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새글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7.05 00:04
연재수 :
360 회
조회수 :
9,418
추천수 :
772
글자수 :
3,415,109

작성
23.12.03 03:37
조회
16
추천
2
글자
19쪽

180. 낙하의 순간

DUMMY

*


허공에서 쏟아져 내렸다.


쏟아져 내렸다고 함은, 자신의 무게 중심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맹렬한 기세를 의미했다. 유성이 떨어지듯 바람을 가르면서 맹진한 브라운의 등 뒤에서, 먼저 호아킨이 뛰는 것을 보았다. 버클은 이미 풀고 있었고, 떨어지는 것을 그저 얽혀 있는 보호구에 의지한 채, 그리고 악력과 몸의 힘으로 유지한 채 버티고 있었다.


호아킨이 먼저 날자, 제냐도 뒤따라 브라운의 등 뒤에서 뛰었다. 기력술을 사용해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움직임을 할 수 있는 중력은 아니었다. 얼굴이 가차없이 일그러질 정도의 압력이었고, 그런 묘사는 제냐가 느낀 압박감의 아주 일부를 표현한다.


물리 스텟이 증가해서 50에 닿았다. 단순 계산으로 일반적인 육체파 장정의 힘에서 4번을 제곱한 것이다. 2배, 4배, 8배, 16배. 16배의 힘이라는 건, 단순한 위력은 아니었다. 한 부위에서 그만한 파괴력을 낼 수 있다는 뜻이었고, 운동 신경이 있고 근육의 협응을 이해하고 있는 운동자라면 얼마든지 이상의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조차 무게 중심이니, 각종 물리적 원리를 이해해서 자신보다 더 큰 상대를 넘기기도 하고, 근육을 가다듬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성공시키기도 한다. 초인적인 한계를 넘어 움직이는 전투 병기 따위가 되어버린 물리 스텟 계열의 기력술사들은 일시적으로 보일 수 있는 그런 한계의 폭이 훨씬 넓은 셈이다.


적은 돈을 가진 이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임시 융자로 훨씬 거대한 단위의 돈을 빌릴 수 있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보다 큰 힘은, 보다 많은 여유를 낳는다. 그 여유를 잘 굴리다 보면 다른 이의 눈에는 ‘저게 된다고’ 싶은 일까지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비련의 시나리오에서 물리 계열 스텟들을 연마한 초인들이 그러하다.


거기에 더해서, 기력술의 위력이 몸을 끌어당기고 밀어주어야만 했다. 일반적인 물리 법칙으로 할 수 있는 동작은 아니다. 곡예의 경지도 이미 넘었고, 일종의 예술이 아닐까 싶었다. 육체만으로 만들어내는 예술은 아니었다. 그보다 조금 더 초현실적인 무언가다. 관성에서 따로 벗어나 움직이는 듯싶은 방향으로 호아킨과 제냐가 날았다. 운동 에너지를 그대로 간직한 채, 브라운의 등 뒤에서 대각선 상향으로 뛴다. 호아킨이 먼저 떨어졌고, 그보다 좁은 각을 그리면서 제냐가 어진다.


호아킨은 넓은 대각선을 그리면서, 검은 용의 몸뚱이에서 보다 상부로 향해 날아들었다. 제냐는 그보다 조금 하단에 위치했다. 브라운은, 두 사람이 나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임무를 다했음을 깨닫는다. 미물의 머리, 새대가리라고 욕하곤 하는 그 머리이기는 했지만 거대한 괴조는 제법 영리했다. 까마귀보다는 훨씬 말이다. 그만한 지능이 있기에 라이엔이 편하게 부릴 수 있는 셈이다.


