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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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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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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5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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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208. 지루한 옮김, 라이엔의 상념

DUMMY

라이엔과 동급의 고수급 테이머, 군단술사라고 한다면 아마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정예병들처럼 마물들을 움직일 수 있을 테였다.

진법을 짜서 마물들이 움직이고, 유기적으로 굴어 하나의 전략을 부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모여 만든 군대 중에서도 제법 수준이 높은 군대처럼 일할 수 있으리라.


아마, 완숙한 고수급. 그리고 수퍼 마스터 급에 다다른다면 더 이상 마물의 지능이 아니라 사람의 지능처럼 보일 테였다. 군단술사들의 부리는 몬스터들이. 그 즈음되면 이제 테이머가 생각하는 바와, 몬스터가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일 사이의 간극이 극도로 좁아지게 되므로.


테이머가 떠올릴 수 있는 복잡한 전략을, 그대로 딜레이 없이 군단이 수행하는 셈이었다. 당연히, 그 정도 레벨이 되었을 때 군단술사 스스로사 전략에 대한 이해와 능력이 부족하다면 허접한 군단만을 부릴 수 있으리라.

자신의 분야에 대해 그 정도의 대비도 없이 수퍼 마스터에 다다르는 건 거진 불가능한 일이기는 했지만.


“크라라라라.”


오크들은 우는 건지, 괴성을 지르는 건지. 아무튼 기성을 질러대면서 힘을 쓴다. 레드 오크들. 고릴라가 온다고 해도 아이처럼 보일법한 덩치였다. 3미터에, 옆으로나 앞으로도 방대한 덩치의 위용은 직접 앞에서 보지 않으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족 보행을 하는 유인원이 이마만치 거대한 체구를 갖고 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단순히 체고가 2배 즈음 높아졌다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기에. 중력 방향으로의 낙하와 부하를 견디기 위해서, 하반신과 기둥이 되는 몸통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강력해져야만 하니까.


레드 오크들은 몬스터로서 태어날 때 이미 플레이어들 중에서 초보의 말엽, 중수 급에 달하는 완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자라나면서 더욱 완숙한 지경에 들어가고.


거기에 기초적인 전략을 수행할만한 머리를 노년기에 접어들며 얻게 되니. 애매한 전투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는 늘 공포의 대상이 될만했다. ‘악마류’라고도 부르는 몬스터들이었다. 고블린, 오크, 트롤, 오거. 지구의 신화에서 ‘귀신’이라고도 불리는 그런 것들에게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한 괴물들이다.

그것들은 ‘귀신종’ ‘악마종’으로 분류가 되며. 몬스터들 중에서도 특별하게 플레이어와 사람에게 적대감을 갖는다. 그 뒤에 어떤 기이한 조종자가 있어서, 특히나 소름끼치게 움직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플레이어들이, 혐오스러운 장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이 게임에서. 고블린 무리 따위에게 집단 공격을 받다가 약한 수준의 트라우마를 얻게 되었다는 건 흔한 이야기였다.

그 점에 있어서도, 이 게임은 사람의 정신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작용하고 있어서. 마치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꿈 속에서의 일인 것처럼, 지나치게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면 게임 내 상황과 플레이어의 정신을 이화異化시킨다. 오늘, 게임 속에서 현실감 넘치게 겪은 일이지만. 순식간에 아주 먼 옛날의 기억, 꿈 속의 흐릿한 기억처럼 느끼도록 착각을 시키는 것이다.


애초에 사람의 감각을 조정해서 완벽한 가상현실 게임을 구현하고 있는 비련시 온라인이었으니까. 내부에 들어와있는 사용자에게 다시금 그 감각을 재조정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가상현실 게임들은 지난 21세기 중엽을 지나면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다. 전자기학, 소재공학, 온갖 분야의 공학들이 발전을 이룬 것에도 물론 영향을 받았고. ‘새로운 세상’이라는 테마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주제였으니까 말이다.


