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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절미. 님의 서재입니다.

기껏 귀농했더니 국보급 관광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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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절미.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11.03 14:44
최근연재일 :
2024.01.10 01:04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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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410
추천수 :
7,507
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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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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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레시피의 단서

DUMMY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유진 연기 아카데미에서의 오디션이 끝이 났다.

12명의 지원자들은 대기실이자 휴게실인 곳에 옹기종기 모여 만감이 교차한단 심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 씨발. 어떡하냐. 나 시작하자마자 한 번 절었어.

-어차피 그거 아니었어도 니 탈락임.

-존나 밤새워서 대사 외웠는데 아.


몰래 기웃거리던 도강훈 감독과 나는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학생 두 명을 발견했다.

바로, 박수호와 백시후였다.


“다들, 오늘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내가 말하자 학생들이 일제히 우리 쪽을 쳐다봤다.

불량하게 앉아있던 몇 학생은 자세를 고쳐앉았고, 조용하던 두 학생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합격자에게는 내일 문자로 통보가 갈 겁니다.”

“네···.”


도강훈이 말하자 몇몇 학생들은 탈락의 기운을 이미 느꼈는지 힘없이 대답했다.


그런 와중에 박수호와 백시후는 여전히 긴장된 얼굴로 우리를 말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가장 간절한 두 명인 것 같군.’


그렇게 나와 도강훈 감독은 유진 연기 아카데미를 떠날 채비를 했다.

마침 복도에서는 이나현 국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국장님!”

“저는 보기만 한 건데요 뭐. 눈에 띄는 학생이 몇 있어서 참 다행이네요.”


도강훈의 인사에 이나현이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녀는 다음으로 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진 작가님. 원작 소설은 재밌게 읽었어요.”

“아유 별말씀을요.”

“드라마도 잘 돼야 할텐데···. 원작에 먹칠을 할 순 없으니까요.”


그녀에게서 고민이 많다는 느낌이 적지 않게 전달됐다.

아무래도 편성 시간에 대한 것일 터.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이기는 게임보다는 지지 않는 게임을 선호할 것이다.

큰 자본이 들어가는 드라마에서는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가 힘닿는 데까지 해볼게요.”

“그렇다는 건···. 5월 편성으로 밀어주신다는 겁니까 국장님?”

“아직 확정은 아니고. 위에다가 또 컨펌을 받아야겠죠.”


도강훈은 환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는 이나현 CP와 남은 이야기를 나눴다.


‘든든하네. 모두가 내 작품을 바라보고 있어.’


사람들의 열정에 어느덧 덥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좀 전의 학생들의 오디션을 보며 뜨거운 에너지를 전달받아서이기도 했다.


‘바람 좀 쐬러 나가자.’


그렇게 도강훈과 국장이 대화를 나눌 동안 학원에 마련된 자그만 테라스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엔.


“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백시후가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는 급히 담배를 끄고는 고개를 숙인 뒤 다시 학원 안으로 들어갔다.


‘어휴, 담배냄새.’


곧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충주 시내의 대로변에 위치한 학원이라 그런지 시내의 광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래도 여긴 도시같네···.’


하지만 서울의 도시와는 다르게 뭔가 정겨운 느낌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감상에 젖어있을 무렵.

또다시 테라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가님.”


백시후인줄 알았더니 박수호였다.

그는 후련하다는 얼굴로 숨을 깊게 내쉬더니 내 옆에 섰다.


“연기 어떠셨어요? 솔직하게.”

“그때처럼 긴장 안 하더라.”


나는 일부러 간단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누르기 시작했다.


“저 혹시···. 연기가 별로였나요?”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갑자기 팍 식어버린 녀석이었다.

아니 식었다가, 곧 식겁한 표정이었다.


-지이잉!


“보냈다.”


내가 그에게 심드렁하게 말하자 박수호는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며 물었다.


“예? 뭐를요?”


나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입금완료라고.”

“···예??”


그러자 곧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혀 환희에 찬 얼굴로 말했다.


“그럼 저, 합격이에요?!”

“그래 임마. 나머지 돈 보냈으니까 잘 확인하고.”


그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은행 어플을 키더니 잔액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침을 꼴깍 삼키는 박수호였다.


“···진짜네? 감사합니다! 저 진짜 열심히 해볼게요. 기회주셔서 감사합니다!”

“니가 잘한 거지 뭘. 긴장 안 하니까 진짜 잘하더라.”


루왁커피의 힘을 안 빌리고도 말이다.

박수호를 보며 뭔가 내 자신이 반성되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엔 백시후를 뽑을까 생각했었어 다들.”

“아···. 그럼 백시후는 어떻게 된 거죠?”

“백시후는 안타깝게 떨어졌어.”

“걔 연기 진짜 잘하는데···.”


박수호는 놀랐다는 얼굴로 시내 쪽을 내려다봤다.


