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인절미. 님의 서재입니다.

기껏 귀농했더니 국보급 관광지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인절미.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11.03 14:44
최근연재일 :
2024.01.10 01:04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342,376
추천수 :
7,507
글자수 :
365,815

작성
23.12.28 23:58
조회
4,303
추천
108
글자
18쪽

이거, 꽃놀이패였군요?

DUMMY

이 정도 현금을 눈앞에서 본 적은 처음인 듯, 박수호는 돈봉투를 만져보지도 않은 채 그저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꿀꺽.


박수호의 침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지금 그의 시선은 오로지 한쪽에 머물러있었다.

루왁커피의 효능을 알 리가 없는 박수호 입장에서는 웬 뜬금없는 커피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두툼한 돈봉투가 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니까.


“저한테 이걸···. 왜 주시는 거죠?”


박수호가 돈봉투를 빤히 쳐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이른 나이에 깨우친 모양이었다.


“일종의 투자지.”

“투자요?”

“그래. 주식, 아니 요즘에는 코인이 낫겠다. 코인으로 치면 밑바닥에서 매수해놓는 거야.”


내 말에 여전히 아리송한 얼굴의 그였다.

아까 전의 오디션에서는 개판 쳤고, 대체 자신의 뭘 보고 투자를 한다는 것인지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돈이 그렇게 많으세요?”

“그냥 먹고 살만큼 있을 정도?”

“이거 사기 아니죠?”


박수호의 진지한 물음에 나는 풉하고 웃었다.

그리고선 이내 그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뭐, 투자해서 떡상하면 좋은 거고. 만약 아님 뭐 아닌 거고.”

“진짜 저를 무슨 잡코인 보듯이 보시네요. 저 갖고 도박하시는 거네요?”


요즘 청소년들에게 도박과 코인 같은 부류가 유행이라는 소릴 들었다.

그 때문인지 박수호도 자연스레 관련 용어를 알고 있는 듯했고.


“난 도박 같은 건 안 해.”


나는 박수호의 가능성, 즉 숨은 재능을 보고 여기까지 찾아왔다.

잠시 후, 박수호가 마음을 먹은 듯 돈봉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


“잠깐.”


내가 먼저 돈봉투를 슬쩍 집어들었다.


“······?”


그리고는 봉투에서 5만 원짜리 30장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내 가방에 도로 넣었다.

이런 나의 행동을 보는 박수호의 표정이 황당해보였다.


나는 비교적 홀쭉해진 돈봉투를 박수호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먼저 선납금 한 달 치.”

“선납금이요?”

“오디션 통과하면 나머지 두 달 치도 줄게.”


갸우뚱해하는 박수호를 향해 나는 웃으며 말했다.


“분할매수.”

“제가 못 미덥나보네요?”

“그냥 리스크를 줄이고 싶어서 말이야.”


박수호는 오기가 생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봉투 속 빳빳한 지폐를 쳐다보며 현실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근데 넌 올인해라.”


그때, 박수호에게 내가 말했다.


“네?”

“내일 오디션에선 올인하라고. 진짜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


박수호는 다시 한 번 침을 꿀꺽 삼켰다.


“어디서··· 하는데요? 그 오디션이요.”

“유진 연기 아카데미.”


내가 대답하자 박수호가 깜짝 놀랐다.


“어? 제가 다닌 곳인데···.”


도강훈 감독은 내일 낮, 충주 시내에 있는 연기학원에서 최후의 오디션을 열기로 했다.

일종의 지역 인재를 발굴하려는 움직임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때마침 그곳은 박수호가 잠깐 동안 다녔던 연기학원이기도 했다.


‘그렇다는 건, 더욱 경쟁이 치열할 수도.’


이들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

서로 얼굴을 알고 있는 친구들끼리 배역 하나 놓고 경쟁을 펼친다는 것은 아마 이들에겐 인생 최초의 서바이벌 게임이 아닐까.


“자신 있어?”

“어···. 일단 해볼게요.”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박수호에게 말했다.


“명함에 적어서 줘.”

“뭐를요?”

“계좌번호. 오디션 통과하면 바로 쏴줄게.”

“아아···.”


그는 저번에 준 내 명함을 가져와서는 볼펜에 자신의 계좌번호를 적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나에게 건넸다.


‘그래, 전의를 불태워라.’