라이엔은 멀리서 브라운의 감각에 링크를 걸었다. 수준 높은 엘리트 테이머들, 곧 군단 테이머가 아닌 소수의 엘리트 몹을 다루는 술사들은 한 마리 한 마리와 감각적인 공유까지 해내곤 한다. 수준 높은 자들은 감지술사가 때로 필요없을 정도였다. 새를 날려보내 그것의 시야로 허공에서 조감도를 관찰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라이엔은 그 정도의 스킬적 다양성과, 깊이를 가지고 있는 뛰어난 테이머다. 브라운의 깃털 끝과, 미세한 날개의 움직임.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몸짓의 섬세한 감각을 느꼈다. 온몸으로 타이밍을 재었고, 브라운이 두 물리 계열 전사의 디딤대가 되어주자, 곧바로 방향을 선회시켰다.


묘기였다. 새는 공중에서 곡예를 부린다. 자신의 등을 아낌없이 내어주었고, 호아킨이 뛰고 제냐가 뛰고 나자 그 반발력을 원동력 삼아 그대로 고개를 접는다. 안쪽으로 푹 숙이면서, 유연하게 바람을 타고 몸을 뒤집는 것이다.

그대로 땅에 떨어져 검은 용의 몸 어딘가에 처박을 것만 같았지만, 그 급속도가 순식간에 줄어들면서 정반대로 회전을 했다. 그 관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갈색 매들은 날개의 힘과 양력, 대기의 흐름만으로 날고 있는 게 아니었다. 거대한 몹이며, 또 썬더스의 경우에는 본디 네임드 몹이었다.

썬더스만큼은 아니어도 브라운 역시 어느 갈색 매 무리에서 상당히 상위에 위치한 녀석이었다. MP를 다루었고, 대기 중의 흐름과 맞닿아 있는 MP 사용에 능숙하다. 그 컨트롤 감각만 따진다면 최상위의 풍술사와 비견해도 그리 부족하지 않으리라.


MP 활용의 다양성을 따진다면 인간 초상술사들에 비해 한참이나 떨어지기는 하지만. 비행과 관련된 갖가지 형태의 풍술에는 도가 튼 놈들이었다. 거기에 라이엔이 몹들을 이해하고, 또 테이밍 스킬로 강화시키며 도와주자 그런 곡예가 가능했다. 갈색 매들 중에서도 가능한 놈들이 별로 없는 수준의 움직임이다.


라이엔은 갈색 매 무리의 한 부족을 번갈아가면서 테이밍한다. 썬더스는 고정적인 몹이었고, 이렇게 가끔 일이 있을 때마다 한 놈씩 불러서 일을 시키는 것이다. 테이머의 손길과 스킬에 닿은 놈들은 MP를 활용하는 일에 있어서도 점차 늘고, 또 차후에 불려와도 테이머와 교감이 훨씬 빠르게 진행된다.


더 섬세하게 명령을 따랐고,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갖가지 움직임들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가진 바 한계를 이끌어내주고, 그 이상의 일조차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올바른 테이머의 능력이자 자세였다. 라이엔은 많은 종류를 테이밍해보지 않았다. 초보일 때, 중수일 때는 다른 녀석들을 다루었지만 레벨이 100에 다다랐을 무렵에 이 갈색 매들을 테이밍한 뒤로는 이 놈들만 거진 다루고 있었다.


갈색 매 무리처럼, 콘란드 대륙의 어느 지방에 또 자신이 테이밍했던 몬스터들이 있었다. 이따금씩 여행을 가듯 근처에 들러 잘 살아 있는지 확인을 하곤 했다. 죽은 놈들도 안타깝게 있었지만, 또 살아남은 녀석들도 많았다. 라이엔이 엘리트 술사였기에 그렇다. 테이머들 중에서 그녀와 같이, 펫Pet을 정예화시켜 데리고 다니는 자들을 엘리트 술사라고 부르곤 한다. 정반대의 스타일을 군단술사, 마물술사 따위의 이름으로 불렀고.


로웰 드버는 전형적인 마물술사였다.


