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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7.06 00:52
연재수 :
1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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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글자수 :
666,240

작성
24.02.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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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DUMMY

돈은 넘쳐났다.

그러니 방법은 있었다.


“미용실처럼 방향성이 잘 맞는 업장은 거리낄 것도 없었죠. 간판을 간다? 사실 별일 아니잖아요, 딱히 유망하지도 않던데.”

“아···.”

“안타깝게도 방향성이 안 맞는 분은 저희가 업종 변경 비용까지 지원해 드렸어요. 다들 좋아했죠. 가뜩이나 힘든 상황이었잖아요? 이전 건물주가 한계까지 쥐어짜던 통에.”


특출나다는 건, 굉장히 드문 경우다.

애당초 특별히 잘나간다는 뜻인데 흔할 상황일 리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어떤 분야든 대부분은 모두 고만고만하다는 얘기였다.


당연하게도 손님을 매번 끌고 다닐 힘도 없었고, 겨우 단골로 만든 고객은 귀했다.

같은 업종에서 일한다면 함부로 위치를 바꿀 수도 없었다.

당연히 그런 상황에선 건물주가 갑의 위치.

설령 입지가 좋지 않은 빌딩일지라도, 세입자를 쥐어짤 힘이 있었다.

실제로 이전 건물주는 그렇게 해왔고.


“좋은 주인님 만난 거죠.”


그래, 녹호의 밑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큰 손해는 아니다.

운영은 그대로 하면서 수익은 훨씬 개선해줄 테니까.

언젠가 쫓겨난다고 하더라도 그땐 지금보다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후일 터였다.


“다만, 그렇게 매출이 늘어난다면 월세도 올라갈 거예요. 저희 산하 업체가 아니라면요. 직접 투자해서 이곳의 가치를 높인 거니까, 합당한 일이죠?”


한국엔 이 정도도 안 하는 건물주도 많았다.

세입자가 올려놓은 가치를, 자신들이 월세로 갈취하는 기생충 짓은 흔하디흔했다.

녹호가 계획한 일은 그에 비해서 도둑질 축에도 못 들어갈 정도다.


“아니, 잠깐만요! 저희만 혜택을 못 받는데 그건···”

“제가 안 드리는 거 아니잖아요?”


인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란 키 때문인지 이 짧은 동작은 시원시원해 보였다.

미련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렇기에 듣고 있던 직원만 다급하게 그 손목을 붙잡으려고 했다.


“아유, 제가 늦었죠?”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가 좀 더 있어 보이는 중년 여자였다.

말을 하는 모양새나 하는 말을 들어보면 누군지 명확했다.


“벌써 얘기가 끝났는데요.”

“아유, 사장이 전데 어떻게 끝나나요? 우리 좀 더 대화를···”

“아뇨, 대행을 내세우셨고 의견을 들었어요. 달라질 부분이 전혀 없는데, 시간을 왜 써야 하죠?”


하지만 인영의 발걸음을 잡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정말 바쁘다는 듯이, 몸을 돌릴 뿐이었다.


“아니, 잠깐···.”


사장만 발을 동동 구르게 됐다.

얼굴을 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저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한 모습이다.


“···할게요! 제안 받아들일게요!”


결정은 빨랐다.

누가 봐도 저쪽은 아쉬울 것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니, 실제로도 그럴 터였다.

다름 아닌 건물주가 내린 결정이었으니까.

만약 둘 중 한 명이 손해를 보고 있다면, 그게 자신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도 자율권은 보장해준다고 하셨죠? 수익 일부를 양보하고요.”


하던 대로 영업하면 된다.

그건 녹호와 인영이 정한 방침이었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스스로 영업을 이어갈 능력이 안 됐으니 말이다.


“싫은데요, 그건.”

“···네?”

“기존 조건으로 할 생각은 없다고요.”


다만, 인영은 이렇게 끝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되지도 않게 떠보진 말았어야죠. 이딴 식으로 직원으로 간 보고 염탐할 생각이었으면, 더 확실하게 하든가.”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건 어딘가 녹호를 닮은 논리였다.

