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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절미. 님의 서재입니다.

기껏 귀농했더니 국보급 관광지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인절미.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11.03 14:44
최근연재일 :
2024.01.10 01:04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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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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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3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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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진다방 오픈

DUMMY

‘마음 준비 단단히 해야겠는걸.’


나는 연습용으로 만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쥐여주고는 김수혁 팬들을 돌려보냈다.

자신의 배우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아직 나이가 한창때라 그런지 추운 날씨에도 깔깔대는 그들이었다.


게다가 젊은 여학생 두 명이 남긴 무시무시한 말.


[저희 말고도 더 올걸요?]


이제 막 초짜 바리스타인 나에게는 심히 부담이 되는 소식이었다.

우르르 몰려온다면 도저히 주문을 감당하지 못할 터.


‘안 되겠다.’


나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드르르르륵.


다방에 있던 테이블 하나를 끌고 가 창고에 넣어둔 것이다.


“휴. 자리는 총 6개.”


이제 남은 건 2인용 테이블 두 개에, 의자 두 개가 놓여진 바테이블 뿐이었다.

테이블 하나를 빼자 가게가 좀 휑해진 느낌은 있었지만 초반에는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잘 되면 알바를 뽑든가 해야지 뭐.’


그렇게 청소와 정리를 끝내고 최종 준비를 마친 나는 불을 끈 뒤 진다방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은은한 치킨 냄새가 코안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냄새의 근원지인 영심이 치킨으로 향한 나는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포장했다.

그리고는 오는 길에 커피나무에 들려 생두를 수확했다.


‘앞으로는 부지런히 주워놔야지···.’


하지만 이 커피나무에서 수확할 수 있는 생두의 양은 정해져 있었다.


* * *


마침내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기름기 있는 치킨을 먹고 바로 자서인지 속이 조금 더부룩했다.


-탕탕!


그때였다.


사향고양이 녀석이 밥그릇을 솜방망이로 쳐대면서 밥 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보기보다 미라클 모닝을 꾸준히 실천하는 녀석이었다.


“잠 좀 깨고 임마.”


-어허! 요즘 좀 나태해진 것 같소로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위에서 군림하던 녀석이었다.

요즘 들어 소설은 안 쓰고 텃밭을 관리하거나 집에서 빈둥대기만 하니 그 모습이 아니꼽던 모양이었다.


“좀 쉬자. 느리게 살려고 시골 내려온 건데. 응?”


-왈!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어느새 잠에서 깬 백설기가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똥싸개는 백설기가 얄밉다는 듯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백설기의 덩치에 압도당하는 탓에 승산 없는 싸움은 걸지 않는 사향고양이였다.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 현명한 놈이로군.’


그때였다.


아침 일찍부터 도강훈 감독에게서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작가님. 단역으로 고등학생 연기자가 필요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저번에 첫 번째로 오디션 본 그 고등학생을 쓸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지난번 유진 연기 아카데미에서 박수호에게 아깝게 패한 그 학생.

아마도 이름이 백시후였나···.


나는 학원에서 보았던 백시후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실 박수호만 없었다면 곧장 조조연으로 캐스팅해도 남을 실력이었다.


[백시후 학생. 너무 좋습니다.]


나는 도강훈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럼, 첫 출근 갔다 올게!”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동물에게 사료를 챙겨주었다.

이어서 홈캠의 각도까지 매만졌다.

진다방에서도 똥싸개와 백설기의 상황을 파악해야 했으니까.


-올 때 메로나다냥.


사향고양이 녀석은 사료를 우와앙 먹으며 집을 나서는 나에게 인사했다.

백설기는 꼬리를 흔들며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혹시나 모르는 사람 들어오면 콱 물어버려. 알았지?”


-왈!


내 말에 백설기가 힘차게 대답했다.

이제는 덩치가 꽤 커진 탓에 제법 든든해진 녀석이었다.


*


산책 겸 겨울 농촌길을 걸어 마침내 진다방에 다다랐다.

영업도 전에 3000걸음을 걸었더니 몸은 이미 봄이었다.


“어···?”


개시하기 위해 다방 문을 열려고 한 순간.