가상현실이 새로운 세상이 될 일은 없었지만. 적어도 ‘정보 전달의 도구’로서는, 새로운 매체가 될법했다. 계속해서 상상의 영역에 있어서, 수많은 개발자들이 쫓고 있던 그 ‘지점’을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은 실제로 보여준 것이었고.


가상현실 게임이 발전하면서, 관련한 규제들도 그 사이에 많이 생겨났다. 사람의 정신과 신경에 영향을 끼치는 시스템과 기술이기에 특별히 더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어설프고 둔한, 저열한 방식의 기술력이 들어간다면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해를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구현이 된, 입증이 된 수준에서의 실용만이 가능했다. 기술 개발에 있어서 수많은 실험 과정들, 검증 과정들이 있어야 했고. 안전성을 편집증적으로 검토해서, 패스된 기술과 기기들만이 상용화될 수 있었다.

물론 초창기에는 규제가 덜했고, 관련한 사고들이 많았기에 생겨난 이후의 변화였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도, 그러한 관련 규제들을 모조리 통과하면서 먼저 관계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사람에게 어떠한 부작용도, 오도된 영향력도 끼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하고 상용화가 된 것이다. 불가해한 기술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분명히 기술 개발을 하고 있던 것을 관련 정부 부처의 인물들이나, 산업의 종사자들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턱, 하니 벽 하나를 뛰어넘은 듯한 물건이 나와버렸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 직전에, 가장 현실감을 잘 구현했던 게임을 가져다가 옆에 비교를 한다고 해도.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물건이 되리라.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은, 마음먹고 개발자들이 ‘현실과 똑같이’ 만든다면, 사람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현실감을 묘사할 수 있었다. 게임성을 나타내고 있는 여러가지 유저 인터페이스들을 싹 없애버리고, 현실 세계를 모방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총기나 돈을 모조품으로 만들어서 유통할 때, 컬러 파츠를 단다던가 혹은 착각하지 않도록 틀린 부분을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가상현실 게임 역시 비슷한 규제가 있어서 완벽히 똑같은 세상은 만들 수가 없었다.


상용화시키지 않을 거라고 한다면 상관은 없었지만. 그리고 개인이 이용하기 위해서 프라이빗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라면 상관이 또 없었지만. 여러 사람들한테 그런 맵이나 모드mod가 유통되는 건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현실과 똑같을 수 있는 모방품을 사람들 사이에 퍼뜨려서,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설령 개발자진 쪽에 악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사람은 도구를 쓸 때 꼭 좋은 방향으로만 쓰지 않으니까. 어느 창의적인 범법자가 나와서 이상한 짓거리를 할 지 모르는 것이다.


지난 시대, 지루하고 긴 소규모 전쟁들과, 정치전, 냉전들을 겪으면서 세계는 한 차례는 성장했다. 한 차례 정도는 말이다. 함부로 새로운 도구 앞에서 들뜨지 않았고, 안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개의, 선진국의 위정자들과 정부 부처들 안에 흐르는 분위기가 그러했다.


물론 지금도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는 북러시아나, 북중국 따위, 또 그에 동조하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에는 규제따위 개나 주어라, 하는 식의 일들이 벌어지고는 있었지만.

발전을 위해서 누군가 헌신하고 도전적으로 구는 것과. 뻔히 지식이 있는 상황에서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는 무지한 짓거리는 분명 구분이 되어야 했다. 세계는 이화二化되어 있었다. 언제 그러지 않은 적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할 말이 없었지만. 지금 시대에도 아직까지도.


선진국, 서방 유럽에서 시작해서 미국, 일본, 한국 쪽으로 들어간 발전의 흐름과. 또 여타 여러 국가들에 스며들어 지금은 탈바꿈한 동남아 지역이라거나, 남중국, 서러시아 지역, 아프리카 일부 지역 따위는 그래도 적극적인 발전과 지역 개방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기술적 지혜와 정보들이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당장 실實교전이 일어나지는 않아도 정치적인 다툼과 냉전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구공산권의 사상과 명맥을 이어나가는 나라들에는 보편적인 기술 발전의 혜택이 조금 덜 돌아가고 있었다.

