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자의 시간 11
-. 경기도 소재 소형 임대아파트 이우치의 집 좀비 세상이 된 다음 날 오후.
자 이쯤에서 우치네 집. 아 다시 한 번 언급한다면 우치는 내 돈을 띄어 먹고, 아니 나를 비롯한 여러 명의 돈을 떼어먹고 야반도주한 예전의 친구이자, 지금은 어찌 보면, 생명의 은인같이 돼 버린 녀석이었다.
내가 돈을 떼먹히지 않고 난리가 나던 날, 늘 자던 찜질방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해보면 지금도 아찔했다.
아무튼, 우치네 집안 내부구조를 앞 베란다를 기준으로 설명해 보면, 안전울타리 -> 방충망-> 유리창 -> 베란다, 그리고 거실에 들어오기 전 유리창(유리창 틀들은 모두 샤시로 되어 있다.) -> 가운데 거실 겸 부엌, 좌측에 안방, 우측에 딸래미 방, 부엌 다음이 세탁기와 냉장고가 위치한 뒷 베란다, 딸래미 방문의 좌측이 화장실, 정면이 현관으로 그 내부가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져 있었다.
이제 이 안에서 구조되기 전까지 최대한 살아남아야 했다. 아니 버텨야 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오래도록…….
현재 지금 내가, 가장 먼저 고민해봐야 할 일이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 그래 방음이다. 첫째도 둘째도 방음이다. 방음시설을 해야 한다. 좀비는 소리에 민감했었지.’
집안에서 조용히 숨어있을 수만 있다면 녀석들에게 들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난 코를 곤다.
사람이 잠을 자면서 코 고는 걸 조절할 수 있었다면, 군에서 그렇게 얻어터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루는 중대장에게 소원 수리를 낸 적도 있었는데, 코 고는 인원이 많은 내무반으로 옮겨달라는 간청의 내 소원 수리는 무참히 묵살 당했고, 난 그 날 코 고는 사람은 군을 면제시켜주던지 아니면 공익으로 보내주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또 고참들에게 쥐어터져야 했다. 소원 수리 썼다고.
아무튼, 잠을 안 잘 수도 없고 코 고는 건 조절 또한 안 되니, 이게 제일 시급한 문제였다.
난 앞 베란다로 조용히 이동해, 밥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잠시 닫아놓았던 바깥 창문을 조심스레 열고는, 다시금 바깥의 동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바깥세상은 평소와는 똑같았지만, 뭔가가 하나 빠져 있어 생각보다 조용하고 적막했다.
인간과 인간이 내는 소음이 제거된 나머지의 소리들로 채워진 세상이란 건, 한마디로 말하자면 뭐랄까, 명절 오후 텅 빈 아파트를 걷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휴일 오전 여의도에 홀로 서 있는 느낌? 한마디로 말하기 묘하고 무척 이상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대신해 밖을 배회하며 돌아다니는, 이질적인 녀석들이 새로이 생겨나 있었다.
녀석들은 일본에서 닌자가 되는 교육이라도 받았는지, 인기척도 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이동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눈을 감는다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녀석들의 움직임은 조용하고도 은밀했다.
또 다른 점이라면, 어제는 주차장이 사람들이 죽어가며 흘린 피로 인해, 흡사 빨간색 페인트를 뿌린 듯 검은 아스팔트 바닥이 새빨간 모습으로 변해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퇴색되어 그 색이 검붉은 빛깔로 이내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를 피 웅덩이를 밟은 좀비들이 새로이 지나다니면서 유화를 그리듯 새로운 피발자국을 덧칠해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핏자국들에게서 파리가 전혀 안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저 진짜 빨간색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말이다.
또 이상한 점은 죽어서 움직이지 않는 좀비들에게서도 파리가 꼬이지 않았다.
보통 일반적인 동물의 사체라면 지금쯤, 파리나 기타 벌레들이 몰려들어 아주 난리가 났을 텐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일단 모르는 일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은 코 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기 시작하였다.
‘유리창을 다 닫으면 소리가 밖으로 안 들리지 않을까? 새벽엔 창이 조금 열려있어서 그렇지 안에서 자면 괜찮을지도 몰라!’
잠시 유리창만 닫는다면 안 들키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어 더 안전한 장소를 물색해보기 시작했다.
‘화장실 욕조 안에서 이불을 깔고 자면 어떨까?’
조금 더 안전한 곳이 머릿속에 떠오르다 금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는 내 제1의 식수저장고였다.
‘그럼 어디서? 아!’
