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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절미. 님의 서재입니다.

기껏 귀농했더니 국보급 관광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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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절미.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11.03 14:44
최근연재일 :
2024.01.10 01:04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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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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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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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냉해 입은 존재들

DUMMY

나는 행운다방에 있는 구석진 창고에서 몰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백설기 목에 달린 홈캠을 통해 내 스마트폰에는 실시간으로 중계화면이 재생됐으니까.

마치 스파이 영화 속 첩보 요원이나 만화 명탐정 코난처럼 말이다.


‘화질은 좀 안 좋지만···. 실제로 보니까 더 예쁘네.’


홈캠을 통해 본 눈앞의 유자는 영락없는 대학생 정도로 보였다.

눈에 띄는 주황색 머리에 호기심 가득한 저 얼굴.

렌즈를 뚫어져라 보는 그녀의 모습은, 이 너머로 제인 작가님이 있구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만나서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어.’


현재까지 제인 작가가 나라는 걸 아는 사람은···.

차유정, 오아라, 황금산, 평정심, 순례 아주머니, 유시진, 그리고 평탄 실장까지.


‘좀 많은데···?’


앞으론 진우진의 노출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본캐인 진우진의 직업은 앞으로···.


‘카페 점장 겸 매니저니까.’


그때였다.


-너무 웃기다 이거. 이 귀여운 멍뭉이 이름은 뭐에요 작가님?


유자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화면이 손으로 가려졌다 보였다 하는 걸 보면 그녀는 백설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아, 이름은 백설기입니다.”


-네? 백설이?


“아뇨. 백설기요. 백.설.기.”


-왈!


그런데.


갑자기 홈캠의 화면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백설기가 자리에서 떠나 어디론가 가는 모양인데···.


‘뭐야. 대뜸 어디 가는 거야 설기···!’


예상 못 한 상황이었다.

언제나 말을 잘 듣던 백설기가 단독 행동을 할 줄이야.


‘가만. 설마···?’


-왈! 왈왈!


짖는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앞, 창고의 문 앞이었다.

백설기가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주인인 내가 있는 곳까지 친히 다가온 것이었다.


‘아···. 내가 좀 전에 이름을 불러서 그렇구나.’


나의 부주의였다.

백설기는 그저 이름을 듣고 곧장 달려온 기특한 행동을 한 것이니까.


-왈왈왈!


“왜 멍뭉아, 안에 누가 있니?”


문 너머로 들리는 유자의 목소리.

그녀가 제인의 존재를 발각하기 단 5초 전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끼이익.


나는 오래된 창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상황도 모른 채 바닥에 앉아 헥헥 혀를 내밀고 있는 백설기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주황머리 소녀의 유자가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유자 씨.”

“누구···세요?”


-왈! 왈왈!


지금 백설기가 사람 말을 할 줄 몰라서 참 다행이었다.

사향고양이 녀석 같았으면 ‘얘 진우진이로소이다!’라고 바로 고자질 했을 터.


나는 목을 가다듬고는 한껏 정제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진우진 매니저라고 합니다.”

“진우진··· 매니저님?”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유자였다.

진우진 매니저가 대체 누구냐는 의미 같았다.


“네. 이 카페의 매니저이자···.”


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어 말했다.


“신묘한 고양이 다방을 쓰신, 제인 작가님의 담당 매니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카페도 하고 작가의 에이전시 일도 하는 사람이라니.

순발력으로 짜낸 변명인지라 유자가 믿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어머. 너무 멋있으시다! 이렇게 멋진 카페랑, 아주 멋진 제인 작가님을 동시에 맡고 계신 거네요?”

“아, 하하. 감사합니다.”


제대로 먹혀 버렸다.

얼떨결에 진우진의 직업이 그렇게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유자 씨가 더욱 멋지죠. 항상 무대하시는 거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답니다.”

“과찬이세요! 저기, 매니저님도 같이 자리에 앉아요.”


카페 주인인 내가 손님인 유자에게 이끌려 자리를 옮겼다.

백설기와 내가 나란히 앉았고, 유자가 맞은편에 앉아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잠깐. 그러면 홈캠은···. 소통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때.


유자가 백설기 목에 달린 홈캠을 보며 말했다.


“작가님! 매니저도 있으신 줄 몰랐어요. 역시 잘 나가는 작가는 다르시네요?”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한 제인 작가였다.

바로 앞에 그 당사자가 앉아 있었으니까.


나는 급히 전화를 받는 척했다.


“네 작가님! 뭐라구요?! 아, 그러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대신 맡아서 진행하죠.”


받지도 않은 전화를 끊자 유자가 걱정되는 얼굴로 물었다.


“왜요 매니저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뇨 다른 건 아니고. 제인 작가님께서 갑자기 신작의 영감이 미치도록 떠올라 잠시 창작의 방 안에 들어가신다고 합니다.”