정예화된 몹은 테이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다시 필드에 돌아가더라도 여전히 강력함을 갖는다. 남다른 몹이 되었고, 다른 몬스터들과 달리 마기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테이머 자체가 악 성향에, 마기를 돋구는 갖은 행동으로 몬스터를 굴렸다면 더욱 극심한 마기를 갖는 경우도 있겠지만은.

어쨌든 몬스터들을 정예병으로 만드는 엘리트 술사들은 한 마리의 몹이 네임드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게 한다.


라이엔의 손을 탔던 몬스터들은 상대적으로 필드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고, 주변의 다른 종들을 이기고 잡아 먹으면서 많은 전투를 경험하면, 다시 경험치를 받아 레벨이 높아진다.

그런 과정을 순환 반복하면 명실상부한 네임드 몹이 되기도 한다. 지금 라이엔이 다루고 있는 갈색 매들 역시 그러했다. 본디 썬더스는 어느 깎아 지르듯 생긴 기암 협곡의 높은 곳에 서식하는 매였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조류형 몬스터들이 있었고, 그것들 위에 군림하는 네임드 몹이었다.


라이엔이 운좋게 다른 지역에서 조금 쉬운 난이도로 테이밍에 성공했고, 지금까지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주며 혹사당하고 있었다. 반어법적인 의미를 조금 담아서 말이다. 그만큼 썬더스는 강력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직접적으로 통솔하던 갈색 매 무리 역시 라이엔의 손에 의해서 조금씩 강화되고 있다.

그 무리의 개체들 전부가 네임드라고 칭할만한 몹들이 되면, 라이엔은 고수급 중에서도 중견에 속하는 위치에 설 것이다.


기력술사건 초상술사건. 레벨 100을 돌파하고, 다시 랭커로의 길을 걷다 보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늘려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엘리트 술사들은 마물술사의 방식을 습득하고, 마물술사는 반대로 엘리트 술사의 기술들을 얻게 된다.


하나하나가 정예하게 빚어진 네임드 몹들. 거대한 갈색 매 군단을 부리는 라이엔의 전투력은 누구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하리라. 당장 NPC들의 세계에서만 보더라도 어느 기사단이나 정예 워메이지 전단에 버금가는 위력일 것이다. 그만하면 어느 왕국이나 제국을 가더라도 융숭한 대우를 받으면서 지낼 수 있었다.


라이엔의 중장기적인 목표는 그것이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당장은 어지간하면 도망치는 게 좋다. 이 정신 나간 플레이를 즐기는 하드 게이머들의 집념이 생각보다 대단한 것 같아서 어지간해서는 먼저 튀지 않겠지만. 가급적이면, 미래를 바란다. 여기서 자신의 계획이 이그러지는 걸 원치 않았다.


라이엔 핑은 겁이 많아 보이기도 하지만, 속깊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자기만의 계획이 있었고, 그건 시간이 조금 걸리는 일이었다. 누구한테 말을 하지 않더라도, 차근차근 그것을 위해서 걸어 나가는 것이 그녀의 즐거움이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입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고인물 부서에 배정이 되어서 애를 먹고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잘 버텨낸다면, 또 나름대로의 능력이 생길 것이다. 어려운 자리에서 일을 한다는 건 그만큼 배울 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멋지게 공중 제비를 돌아서, 180도 선회를 하고 위로 솟구쳐 오르는 브라운의 기세가 매섭고 또 대단하다. 창공을 가르는 거대한 괴조는 두 명의 인간들을 뒤로했다.


호아킨이 먼저 굉음을 내면서 검은 용의 일단을 잘라버리려 노력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몬스터 트럭같은 검은 용은 크기도 크기거니와 질기기도 만만치 않았다. 일반적인 생물이라면 벌써 양단이 되었어도 모자를 위력의 공격이 짓쳐 들어갔지만 깊숙이 벤 것에서 그친다.


제냐는 조금 앞쪽으로 떨어지면서, 양검을 휘둘렀다.