선진국의 시점에서 보면 우스울 수 있는 사건 사고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었다. 선진국이라고 해도 사고가 없는 것은 분명 아니었지만. 이미 지나간 실수들을 그 나라들에선 또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흠.”


라이엔은 썬더스의 위에서 언제나 그렇듯 늘어지게 쉬고 있다. 정말로 쉬는 건 아니고, MP를 운용하기 위해 나름대로 집중하고 있긴 했다만. 겉으로 보기에는 하릴없이 빈둥대는 여자로 보이기는 한다.

게임을 하다가 문득, 현실에 대해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라이엔만 그런 건 아니었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현실의 삶이라는 건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요소였으므로.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게임도 결국 현실의 삶을 위해서 하는 것이었으니까. 도저히 떨칠 수 없는 어떤 상념들을 떨치기 위해서. 잠깐의 여유를 위해서.


놀이로 삼고 환기를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게임 산업 쪽의 종사자로서, 직업적으로 게임을 하고 길게 플레이하기도 하지만. 그런 플레이에도 결국 현실의 삶이 녹아져 있다. 스포츠 선수로서 게임을 대하고 있는 이라면 어떤 승부의 승리를 위해서 노력해야 할 테였고.

산업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의 개발자 쪽이라면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으리라. 뭐든 쉬운 건 없었다.


이 세상에 도망갈 곳은 없다. 처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로, 진실이며 사실이다.


지구 상에 같이 소통을 할 존재는. 결국 서로 마음이 있고 말을 나눌 수 있는 ‘인간’ 뿐이었다. 그리고 꿈을 꾼다고, 꿈 속으로 도망을 쳐서 평생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땅에 발을 딛고 어쨌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의 진리였기에.


게임 속도 결국 현실 속 세계의 어느 한구석일 뿐이지. 사람은 현실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는 존재였다. 결국은, 결국은 말이다.


이렇게 게임을 즐기다가, 여러 사회에 대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임을 하고 있는 ‘자신’이 살아가는 곳이 거기였으니.


게임 속의 무엇을 바라보며, 그것을 마치 거울처럼 써서 자신의 얼굴과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게임 속에 있는 NPC나 몹, 배경과 오브제를 바라보다가 문득 상기한. 자신의 삶과 모습. 그건 ‘라이엔’으로서가 아니라 ‘아윈’으로서다. 남중국의 어느 남부 도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젊은, 여성. 아윈 핑으로서의 삶.


그녀는 결국 남중국에 살고 있었고, ‘중국’이었다.


이전 시대의 중국과 비교하자면 완전히 다른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치 체제가 바뀌었고, 그녀가 사는 지방은 이전 서방 세계에 편입된 곳이었다. 애초에 그런 쪽의 사상을 가진 이들이 북중국과 떨어지며 만든 곳이니. 예전의 ‘대만’과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역시 ‘대만’은 ‘대만’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거대한 몸뚱이를 이리저리 떨어대며 세계에 패악질을 부리던 대국은. 결국 자신의 분리된 일부를 다시 제것으로 삼는 일이 없었다.

중국은 그렇잖아도 거대했던 땅덩어리를 더욱 넓히길 원했고, 러시아와 같아지길 바랐다.


아시아의 북국北國이던 중국과, 그 위의 러시아다. 소련이 사라진 것이 20세기의 일이고 21세기가 지나며 사람들의 삶이 이전 세기에 비해서 많이 변화하고 살기가 좋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부의 일이었다. 살만한 삶이라는 건 말이다.