나는 바로 우치네 안방으로 가 벽면 한쪽을 차지한 장롱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리곤 안의 이불 중 하나를 바닥에 넓게 편 뒤 안의 이불을 모조리 꺼내 한쪽으로 치워두곤, 복부비만에서 벗어나 가벼워진 장롱을, 소리 나지 않게끔 펴놓은 이불 위로, 문짝이 하늘을 바라보게끔 바로 눕혔다. 그리곤 바닥을 제외한 장롱 외부를 얇은 이불로 한 바퀴 둘러싼 뒤에 호치키스로 박아 고정시켰다.
또 문짝이 열릴 때 나는 소리마저 잡기 위해 문 양쪽에 두껍게 이불들을 비치해 놓았는데, 장롱 안에도 춥지 않도록 이불을 깔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안쪽에서 문을 열고 닫을 수 있게 넥타이를 이용해 손잡이도 매달았다.
‘다 됐다. 나만의 침실!’
난 방금 완성된 나만의 침실에 잠시 누워보았는데, 흡사 관속의 드라큘라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바깥의 모든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뒤, 안방 문을 닫은 채, 이곳에서 잠든다면, 아마도 코 고는 소리는 저 바깥으로 새어나가지는 않을 거라 예상되었다.
이제 맘 편하게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심 안심이 되었고, 그러자 꼭 이곳이 어머니의 자궁 속인 것 마냥 포근하게 느껴졌다.
어제의 긴장과 새벽의 좀비 소동으로 인해, 잠을 거의 자지 못한 나는 금세 잠들 것만 같았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다음에 내가 해야 할 일은 혹시 있을지 모를 구조상황에 미리 대처하는 것이었다.
요즘 세상은 좋은 무기들이 아주 많다.
갖가지 총기류부터 최첨단의 대량살상무기와 화학무기까지.
‘탱크로 저 녀석들을 밀어버린다면 어떨까? 아마도 저 녀석들은 묵사발이 나겠지. 근데 저 녀석들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릴 방법이 없을까?’
세상이 하루 만에 좀비 세상으로 탈바꿈되지 않는 한 분명 군에서 좀비들을 물리치거나 이 상황을 타개할 준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영화에서처럼 오염된 지역에 대형폭탄이라도 날리는 거 아니야? 정찰을 위해 헬기를 띄울지도 모르지. 지나가는 헬기나 구조대에게 내가 여기 이곳에 살아 있음을 알려야겠다. 지금 구조전화는 못 하지만, 아 그래! 무인도 모래사장의 돌로 만든 ’S.O.S‘ 신호처럼 여기에 내가 있음을 알리는 게 좋겠다. 설마 녀석들이 글자를 보고 쫓아오진 않겠지.’
나는 우치의 집안에서 찾아낸 A4용지를 한 장씩 유리테이프로 붙여 큰 전지를 만들었고, 매직을 찾지 못해 대용으로 제수씨의 빨간색 루즈를 찾아 굵게 한자, 한자,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히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여 기 사 람 살 려 요 ! ’
단순한 문장에 눈에 확 띄는 커다랗고 빨간 글씨로 구조용 플래카드를 두 장을 만들었는데, 앞 베란다와 뒷 배란다의 유리창 안쪽에 바깥쪽에서 글씨가 보이도록 유리테이프를 사용해 정성껏 붙였다.
커다란 깃발이라도 만들어 창밖에 내다 걸고 싶었지만,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라도 날까 싶어 이내 포기했다.
아마도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면 그 소리에 녀석들은 분명히 관심을 보일 것이고, 우르르 몰려들게 불 보듯 뻔했다.
좀비들은 정처 없이 천천히 배회하다가도, 소리만 들리면 그곳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까 어떤 강아지 하나가 멋모르고 짖다가 녀석들을 피해 황급히 도망쳤는데, 우르르 몰린 좀비 떼에 먹히는 걸 목격했다.
‘피라냐가 아마존 물속에서 먹이를 먹는 광경과 비슷해 보였지. 아무리 작고 재빨라도 포위당하면 죽는다. 아 맞다. 녀석들에게서 살아남으려면 소리 내지도 포위되지도 말아야 한다.’
이제 구조신호도 붙여 놓았고 외부뿐만이 아니라 이 아파트 단지 안에 살아있는 사람이 혹시라도 있어 저 글을 보게 된다면 내게 구조신호를 보내올지도 몰랐다.
어찌 됐건 일단 한 가닥 희망을 새롭게 품어보는 나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끝내 신호는 보이지 않았다.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 작가의말
연재 타이밍이 늘어나고 있네요
즐감하세요
Commen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