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27 14:52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5,829
추천수 :
72
글자수 :
650,447

작성
24.04.06 00:37
조회
13
추천
0
글자
12쪽

87화. 복수

DUMMY

익숙하면서도 낯선 해법이었다.


“복수···, 요? 그건 첫 번째잖아요?”

“말했잖아. 고소하는 건, 선행이라고.”


도플갱어가 계속 말을 이었다.


“복수는 당했던 고통을 돌려주는 일이야. 부당하게 당했으니 부당하게 갚아줘야지.”

“그럼···.”


그에게 복수는 정당한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사회 규범을 어기는 짓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를 망설일 생각은 없었다.

애당초 선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얼굴에 염산을 뿌려. 어디 한 군데 잘라다가, 붙이지도 못하게 태워.”

“···네?”

“더 독하게 할 방법은 많아. 눈을 도려낸다든가 끓는 기름을 들이붓는다든가. 원한다면 다 준비해줄게.”


잔혹한 이야기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니면 내가 해줄 수도 있어. 손에 피를 묻히는 건 껄끄러울 테니까.”

“잠깐만요, 그건 너무···.”

“가혹하겠지. 알아, 나도.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해?”


잔인함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마음이 풀리는 것이 우선이다.


“걔네를 원망하지 않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

“아니잖아. 보기만 해도 화나잖아. 사람인 척하는 거, 역겹잖아. 토 나오잖아.”


복수는 나쁜 짓이다.

이를 받아들이고서, 끝없이 악의를 불태웠다.

정의를 들먹이지 않고 철저하게 되갚았다.


“분명 내 인생을 망쳤던 족속이야. 동정조차 아깝지. 그냥 쏟아내듯이 화풀이하고 싶지 않아?”

“···네. 그러고 싶어요.”

“다만, 정작 그럴 수 있는 상황에 오니까 보이겠지. 어느 정도는 사람인 거.”

“아···.”

“똑같이 밥을 먹고 웃고 또, 눈물도 흘려. 나름 사연도 있겠지. 주변에 제대로 된 어른이 없었던가 하는.”

“네. 내 앞에서 사과하는 모습은 정말···, 평범했어요.”


도플갱어가 줄줄 읊어댔다.

현묘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재혼하고 가정을 이뤘지.

그렇게 생긴 아내와 아들에게는 든든한 가장이기도 했다.

역겹게도 말이다.


“걱정하지 마. 찾아보면 여전히 쓰레기 같은 면도 있어.”

“네?”

“그냥···, 그래. 너무 다행스럽게도 남한테 못 할 짓을 하고 다녀. 너무 화나게도 아직도 그래. 사람은, 그래.”


테이 일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물어보고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교사라는 인간이 학생을 외면했다.


“걔네도 똑같아. 궁지에 몰아넣거나 권력을 주면 돌변할 거야. 언제 반성하고 사과했냐는 듯이 말이야. 너무 다행스럽고 거지 같게도 또, 그럴 거야.”

“아···.”

“그러니까 마음 놓고 복수해도 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마.”


가책, 그 안에는 책임감이라는 뜻도 담겨 있지.


“너는 그걸 전혀 감당할 필요 없어. 모든 책임은 어른이 져야 하니까.”

“책임은 어른에게요?”

“그래. 네가 화가 나서 복수해도, 모든 책임은 어른에게 있어. 너를 다독이고 보호하지 않은 죄를 져야 하는 거야.”

“하지만 벌은 제가 받아야···.”


당연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테러를 저지른다면, 테이가 피해를 볼 뿐이다.


“아니, 그럴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네?”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어른이라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반드시 세상은 심판을 받게 될 거야.”

“그게 어떻게···.”


하지만 도플갱어는 단호했다.


“너는 안전하다는 이야기야.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유학도 보내줄 수 있어. 얼마든지 지원해줄게.”

“아···.”

“걱정하지 마. 책임감도 느끼지 마. 절대 용서하지 마. 너는 그러지 않아도 돼, 테이야. 너만큼은 지금 그래도 돼.”


모든 화살은 어른이 맞아야 했다.

그게 옳은 일이었다.

지금까지 아이가 당해온 것이 잘못됐다.

그러고서 다들 떳떳했던 것이 너무나도 잘못됐다.


“어떻게 하고 싶어?”


마지막으로 물었다.

머리가 좋은 인간이니, 어떤 예측이든 하고 있을 터였다.

아마 첫 번째를 떠올리겠지.

차마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을 테니까.


두 번째도 상관은 없을 터였다.

어떻게든 알리바이를 조작할 수 있다.

테이 모습으로 CCTV에 찍히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증거 조작은 간단했으며 양심에 찔리지도 않았다.


“아아···.”


테이가 뜨거운 숨을 토했다.

이제야 실감이 나는 모양이다.


“괜찮아. 투정 부려도 돼.”