팍팍한 삶. 도태된 삶. 기술이 없는 삶. 빛이 들지 않는 땅에서의 어려움은 21세기 전반부까지 깊은 어둠으로 지구의 절반 즈음을 가리우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고작 절반 정도의 땅이 선진국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을 한 것만으로도, 그러한 풍요로움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선진국들은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원했으나. 언제 도태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발전의 물살에 타지 못했던 전 공산권 나라들, 후진국들 따위에게 있었다. 더욱이, 이전의 서방 세계와 냉전을 유지하고 으르렁대던 공산권의 나라들이다. 아예 관련이 없는 제3세계의 후진국이라면 이미 자본이 모여 있는 서방권의 원조를 받을 가능성이라도 있었지만.


척을 지고 담을 쌓아버린 전 공산주의의 유물론자들은 상황을 타개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발악을 하게 되고. 쥐도 뱀을 물 지 모른다. 쥐는 아니었고, 거대한 몸뚱이와 체급을 가지고 있던 대국들은 여기저기에서 소란을 일으키면서 무력적 시위를 벌인다.


혼란의 시기가 올 뻔, 했다. 21세기의 초중반 즈음에는 말이다.


미리 중국 내부에 힘을 비축하고 있었던 개척자들, 자유주의자들의 움직임이 빠르게 흘러 서방권과 접촉을 하고, 손을 잡았기에 피해갈 수 있었던 대혼란이다.

내부로부터의 변혁이 아니었다면 대제국이 되고자 했던 대국들은 어떤 사고를 세계 사회에 끼쳤을 지 몰랐을 것이다.


안 쪽에서부터 무너져 내린 개혁이었고, 썩어버린 옛 유물론의 허망한 구조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독재자들의 무리가 있었다. 그것이 지금의 북중국과, 동북 러시아다.


남중국과 서러시아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의 합력으로 인해서, 발빠르게 공산권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러시아의 영토 분쟁에 늘 휘말리곤 했었던 유럽과의 경계지역들 역시 평온을 되찾은 것이 큰 소득이었다. 으르렁대던 각 세력도에서 ‘전선’으로 기능하고 있던 지역들이, 본래의 자리에서 크게 동쪽으로 옮겨갔다. 중국 대륙 역시 북녘쪽의 땅과 남녘쪽의 땅을 가르는 길고 거대한 선이 새로운 군사적 요충지로 대두되었고.


유럽, 미국, 호주 등의 서방 세력들 역시 필사적이었다. 나름대로. 이미 패권을 한 차례 가졌던 것이 그들이었지만, 계속해서 부진이 거듭되고, 그 약해진 부위를 힘을 모은 적국들이 친다면 곧 세계 전쟁으로까지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조용한 혁명, 무혈혁명. 그런 이름들이 어울릴만한 일이, 21세기의 중반의 시작 점부터 후반부까지 격렬히 일어났다.

그 시기는 공교롭게도, 가상현실 게임에 관한 기술이 마악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던 시기이다. 그런 어수선한 시기에도, 게이머들은 게임을 즐겼다. 현실을 도외시한 한심한 청년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말했듯, 결국 어디로 도망칠 곳을 찾는다고 해도 사람은 현실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게 게임을 할 수 있을만한 평온한 나라의 한구석도 현실이었고. 당장 전쟁이 일어날 지 몰라서 노심초사 해야 했던 격변적 지역 역시 현실이었다.


대한민국 역시 그런 격변을 겪은 곳이기는 하다.


시기적으로 동북아 지역, 그리고 러시아 지역에서의 분리 혁명보다 조금 앞선다.

순서상으로 사건을 나열한다면, 한국에서의 남한 주도 통일이 먼저였고, 그로 인한 영향력이 이후의 대국 분리 사건에 미쳤다고 볼 수 있으리라.


결국 휴전 국가였던 한국은 각국간의 세력이 맞부딪히는 조용한 전쟁터였으니까. 남한 주도의 통일이 이루어지고, 북한이 사라지고. 군사 경계선이 위로 올라가고, 자유주의나 서방 연맹과의 공고한 협력이 성립되고. 그들의 영향력이 북녘 땅에 성큼 다가간 것이 그 시기의 중국과 러시아의 독재자들을 자극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후에 공개된 군사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테러와, 그로 이어지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런 독재자의 계획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던 내부의 정치 세력들이 따로 서방 세계와 손을 잡고 분리 독립을 꾀했다고 한다.


