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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기 님의 서재입니다.

웅크린자의 시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포대기
작품등록일 :
2013.09.02 01:39
최근연재일 :
2014.05.11 01:0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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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65,048

작성
13.09.0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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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웅크린자의 시간 10

DUMMY

나는 원래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왜 갑자기 담배 얘기로 삼천포로 빠지느냐고? 일단 한번 들어보시라.

우리 아버지께서는 담배를 태우지 않으셨고 자식인 우리들도 모두 담배를 안 피웠다.

나에게 담배란 군대에 들어가기 전, ‘어차피 군대 가면 다 피우게 될 거(내가 군대에 갔던 1998년도에는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담배를 피웠다.) 미리 배워보지 뭐!’를 외치던 친구들의 꼬임에 넘어가, 대학 때 몇 번 피우기를 시도해 본 게 전부였다.

난 기관지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고, 그래선지 담배를 왜 피우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목에 가래가 끼고 감기도 부쩍 자주 걸려서 그 후로 담배는 즐겨 하지 않았고 금세 피우지 않게 되었다.

주위에선 좋은 걸 배웠다고 했지만, 지금 술을 즐기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 듯 보인다.

대신에 난 술을 참 좋아라 했다.

처음 술을 배울 때도 담배의 경우처럼, 이 쓴 걸 왜 먹느냐며 궁금해하기도 했었었는데, 지금은 술을 즐기는 걸로 봐서는, 담배도 그 순간을 지나기까지 근성 있게 피워댔더라면, 아마도 지금쯤은 길거리에 가래침 좀 뱉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매해 빠지지 않는 신년계획의 첫 번째가 금주니 알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금주에서 절주로 목표를 바꾸었다.


나는 군대를 논산훈련소를 통해 충청도에 위치한 모 부대(향토예비군의 조직과 훈련 그리고 유사시 후방에 침투한 적 게릴라의 진압을 위한 기동타격대 역할을 하는 병력이 배치된 대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며 만기제대를 했었다.

남들과 비슷한 군 생활을 지낸 나에게도 몇 가지의 애로사항은 존재했었는데, 하나는 내 몸에 유당분해효소가 없어 매일 아침 배급 나온 우유를 마시지도 못하고, 군 훈련소에서부터 제대하는 그 날까지 내 앞에 앉은 같은 내무반원 들에게 억울했지만, 선선히 우유를 상납(왜 두유로의 배급은 안 되는 거냐.)했었던 일과, 매번 보급 나오던 담배를 이리저리 나눠주던 때였다. 하지만 우유와는 달리 담배는 연초비란 명목으로 미리 신청하면 따로 돈으로 받을 수도 있었다.

근데 그거 몇 푼이나 된다고 돈으로 받겠는가, 그냥 선심이나 쓰고 말지. 하지만 처음의 선심이 나중엔 뇌물처럼 변질되어 사용되고는 했는데, 내가 청탁을 넣은 건 별것 아닌 나만의 생리적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코를 곤다. 그리고 무호흡증도 가끔 있단다(나는 안 봐서 모름). 해서 훈련소에서는 우유와 뻔뻔함을 무기로 버텨내었고, 자대에 가서는 밥그릇이 차기 전까지 우유와 담배(훈련소에서는 담배가 지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몸으로 대충 때웠다.

‘으흑, 내가 코를 골고 싶어서 고는 건 아니잖아. 그때 코골이 수술이라도, 응? 코골이?!’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에 빠지다 아침에 있었던 녀석들의 습격이 이상한 방법으로 연결되었다.

‘아 그거였구나! 내가 자면서 코를 골았고 그 소리를 듣고 녀석들이 그 난리를 쳤구나.’

안전울타리가 부서지는 소리와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대처할 수 있었지, 만약 내가 잠에서 깨지 못하고 계속 코를 골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다행히 이젠 안전하니 코 고는 이야기는 잠시 집어치우고 이번에는 먹는 문제에 관해 얘기해 보기로 하자.


나는 드디어 밥을 해먹었다.