다방 앞에서 네 명의 앳된 여학생들이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설마, 김수혁?”

“······?”


내가 묻자 그들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아셨어요?”

“이 아저씨 뭐임?”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어제 왔던 두 학생의 예언대로 카페 오픈도 전에 김수혁의 다른 팬들이 몰려왔다.


“어제 다른 팬분들이 왔다갔거든요. 너네, 아니 손님들보다 먼저여.”

“아 진짜요? 헐.”

“근데 아저씨. 문 언제 열어줘요?”

“맞아요 추워요!!”


아니, 왜 아직 열지도 않은 내 카페에만 오냐고.

그러다 생각해보니 딱히 다른 곳에 갈 데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끼이익.


문을 연 나는 소심하게 이들을 안내했다.


“실내가 좀 좁습니다···.”

“괜찮아요!”

“야, 근데 안에도 추워!”

“보일러 틀어주세요 아저씨!”


들어오자마자 손님들의 엄청난 요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난이도가 좀 빡센 것 같다.


.

.

.


“뜨아 네 잔이시죠?”

“네! 아 이제 좀 따뜻하다. 그치?”

“그니까. 근데 수혁 오빠 촬영 언제 시작하지?”


이들은 다행히 내가 작가인 줄은 모르고 자기들끼리 테이블 두 개를 차지한 채 떠들었다.

모두가 핸드폰을 꺼내 고개를 처박고 각자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이럴 거면 왜 모인 걸까···.’


다행히 주문은 가장 난이도가 쉬운 아메리카노였다.

원두가 분쇄되는 사이, 나는 중요한 것을 깜빡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맞다 음악! 카페엔 잔잔한 음악이 생명이지.’


어떤 LP를 올릴까 고민하던 나는 손님의 연령층을 고려해 미리 사둔 소위 ‘요즘 걸그룹’의 음악을 선택했다.


잠시 후, 음악이 나오자 그제야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드는 어린 손님들이었다.


“헐 시발. 나 이 노래 진짜 좋아하는데!”

“여기 시골치고 존나 감성 좋다. 인스타에 올려야지!”


-찰칵! 찰칵! 찰칵!


칭찬을 하긴 하는데, 비속어를 꼭 섞어쓰는 학생들이었다.

무수한 카메라 세례 속에 나는 열심히 탬핑을 하는 와중이었다.


“아저씨! 커피 언제 나와요?”

“야 닥쳐. 시골이라 느린 게 감성이야.”


나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메뉴판 옆에 적힌 문구를 가리켰다.


[좀 느려도 이해해주시길 ^^ -초보 바리스타-]


그러자 문구를 확인한 학생들의 반응은 정확히 반반으로 나뉘었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쪽과, 느려서 답답하다는 듯 무언의 눈빛을 교환하는 쪽.


“커피 네 잔 나왔습니다!”


직접 서빙까지 해 테이블로 갖다주었다.

사실 무릎이 안 좋은 어르신들을 위한 서비스였지만 첫 손님이기도 했으니까.


“와. 향 개 좋은데?”

“지랄. 커피 존나 하나도 모르면서.”


서로 같은 반인건지, 팬클럽에서 만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막역한 사이 같았다.


그런데 커피의 향은 나도 신기했다.

에피오피아나 콜롬비아 원두로 만든 것보다 오히려 우리 집 커피나무에서 얻은 생두로 만든 커피가 훨씬 더 맛있다는 사실 말이다.


‘참 신묘한 커피나무 일세···.’


똥싸개와 마을의 커피나무는 역시나 연구대상이었다.


“하···. 좋다.”


은은한 커피향이 다방 안을 가득 채웠다.

손님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글에 대해 생각했다.


‘여유로우니까 오히려 작품 생각이 나네.’


나는 여유롭게 노트를 펼치고 차기작에 대한 구상에 들어갔다.

확 끌리는 소재, 그리고 캐릭터. 그런 것들에 대해 무작위로 적기 시작했다.


“아저씨!”

“예?!”


손님들이 어느새 다 먹은 머그잔을 카운터까지 갖다주었다.

내가 갖다줬으니 그들도 직접 갖다준 모양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커피 진짜 맛있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하하.”