역사에 관한 것은 늘 배울 게 많다. 근현대사로 오면서 더욱 어지러운 일들이 많이 벌어졌기에. 경영학도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학에 다니고 있는 김서원 역시 잘 알고 있는 지식들이었다.


라이엔은, 조금 더 중국의 입장에서 치열했던 당시를 배웠고 기억하고 있었고. 그녀가 겪은 바는 전혀 없었지만. 그녀가 태어나기 이전에 벌어졌던 생생한 근현대사였기에.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상당히 자세하게 가르쳐줬던 것이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독재자는 아니었지만,


마치 그런 존재가 된 것처럼 기분은 낼 수 있는 라이엔이었다. 게임 속에서 몬스터들을 부리고 있는 이 순간은.


“그라라라라라.”


오크들은 그렇게 소리를 질러야만 직성이 풀리는지, 여전히 고함을 지른다. 한 마리가 지르기 시작하면 그 근처에 있는 놈들이 하울링이라도 하는 것처럼 연이어서 울음 운다.

그 오크들 사이사이에 있는, 거대하기로는 지지 않는 레드 울프들도 가만히 있는데. 늑대들이 가만히 있는데 유인원을 닮은 괴물들이 하울링이라니. 얼척없기도 하지만 라이엔은 크게 의문스러워 하지는 않았다.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까.


“멀다···.”


아주 길고, 더럽게 튼튼한 와이어를 이용해서 집채만한 거대 거북의 몸을 엮었다. 그리고 준비해 온 ‘손잡이’들을 씌워서 몸통의 힘을 사용해 모두가 끄는 중이다. 인간형의 캐릭터이지만 제냐나 최태현 역시 기력술사들이었고. 육체 계열의 스텟이 부족하지는 않다. 오크나 레드 울프들도 그러하다. 생김새나, 근육 이상의 힘 역시 어느 정도 낼 수 있었다.


사실 몬스터에 불과하고, 군단술사의 방식은 몬스터를 소모재로 사용해서 최후에는 공멸시키는 것이 정석적이다. 영원히 그 통제를 유지할 수 없으니까. 만일 그랜드 마스터 급의 군단술사가 있다면 그들은 어찌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라이엔은 그 몬스터들의 내부에 있는 MP를 최대한 쥐어짜도록, 제어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각기 몬스터들이 한계 이상의 힘을 발휘하면서, 거치적거리는 거목들을 부숴가며 길고 먼 길을 걷는다.


사냥은 쉽고, 전리품을 정리하는 것마저도 아주 간단한 작업인데. 이렇게 옮기는 일이 지루할 줄이야.


아마 나무가 없는 길에 다다르면, 조금 더 쾌속 전진이 가능하리라. 어둠숲 바깥 쪽에 ‘특제 수레’를 준비해두었다.

특수 합금으로 이루어진 넓은 판때기에, 튼튼한 바퀴를 단 물건이다. 이렇게 거북이처럼, 단단한 몸뚱이를 가진 놈을 옮길 때 아주 쓸만하다. 어쨌건 그 육신의 정점. 뒤집은 거북이 등딱지의 가장 고점만 판때기에 놓고 달리면 운반이 가능할 것 아닌가. 축축 늘어지는 몸을 가진 몬스터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도 어렵겠지만은.


사실 라이엔이 다룰 수 있는 모든 갈색매들을 불러와서, 와이어와 손잡이를 새들에게 연결해 그대로 날아오를 수도 있었다.


다만, 그렇게 했을 때 라이엔의 MP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런 방식으로 괴물 거북이들을 사르삿까지 옮기는 게 가능했다면, 라이엔의 레벨은 이미 옛저녁에 200을 넘었을 테였다.

그녀는 아직이었다.


제냐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자고 했던 퀘스트가 길어지는 것에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최태현 역시 마찬가지이다. 라이엔도 썩 신나는 표정은 아니다.