어제 하루 온종일 굶었던 나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사흘을 굶으면 남의 집 담장을 넘는다.’란 얘기가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였다는 걸 몸소 실감하게 되었다.

어제는 긴장과 놀람, 비위상함으로 인해 물 몇 모금 말고는 아무것도 넘기지 못했지만, 만 하루가 지난 이 시점에서는 배고픔에는 장사가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우치 딸래미의 딸기 맛 사탕을 훔쳐 먹으며 집안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던 나는, 작은 중국산 일회용 가스라이터 몇 개(우치는 담배를 피운다.)와 휴대용 가스레인지, 부탄가스 네 개들이 한 묶음, 그리고 야반도주할 때 가지고 가지 않은 경기미라고 쓰여진 20kg짜리 쌀 한 포대와 쌀통에 절반가량 남아있는 쌀들을 찾아내었고, 기타 과일과 야채, 김치나 깍두기 등의 밑반찬 및 계란, 언 생선, 생닭 등, 갖가지 식재료들을 건질 수 있었다.

먼저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이용해 밥을 하려다가 이걸로 밥을 해먹는다면 몇 번이나 해먹을까 싶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메이딘 도자기의 나라에서 구운 일회용 가스라이터를 들고서 가정용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

만약 가스배관에서 가스가 계속 공급되고 있거나 아직 남아 있는 상태라면 가정용 가스레인지에는 불이 붙고 계속해서 불이 타오를 것이었다.

아파트의 가정용 가스레인지는 정전이 되면 가스배관에서 가스가 계속해서 공급되더라도 불이 붙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불꽃이 안 튀어서 도시가스에 점화가 되지 않기 때문인데, 예전의 가스레인지들은 안에 1.5v의 둥글고 큰 건전지가 들어있어 정전이 되더라도 가스만 공급된다면 평소처럼의 사용이 가능하였다.

우치 네 집 가스레인지도 최신형이 아니었던 터라 내심 불이 바로 켜지기를 바랐건만, 막상 켜보니 가스냄새만 나지 불꽃은 발생되지가 않아 라이터로 불을 붙여 불이 켜지게 만들었다.

불을 켠 채로 1분 이상을 기다려보았지만 파란 불꽃은 계속해서 영롱하게 타올랐고, 그래서 나는 아직 도시가스가 끊기지 않은걸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물처럼 이것도 한계에 다다라 끊기게 될 터였다.


이곳 집안에는 밥맛이 좋다는 전기 압력밥솥도 있고 일반 압력밥솥도 있었지만, 압력밥솥으로 밥을 했다가 압력밥솥에서 스팀(증기)이 올라가는 소리에 녀석들이 공격이라도 할까 봐 그냥 일반 냄비에 냄비 밥을 해먹었다.

전기압력밥솥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나는 찰진 밥보다 고슬고슬한 밥을 더 좋아했다.

쌀을 씻는 것도 사치, 냄비에 생쌀을 넣고 평소보다 물을 조금 더 부어 밥 짓기의 준비를 마쳤다.

원래 냄비에 밥을 하려면 삼십 분 이상 쌀을 물에 불려야 헸지만 내 뱃속의 아귀들이 동의를 해주지 않을 기세라 그냥 간단하게 세팅을 마치고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렸다.

물에 불리지 않은 생쌀을 가지고 밥을 하는 중이기 때문에 평소 때보다 물을 조금 더 붓고 또 평소의 배나 많은 시간을 들여 뜸마저 들였건만 밥은 설익었고 조금 많이 뻑뻑했다.

역시 불려서 했었나?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저녁에 술과 안주만으로 하루를 때우고 그다음 하루를 온통 굶은 뒤라 선지 진수성찬이 정말 안 부러웠다. 또 내 앞엔 자린고비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노릇하게 구워진 조기구이마저도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허겁지겁 아침을 먹으며 점심엔 뭘 먹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굶었다고 배에 걸신들린 거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어제부터의 정전으로 인해 냉동실이 녹기 시작했으며 냉장고 아래에 물이 뚝뚝 흐르고 냉장실은 벌써부터 미지근해져 있었다.

