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새글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3.03.11 07:32
최근연재일 :
2024.06.28 03:38
연재수 :
356 회
조회수 :
8,799
추천수 :
769
글자수 :
3,387,740

작성
24.03.20 18:48
조회
13
추천
1
글자
12쪽

230. …아직도?

DUMMY

*


“······아직도?”


루드는 대공과 닮은 면이 있었다. 젊은 나이였으나, ‘노회한’이란 수사修辭가 잘 어울리는 인간이었다. 머리도 좋은 편이었고. 연기력도 있다.


거기에 독살스런, 아니 독사의 것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은가- 싶은 무정한 마음까지.


설정값이 애초에 그렇게 지어진 NPC였고, 대공가와 관련된 퀘스트에서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의 수족으로서 그를 충실히 따르게끔 보여지는. 스토리의 하위 빌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루드는 생각보다 밤이 길어짐에 당황했다.


새벽녘. 문제가 생겨도 순식간에 처리했으리라 여긴 정도의 정예였는데. 무려 부부단장인 히베, 와 전술사단의 게오르그가 직접 나서지 않았는가. 그들만 하더라도 산슈카 국내 전체에서 알아줄만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만한 이들보다 더 강한 작자들은 곧 국내에서도 절대적인 입지를 갖고 있는 단장급들 외에 없다.


왕가를 지키는 로얄 가드, 왕실 기사단의 제1검부터 시작해서 순번대로의 몇 명이라거나. 혹은 왕실 초상술 연구회에 속한 실력자들 중 소수. 그리고 궁정 마법사단장 정도이리라.


전쟁이 터졌을 때 반드시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절대적인 전투 유닛이 바로 지금 나가 있는 히베와 게오르그인데-.


루드는 모든 일이 잘 되리라고만 생각했다. 어리석은 생각일 수 있었으나. 그 나름대로 견적을 보고 가늠한 것이었다. 상대는 계속해서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루드는 ‘문제’를 자각했다.


그건 대공가에서 누구보다도 확실하고, 뚜렷하게 자각을 한 것일지 모른다.


그저 언제든 치워버릴 수 있는 날파리. 프린스 세르게이 알사드는 그렇게 여길 테였다. 보다 중요한 일을 머릿속에 두고 있고. 근처에서 왱왱거리는 제냐는 후순위에 있는 골칫덩이 정도이겠지.

그러니까 아마 루드 자신같은 하위 행정관에게 일을 맡겨버리는 것이겠고.


그러나 그 성장세를 생각한다면. 루드는 바깥에 있는 사냥감 A가 혹시 심상찮은 적이 아닌가, 저어되었다. 계속해서 죽일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살아남고 있지 않나.

지금도 그렇다.


대공령은 대공가의 본진이나 다를 바가 없었고. 이곳에서 대공가의 식솔들은 어느 곳에서보다 위세를 부리기 좋았다. 지금 나가 있는 암살조 일행 역시 이토록 위협을 당하리라 짐작했을까.


루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가 있는 곳은 대공가 안 쪽이었다. 행정관들이 머무르는 별채의 내부에 있었고, 자신의 방에서 보다 하위의 시종 하나와 상황을 가늠 중이었다.


이처럼 암살조를 꾸릴 때 받게 되는 연락 용의 아티팩트가 있었다. 성능이 절대적인 건 아니어서, 외부 장기 임무가 될 때는 그다지 소용이 없지만.


‘연락구’라고 불리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길게 띄엄띄엄 줄을 선다면 그 신호가 이어져 타국에서의 소식조차 금세 들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언제나 그 ‘선’이 연결되지는 않았고. 대공가의 자원과 인원들도 한정적이었기에. 기본적으로 대공이 시급을 요하는 정보들을 위주로 라인Line이 연결되어 각지에서 소식들을 전달했다.


지금 그가 부리는 암살조는 대공령 내부에서 일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라인’을 따로 길게 연결할 필요 없이, 곧바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도시 하나 분량 정도의 거리라면 시차도 별로 없이 곧바로 전달이 된다.


연락구에서 들을 수 있는 건 그리 깨끗치 않은 음질의 소리와. 건너편에서 상대방이 입력하는 수신호 정도였다. 총 6개의 점자가 ‘연락구’에 기입되어 있었고. 연락구를 들고 있는 이가 순서에 맞추어 점자를 입력하면 그대로 언어 정보가 전달이 되는 식이었다. 급박할 때는, 흐릿한 소리나 장면 역시 조금 전달이 가능했다.


상황을 곧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화면이나 소리가 아니었기에 시급할 때 사용하는 궁여지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두 종류 모두 사용해서 정보를 조달받는 중이었다. 다시 말해서, 현장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연락구’를 갖고 있는 건, 원거리 지원역을 맡은 초상술사단이었다. 개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솜씨를 자랑하는 ‘게오르그 후딘’. 대공가 전술사단에서 선임 노릇을 하고 있는 베테랑 초상술사다. 워메이지로서 전장을 구른 경력이 제법 길고.