“아! 그리고 이건 저희 번호요.”


대충 찢은 메모장에 번호가 적혀있었다.

이거 왠지 어제랑 낯익은 광경인데.


“혹시 김수혁 오빠 오면 연락주세요. 아셨죠?”

“아···. 네. 그렇게 하죠.”


거래가 성사됐다는 듯 묘한 미소를 띄운 그들은 다방에서 나갔다.

이젠 다시 혼자만의 시간.


나는 노래의 분위기를 바꾸기로 했다.

아직 얼마 없는 LP판 중에서 고민하던 나는, 이내 프랭크 시나트라를 선택했다.


‘평화로운 오후와 딱 맞는 노래야.’


눈을 감고 조용히 음악을 감상했다.

동시에 곧 있을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점심 메뉴를 결정한 나였다.


‘그래, 짜장면이 좋겠다.’


-끼이익.


그때였다.


나만의 평화를 깬 주범이자 손님이 다방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번엔 중년의 남자였다.

패딩 대신 코트 차림을 한, 안경을 쓴 꽤 익숙한 실루엣.


“제대로 찾아왔네.”

“······?!”


그는 다름 아닌, 나의 인생 첫 스승이자 메인작가였던 박종범 작가였다.


“···선배님!!”

“잘 지냈냐?”


···온갖 서울 사람들이 내 카페에 몰려든다.


*


“소문대로 시골에 있었구나.”


대선배이자 스타작가 박종범은 다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그에게 특별히 볼케이노 루왁커피를 대접하기로 했다.

밖이 너무 추웠는지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얌마. 내가 은향 출판사 거기에다가 전화해서 물어봤다. 차민주한테 물어보면 너한테 좀 실례일 것 같아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한 입 들이킨 그는 잠시 후 차분해졌다.

심지어 입고 있던 패딩조끼까지 벗어 옆자리에 두는 그였다.


스타작가 박종범.

액션 장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탄탄한 극본력을 가진 작가였다.

작가로서 첫 시작인 보조작가를 이분 밑에서 했기에 남들보다 훨씬 배움의 속도가 빨랐다고 할 수 있었다.


“···작가들이 널 벼르고 있더라.”

“저를요? 아니, 시골에 짱박혀 있는 작가를 왜 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박종범이 말한 작가들이란 아마도 내가 예전에 몸담았던 ‘월광’의 멤버들일 것이다.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그야말로 극상위권의 드라마 작가들 말이다.


그들이 나를 적으로 돌린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감히 그들의 VVIP 모임에서 탈퇴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시스템이니까···.’


작가란 무릇 혼자 작품을 쓰면 되는 존재.

그런데 집단을 형성해 정치질 속에서 생활하는 삶은 도저히 나에게 맞지가 않았다.


박종범 작가는 커피향을 맡으며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지연수 작가가 대본을 아주 뜯어고치고 있는 모양이야.”

“장미아파트 대본요?”

“그래. 메인작가 김슬아만 죽어났지 뭐.”

“아이고. 그럼 모 아니면 도일 텐데.”


내가 듣기로는 지연수 작가는 크리에이터 역할이었다.

메인작가에게 대본의 방향성 정도를 제시해주는 존재 말이다.

하지만 관여가 너무 지나치면 길을 잃을 수 있는 법.


‘메인작가가 받아쓰는 존재도 아니고 말이지.’


이렇듯 집단을 이루면 부작용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안에서 계급이 나뉜다는 점이다.

서열 가장 막내인 김슬아는 지연수라는 선배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힘들겠네요. 그 작가.”

“아무래도 그렇지. 영혼 없이 글 쓴다는 게 쉽겠어?”


내가 쓴 글을 뒤엎고 남이 불러주는 대로 쓴다는 것.

그것은 작가로서 영혼을 다치는 일이었다.


“그래도 씁쓸한 건, 지연수 작가는 훨훨 날고 있다는 거야.”

“왜죠?”


박종범 작가는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이번에 넥스트림이랑 큰돈 받고 계약했다는군.”

“뭐, 나쁜 사람이 잘 되는 세상이니까요.”


문득 그 소식에 씁쓸했다.