“창작의 방···?”


아주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그런데 안타까움 대신 오히려 기쁜 미소를 짓는 유자였다.


“우와! 그럼 또 엄청난 신작이 곧 나오는 거네요? 와, 신난다! 너무 좋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다행히 모든 위기를 넘겼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지친 유자에게 기댈 수 있는 탱자 노릇을 하는 것.


그런데.


“저 사실,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는 유자였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목을 가다듬었다.

아직까지 목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너의 곁으로 음원 말인데요. 어쩌면 진행 못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저도 작가님께 전달받아 들어봤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유자 씨.”


하지만 유자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뭔가 감정이 북받친 모양이었다.


그러자 백설기는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입에 티슈를 몇 장 물고 왔다.


“저기, 이거···.”

“아,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잠시 후 그녀는 진정이 된 듯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희 회사 대표님이 요새 좀 예민하시거든요. 제 목도 이렇게 된 지 꽤 되기도 했고···.”

“강석구 대표님 말이군요.”

“네, 맞아요. 대표님께서 그랬거든요. 목 관리도 가수의 성실함을 보여주는 거다, 근데 왜 가만히 쉬어도 모자를 판에 쓸데없는 가이드 녹음이나 했냐··· 라고요.”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유자의 축 처진 어깨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울적한 표정의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그거 아세요? 전 항상 열심히 살아왔는데, 대표님은 오히려 절 의무불이행으로 계약해지한다며 협박까지 한다는 거?”

“네?”


강석구 대표, 일면식은 없지만 좀 심한데?

소속사에서 그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하는 유자를 저렇게 대하다니.


“아니 그게 무슨. 그런 소속사, 그냥 나오시면 안 됩니까?”

“그러다가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떡해요. 이 업계, 엄청 좁거든요. 괜히 건드렸다가 적으로 만드는 건 좀 무섭달까···? 에휴. 저 참 바보 같죠?”

“에이, 전혀요.”

“하···. 또 말을 너무 했나. 목이 또 아프네요. 이럴 땐 참 서러워요. 힘든데 몸도 아플 때.”


유자가 물을 찾자 나는 미리 제조해놓은 그것을 가져왔다.

마음도 힘들고 몸도 아픈 그 상태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으니까.


나는 그녀의 인생에 힘이 돼줄 특제 커피, 허니 스위트 루왁커피를 건넸다.


“저. 이거 좀 드셔보세요 유자 씨. 제인 작가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겁니다.”

“아, 죄송한데···. 제가지금 목 때문에 커피를 못 마셔서요···.”


···그러니까 마시라고 하는 건데.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치만, 제인 작가님께서 준비하신 아주 특별한 커피입니다. 성의를 봐서라도 한 입만 드셔주시면···.”


그러자 어찌할 줄 모르는 유자였다.

눈앞의 제인 작가님이 직접 타 준 커피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는 잠시 후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네. 그럼 제인 작가님이 탄 커피라니까, 딱 한 입만!”

“감사합니다 유자 씨.”


유자는 킁킁 냄새를 먼저 맡더니 특제 커피가 든 머그잔을 한입 들이켰다.

맛을 보더니 눈이 동그랗게 커진 그녀였다.


“어머.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엄청 달달한데요, 매니저님?”

“네. 원체 구하기 힘든 원두로 만든 거라 맛이 아주 상당할 겁니다.”


한 입만 먹겠다던 그녀는 이어서 머그잔을 한 번 더 들이켰다.

얼마나 맛있는지 입술 주변을 혀로 훑기까지 했다.


나는 유자의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지금 저 밝은 모습이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그녀가 본모습을 되찾았으면 해, 위로의 말을 건네기로 했다.


“유자 씨. 그거 아세요? 식물들도 추운 겨울엔 냉해를 입는대요.”

“냉해요···?”

“네. 근데, 냉해를 입었다고 다 끝난 게 아니라네요. 영양제를 주거나, 서서히 몸이 녹으면 다시 살아난대요. 유자 씨도 어쩌면, 잠깐 인생에 냉해를 입은 거 아닐까요? 금방 나을 거예요. 목이랑 마음 둘 다요.”

“아···.”


유자는 나의 담담한 위로에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바쁜 스케줄에 몸과 마음이 닳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진심 어린 위로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맞아요···. 요새 너무 제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서 산 것 같아요. 날 바라봐주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됐는데.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거죠. 하, 참 바보같이.”


또다시 눈물을 닦는 유자를 보며 백설기는 자신만의 방법을 택했다.

하울링을 하며 그녀를 위로해주는 것이었다.


-아우우!!!


그러자 유자는 울다가 피식 웃었다.


“나 위로해주려고 노래 불러주는 거야? 고마워, 백설기야.”


