는 생각같은 건 그만하고 싶어서이다.
‘이것저것 재면서 생각만 하다 뒤질 수는 없잖아.’
그렇게 어느덧 주변 풍경은 회색빛에서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논과 밭이 보이고, 건물의 층수는 낮아졌으며, 공기는 맑아졌다.
-지이잉!
한창 창가를 보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기획피디 차민주였다.
“여보세요?”
-네, 작가님! 어떻게, 생각 좀 해보셨어요?
“그럼요. 천천히 생각해봤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어떻게···.
“이대로 계약 끝내시죠.”
-예? 그럼 작가님 대본 저희가 다른 작가랑 디벨롭해도...
“예. 그러시죠. 제가 지금 갈 길이 바빠서. 전화 끊겠습니다.
-아니···! 어디 가시는 데요?
“농사나 지으려구요.”
그렇게 나는 전화를 마쳤다.
계약금만 받은 채로 이대로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통보도 마쳤다.
대본을 두고 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다른 작가 누가 와도 절대 완성 못 시켜.’
그건 나만의 자신감이었다.
4부까지 쓴 내 대본을 다른 누가와도 완성시키지 못할 자신감이 있었다.
“와, 드디어.”
고속버스에 마을버스까지, 몇 번을 갈아탄 끝에 마침내 면 단위 마을에 도착했다.
충주시 노은면.
내 고등학교 친구 유시진이 있는 그야말로 깡촌 시골마을이었다.
여름철 딱 한번 놀러온 적이 있었는데, 집에 돌아갈 때 마을버스가 언제 오는지 어플에도 나와 있지 않아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유시진이 말했었다.
시골 버스 도착시간은 어플이 아니라 기사님의 컨디션에 따라 결정된다고.
‘와. 죄다 논밭이네.’
다큐멘터리에서 볼 법한 시골 마을.
도로엔 트랙터가 지나가고, 벙거지 모자를 쓴 사람들이 논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야 진짜로 시골에 온 실감이 났다.
‘이 자식은 또 늦네.’
마중 나오겠다던 친구 유시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곳에서 부모님을 따라 농사를 짓고 있었다.
‘좀만 기다리지 뭐.’
논 앞의 허름한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곳에선 모든 것이 평온했다.
하늘의 구름 한 점, 달달달 트랙터 소리, 낙엽이 뒹구는 모양까지.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갔다.
-부스럭!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었나?’
-부스럭!
벌렌가? 역시 시골이라 그런지···.
-······
잠깐.
벌레가 아니잖아?
-다다다다다다다다다!!!!!
저 멀리 풀숲에서 형체를 드러낸 무언가가 이곳을 향해 달려왔다.
“뭐, 뭐야!!!”
마치 너구리처럼 생기기도 했다.
아닌데, 고양이인가?
아니, 무슨 고양이가 저렇게 생겼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눈앞에 뛰어온 녀석은 나를 향해 울었다.
-나 좀... 나 좀 살려주시오!
아니, 말을 했다.
혹시 이거 꿈인가?
“너, 너구리가 말한다!!!”
당황한 나는 크게 외쳤다.
그러자 털 달린 앞발을 코에 갖다 댄 녀석은 다시 한 번 말을 했다.
-쉿! 너구리가 아니오!!!
···뭐?
-나는... 사향고양이로소이다!
똥으로 루왁커피를 만든다는 그 고양이.
사향고양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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