예전부터 자신의 보조작가를 악랄하게 괴롭힌다고 소문이 난, 성격 좋지 않은 작가였으니까.

심지어 월광에 내가 있을 당시에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준 것도 그녀였다.


[작가님은 이런 글 실력으로 어떻게 입봉하셨어요?]


[작가님은 노력 많이 하셔야겠다.]


[재미없어요. 싹 버리고 다시 쓰세요!]


합평을 가장한 비난이었다.

그러니 자신을 보조하는 작가들에겐 얼마나 심한 말을 했을까.

빨래와 밥 시키는 식모로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서 말이다.


“더 웃긴 건, 지연수가 쓸 드라마 내용이···. 학폭이라는 거야.”

“학교폭력? 완전 코미디네요. 누가 누굴···.”


정작 밑에 사람들을 괴롭히는 그녀가 학교 폭력을 풍자하는 드라마를 쓴다니.

자신이 악인 걸 모르는지, 아니면 자신은 선이라고 믿는 건지.

둘 중 어느 쪽이어도 헛웃음이 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람이 넥스트림이랑?’


지연수가 글로벌 OTT 플랫폼인 넥스트림과 계약하다니.

그저 기가 찰뿐이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얼굴 좀 보려고 왔다.”

“선배님도 바쁘시잖아요 요즘.”


스타작가는 1년 내내 항상 바쁘다.

드라마 업계가 어렵게 돌아가든 상관없이, 그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벌써 가시게요?”

“그래. 너 말대로 바쁘신 몸이잖냐.”


너스레를 떠는 박종범 작가였다.

그는 내 어깨를 토닥이더니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맞아. 그리고 특히 기자 조심해.”

“기자요?”

“그래. 저쪽에서 흠집 잡으려고 안달이 나있거든.”


마치 정치인들의 네거티브 전략처럼 드라마에서도 경쟁 프로에 흠집을 내려는 경우가 있었다.


“내 정보로는, 프리랜서 기자를 고용했다더라.”

“프리랜서 기자요? 리얼패치 기자는 왔었는데.”

“아니, 소속이 아예 없는 기자들. 죽기살기로 특종만 노리는 놈들이지. 걔네들은 앞뒤 그런 거 없거든. 그러니까, 흠집 잡히지 않게 조심해.”


그는 진심으로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월광의 소속으로 가장 가까이서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이었으니까.


“걱정 마세요 선배님. 흠집 잡힐 일 없습니다.”


나의 대답에 박종범은 안심된다는 얼굴로 옷을 챙겼다.

그리고는 나가려다 말고 다시 뒤돌았다.


“잘 먹었다. 커피 잘하네.”

“감사합니다!”


첫날부터 커피 칭찬을 듣는 나였다.

내가 잘한 것인지, 원두가 좋은 건지는 아직 몰랐다.


“역시 소질 있다 진우진이. 글도, 커피도.”

“하하···.”


나는 그를 다방 앞 차까지 배웅했다.

차를 탄 박종범 작가는 창문을 열더니 웃으며 말했다.


“한 가지 아이디언데, 빔으로 고전 영화를 쏴도 좋을 것 같구나.”

“빔으로요? 오, 괜찮은데요? LP랑 뭔가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든 박종범 작가.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선 서서히 사라지는 그였다.


‘빔이라···.’


얘기를 듣고나니 정말로 다방에 딱 어울릴 것 같았다.

레트로한 분위기를 자아낼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영화 땡기네.’


마침 스크린에 크게 영화를 틀어놓고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시골엔 영화관도 없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유시진한테 물어보자.’


혹시 모른다.

이 마을에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설이 숨어있을지도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을회관에 빔 프로젝터 있어! 내가 갖다줄까? 걍 쏘면 바로 나옴!]


대체 뭘까 이 마을.

은근히 있는 게 없으면서 없는 게 있기도 했다.


* * *


“와, 재밌겠다!”


오는 길에 각종 간식을 사온 유시진은 다방 벽면에 빔 프로젝트를 쏴댔다.

심지어 최신식 모델이었다.


“어르신들은 이거 왜 안 쓴대?”

“작동법이 너무 어렵대.”