“흐···, 하아···.”

“억누르지 마. 애는 마음껏 징징거려도 돼. 그러니까 애인 거야.”


그 지옥에서 벗어났다.

드디어 벗어났다.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것을 말해도 됐다.

그렇게 울렁이는 목소리가 흐느끼며 나왔다.


이 순간을 간절히 바라왔을 터였다.

말로도 표현은 못 했지만 말이다.

잠깐이나마 눈물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흐윽···, 하···.”

“괜찮아. 말해 봐.”

“···할래요. ···할 거예요.”


테이가 입을 열었다.

이제야 원하는 일을 말할 모양이다.

천선도 그 대답을 밝은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괜찮다는 듯이.


“걱정···, 할래요.”


하지만 그 입에선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


“···뭐?”

“걱정···, 할래요. 책임감도 느낄래요. 용서도 할래요···.”

“테이야.”

“어떻게 안 해요, 어떻게···.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테이가 눈물을 터뜨렸다.

도플갱어와는 달랐다.

복수심에 타올라,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까지 모진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저는 미워하기 싫어요···. 원망하기 싫어요···. 이제는 그만하고 싶어요. 안 될래요, 그런 어른은···.”


그저 펑펑 울어댈 뿐이었다.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마저 용서하고서는.



***


테이는 두 눈이 퉁퉁 불었다.

작은 몸은 완전히 지쳤는지 축 늘어져 있기까지 했다.

그러다 유송이 웬 접시를 가져오니 눈을 반짝인다.

바로, 떡볶이다.


“너도 이거 좋아하지?”

“네, 언니.”


맞은편에는 천선이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여기 천선 씨가 자주 오는 곳이야.”

“진짜요?”

“그럼. 당연하지.”


여긴 천선 분식이니까.

지금 도플갱어의 어머니가 이곳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예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다만, 그 모습에 위화감은 없었다.

이 외에도 많은 여자 손님이 힐끗대고 있으니까.


“와, 진짜 잘생겼다.”

“저런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내 생각이라도 해줬으면···.”

“야, 조용히 말해! 듣겠다!”


다 들렸다.

속닥이는 소리는 유독 크게만 느껴졌다.

개중에는 눈치만 보다가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이렇게.


“저기요, 혹시 SNS 하세요?”


화장에 유독 힘을 준 느낌이다.

옷도 노출은 적지만 분명히 몸매를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천선이 오는 이 시간대에, 이 말을 하기 위해서 꾸몄는지도 몰랐다.

제 딴에는 자연스럽게.


“아, 네. 유송 씨, 제 아이디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천선은 상념에 빠진 기색만 강했지만.


“삼촌!”

“어?”


그때, 테이가 떡볶이를 입에 집어넣었다.

천선은 잠깐 정신을 차리려다가, 얼른 눈꺼풀을 닫고 고개를 돌렸다.


“맛있어요?”

“···어.”

“헤헤.”


우물거리는 표정이 어색했다.

당혹스럽지만 최대한 웃어보려고 했다.

기분 나쁘지 않도록.


“고맙긴 한데,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 누가 억지로 뭐 먹이는 거 안 좋아해. 트라우마가 있거든.”

“트라우마요?”

“응. 웬 어른이 억지로 담배를 먹인 적이 있어서 말이야.”

“아, 미안해요!”

“괜찮아. 몰라서 그런 건데. 다만, 앞으로는 주의해줘.”


입에 든 떡을 얼른 삼켰다.

그제야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시야에는 미소가 풀려가는 테이가 있었다.

그리고 웬 그림자 하나가 천선 옆에···.


“역시 이상하다 싶었어.”

“선생님?”


현묘, 도플갱어의 친아버지가 나타났다.

비쩍 마르고 눈이 시뻘게져서는,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보일 정도다.

얼굴은 형용할 수 없는 일그러짐이 서려 있다.


“역시 너였어···. 너밖에 없었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불안했다.

당장이라도 경을 칠 것만 같다.

오직 그 당사자만이 이를 들으면서도 여상스레 대꾸했다.


“안녕하세요? 그날 이후 처음이죠?”

“이 개X끼가···!”

“하,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낡은 손이 천선의 멱살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의자와 테이블이 요란하게 밀려 나갔다.


우당탕탕탕···!


“꺄아아아악···!”

“뭐, 뭐야?”

“여기 싸움 났어요!”

“그만하세요···!”


주변에서는 요란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도망치려는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 그만하세요!”

“멈추십시오!”

“놔···! 너희가 몰라서 그래! 이 자식은 괴물이라고···!”


유송과 테이가 온몸을 다해서 막았다.

그 덕에 현묘도 주먹을 날리지는 않았다.

지금 거칠게 움직였다간 진짜 난리가 날까 봐 그렇겠지.

여우 같은 얼굴은 그런데도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무슨 소리이신지 모르겠네요.”