수작을 부릴 거라면 들키지 말았어야 한다는.


“아, 그게···.”

“남의 돈으로 사업할 기회, 다들 덥석 잡았는데 당신만 그러지 못 했어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 능력을 믿죠?”


그 말에 사장은 상당히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대로 있다간 월세로 말라죽을 판국이었다.


“더 할 말이 있나요?”

“부디 선처를 해주시면···.”

“······.”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시면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결국, 꼬리를 말아댔다.

인영은 한숨을 작게 내쉬더니 마지못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계약서는 따로 보낼게요. 받아들일지 말지는 따로 정하세요.”


할 말이 끝나자 밖으로 발길을 옮겼다.

뒤이어, 일행 역시 그 뒤를 따랐다.


“뭐야? 이런 면도 있었어?”


놀랐다는 듯이 재잘댄다.

귀엽게만 보던 동생한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뭐, 필요하니까···. 그리고 이런 일을 나중엔 언니가 도맡아서 해줘야 해.”

“내가?”

“응. 매번 내가 직접 움직일 수는 없어서.”


녹호가 당부한 일이기도 했다.

매번 발로 뛸 생각 하지 말고, 마음껏 부릴 인선을 마련하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모으라는 뜻이기도 했다.


“오늘처럼 남을 찍어눌러야 하는 경우면 모르겠는데, 무난하게 갈 수 있는 일은 되도록 언니한테 맡길 거야.”

“여기 전체를?”

“여기도 포함해서 다른 곳도. 그리고 점점 범위도 넓어질 거야. 물론, 그때는 언니는 팀장쯤 될 테고.”


그 말에 여자는 잠시 생각하는 기색을 보였다.


“다른 곳? 거래처가 또 있다는 말이네?”

“응.”

“어디? 혹시 제휴했다고 한 곳?”

“맞아. 예현교회라고, 있어.”

“예현교회? 잠깐, 네 이모가 다녔다고 한 데가 거기 아니었어?”


지나가던 말로 들었던 얘기였을까?

설마 하는 표정으로 인영을 바라본다.


“맞아.”

“뭐야? 무슨 일이 있었길래?”

“신경 쓰지 마. 이제 아무 일도 아니거든.”

“해결됐다는 소리야?”


인영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이제 서주와 목사가 어떻게 지내든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낼 모양이었다.


“응. 후련하게 해결됐어. 우리 대표님 덕분에.”



***


이른 아침, 등굣길.

거뭇한 하늘 아래에서 학생 여럿이 느릿하게 움직인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아직 등교 시간이 넉넉히 하기도 할 뿐더러, 한창 잠이 많을 나이니까 말이다.


여기에 멀뚱히 길가에 서 있는 아이도 있었다.

인형처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아담한 키, 분명히 테이였다.

친구라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가끔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기다림을 향해 어떤 발걸음이 우르르 가까워져 왔다.


“아, 진짜···. 택시 타고 오는 거 잡지만 않으···, 뭐야? 테이네?”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면서 오는 학생 여럿.

아는 체하는 걸 보면, 동급생쯤 되는 모양이다.


“안녕···.”

“하루만 빼달라고 하더니? 약속 깨지고 우리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아니, 지금도···”

“요즘에 돈 많길래 ‘원조’라도 하는 줄 알았네. 히히히!”


다들 뭐가 그렇게 좋은지 깔깔깔 웃는다.

그 목소리에는 어딘가 가학적이고 비꼬는 기색만 잔뜩 서려 있었다.

모두가 그랬다.

웃지 못하는 사람은 오직 테이뿐.


“···원조 교제 같은 거 아니야.”


그래, ‘원조’.

그건 나이 많은 남자를 돈 받고 만나는 일을 말했다.

몸을 파는 여자 취급이었고 또, 모함이었다.