순간, 나는 문을 통해 슬쩍 복도를 쳐다봤다.

그러자 이나현 국장과 이야기를 마친 도강훈이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박수호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문을 열었다.


“연기에 집중해라. 할아버지 잘 보살펴드리고.”

“아···. 네 작가님!”


그렇게 박수호와 나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시내에서 돌아온 도강훈과 나는 행운다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장미아파트 측의 라인업과 우리 측의 라인업을 비교해봤다.


“국장님께서 그러시는데, 내부 분위기로는 5월 편성 긍정적인 것 같답니다.”

“다행이네요. 저희 쪽도 패가 나쁘지 않아요.”


단순 인지도를 제외하면 상대측과 크게 밀리지 않는 라인업이었다.


“그렇죠. 차유정에 김수혁, 대배우 신문숙 선생님까지.”


고양이 다방을 운영하는 할머니 역할로 배우 신문숙까지 확정됐다.

이제 촬영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었다.


“작가님. 대본 리딩 날짜가 곧 정해질 것 같습니다.”

“대략 언제인가요?”

“늦으면 다다음주. 빠르면 다음 주입니다.”


대본 리딩 자리에 극본을 맡은 작가가 빠질 수 없었다.

나는 든든한 우리 측 라인업을 보며 방긋 웃었다.


“당연히 가야죠. 모인 자리에서 인사도 드려야 하니까.”

“작가님. 저희 장미아파트 꼭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이제 감독님의 어깨가 무겁겠군요.”

“하하, 아닙니다.”


추운 겨울철, 고된 촬영과 편집만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

나는 그에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혹시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뭐, 작은 문제라도요.”

“문제없습니다 작가님! 아, 딱 하나···.”


도강훈은 창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날씨만 좀 따라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날씨요?”

“예. 아무래도 저희 작품이 야외촬영도 많다 보니까, 한파가 오면 촬영도 딜레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는 잠시 후 배우 신문숙의 프로필을 슥 내밀었다.

마치 포커에서 카드 하나를 내는 것처럼.


“신문숙 선생님께서 추위를 극도로 싫어하신다고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실내씬 위주 아닌가요? 다방 안에서.”


도강훈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죠. 사실 상관없겠네요. 다른 젊은 배우들이 고생 좀 하겠지만.”

“칼바람에 연기가 제대로 될지 모르겠네요.”

“걱정 마십시오! 배우들 케어는 제가 고민해보겠습니다. 작가님은 혹시나 대본 수정 있으면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요.”


너스레를 떠는 도강훈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커피···.’


그런 게 있다면 혹시 모를 변수를 제거할 수 있다.

만약, 한파가 몰려오면 생각보다 편성에 문제가 될 수 있었으니까.


* * *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작가님. 대본 리딩 날짜 잡혔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드라마 신묘한 고양이 다방은 순항 중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덕에 편성 또한 다른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른 날짜에 정해졌다.


잠시 쉬는 시간동안, 나는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떴구나.’


[Tns 측, 신묘한 고양이 다방 5月 편성 확정.]

[신묘한 고양이 다방, JBS 장미아파트와 동시간대 맞붙는다!]


기사가 쏟아졌다.

사실 이 싸움은 우리에게 약간 불리한 판세였다.

JBS 장미아파트가 4월 중순에 시작하고, 우리는 5월 중순쯤이었으니까.


우리 것이 온에어 될 쯤이면, 한 달 먼저 시작한 상대 드라마는 이미 4회분을 방영한 상태일 터.

시청자들을 먼저 선점한 장미아파트가 누가 봐도 유리한 상황이었다.

보통 드라마의 동시간대 후발주자는 시청률로서 핸디캡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끝나는 시점은 같네.’


장미아파트는 12부작, 신묘한 고양이 다방은 8부작이었다.

마지막 회에서 나란히 끝나는 대격돌의 상황.


‘도강훈만 믿는다.’


드라마는 연출 또한 매우 중요한 영역이었다.

같은 대본을 두고도 감독에 따라 천차만별의 느낌을 낼 수 있었으니까.


-냠, 냠, 냠. 맛있소로이다···.


그때.


캣닢에 취한 사향고양이 녀석이 중얼댔다.

일주일 동안 과하지 않을 정도로 캣닢을 녀석에게 주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야말로 랜덤박스네 진짜.’


마치 랜덤박스처럼 특제 루왁커피의 재료가 랜덤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했던가.

처음에는 캣닢에 취한 녀석이 딱 내가 필요했던 효능의 커피를 말해주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똥싸개의 골골송을 들으며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인 내가, 일주일동안 얻은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 중복

스위트 루왁커피라든가 이미 예전에 나왔던 재료가 나오기도 했다.