그 나름대로 노회하고 노련해서, 어디에 보내 두어도 기어코 살아돌아오고야 마는 작자였다.


현장에 나가기 전 미리 짜두는 암호들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대공가의 작전 중에 통용되는 암호들이 있었고, 매 작전 시 가볍게 정해두는 연락용의 암호가 따로 있었다. 전자는 지속적이며, 후자는 자주 바뀐다.


예컨데 게오르그가 현장에서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 할 정도로 힘겨운 상황이 지속된다면, ‘화면 송출’을 2회 깜빡거리게 했다가 정보 전달을 끊는다던가. 소리를 3회 반복 전달한다던가. 하는 식이다.

연락구의 표면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입력 가능한 복잡한 정보들은 처다 볼 수 조차 없는 긴박함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정상적인 상황이 분명 아니었다. 게오르그는 ‘비상’이라는 의미로 화면 송출을 2회 반복했다가 끊는 걸 주기적으로 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루드로서는 알 길이 없다.


소리가 가끔씩 연락구를 통해서 지직거리며 들어왔다. 바깥, 시내 야외의 바람 소리. 다급한 목소리의 편린들. 그리고 폭발음의 잔재로 들리는 것들이 연락구의 수신구口를 통해서 새어나올 뿐이다.

전체적인 상황을 인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정보량이었다.


루드는 마음이 조금 다급해졌다. 그의 표정에서도 드러난다.


불 켜진 방 안.


MP로 발화점을 높여서 불을 켜는 랜턴들이 두어 개, 있어서 방 안은 제법 밝은 편이다. 창 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이나 별빛도 조금쯤 있고. 행정관들의 거처는 밤이 되더라도 대개 밝은 편이었다. 근처에 가로등마저 설치가 되어 있어 그로부터 오는 광량도 존재한다.


불길과 같은, 따스한 색감의 불빛이 그의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목재로 디자인된 저택의 실내였다. 침대 하나와 개인용 가구 몇 개 정도. 단출한 1인실. 루드는 침대 옆으로 둔 작은 원형 테이블 앞에 앉아서 연락구를 쥐고 있고.

반대편에 조금 더 불안한 표정의 시종, 그보다 나이가 어린 사내가 마주 앉아 있었다.


철로 만들어졌는가, 싶을 정도로 투박한 생김새의 연락구였다. 발신 위주 용도의 개체, 들고 다니는 이동식의 개체가 있고 지금 루드가 쥔 것처럼 본부에 두고 연락을 받는 수신 용도의 개체가 있었다. 암수 한 쌍이었고, 두 종 모두 수발신이 가능하지만 어느 쪽에 주안점을 두고 만들어졌느냐, 의 차이가 있었다.


이동형 개체들 간의 송수신 거리는 훨씬 짧았다. 현장, 작전 필드Field에서 쓰임직한 물건이다. 그러나 수신용의 조금 더 큰 아이템, 기지에 두는 연락구가 수신기의 신호를 연장해서 물 수 있었다. ‘수신용’이라고 편의상 불리는 조금 더 큰 물건이 꼭 일정 지점마다 있어야 하는 이유였다. 중계기의 역할을 해주는 물건이다.


루드가 가진 것이 수신용, 중계기, 조금 더 큰 놈이고. 바깥에서 지금 게오르그가 들고 있을 물건이 발신용, 말단기, 이동형의 작은 놈이다.


루드가 양 손으로 거머쥔 투박한 생김새의 철구鐵球같은 것이었다.


그의 눈빛이 흔들거린다. 에메랄드빛 머리카락. 조금 모멸적으로 얕잡아본다면, ‘남창기’가 아니냐, 하고 놀릴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가 대공가의 행정관으로서 들어오는 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던 물건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아무튼 미남상에 수심이 드리웠다.


그가 당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작전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예상 외의 상황은 늘 불안한 상상을 하게끔 만든다. 일이 잘못되면 어쩌지.


사냥감 A를 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서, 자신만만하게 팀을 꾸리고 바깥으로 보냈다. 대공은 그에게 일을 일임했다. 전권을 위임했다는 이야기다. 그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기에 자신 같은 말단, 혹은 중간 관리자에게 건넷 것일텐데. 실패를 했을 때의 리스크는 늘 다르다.

그건 대공의 기분에 따른 일이었기에.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알 수 없는 연유로 대공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그 신하는 좋지 못한 꼴을 당하게 된다.


루드는 머리가 좋은 놈이었고, 행정관들은 ‘본부’라고 할 수 있는 대공가 저택 부지 내부에서 일을 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세르게이 알사드에 대한 여러 가지 부정한 소문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행정관들의 입이 무겁고, 또 표정이 주로 어두운 이유는. 그 부정하고 무서운 소문들이 대개 진실이라는 걸 알고 있는 탓이었다.


세르게이 알사드 대공은 무서운 작자였다. 여태까지 그가 손을 뻗어서 죽인 인간의 수만 하더라도 어림잡아 수 천이다. 아니, 수 만이 될 지도 모른다.