비스트 슬레이어Beast Slayer. 그리고 흑색장도黑色長刀. 단순한 이름이었지만 둘 다 흉흉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글자들이었다. 비스트 슬레이어는 짐승 류의 몬스터들에게 특별히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야성’이 도드라지는 몬스터들에게 말이다. 검은 용이 그중에 속할지는 모르겠다. 이만큼이나 거대하고 복잡한 행동 패턴과 성질을 갖고는 있지만, 이건 일단 짐승이라기보단 벌레였으니.


어쨌든 비스트 슬레이어가 맞상대하지 못할 괴물은 없었다. 비스트 슬레이어라는 이름이지만, 몬스터 슬레이어이기도 하다. 그건 칼을 들고 있는 이의 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두 자루의 도는 그 몸날이 날카롭다. 아주 바짝 깎여 있었고, 극한으로 예기를 내뿜는다. 허공을 자른다. 묵직한 무게감이 그 뒤켠의 철로부터 나온다. 앞으로 휘둘러지는 호선은 사람을 단칼에 벨 수 있을만하다. 물론, 그런 일은 잘 벌이지 않는다. 상대가 어지간한 악한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실제로는 악한이어도 자신의 목숨이 당장 경각에 달했고 또 위협을 받는 그런 상황이 아니고서는 저질러선 안되는 일이기도 했다.


다만 여기는 콘란드 대륙이고, 그가 눈 앞에 둔 것은 거대한 괴물 지렁이였다. 지렁이의 몸통은 마음껏 제냐의 칼을 받아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플레이어들이 야성을 펼치라고, 야생의 세계를 만들어 둔 것이 이 세계였으니까 말이다.


거치른 자연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살아 남으라, 고 말하는 게 이 서바이벌 게임의 취지이다.


그 뜻에 걸맞게, 제냐는 공중에서 몸을 둥글게 말면서 두 검을 말아쥔다. 그립은 초고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단단하게 쥐어져 풀리지 않는다. 이미 일반 장정의 열 몇 배가 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제냐였고, 거기에 기력술을 풀Full로 돌리고 있었다. 기름을 먹어 움직이는 기계 장치에 화석 연료를 왕창 실어넣고 터보 모드로 굴리는 것과 비슷하다.


기력술은 연료였고, 제냐의 몸을 활성화시킨다. 안그래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몸뚱이에 불가사의한 에너지가 깃들었다. 제냐의 몸이 푸르게 빛났다. 검푸른 색의 비스트 슬레이어. 그 묵직한 빛깔의 날이 허공에서 흐릿하게 보인다. 제냐를 관찰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느껴지리라. 떨어지고 있는 속도가 워낙에 빠른 탓이다.


다른 손, 왼손에는 흑색의 장도가 들려 있었다. 제법 검신의 길이가 길었다. 비스트 슬레이어가 언뜻 보면 둔탁하고 도끼같은 느낌마저 난다면, 그것은 조금 더 얇고 예리했다. 장도라는 이름답게, 한 손에 들고는 있지만 본래는 두 손으로 다루어야만 할듯한 길이감이다.


제냐의 한 손에 실리는 힘은 일반적인 인간이 양손으로 휘두르는 것보다 훨씬 막대한 양의 힘이기에 큰 문제는 없다. 두 칼날에 검기가 생겨났다.


짙푸른 검기는, 마치 플라스틱, 철, 그런 고체로 빚어낸 것처럼 검날 위에 덧씌워진다. 기력술로 칼날을 보강했을 때 흔히 보이는 일렁거림은 전혀 없었다. 허공에서 빛살처럼 떨어져 내리는 검술가의 양 손에 지독한 절삭력을 품은 양검이 들려 있었다. 아니, 양도兩刀이다. 아무튼 칼이라는 뜻에서 대충 부를 수는 있었다만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제냐의 모습이다. 그 안쪽으로는 철판을 덧대어 보강한 가죽 갑옷이 있었고. 무두질한 가죽과 여러 공학적 공정과 기술력이 합해졌고, 아티팩트를 만드는 장인들의 솜씨가 들어가 현대 공학으로도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방어력을 완성했다. 그의 몸을 휘감는 기력술은 내부의 근육 에너지를 강맹하게도 했지만 외부로부터 오는 충격을 상쇄시키기도 한다. 가장 많은 양은, 지금 공격을 때리기 위해서 휘둘러지는 근육 부위와 칼날에 집중되어 있다.