-아우우우우!!!


“누나가 목만 안 아팠으면 답가로 노래 불러줬을 텐데. 아이 참···.”


주저하던 그녀는 조심스레 목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고마우니까 딱 한 소절만 해줄게?”


그리고는 노래를 시작하는 유자였다.

자신의 히트곡 중 하나인 <사랑니>를 부르는 그녀.


‘와, 역시 꺾기 실력은 그 누구보다 발군이다.’


그런데···.

한 소절이 끝난 유자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어. 뭐지? 노래가 왜 이렇게 잘 나와···?”


그러더니 이어서 완창까지 하는 유자였다.

덩달아 나와 백설기까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게 되는 상황.

역시 흥을 돋우는 유자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신이 난다.


“매니저님! 저 말도 안 되긴 한데, 갑자기 목이 나았나봐요!”

“정말요? 축하드려요 유자 씨!”


아이처럼 신난 유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몇 번이고 목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더니 선언하듯 크게 외쳤다.


“나았다! 진짜로 목이 나았어요! 와, 어떻게 이런 일이!”


-왈왈! 아우우!


나와 백설기는 그녀의 모습에 덩달아 미소 지었다.

유자는 뭔가를 결심한듯 말했다.


“저, 오늘 여기서 푹 쉬고 갈래요! 목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나았겠다, 오히려 시간을 번 거잖아요. 안 그래요 매니저님?”

“당연하죠. 제가 아는 분께 연락해볼게요.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실 거에요.”


그렇게 나는 순례 아주머니를 그녀에게 소개시켜주었고, 유자는 감사의 인사를 연신 남발했다.


'휴.'


다행히 유자의 문제를 해결했다.

덕분에 눈앞에서 콘서트까지 직관하게 됐네.


이게 다 똥느님 덕분이다.


'이제 OST 가수까지 확보했겠다, 남은 사람은 딱 한명인가.'


*


유자가 순례 아주머니네로 간 사이, 백설기와 함께 다방을 정리하고 있는 나였다.


그때.


-지이잉!


차유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유정아!”


-작가님! 전화하셨어요?!


“응. 다름이 아니라, 그때 너가 소개시켜준 도강훈 피디 있잖아.”


차유정에게 소개받은 프리랜서 도강훈 피디.

내 소설이 드라마화 됐을 때 메인 연출로 점찍어둔 사람이었다.


-네네! 안 그래도 강훈 오빠가 연락 없어서, 자기 시작도 전에 잘린 줄 알았대요.


그럴 리 없다.

쉬는 시간 동안 틈틈이 도강훈 피디가 찍은 연출 장면들을 훑어봤으니까.


‘경험은 부족해도, 감각은 뛰어나.’


아직 메인 연출의 경험은 없지만 그가 연출한 부분들만 골라낼 수 있을 정도로 감각과 센스가 뛰어났다.

물론 드라마를 마치 영화처럼 찍는 연출이 중간중간 보였다.

즉, 힘이 많이 들어간 느낌.

힘이 많이 들어갔다는 건 대체로 돈을 많이 써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윗사람한테 엄청 깨졌겠는데···.’


하지만 그런 도강훈 감독이 더욱 마음에 들어졌다.

이 또한 열정이 많다는 느낌.

그저 윗사람에게 OK사인을 받기 위해 많이 본 그림, 적당한 그림을 뽑아내는 몇몇 연출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럼 내가 편하게 연락해봐도 될까?”


그러자 차유정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그 오빠 요즘 백수라서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걸요?


“그래? 어디 사시는데?”


-어···. 아마 지금 본가 내려가 있을 텐데? 음, 맞다! 청주 산다 그랬어요.


청주라···.

충주에서 대략 1시간 정도 거리였다.


“알았어 유정아. 고맙다! 내가 한번 연락해볼게.”


-네! 아마 연락하시면, 곧바로 달려올 걸요 그 오빠?


차유정의 농담 같은 말과 함께 통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도강훈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말도 안 돼. 전화하자마자 이리로 오겠다고?’


차유정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뉴스에선 한파주의보까지 내렸다는데, 도강훈 피디는 기어코 날 찾아뵙겠단다.


···이거 어쩌다보니 하루에 미팅을 두 탕 뛰게 생겼다.


-똑 똑 똑!


잠시 후, 행운 다방에 두 번째 손님이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문을 열자 도강훈이 서 있었다.

스타일도 좋고, 키도 커서 마치 모델인 줄 알았다.


“안녕하십니까 도강훈 감독님.”

“아! 설마 혹시···?”


나는 또 매니저로 변신했다.


“진우진 매니저라고 합니다. 이 카페와 제인 작가님을 담당하고 있죠.”

“아, 그러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그렇게 도강훈과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잠시 후.