이런 얘길 듣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학교에서도 그런 얘기 안 했으면···”

“농담이잖아. 좀 웃어넘겨. 아니면 찔려서 그래?”

“그런 거 아냐. 근데 꼭 사실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잖아.”

“혼자서 찐따 티 내기는···. 진짜 분위기 씹X 내는 데에 뭐가 있어. 너는 우리가 놀아주는 거 고맙게 생각해야 해.”


테이는 억울하다는 듯 주먹을 꼭 쥐었다.

하지만 여학생 무리는 이 모습을 본체만체하더니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만난 김에 가방 들어주기나 할까? 나 책 많이 들어서 어깨 아픈데.”

“어, 그러자. 테이, 너는 무조건 찌 내는 거 알지?”

“뭘 그걸 확인하고 그래? 항상 그랬잖아?”

“아니, 난···”

“안 내면 술래 가위바위보!”


당사자가 어떤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모든 상황이 진행됐고 결과는 정해져 있을 뿐이다.


“자, 들어. 떨어뜨리면 알지?”


결국, 무너질 것처럼 작은 몸에는 무거운 가방이 우수수 걸렸다.

그냥 걷기만 해도 휘청거릴 정도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시원스레 웃어 보이며, 서로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자, 가자.”

“테이는?”

“알아서 오겠지. 아, 근데 이번에 오빠들 직캠 올라온 거 봤어? 진짜 나 심장 멎는 줄!”

“맞아, 맞아! 어떻게 그렇게 잘 생겼지?”

“나 진짜 현실에서 그런 사람 한 번만 봤으면 좋겠···”


그때, 말하던 학생이 갑자기 입을 닫았다.

시선은 어딘가에 박힌 채 어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뭘 보고 있는···”


우르르 가던 맞은편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는 얼굴선과 예리하게 깎인 턱선, 그리고 봄바람을 머금은 눈웃음.

마치 여우가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예쁜 미모였다.


그렇다고 마냥 여자 같은 느낌인가?

그건 아니었다.

소매를 걷어붙인 셔츠는 선명한 잔근육을 내보였고, 가볍게 열린 옷 섬은 탄탄한 쇄골을 드러내기도 했다.

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살결에 진 그림자가 살랑살랑 움직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큰 키와 어우러져서 조화롭고도 아찔하게만 느껴진다.


“X나 잘생겼다···.”


여학생 중 한 명이 그런 말을 꺼냈다.

경박하게 느껴지는 소리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친구들 역시 반대를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일 뿐.


당연한 일이다.

남성미가 각인된 순간, 예쁜 얼굴은 오히려 빛날 만큼 매력적으로 변한다.

상반된 장점이 서로를 부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햇살을 맞으며 다가오는 발걸음은 마치 영화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테이야.”


모두가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남자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오기 전까진.


“···어?”


남자, 천선이 성큼성큼 여학생 무리를 지나쳐갔다.

그리고 테이 앞으로 가서 몸을 숙여 보였다.


“안녕?”

“누구···.”

“삼촌이야. 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려나?”


테이가 두 눈을 깜빡이면서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예쁘게 생긴 남자가 갑자기 삼촌이라고 주장해왔다.


“너무 어릴 때 봐서 기억이 안 나구나? 그럼 피녹호라는 이름은 알지?”

“피녹호···, 요?”

“그래.”


테이는 그제야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동시에 안도하는 기색도 보인다.

진짜 가족이나 친척은 아닌 탓이다.

그래, 이런 모습을 지인에게 걸리고 싶진 않았겠지.


“그런데 이 가방들은 뭐야?”


천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

그건 저 앞에 가는 아이들을 노린, 작은 폭죽이나 다름없었다.

역시나 여학생 무리는 당황해서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아, 그건 저희 가방···.”

“혹시 학생들, 테이 친구들이에요?”

“···네?”


작가의말

설정상 어떻게 생겼냐면, 꼭 기생오래비 같습니다.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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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8화. 좋은 책임자 24.03.03 1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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