그만한 인간을 한 명의 권력자가 죽였다는 게 어떤 일인가. 자신이 다루고 있는 거대한 조직이나 공동체의 근간을 흔들만큼 막대한 일을 저질렀다는 소리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세르게이 알사드의 경우 자신이 다루고 있는 ‘조직’이나 ‘사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프린스 알사드가 주로 손을 뻗는 곳들은 모두 외부였다. 대공가의 손이 원래는 닿지 않는 곳. 대공령과는 관련도 없는 곳. 그리고 심지어 산슈카 외부의 타국들에게까지.


검은 늑대단과 술사단들은 국경을 자주 넘었고, 뛰어난 실력으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외국과 내국을 오갔다.


인접한 각국의 여러 권력자들과 청탁을 주고 받기도 했고. 그곳의 동태를 살핀 뒤에 다시 대공령으로 가져왔다. 대공, 프린스 알사드는 중부 대륙의 중심 지역의 정세를 알아낸 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정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무서운 인간이었다. ‘알사드 가家’에 잠자고 있던 가산이나 유물들을 전부 꺼내어 사용하는 듯도 했었고.

또 막대한 돈을 내외국의 여러 범죄 조직들과 결탁하여 벌어들이고 있기도 했다. 루드가 알고 있고, 직접 일을 도운 범죄적 사업도 여럿이었다.


보통은 마약이나 그 외 국가 금지 품목들을 밀거래하는 류였다. 산슈카 내부에서 ‘노예’는 엄정하게 금지되고 또 다루어지는 문제였다. ‘노예’라고 하더라도 흔하게 알 수 있는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였고. 엄밀히 말해서 ‘시종’ 정도의 의미로만 사용이 가능했다.


기본적인 천부 인권에 대한 개념이 나름대로 잡혀가는 중부 대륙과, 자유 연맹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건 그만큼, 지난 시절이 험악했다는 뜻도 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이념이 바닥 아래까지 처박았던 시대를 거쳐서 온 것이 지금이기에. 사람들이 합의에 의해 ‘개념’을 정립하고 실정법으로 두고 있는 것이다.


중부 대륙 필리아Phillia는 근시대에 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다. 필리아 북부 지역, 세계적으로 보자면 중북부 지방에 존재하는 아릿시안Aritcean 제국 때문이었다.


흉맹凶猛이라는 글자로 설명 가능한 중북부 지역 대제국의 역사는 필리아 지방의 여러 중소 왕국들에게 상흔과 같은 기억을 남겼다. 수 백 여 년 정도의 기간동안 잔인하게 죽은 약소국들의 사람들이 많았고,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꼴을 당한 민족들의 질고 또한 수두룩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7 236. 뜬금 24.03.25 15 1 24쪽
236 235. 로그 오프Log off2 24.03.24 13 1 18쪽
235 234. 소란의 끝 24.03.23 14 1 19쪽
234 233. 쟈섹의 고민 24.03.22 13 1 16쪽
233 232. 달밤의 요란 24.03.20 18 1 14쪽
232 231. 비극, 누군가의 입장 24.03.20 11 1 12쪽
» 230. …아직도? 24.03.20 14 1 12쪽
230 229. 좋은 밤 24.03.19 13 1 16쪽
229 228. 괴물의 위용에 대하야 24.03.19 16 1 13쪽
228 227. 구조하러 온, 괴물 24.03.19 17 1 16쪽
227 226. 대립 24.03.19 14 1 14쪽
226 225. 술사조 조장 24.03.19 12 1 11쪽
225 224. 부부단장, 히베 24.03.18 15 1 24쪽
224 223. 작게 숨을 내뱉었다. 24.03.17 16 1 23쪽
223 222. 누구의 끝, 그 다음 24.03.15 17 1 16쪽
222 221. 누구의 끝 24.03.14 19 1 10쪽
221 220. 두려움이 이빨을 갉아먹다 24.03.14 17 1 19쪽
220 219. 떨어지듯 달리다 24.03.14 13 1 12쪽
219 218. 제냐는 미리 준비했다. 24.03.13 16 1 13쪽
218 217. 다이스Dice, 릿샤, 흑각 24.03.12 16 1 22쪽
217 216. 밤을 꿰뚫어보는 까마귀는 누구일까 24.03.12 24 1 11쪽
216 215. 살수조 모집 24.03.11 17 1 16쪽
215 214. 사냥감 A 24.03.10 18 1 12쪽
214 213. 이미 따라진 와인, 근처로 달려온 골칫덩이 24.03.10 16 1 16쪽
213 212. 조금 시간이…. 24.03.10 15 1 17쪽
212 211. 한 번 불꽃처럼(악의) 24.03.08 15 1 21쪽
211 210. 미치광이는 그네를 거꾸로 탄다. 24.03.07 16 1 21쪽
210 209. 이동移動 24.03.06 14 1 20쪽
209 208. 지루한 옮김, 라이엔의 상념 24.03.05 20 1 21쪽
208 207. 지루한 옮김 24.03.05 17 1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