밥을 먹여주는 것은 꿈이 아니라 돈.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먼저 해결해야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그리고 난, 지금 이 학생에게 잠시나마 전속력으로 꿈을 향해 달릴 수 있는 돈을 주었다.


“내일, 이 커피 꼭 마시고 와라.”


* * *


다음 날 아침.


도강훈은 마지막 조조연 오디션에 앞서 논의할 문제가 있다고 연락해왔다.


‘논의라고 하면 보통 문제가 생겼단 건데···.’


드라마 편성날짜와 조조연 말고는 딱히 문제될 것이 없었다.

아무래도 편성 관련 이야기를 하러 오는 것이 분명했다.


“니들이 문제다, 문제.”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이 똥싸개와 백설기였다.

아침 단잠을 깨우는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새로 사준 장난감을 두고 혈전을 펼치고 있었으니까.


-왈! 왈!


-푸하하! 아둔한 강아지들은 높은 곳에 못 올라온다냥. 가엾소로이다!


똥싸개가 뼈다귀 모양 장난감을 입에 물고는 식탁 위로 올라가있었다.

백설기는 아래에서 그저 닭 쫓던 개처럼 아련하게 위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런 게 바로 언더독인가···.’


밑에 있는 백설기를 보자 순간 박수호가 생각났다.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언더독인 그가 과연 이따 펼쳐질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내 촉이 정확하기를···.’


-으르르···! 왈왈! 왈왈왈왈!!!


백설기가 지난번 썼던 지진 공격을 펼쳤다.

식탁 다리를 대차게 흔들어 사향고양이 녀석을 자빠뜨리려는 속셈이었다.


-어어어, 치사하게 그러기냥!!!


그러자 중심을 못 버틴 똥싸개는 결국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뼈다귀 장난감을 놓치고 말았다.


-왈! 왈왈!


백설기는 기뻐하며 떨어진 뼈다귀 장난감을 획득했다.


분한 표정의 똥싸개는 주먹을 꽉 쥐었지만 덤비지는 않았다.


-야비한 녀석이로소이다!!!


그때였다.


-왈! 왈! 왈!


백설기가 갑자기 현관문을 보며 짖기 시작했다.


‘왔나보다.’


그렇다는 건 외부 손님이 왔다는 뜻.

청각이 예민한 백설기 덕에 이렇게 미리 알 수가 있었다.


-아이고, 또! 또 온 거냥!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곧 해결 방안을 세워볼게.”


-그 말만 벌써 몇 번째로소이까? 저놈을 못 오게 하든! 다른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져오든! 최대한 빨리 해결하라냥. 알았소이까?


“넵.”


사향고양이 녀석은 그렇게 비밀 통로를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여전히 승리감에 젖은 백설기는 뼈다귀 장난감을 물고서 꼬리를 흔들어 재꼈다.


목도리와 모자로 얼굴을 꽁꽁 싸맨 도강훈이 문 앞에 도착했다.


“작가님! 저 왔습니다.”


나는 문을 열어주고 그에게 인사 대신 물었다.


“혹시 편성 문제입니까?”


그러자 도강훈 감독은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었다.

그는 곧바로 식탁 의자에 앉고는 겉옷도 벗지 않은 채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가님. 장미 아파트, 이미 촬영 꽤 진행된 거 아시죠?”

“그럼요 감독님. 기사도 났고, 4월 중순 온에어면 이미 꽤 찍었겠죠?”


먼저 운을 띄운 도강훈이 이어서 본론을 말했다.


“CX미디어랑 계속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아, 그 박연지 피디님이요.”

“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내 물음에 도강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바깥에서부터 가져온 차가운 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저희꺼 편성을 5월 중순으로 논의 중이긴 한데요 작가님.”

“네네. 좋은데요?”

“그렇긴 한데요 작가님, 박연지 피디 말에 의하면···. 그렇게 될 시 JBS 장미 아파트랑 동시간대로 맞붙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편성을 늦추자는 내부 의견도 많다고 하답니다.”


패기 넘치던 도강훈이 어째 기가 팍 죽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신년부터 쏟아지는 장미 아파트 측의 막강한 라인업 때문임이 분명했다.


“감독님도 같은 의견이신가요?”

“아 저요? 저야 뭐···. 웬만하면 피하면 좋긴 하죠. 상대가 워낙 세긴 하니까.”

나는 도강훈을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최석현 감독님 때문이십니까?”

“······!”


JBS 장미아파트의 메가폰을 잡은 메인감독 최석현.