씁쓸한 이유였다.


유시진과 같이 온 평정심은 옆에서 과자를 열심히 뜯고 있었다.

조그만 손으로 야물딱지게 먹기 좋게 잘도 뜯는 그녀였다.


“자. 그럼 영화 튼다?”

“제목이 뭔데?”

“몰라. 그냥 OTT에서 아무거나 랜덤으로 틀 거.”


마침내 다방에서 영화 시사회가 열렸다.

노트북으로 OTT 사이트에 접속한 뒤, 눈을 감고 아무거나 눌렀다.


결과는,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말레나>였다.


‘이 영화, 괜찮을라나···.’


다행히 영화가 시작된 이후로, 유시진과 평정심은 그 속에 푹 빠졌다.

팝콘과 과자를 먹던 손은 멈춰있었고, 조용히 작품 속에 빨려 들어갔다.


“아···!”


영화를 보던 평정심이 소리를 내었다.

모니카 벨루치에게 여러 남자들이 담뱃불을 붙여주는 유명한 장면이 나올 때였다.


“와, 이 장면 되게 멋있다.”

“이거 슬픈 장면이거든?”


유시진이 감탄하자 평정심이 말했다.

평정심은 유시진을 보며 영화를 볼 줄도 모른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같이 보는 것도 재밌네. 마치 놀러 온 것 같아.’


카페 영업 첫날.

만족스런 영업을 마치고 그 안에서 마무리로 좋은 영화까지.


‘이게 힐링이지.’


그런데.


‘왜 갑자기 찝찝하지?’


나는 이내 그 불안의 원인을 찾았다.


아까 전 박종범 작가가 남긴 께름칙한 말이 떠올랐으니까.


[흠집 잡히지 않게 조심해.]


분명 상대측에서 흠집 잡을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 나였다.

도강훈 감독과, 배우들 모두 착하고 정직한 사람들이었으니까.

박수호도 물론이고···.


‘······!!!’


순간, 나는 방금 전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잠깐···. 담배?!’


오디션 날, 내가 목격했었던 백시후의 모습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 아직 고등학생이 말이야.’


오디션이 끝나고 테라스에서 혼자 담배를 피던 녀석.

불안한 직감은 결과와 맞아떨어졌고 아마 며칠 동안 좌절에 휩싸였을 것이다.


‘이를 어쩐다···.’


자칫 기자가 흡연 장면을 찍어 일이라도 키우면 드라마에 화를 입을 수도 있었다.


고민에 빠진 나는 잠시 핸드폰을 꺼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어디가!”


유시진이 물었지만 나는 다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작가님?


“어. 수호야. 전화 되니?”


내가 전화한 곳은 도강훈이 아닌 박수호였다.

듣기로는 백시후와 그가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다고 했으니까.

백시후의 인성에 대해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저 안 그래도 작가님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응? 나한테 왜?”


뒤이어 박수호는 잔뜩 신이 난 듯 말했다.


-작가님이 주신 사진 있잖아요! 저희 할아버지가 그거 보더니···.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말을 들었다.


-갑자기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는 거 있죠? 그것도 엄청 신기한 얘기를요!


치매를 앓고 있는 박수호의 할아버지.

그가 기억을 되찾는다면 신비한 커피나무의 비밀도 밝혀지는 셈이었다.


“할아버지께서···. 무슨 이야기를 하셨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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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크리스마스 대소동 +5 23.12.24 5,102 127 16쪽
34 관광도시 프로젝트 23.12.23 5,227 121 16쪽
33 두 마리 토끼와 황금사자 +4 23.12.22 5,475 128 18쪽
32 마케팅 대결 +5 23.12.21 5,722 119 17쪽
31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3 23.12.20 5,909 129 17쪽
30 진우진이 돌아왔다고? +2 23.12.19 6,019 13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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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냉해 입은 존재들 +15 23.12.17 6,645 146 18쪽
27 유자와 탱자 +6 23.12.16 6,774 153 17쪽
26 허니 스위트 루왁커피 +4 23.12.15 6,927 147 17쪽
25 내가 자꾸 유명해진다 +7 23.12.14 7,278 14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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