‘확신이 없다고···?’


30분 간 대화해보고 느낀 점은, 그가 생각보다 자신감이 지나치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감독님. 이건 기회입니다. 메인 한번 달아보셔야죠.”

“저야 제안을 해주셨을 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연출에다가 B팀 연출까지 하면서 느낀 건···. 제가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도강훈 감독이라면 신묘한 고양이 다방의 메인 연출 자리를 흔쾌히 받아줄 줄 알았다.


‘본인의 기준이 남들보다 훨씬 높은 거야.’


도강훈은 스스로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직까진,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존중합니다 감독님. 하지만 모든 게 준비돼 있다는 걸 알아주십시오.”


나는 이번이 큰 기회라는 듯 다시 한 번 당부했다.


“제인 작가님과 차유정 배우, 그리고 OST까지 미리 섭외해 놓았습니다. 감독님만 오시면 이제 곧바로 진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도강훈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준비가 안 된 감독이, 오히려 누를 끼치진 않을까 염려되네요.”


실력은 출중한데 자신은 없다라.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는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깐. 이럴 땐 루왁 커피를···.’


기운이 솟아나는 커피를 마시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이 마법의 커피는 정신을 또렷하게 해주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우치게 해주었으니까.


‘요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잃고 사는 것 같아.’


사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었다.

모든 게 풍족한 요즘이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 안에 없는 상실의 시대라고나 할까.

힐링 소설이 잘 팔리는 이면에는 슬픈 진실이 존재했다.


‘어?’


그런데 나는 원두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원두가 벌써 떨어졌어?’


어느덧 똥싸개가 싼 원두가 바닥이 난 것이다.

소설을 완성한 뒤로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마법의 원두를 차곡차곡 모아두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도강훈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저, 먼 길 오신김에, 제가 동네라도 소개시켜드리고 싶은데요.”

“아유, 저야 좋습니다. 걸으면서 생각도 또 해보고요.”


잠시 후.


그렇게 도강훈과 마을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커피나무 쪽으로 길을 선택했다.


‘그래야 열매를 좀 줍지.’


일거양득의 계획을 세운 것이다.


지난번 평탄 때처럼 루왁커피는 요긴하게 쓰였다.

흐려진 판단력을 또렷하게 만들어주곤 했으니까.

그러려면 가장 먼저 똥싸개에게 대령할 커피열매를 주워야만 했다.


“커피나무가 있네요?!”

“네. 저희 마을의 시그니처죠.”


그런데.


'······?!!'


커피나무에 도착한 나는 두 가지 사실에 충격 받았다.


첫째. 한파에 커피나무가 냉해를 입었다는 것. 즉, 열매가 모두 사라져있었다.

둘째. 날씨였다.


-휘이이이잉!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하늘에서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눈은 삽시간에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저, 감독님. 일단, 돌아가시죠···.”


젠장.

갑자기 눈보라에다가, 커피나무가 냉해까지 입다니.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거, 앞으로 커피열매를 어떻게 수급한다?


한순간에 모든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안일했다.'


불행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더니.

나는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때.


-···♬


‘누구지?’


행운 또한 불행과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커피나무 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한 것이다.

걸음을 옮겨보니 그곳에는 다름 아닌···, 유자가 있었다.


도강훈은 놀란 채로 물었다.


“가수 유자 씨가 왜 여기에···?”

“사실, 저희 거 OST 담당하시기로 했거든요.”

“네?!”


이후 도강훈과 나는 말없이 노래를 들었다.

좀처럼 보기 쉽지 않은 시골 속 야외 콘서트였다.

눈보라 속에서 감미로운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진풍경.


그런데.


‘어···?’


도강훈이 유자의 노래에 빠져있는 사이, 오직 나만이 뭔가를 발견했다.


‘열매가, 열리고 있어?!’


냉해를 입은 커피나무 가지에서 빨간 커피열매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유자의 목소리에는 마법의 힘이라도 있는 걸까?


‘다행···이야.’


곧바로 희망이 솟아났다.

다행히 앞으로 커피열매를 수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는 동시에.


'······.'


내 옆의 도강훈도 입이 떡 벌어져있었다.

그는 홀린 듯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 남자, 아까와는 눈빛이 확연히 달랐다.


“매니저님. 저···.”

“······?”

“드라마, 한번 해보겠습니다.”


도강훈 감독 또한 유자의 노래로 확신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러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서로가 서로의 냉해를 풀어준 오늘의 일이야말로, 내 소설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골자였다는 것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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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허니 스위트 루왁커피 +4 23.12.15 6,927 147 17쪽
25 내가 자꾸 유명해진다 +7 23.12.14 7,278 148 16쪽
24 음악은 작물도 춤추게 해 +6 23.12.13 7,283 17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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