그는 다름아닌 도강훈 감독이 B팀 감독으로 있던 전작 <우아한 살인>의 메인연출이었다.


“사실···.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이길 자신이 없으신가요?”

“음···. 잘 모르겠습니다. 최감독님 말고도 피해야 할 이유가 좀 있어서요.”


도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봤다.

그 또한 믿고 보는 최석현 감독에 비하면 언더독이라고 자신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도강훈 감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작가님도 아시다시피 요즘 CX미디어 재정상태가 좀 안 좋지 않습니까? 영화 쪽도 번번히 말아먹기도 해서 말이죠.”

“그렇긴 하죠.”

“그래서 제작비가 저희가 회당 6억입니다 6억.”

“6억이면, 장미아파트에 비하면.”

“그쵸. 거기는 10억이 넘습니다. 아주 돈을 때려박은 거죠.”


배우와 감독, 제작비까지 전략적으로 장미아파트와 피해야 할 명분은 많았다.

나는 그런 메인감독 도강훈의 의견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이번 싸움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으니까.


“음···. 감독님, 일단 오디션 보고 마저 얘기하는 건 어떨까요?”

“좋습니다 작가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팔에 찬 스마트워치를 확인한 도강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종이컵과 함께 미리 타둔 아이스 루왁커피를 가방에 챙겼다.


“그게 다 뭡니까?”

“보시다시피 커피죠. 심사하는 게 여간 힘들지 않습니까? 보면서 마시면 딱일 것 같습니다.”

“역시. 작가님이십니다.”


내가 뭘 해도 감탄하는 도강훈과 함께 집을 나섰다.


그리고 우린 차를 타고 충주 시내에 위치한 유진 연기아카데미로 향했다.


*


도강훈과 나는 오디션장에 도착했다.

아직 자리만 세팅돼 있을 뿐인데, 벌써부터 긴장감이 맴도는 것 같았다.


“아, 작가님. 그리고 오늘 이나현 CP까지 온다고 하십니다.”

“예? CP가요···?”


CX미디어에서 드라마 <신묘한 고양이 다방>을 담당하는 제작1팀의 CP 이나현 국장.

그런 그녀가 조조연 오디션을 참관하러 이런 지방까지 온다고?


“겸사겸사라고 하십니다. 작가님 얼굴도 볼 겸, 또 이번이 저희 드라마 마지막 오디션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요. 열정이 참 대단하시네요.”

“그만큼 위에서 관심이 많다는 거겠죠.”


관심이 많다는 것은 걱정이 많이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CX 미디어의 현재 재정 상태로선 드라마 하나라도 절대 망하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 저기 오시네요!”


검정색 자켓을 걸친 30대 중반 혹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박연지 피디에게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진우진 작가님. 이나현이라고 합니다.”

“진우진입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도강훈과 그녀는 이미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는 것인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어쩌다가 대배우 뽑는 오디션이 돼버렸네.’


이래서야 고등학생들이 연기나 제대로 하려나.

작가와 감독, CP까지 오는 오디션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말이다.


“아유, 오셨습니까!”


마지막으로 인상 좋은 중년의 아저씨가 들어와 우리에게 대뜸 인사를 나눴다.


“저희 유진 아카데미에 이런 제안을 주시고···. 너무 영광입니다!”

“아, 이쪽은 여기 원장님이신 유진 씨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진우진입니다.”


그렇게 자연스레 심사위원 석에는 네 명의 사람이 앉았다.

나, 도강훈, 이나현, 그리고 유진 원장까지.

오디션을 보는 학생들의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유진 원장은 특별히 가운데에 앉혔다.


“감독님. 제가 어제 지원자를 11명이라고 말씀드렸죠?”

“예 원장님. 누가 못 오나요?”

“아뇨 그 반대입니다. 지원자가 어제 말씀드린 인원에서 한 명 늘었습니다.”

“그래요? 어떤 학생이신지···. 제가 프로필을 못 받아봐서요.”


그때, 원장 대신 내가 대답해주었다.


“박수호 학생입니다. 어제 다방에서 봤던.”

“예? 그 학생이 왜 여길···.”

“그걸로 판단하기엔 좀 이른 것 같아서요. 한 번 더 보고 그때 결정하시죠.”


도강훈은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저야 상관없긴 한데···. 그 학생으로선 오히려 망신만 당하는 꼴 아닙니까? 사람도 이렇게나 있는 곳에서.”