각 부위는 협응한다. 한 부위의 근육을 강하게 만들면, 다른 쪽에서 비상 신호가 울리게 되어 있다. 몸에서 뻗어나가는 위력이라는 건 정확하게 각 부위가 조응하며 움직여야만 나오는 것이었고, 그건 골고루 힘을 주고 무게 중심을 잡고, 밸런스를 맞추어야 하는 문제였다. 기력술사들은 수준이 올라갈수록 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게 되어 있었다.


수준 높은 운동 선수들이 물리학을 체감적으로 익히고, 근육의 움직임에 대해서 감각적으로 알게 되는 것과 비슷했다. 초상술사가 자신의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집중하고 넓게 퍼지는 MP를 다루는 것과는 정반대의 탐구 방향이었다. 그러나 고수급을 넘어서, 그 이상으로 가다보면 결국 비슷한 궤를 가진 두 길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흡수하는 경지가 있었다.


고수급, 소드 마스터에 달한 제냐 역시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었다. 지금은 소드 마스터로서 대파괴를 일으키는 일은 조금 어려웠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넓은 범위에 충분한 타격이 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소드 마스터의 전제 조건에 해당하는 고밀도로 집약된 기력을 유지하면서 광범위한 피해를 주는 일은 아직 지난하다. 대신 조금 더 절삭력을 높이고, 한 부위에 깊은 충격을 주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결국 중요 부위에 치명타를 먹일 수 있다면, 전체를 죽일 수 있지 않겠는가.


브라운의 등 위에서 뛰고, 수직 낙하하는 방향에서 조금 틀었을 뿐 그 운동 에너지를 갖고 검은 용의 몸통에 처박는 단 영점 몇 초. 혹은 그 수십 분의 일 초. 찰나라고 할만한 시간에 제냐는 달인의 감각을 일깨웠다. ‘명경지수’라는 스킬은 여전히 전투 중의 정신 집중을 도와주는 고마운 패시브 스킬이다. 그 외에도 김서원이 이미 갖고 있는 침착성이 보탬이 되기도 하고.


시스템의 보정은 초인적인 전투의 템포를 플레이어들이 잘 따라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몸은 둥글게 말려 있었고, 충격을 감당하기 위해 꼿꼿이 세워 아래를 바라보는 고개 위로 기력이 조금 집중되어 있었다. 공격력을 위한 기력들은 물론 칼날에 가장 강력하게 모여 있었고. 그러고 남은 방어력의 기력들이 제냐를 보호한다. 두둑하게 마셔둔 HP 포션이 뱃속에서 찰랑거리는 것 같았다.

고급품으로 마셨다. 그런 데서 돈을 아끼다가, 회복률이 낮아서 단숨에 골로가는 수가 있었다. 이미 HP도 50,000을 넘은 지가 꽤 되었다. 검은 용의 HP 총량은 어느 정도일까. 짐작하기 어렵다. 단순하게 보아서 100,000은 우스운 숫자일 테였고, 그만한 숫자가 끝도 없이 차오르면서 재생을 반복하는 괴물일 지도 모른다.


방어력은 숫자로 치환한다면 어느 정도이고, 흑색장도와 비스트 슬레이어에 실린 공격력은 몇 정도가 되는가.


순간을 다시 쪼개어 만들어낸 순간 속에서 생각의 속도만큼은 빛보다 빠르게 움직여 여러 상념들을 되뇌었다.