영차, 영차.


개미는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네.


그런 단조로운 동요의 노랫말이 생각날 정도로.


사냥과는 아주 반대되는 템포로, 그들은 게임을 피차 즐겼다.


릿샤나 호아킨도 이미 게임에 들어온 것 같은데.


그들의 준비를 기다릴 때까지 잠시 여흥 삼아서 하려고 했는데.


제냐는 괜히 아이젠의 의뢰를 수락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라이엔은 썬더스의 위에서 이런저런 잡생각들을 하다가, 마침내는 그냥 하늘만 바라보며 멍을 때리기 시작했고.


최태현은 나름대로 성실한 성격의 인간이었다. 난데없이 게임 내에서 이런 노동을 하게 되었음에도, 많은 말이나 불평을 하지 않고 부지런히 걸음을 걷는다. 그래봐야 일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열심히 일을 하고, 쉬기 위해서 들어온 게임 내에서 이딴 일이라.

최태현의 입장에서 짜증이 날 수도 있었지만.

애초에 이런 게임인 걸 알고 시작한 일이었다. 적당한 불편함은, 확실히 삶의 활력이 되고 재미 요소가 되어줄 지 모른다. 최태현은 비련시 온라인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후우우우우우우우···.”


그런데 왠지, 깊은 한숨은 나온다. 삶의 고단함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게임에서의 노동 탓이 아니라. 오늘 하루 있었던 업무들이 슬쩍 스쳐 지나가면서. 최태현은 긴 한숨을 쉬었다.


어둠숲. 아직도 낮이었다. 화창한 하늘이었고. 어둠숲의 내부는 원래 안개가 좀 끼고 어두운 구석이 있었으나. 거대 거북이를 옮기면서 방향에 따라 나무들을 부숴뜨리고 있는 일행들이다.

지금 거북이를 끌고 있는 수십 여 마리의 괴물들과, 여러 플레이어의 힘을 다 모으면 원래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딱히 모일 데가 없고 한 점에 집중하기가 힘든 힘이었는데. 거대 거북이라는 단단한 몸뚱이에 그 힘이 집약되어서, 나름대로 어둠숲에서 쾌속 전진을 하고 있었다.


길을 만들면서 가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확실히 쾌속이다. 직접 끌고 있는 입장에서는 지독하게 느렸지만.

평소에는 날듯이 뛰어 다니는 플레이어들의 입장이라, 더 그럴 지도 모른다.


세 플레이어는 지루한 퀘스트의 마무리를 위해서, 느린 템포로 게임을 즐겼다. 불가항력적인 씬이었다.


*

chuttersnap-aku7Zlj_x_o-unsplash.jpg


작가의말

ㅎ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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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226. 대립 24.03.19 14 1 14쪽
226 225. 술사조 조장 24.03.19 12 1 11쪽
225 224. 부부단장, 히베 24.03.18 14 1 24쪽
224 223. 작게 숨을 내뱉었다. 24.03.17 16 1 23쪽
223 222. 누구의 끝, 그 다음 24.03.15 17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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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214. 사냥감 A 24.03.10 18 1 12쪽
214 213. 이미 따라진 와인, 근처로 달려온 골칫덩이 24.03.10 16 1 16쪽
213 212. 조금 시간이…. 24.03.10 15 1 17쪽
212 211. 한 번 불꽃처럼(악의) 24.03.08 15 1 21쪽
211 210. 미치광이는 그네를 거꾸로 탄다. 24.03.07 16 1 21쪽
210 209. 이동移動 24.03.06 14 1 20쪽
» 208. 지루한 옮김, 라이엔의 상념 24.03.05 19 1 21쪽
208 207. 지루한 옮김 24.03.05 17 1 14쪽
207 206. 퍼레이드parade 24.03.04 16 1 19쪽
206 205. 거북이 사냥 24.03.03 19 1 36쪽
205 204. 따스한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24.03.01 1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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