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세계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공간이다.
막상 교정을 빠져나오니 온갖 생각이 신경망 사이를 헤집고 뛰어다녔다.
그러다 번뜩 생각난 것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정기치료였다. 매년 2회씩 가는 것이었는데 가면 건강검진이라면서 수면마취를 꼭 실시했다. 잠이 깨고 나면 혼자 가겠다는데도 꼭 따라나선 엄마는 걱정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건강검진인데 병원에 다녀오고 나면 며칠을 아프곤 했다. 최신 의료나노봇은 고통이 수반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잠을 재우는 것도 그렇게 며칠을 아프고 무기력해지는 것이 이상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병원으로 향했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이 일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용기를 떠나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엄마, 내가 엄마 아들이 맞아?’ 무슨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가 될 것이다. 가서 정말 진짜 인간이 아니라고 하면 어쩌지? 답이 있을 턱이 없다.
각종 포럼, 대학, 방송, 심지어 UN까지 나서서 ‘인간의 경계’를 정하려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고 있었다.
유사인간 내지 유사생명체를 하나의 생명으로서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양상이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찬성하는 측은 유사생명을 만들어내는 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술그룹과 권력그룹 중심이고 반대하는 측은 인공지능과 유사생명에 의해 소외된 사람들과 종교계가 중심이 되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반대하는 쪽에 정의가 있다고 여겼지만 이미 30년 이상 지속된-과거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던-인공지능 기반 하 경제시스템의 안락함을 버리는 것이 두려웠다.
찬성 측의 막대한 자본과 권력에 의해 매일 쏟아지는 미디어의 찬양과 기대되는 장밋빛 경제에 대한 예측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재영은 유사생명체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자본과 결탁한 권력이 그와 세상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막 세계라는 복잡한 이전투구에 눈뜬 그로서는 부담스러운 주제였다. 그런데 이제 그에게는 정말 부담스러운 주제가 되고 말았다. 당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팔려 있다 보니 어느새 병원입구에 도착했다. 10년 넘게 오던 곳인데 어쩐지 낯설게 여겨졌다. 그는 한참을 서성였다. 별다른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다. 뒤돌아섰다가 다시 돌아왔고 아무 의미 없이 병원 주위를 돌았다.
“내가 뭘 하고 있나? 비겁하잖아? 언제까지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그러고 있을 거야? 심재영 용기를 내! 네 마음대로 결론내리지 마.”
그는 가까스로 용기를 내 병원 현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저 멀리 그의 담당의사가 나오더니 택시를 타고 급하게 어디론가 향했다. 뒤 이어 안면이 있는 간호사들도 사복을 입고 나왔다. 재영은 여러 번 보았던 간호사에게 인사했다.
“저기요 간호사님. 어디 가시는 건가요? 오늘 진료 끝났습니까?”
“아, 아! 어머 오늘 진료일이에요?”
“아닙니다. 서류가 좀 필요해서.”
“그러면 안에 원무과장님 남아 계시니깐 빨리 들어가 봐요. 우리 오늘 원장님께서 정부에서 주는 큰 상을 받으셔서 빨리 가봐야 해요. 그럼 다음에 봐요.”
말을 마친 간호사는 물찬 제비처럼 재빨리 다른 간호사들이 이미 탑승한 원형 무인 택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멀어져 가는 택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원무실 안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기 선생님, 선생님?”
“아 손님 오늘 병원 영업 끝났어요. 특별한 행사가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내일 다시 오시겠어요?”
“밖에서 간호사님들께 들었습니다만 진료기록 받아오라고 아버지가 시키셨는데.”
“진료기록? 그거 담당의사 선생님 계셔야 하는데.”
“방금 밖에서 노박사님 뵈었는데요, 급하시다며 가서 원무과장님께 요청하라고 하셔서요.”
“그러셨어요? 아우 지금 바쁜데.”
“새로 오셨나 봐요? 제가 여길 오래 다녔거든요. 저번 선생님은 그냥 주시던데.”
재영은 자신이 이렇게 거짓말을 잘했나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지만 그녀는 바쁜 탓에 긴장한 재영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거짓말이 통했는지 과장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와중에도 진료기록을 카피해줬다. 바쁘다고 투덜대면서도 원무과장답게 수수료 5,000원도 정확히 받아냈다.
2033-QHM-097. 그것이 내 진짜 이름이었다.
2047년 97번째 유사인간(Quasi-human)으로 제조되었으며 입양일은 2050년 그러니깐 겨우 3년 전이다. 우습게도 20살, 이제 성인이 되었다고 뿌듯해하며 설렘에 사로잡혔던 나는 실상 4살짜리 꼬마였던 것이다.
내가 기억했던 것들은 부모님(양부모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의 진짜 아들이었던, 12살 때 교통사고로 생을 달리 한 심재영의 기억 백업에다 회사와 부모님이 합의한 기획 기억을 인코딩한 상태에서 나는 4년의 삶을 살아 온 것이다.
내 삶은 가짜였던 것이다. 1년에 두 번씩 방문했던 병원의 정체는 유사인간 전문 의료를 하는 곳이었다. 의료라는 말은 사실 맞지 않는다. 자동차를 정기적으로 카센터에 맡겨서 소모품 및 성능을 체크하는 것처럼 나는 ‘정비’되었던 것이다. 이상이 없는지 체크하고 나이에 맞게 유기조직을 밸런싱하고 신체 데이터를 백업한 기록들이 카피한 파일에 가득했다.
난 괴물인 걸까? 인생,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존재는 부정되었다. 나는 4년짜리 중고차와 같은 ‘것’이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별반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그런 것.
부모님은 대체 뭘로 보실까? 묻기도 두렵다. 애완동물? 그건 아니겠지? 난 대용품 정도겠지. 좋은 분들이니 심경이 복잡했겠지. 그래 부모님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말자. 두 분은 진심이셨어. 그럴 거야.
무척 비참하군. 지금쯤 놈과 친구였던 인간들은 나를 두고 뒷담화 경연을 펼치고 있겠지? 나를 위해 변호해 주려는 사람이 있을까?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군. 없어도 할 말이 없지. 어제까지 친구로 알았던 자가 기계라니 내가 그 친구들 입장이었어도 당황스럽고 용납하기 힘들었겠지.
인공두뇌와의 경쟁이라, 그런 건 2016년 세기의 바둑대결에서 기계가 인간한테 완승하면서 이미 끝난 얘기인데 이제 와서 기계가 뻔뻔하게 자기들 사이에 몰래 들어와 있다니 어이가 없겠지. 그 대결에서 이세돌은 자신이 1,200개의 코어들과 대결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알았거나 몰랐거나 그는 당황스러웠을 거야. 표정을 볼 수도 없고 지치지도 않고 무한정의 가상대결과 복기를 거듭할 수 있는데다 보이지 조차 않는 괴물과 싸우는 기분은 어땠을까. 물론 나는 신체의 대부분이 유기체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알파고 보다는 프랑켄슈타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거야.
신체는 멀쩡하지만 내 기억과 내 존재 자체는 상업적 목적에 맞게 누더기처럼 끼워 맞춘 것이고 프랑켄슈타인은 정신은 온전한 자신만의 것이었지만 육체는 누더기였지. 나와는 정반대로군. 그의 정신과 내 육체가 결합한다면 그건 온전한 인간일까? 장편소설이라도 하나 써야 풀릴만한 문제일 것 같네. 그건 그렇고 이제 뭘 해야 하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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