냉장고 안의 식재료 중 상하기 쉬운 재료부터 얼른 먹어 치워야 했다.

계란은 서늘한 곳에 보관하면 생각보다 오래가는 물건이라지만 또 쉽게 상하기도 한다.

지금 아프다면 대책이 없으니 먹을 땐 항상 조심해야 했다.

아침엔 조기구이니, 점심은 삼계탕이 어떨까?

나의 입은 밥을 먹느라 정신없이 바빴고, 나의 머리는 가지고 있는 식재료의 소비순서를 정하느라 분주했다.


나는 게 눈 감추듯 아침 식사를 끝마쳤고, 곧 화장실 바닥 세숫대야에 검정비닐봉지를 넣고 봉지의 양쪽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은 채 손쉬운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뭘 잘못 먹었을까? 조기가 상한 걸까? 맛있었는데 빈속에 급하게 너무 많이 먹었나?’

의례의 잡생각을 하며 손쉬운 밀어내기 한판을 통해 시원한 아침을 보내는 중이었지만, 변기에서 볼일을 본다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 이 모양 이 꼴을 하는 중이었다.

물론 아직은 수도꼭지를 틀면 물은 잘 나왔다.

보통의 건물엔 건물의 가장 높은 고층에 물탱크가 따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곳 또한 물이 나오는 걸 보니 같은 방식인 것 같았다. 하지만 위에 물탱크가 있다고 해도, 지금은 정전이 된 상태, 그럼 물탱크에 물이 모자라게 됐을 때 지상에서 모터로 물탱크까지 물을 보충해주지는 못한다는 얘기가 된다.

고로 언젠가는 똑 떨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나는 물이 물탱크 안에 얼마나 남아있는 상태인지 아직 모른다. 그리고 이미 최대한 보관할 수 있는 만큼은 미리 집안에 보관했다지만 아낄 수 있다면 무조건 아껴야 했다. 그래서 소변은 그냥 화장실 수챗구멍으로 흘려버리게 쌌고 대변은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묶어두었는데, 이걸 어찌 처리할까 고민 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이런저런 부산한 움직임을 취하며 오전을 보낸 나는 잠시 쉰다며 거실 바닥에 앉았다.

티비도 없이 혼자 있으려니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내가 이런저런 노가다를 거치며 어쭙잖게 얻은 지식들을 가지고, 지금 이렇게 홀로 살아남는 데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가진바 돈이나 권력으로 풍족하게 살다가, 갑자기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 심심했다.

바깥에는 좀비들이 득시글거리고 언제 죽을지 살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심심함을 느낀다면 내가 비정상일까?

현대인은 끊임없이 이런저런 자극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런 자극들이 한꺼번에 갑자기 사라진다면? 그리고 난 이 집안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예전에 귀농하는 인구가 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거기엔 귀농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으니, 귀농을 꿈꾸는 사람은 미리 대비하시라며, 귀농에 실패한 사례들을 항목별로 분류해 나열해 놓았는데, 그중에서 무료함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그만큼 심심함이란 무서운 거다.

감옥 안의 독방이 왜 형벌일까 생각해 본다면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여기는 감옥인가 아닌가?’

심심함에 생각이 튀며 또 산으로 가고 있다.

가만히 있다 보니 머리만 복잡해지고 안 되겠다, 일단 좀 그냥 움직여야겠다. 그러다 보면 머릿속의 잡생각이 사라질지도 몰랐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나도 적응이 될 것이다. 아니 적응이 되던지 말던지가 이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난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아무튼, 머리 복잡한 대는 몸을 혹사시키는 것 이상이 없다.

나는 우치네 집을 지금부터 샅샅이 뒤져보려 하는 중으로, 우치의 집은 일반 가정집이니 보통의 가정집에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중에는 혹시 무협지에서의 기연 시스템처럼 기연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개중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권총이나 기관총 같은 게 나타나 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게 아닌 보통의 가정집에 있는 물건들이라도 쓰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유용한 물건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는 생존을 준비할 때였다.


작가의말

오늘은 좀 늦게 올렸습니다.

주말 잘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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