아니, 정말 기쁘겠지.

원수가 눈앞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는데, 어떻게 기분이 나쁠 수 있을까?

이 모습만 아니었다면, 광소를 터뜨리고도 남을 인간이다.


“괴물이요? 잠이라도 자다 깨셨나요?”

“뭐? 이 개 같은···!”

“아니면 아직도 졸고 계신가요? 몽유병?”


긴장이라고는 단 한 점도 없었다.


“이 자식이···! 너도 맞다 보면 죽어···!”

“그럼 해보세요. 지금 재판도 앞두신 분이.”

“이, 이···! 야···! 너···!”


현묘가 부들대면서 손을 올렸다.

그러자 유송과 테이도 다급하게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선생님!”

“대화로! 대화로 해결해야 합니다!”

“참아요! 참아요···!”


높이 든 팔에 무게와 고민이 실렸다.

당장이라도 내려치고 싶어서 미치려는 듯했다.

이성이 아슬아슬하게 분노를 잡고 있었다.

천선 역시도 이를 알고 있을 터였다.

분명 그런데도 입을 벌리고 말았다.


“애걔?”


명백한 도발.

현묘는 결국 눈동자가 완전히 돌고야 말았다.

눈앞에 그 무엇도 보이지 않겠지.

그렇게 주먹을 휘둘렀을 터였다.


푸욱!


“어? 차가운···.”


배에 식칼이 박히지 않았더라면.


“내···, 내 아들 건들지 마···.”


아주머니가 부들대면서 복부를 찌르고 있다.


“아···. 뜨거운···.”

“서, 선생님···.”

“꺄아아아아악···!”


수많은 반응이 얽히고설켰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엄마?”


천선 역시도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을 바라지는 않았는데.

그냥 현묘가 뺨을 내려치기만 했으면 됐을 텐데.


“왜···.”

“다시는 안 잃어···. 너한테 다시는···.”


하지만 한 번 자식을 잃었던 어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번 다시는 같은 감정을 참아내진 못했다.


“벼, 병원···!”

“어윽···. 살려···.”

“선생님···!”

“천선 씨, 이번만큼은 119를 부르겠습니다!”


수많은 목소리가 지나갔다.

동시에 아주머니는 바들바들 떨면서 천선에게 다가갔다.


“엄마가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엄마가 너무 미안해···.”


과거의 기억.

이를 다시 떠올리고야 말았다.


작가의말

최근 화를 갑자기 5명 정도 보길래 싶었는데, 다시 1명으로 내려갔네요.

뭔가 했더니, 공모전이 왔군요?

볼 게 없어서 잠시 이 소설로 왔다가, 떠나신 듯 합니다.



그곳에서 잘 지내시죠?

아아,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부디 가신 곳에서는 고민 없이 평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더는 못 잇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3 93화. 날카로움 24.04.16 12 0 12쪽
92 92화. 돌아온 아들 24.04.15 9 0 12쪽
91 91화. 소년병 24.04.13 11 0 12쪽
90 90화. 비디오테이프 24.04.11 10 0 12쪽
89 89화. 어머님 24.04.09 10 0 12쪽
88 88화. 천재 24.04.08 12 0 12쪽
» 87화. 복수 24.04.06 14 0 12쪽
86 86화. 도마 위 24.04.04 10 0 12쪽
85 85화. 보호받아야 할 24.04.03 8 0 12쪽
84 84화. 개판 24.04.01 12 0 12쪽
83 83화. 외모라는 컨텐츠 24.03.30 14 0 12쪽
82 82화. 오소서, 주 예수여 24.03.28 10 0 14쪽
81 81화. 요한묵시록 24.03.27 10 0 13쪽
80 80화. 종말 24.03.25 11 0 11쪽
79 79화. 정말 몰랐을까 24.03.22 8 0 12쪽
78 78화. 유기견 보호센터 24.03.21 12 0 12쪽
77 77화. 기말고사 마지막 날 24.03.19 14 0 12쪽
76 76화. 주마줌스 24.03.18 12 0 12쪽
75 75화. 안녕하세요 24.03.15 14 0 12쪽
74 74화. 목숨은 하나 24.03.12 12 0 12쪽
73 73화. 갈굼의 시작 24.03.11 10 0 12쪽
72 72화. 책임은 어른에게 24.03.05 14 0 11쪽
71 71화. 요즘 애들 24.03.05 10 0 12쪽
70 70화. 가해자와의 조우 24.03.04 12 0 12쪽
69 69화. 범죄자 옹호 24.03.04 12 0 12쪽
68 68화. 좋은 책임자 24.03.03 13 0 12쪽
67 67화. 참교육? 24.03.03 19 0 12쪽
66 66화. DJ뭐야 24.03.02 23 0 12쪽
65 65화. 달란트 24.03.02 22 0 12쪽
64 64화. 탈출 24.03.02 18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