2. 또 다른 레시피

특정한 루왁커피를 만드는 레시피는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령 아이스 루왁커피는 알고 보니 그냥 루왁커피에 얼음만 넣어도 화 또는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3. 가짜 레시피

녀석은 잠결에 쓸데없는 재료를 말하기도 했다.

어제는 캣닢에 취한 똥싸개가 [루왁커피에 된장을 넣으면 무언가가 치솟는다냥···.]이라고 말하길래, 마침내 새로운 커피를 찾은 줄 알았다.


‘무언가가 치솟는다는 게, 열이 오른다는 줄 알았지.’


마침내 겨울 한파에도 사람들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커피를 찾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루왁커피에 된장을 넣고 시식해본 결과···.


너무 맛이 없어 구토를 할 뻔했다.

그때 깨달았다.

무언가가 치솟는다는 게, 열이 아니라 그냥 구토를 뜻한 것임을.


‘이래저래 많이 낚였어.’


-음냠냠···. 사과, 꿀···. 맛있겠소로이다.


이와중에 또 먹을 것을 중얼거리는 똥싸개 녀석이었다.

요즘따라 도강훈 감독이 집에 안 놀러오니 아주 살판난 모양이었다.


‘천천히 기다려보자. 레시피를 억지로 찾을 순 없으니까.’


-지이잉!


때마침 이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지도 첨부함니다. 11시까지 집결!]


오늘은 시금치 밭에서 수확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


이곳 화룡리에서는 재미난 시스템이 있었다.

이장 함익평이 가끔씩 미션과 보상을 내려주기 때문이었다.


[미션 : 시금치 수확 / 보상 : 약간의 금전과 시금치 / 난이도 中]


마치 게임처럼 퀘스트와 그에 따른 보상이 명확했다.

오늘 날씨는 정말이지 추웠기에 난이도가 꽤 높은 것 같았다.


“어이, 진씨! 빨리빨리 좀 뽑아바!”


같이 일을 도와주던 청년회장 아저씨가 장난삼아 외쳤다.

맞다, 이름이 김민수였지.


‘적응 안 돼.’


내 바로 뒤에는 익숙한 얼굴의 학생도 보였다.

바로 박수호였다.


“너 연기 연습 안 하니?”

“읏차! 아, 저요? 가끔 이런 일 말고는 하루종일 하고 있죠. 걱정마세요 작가님!”


씩씩하고 대답하는 박수호였다.

내가 준 돈으로 할아버지의 병원비를 몇 달간 충당하기엔 충분했다.


“미리 벌어놔야죠. 개학하면 또 사람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나보다 더 성숙한 녀석일지도 모르겠다.

시금치를 뽑던 박수호는 장난스런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작가님은 돈 쓸데가 없다더니, 알바하러 오셨네요?”

“나도 미리 벌어놔야지. 작품 끝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내 말에 녀석은 시금치 뿌리를 칼로 잘라내며 웃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저 아까 기사봤어요. 편성 뜬 거.”

“그러냐. 그러니까 연기 연습이나 해라.”

“근데요 작가님.”

“왜.”

“이런 거 여쭤봐도 되나? 작가님은 회당 얼마 받으세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요! 곤란하시면 대답 안 하셔도 돼요 진짜!”


나는 진실을 말할지 말지 고민됐다.

진실을 말하면 녀석이 질투심에 사로잡힐까, 아님 자기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할까.


나는 후자일 것 같았다.


“회당···.”

“네.”


녀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새 시금치를 뽑던 손이 가만히 멈춰있었다.


“삼천.”

“회당 삼천이요?!”


쪼그려앉아있던 녀석이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그러자 김민수 아저씨가 박수호를 가리켰다.


“박수호!!! 농땡이 피우면 국물도 없다!!!”

“아 네, 네 아저씨!”


와···.하며 감탄사를 내뱉는 녀석이었다.

어쩐지 시금치를 더욱 열심히 뽑기 시작한 박수호.


‘역시.’


내 페이를 듣고는 열의를 더 태우는 그였다.


그렇게 시금치 뽑기 아르바이트가 끝이 났다.

마침내 이장의 퀘스트 보상 시간이 찾아왔다.


“다들 고생했고! 자, 여 시금치 가져갈 사람 팍팍 가져가고. 여, 오늘 일당!”


박수호는 시금치와 돈을 모두 챙겼다.

나는 돈만 챙기고 시금치는 아주 조금만 봉투에 담아 가져가기로 했다.


‘집에도 시금치는 널렸으니까···.’


이장님의 퀘스트를 통해 이렇게 소일거리를 하니 하루하루가 금방 갔다.

집에서 늘어져 있는 것보단 훨씬 행복하고 좋았다.


“어휴 땀 흘리니까 더 춥다! 작가님은 이제 어디 가세요?”

“나? 고양이, 아니 개밥 주러.”

“아아. 이름이 백설기라 그랬죠? 전 이제 유진 아카데미 가요.”