나는 걱정하는 도강훈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그건 본인이 감당할 수밖에요.”


.

.

.


잠시 후.


오디션이 시작되고, 가장 처음 지원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백시후입니다!”


카메라가 앞에 설치돼 있는데도 자신감이 넘쳤다.

현직 드라마 감독, 작가, 하물며 CP까지 있다는 소식을 진작에 들었을 텐데도 말이다.


“대단하네요.”


내가 중얼거리자 도강훈도 끄덕였다.

이나현 국장은 이미 프로필이 적힌 종이에 메모를 한 줄 적기 시작했다.


‘인사 한마디로 발성, 발음, 표정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때였다.

유진 원장이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희 학원 엘리트입니다.”

“엘리트요?”

“예. 무려 충주예고에 다니는 데다, 중학교 때부터 연기를 배워 연기력도 탄탄하고, 게다가 집안도 좋습니다. 아버지가 시의원이라더군요.”

“시의원이요?”

“아, 하하. 마지막 껀 불필요한 말이었네요. 사실, 돈 걱정 안 하고 연기만 배운다는게 큰 복이지 않습니까···. 박수호 학생 같은 경우는 저도 참 안타까워요.”


씁쓸해하는 유진 원장의 얼굴이었다.

역시나 박수호가 연기학원을 그만둔 이유는 돈 문제였던 것 같지만, 유진 원장에게 되묻지는 않았다.


지금 곧 백시후 학생의 연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으니까.


“흠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때였다.


나는 지원자의 옆에 미리 세팅해둔 루왁커피를 가리키며 긴장되면 마셔도 좋다고 말을 건넸다.


“아,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패기 좋게 종이컵을 벌컥 들이키는 백시후였다.

루왁커피를 마신 그는 이제 차분히 연기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같은 조건이어야 해···.’


박수호를 밀기 위해 다른 학생이 희생되어선 안 된다.

오디션은 오로지 공정하게 진행돼야만 했으니까.


“자, 대본 읽으면서 하셔도 되니까, 편하게 시작해요.”


도강훈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백시후가 바지주머니에서 대본 종이를 꺼냈다.


“저보세요. 저렇게 노력까지 한다니까요.”


유진 원장이 백시후의 대본을 보며 감탄했다.

그가 꺼낸 대본은 밤새 연습했는지 빼곡한 글자로 가득 차 있었다.


“흠흠.”


그리고, 마침내 그의 연기가 시작됐다.


.

.

.


‘제법이잖아···?!’


인물 분석도 대충하지 않았고, 감정 표현 역시 탁월했다.


‘원장 말대로 연기력이 정말 탄탄해.’


심사위원석의 모두가 연신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인재가 여기 있었다니···.”

“엘리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도강훈의 감탄에 유진 원장이 흡족해하며 말했다.

나 역시 속으로 놀란 상태로 곰곰이 생각했다.


‘박수호. 이길 수 있겠냐.’


도강훈 감독은 흥분된 얼굴로 이나현 국장에게 뭐라고 속닥거렸다.

이대로 오디션을 마쳐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얼핏 들렸다.


‘루왁커피는 당연히 마시고 왔겠지···.’


잠시 후.


다음 차례가 되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박수호···라고 합니다!”


하필이면 발군의 실력을 갖춘 백시후 다음은 박수호였다.


“또 뵙네요 박수호 학생?”

“···네 감독님! 재도전···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박수호는 처음 보는 이나현 CP을 보고는 약간 당황해하며 꾸벅 인사했다.

딱 봐도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이나현 국장이었다.


‘자꾸 긴장하는 게 불안한데···. 설마···?’


어째 어제보다 훨씬 더 긴장한 것 같은 박수호였다.

잠시 후 그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무언가를 꺼냈다.


‘대본인가···?’


그런데 그가 꺼낸 것은 공진당이었다.

울렁증을 이겨내기 위해 한약까지 처방받은 모양이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작가님.”

“어, 그래.”


박수호는 진심어린 표정으로 인사했다.


그런데.


“아, 그리고 커피는. 이따 끝나고 마시려고 아껴뒀습니다.”


뭐···?

그럼, 박수호는 지금 어제랑 그냥 똑같은 상태라는 건데.


“···바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스 루왁커피를 안 먹었다고?

그럼 대체 연기 울렁증은 어쩌려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박수호 학생. 대본은 안 가져왔어요?”

“아 그게, 놓고 왔습니다!”