흩어지는 잔상처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가 곧 사라졌다. 이미 육안으로 감지하는 게 아니었다. 기감술이 근처의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뇌로 직접 쏜다. 시감각보다도 더 정밀한 거리감이 선명하게 길을 비춘다.


두 칼에 맺힌 검기는 완벽했다. 검의 극의를 앞에 두고서는 감히 하지 못할 말이었지만. 적어도 지금 제냐의 수준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기술로써는 그러했다. 짧은 순간, 양 손에 들고 있는 도신에서 뇌전의 기운이 치솟았다.


썬더 볼트, 스피어, 낙뢰. 온갖 초상 스킬들을 발휘하던 요령이 튀어나왔고, 검기는 다시금 전기의 옷을 덧입었다. 칼날과 검기, 그리고 뇌전의 기운이 검은 용을 노렸다. 운석이 낙하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속도로, 제냐는 두 칼을 넓게 벌려 들면서, 검은 용의 위에 착지하고자 했다.


자세는 완벽해야만 했다. 떨어지는 충격을 모두 공격으로 전환한다. 무게를 실어, 상체가 앞쪽으로 가득 넘어질듯 쏠린다. 몸통과 그에 붙은 팔, 그리고 날카롭게 세운 두 칼날이 가장 먼저 낙하한다.

검날보다 검극에 기운이 맺혔고, 한 점에 공격력을 집약한 두 개의 칼날이 검은 용의 등판을 부드럽게 베어 들어갔다.


콰앙!


하는 폭음이, 착지의 순간 제냐의 몸과 검은 용의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또한 아주 찰나의 틈을 두고 연이어서, 두 검날에 맺혔던 기운들이 검은 용의 몸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전류를 방출한다.


공격적이고, 검은 용을 죽이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찬 MP들의 광란이었다.


*

daniele-levis-pelusi--aEpe2N916c-unsplash.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180. 낙하의 순간 23.12.03 17 2 19쪽
180 179. 검은 용 레이드Raid(3) 23.12.02 21 2 18쪽
179 178. 검은 용 레이드Raid(2) 23.12.02 21 2 24쪽
178 177. 검은 용 레이드Raid(1) 23.12.02 16 2 18쪽
177 176. 그것의 입장 23.12.01 17 2 14쪽
176 175. 태양은 모조품을 용서한다 23.12.01 21 2 28쪽
175 174. 태양의 숨결에 대해서 23.11.30 25 2 16쪽
174 173. 방류의 직후 23.11.29 22 2 20쪽
173 172. 방류 23.11.29 21 2 12쪽
172 171. 괴물의 앞 23.11.25 22 2 22쪽
171 170. 용트림 23.11.25 19 2 11쪽
170 169. 번개와 폭풍, 형성중 23.11.24 23 2 22쪽
169 168. 캐스팅 23.11.24 17 2 19쪽
168 167. 사색 23.11.23 21 2 12쪽
167 166. 동굴 앞(3) 23.11.23 19 2 15쪽
166 165. 동굴 앞(2) 23.11.23 17 2 15쪽
165 164. 동굴 앞 23.11.22 20 2 14쪽
164 163. 데슈칸 심부 23.11.21 23 2 23쪽
163 162. 갈색 매 23.11.20 23 2 22쪽
162 161. 바구니 23.11.19 22 2 10쪽
161 160. 그와 그녀 23.11.19 20 2 18쪽
160 159. 의뢰(re)Quest 23.11.18 22 2 15쪽
159 158. 그녀, 라이엔 23.11.17 20 2 23쪽
158 157. 스킬러Skiller 23.11.16 26 3 15쪽
157 156. "음." 23.11.16 21 3 12쪽
156 155. 원탁 23.11.14 24 3 17쪽
155 154. 남중국 23.11.12 24 3 16쪽
154 153. 야욕 23.11.11 24 3 14쪽
153 152. 제국 특기特機 23.11.11 22 3 17쪽
152 151. 다시 만나, 담화 23.11.10 22 3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