기특한 녀석.

아르바이트랑 연기 연습을 병행하다니.


“덕분에 잘 다니고 있어요 작가님.”

“니가 거머쥔 거야. 얼른 연습하러 가라.”

“아 맞다! 가기 전에 한의원도 들려야되는구나.”

“한의원?”

“네. 저를 오디션에서 합격시켜준 한의원이요! 곧 대본 리딩이니까 또 공진단 처방받으러 가요!”


공진단이 효과가 있었으려나···.

박수호는 그냥 본인이 긴장을 이겨내고 연기를 잘한 건데, 공진단의 힘으로 합격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아이스 루왁커피 대신 공진단이라니.’


나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야. 넌 그거 없어도 할 수 있어.”

“에이 아니에요! 그 한의원이 얼마나 용한데요!”


그때.


작별인사를 하려던 박수호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꼬깃꼬깃 꺼냈다.


“아, 작가님 이거요!”

“뭐야. 대본이야?”

“아뇨. 제가 다니는 한의원 팜플렛이요! 작가님도 언제 한번 가보세요!”


생각보다 한의원에 진심인 녀석이었다.

하긴, 공진단느님 덕분에 합격했다고 믿으니 박수호에겐 그럴 만도 했다.


“작가님. 그럼 대본 리딩때 봬요!”

“어, 그래! 감기 조심하고.”


박수호는 그저 대본 리딩이 기대될 뿐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반면 나는 걱정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야외 촬영, 가능하려나···?’


지금 날씨가 너무 추웠기 때문이었다.

이미 도강훈의 강력한 의지로 편성 날짜까지 확정지은 마당에 단 하나의 촬영도 지체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지이잉!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는 것일까.


도강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가님! 통화 가능하십니까?!]


“아, 감독님. 무슨 일이세요?”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거 골치 아프게 생겼습니다. 신문숙 선생님 소속사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나는 긴장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촬영 날짜를 좀 미룰 수 없냐고 여쭤보십니다.]


“촬영 날짜를요? 지금 미루면 5월 편성은 물 건너가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그런데 여쭤보는 것도 아니고, 사실 엄청 완강하십니다. 이런 날씨에 도저히 촬영 못 하시겠다네요.]


다방 내부에서 찍는 씬이 대부분이었지만, 야외씬도 물론 포함돼있었다.

신문숙 같은 고령의 배우에게는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라 부담가는 상황일 만 했다.


‘하···. 특제커피만 있으면 가능한데···.’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편성까지 술술 잘 풀리던 드라마도 지금 날씨 하나 때문에 큰 위기가 온 것처럼 말이다.


‘레시피···. 추위를 견디게 해주는 루왁커피 레시피만 있다면···!’


무턱대고 커피열매에 아무 음식이나 조합할 순 없었다.

시간이 무한정으로 있다면 해볼만하겠지만, 지금 그런 여유는 없었으니까.


‘어이없네. 차민주한테 갑자기 행운의 여신이···.’


나는 허탈한 마음에 피식 웃었다.

장미아파트 측은 전부 중년 이하의 배우로 구성된 데다가 제목답게 대부분 실내촬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편성 미뤄지면 자기가 무서워서 피한 줄 알겠는데···?’


나는 차가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바닥에 푹 숙였다.


그때.


‘어···?’


내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박수호가 건네준 한의원 팜플렛이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하늘에서 내린 계시인지 모르겠지만 문구 하나가 딱 들어왔다.


[몸에 열을 내는 음식 : 사과, 꿀, 계피···.]


“이거···. 똥싸개가 아까 중얼거린 거랑 똑같은데···?!”


나는 아까 전 똥싸개가 중얼거린 말을 떠올렸다.


[음냠냠···. 사과, 꿀···. 맛있겠소로이다.]


내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아무 말도 없이 서있자, 도강훈이 물었다.


“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작가님?”


나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린 후 그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감독님!”

“네 작가님···?”

“이번 촬영···. 그대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일은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관심이라곤 전혀 없었던 팜플렛에서 인생의 중요한 힌트를 얻기도 했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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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대본 리딩 +6 24.01.01 3,770 115 16쪽
41 가짜 관광객 +1 23.12.31 3,973 106 17쪽
» 레시피의 단서 +4 23.12.29 4,126 11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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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인생은 마법 같은 일 +5 23.12.26 4,710 121 15쪽
36 새해 맞이 특종 +4 23.12.25 4,882 126 14쪽
35 크리스마스 대소동 +5 23.12.24 5,102 127 16쪽
34 관광도시 프로젝트 23.12.23 5,227 121 16쪽
33 두 마리 토끼와 황금사자 +4 23.12.22 5,475 128 18쪽
32 마케팅 대결 +5 23.12.21 5,722 119 17쪽
31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3 23.12.20 5,909 12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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