도강훈의 물음에 박수호가 대답했다.

커피도, 대본도 가져오지 않은 그였다.


‘대본도 없어···?!’


내심 나까지 초조해지려던 그 무렵.


그런데.


‘어···?’


그의 눈빛이 어제 오디션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뭐지?’


열정이란 것이, 그리고 욕망이란 것이 그의 눈에 서려있었다.


“흠흠!”


정적이 흐르는 오디션장.


마침내 박수호가 긴 숨을 내뱉고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

.

.


놀랍게도,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

“···이야······.”


그의 연기가 계속되는 동안, 심사위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앞 차례인 백시후를 압도하는 실력의 연기.

말 한마디조차 뗄 수 없도록 좌중을 압도하는 박수호는 그야말로 천생 배우였으니까.


“충주에···. 뭐가 있나요···?”


놀란 채로 표정이 굳어버린 이나현 국장이 중얼댔다.

옆에 있던 도강훈 또한 넋을 잃고 말했다.


“대본을···. 통째로 외운 거였군요.”


그제야 대본을 놓고 온 이유를 깨달은 도강훈 감독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크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고맙다, 박수호.’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도강훈에게 속삭였다.


“···박수호를 보고 언더독의 좋은 점이 뭔지 깨달았습니다.”

“언더독의 좋은점이요?”

“예. 언더독은요···.”


겨우 침을 꿀꺽 삼킨 나는 그를 향해 나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절대로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언더독은 앞으로 이길 일만 남았거든요.”

“···그렇군요. 저기, 박수호처럼.”


멍하니 박수호를 쳐다보는 도강훈에게 나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감독님.”

“예.”

“저희 드라마, 장미아파트랑 동시간대로 가시죠.”

“······?”


곧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도강훈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아?”


그는 해볼만 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거, 꽃놀이패군요? 져도 그만, 이기면 대박.”

“네. 바로 그겁니다.”


그렇게 박수호의 연기가 끝남과 동시에···.


조용한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기껏 귀농했더니 국보급 관광지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입니다. +8 24.01.10 1,223 0 -
공지 이전 제목 : 무한영약으로 귀농 대박 +1 23.11.24 7,296 0 -
51 블루칩의 요구사항 +7 24.01.10 1,896 79 12쪽
50 루팡플러스 +3 24.01.09 2,245 96 13쪽
49 원대한 꿈 : 네버랜드 +2 24.01.08 2,604 104 17쪽
48 차기작 +6 24.01.07 2,729 105 16쪽
47 유명해지고 싶어요. +4 24.01.06 2,891 100 17쪽
46 드라마틱한 커피차 +5 24.01.05 3,125 117 18쪽
45 슈퍼푸드 +4 24.01.04 3,301 111 15쪽
44 진다방 오픈 +8 24.01.03 3,524 116 18쪽
43 스노우볼 굴러가유 +6 24.01.02 3,649 113 14쪽
42 대본 리딩 +6 24.01.01 3,768 115 16쪽
41 가짜 관광객 +1 23.12.31 3,972 106 17쪽
40 레시피의 단서 +4 23.12.29 4,125 118 18쪽
» 이거, 꽃놀이패였군요? +4 23.12.28 4,304 108 18쪽
38 재능은 꽃 피우는 거야 +3 23.12.27 4,470 121 15쪽
37 인생은 마법 같은 일 +5 23.12.26 4,710 121 15쪽
36 새해 맞이 특종 +4 23.12.25 4,880 126 14쪽
35 크리스마스 대소동 +5 23.12.24 5,100 127 16쪽
34 관광도시 프로젝트 23.12.23 5,226 121 16쪽
33 두 마리 토끼와 황금사자 +4 23.12.22 5,474 128 18쪽
32 마케팅 대결 +5 23.12.21 5,722 119 17쪽
31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3 23.12.20 5,908 129 17쪽
30 진우진이 돌아왔다고? +2 23.12.19 6,018 135 17쪽
29 정면 돌파 +12 23.12.18 6,145 130 16쪽
28 냉해 입은 존재들 +15 23.12.17 6,644 146 18쪽
27 유자와 탱자 +6 23.12.16 6,772 153 17쪽
26 허니 스위트 루왁커피 +4 23.12.15 6,926 147 17쪽
25 내가 자꾸 유명해진다 +7 23.12.14 7,278 148 16쪽
24 음악은 작물도 춤추게 해 +6 23.12.13 7,283 173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