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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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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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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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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비디오테이프

DUMMY

***


카페.

꽤 늦은 시간이건만, 손님은 여전히 가득했다.


“지혜야, 다 먹었는데 슬슬 갈까?”

“조금만 더 있다가. 여긴 들어오기 진짜 힘들단 말이야.”

“야, 곧 있으면 3시간 째야. 눈치도 안 보여?”

“인터넷에서 그러던데, 오래 있어도 뭐라고 안 한대.”


당최 들어오기 힘든 곳이라, 최대한 오래 붙어 있었다.

애초에 이를 노린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카페가 수용하지 못하는 인원은 정처 없이 위층으로 향하기도 하겠지.

다른 시설은 많으니까.


“저 남자 여자친구는 참 좋겠다.”


주변이 북적한 와중, 녹호는 홀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지은 것이, 고민이라도 생긴 모양이다.

누군가는 이에 관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야, 남자친구가 눈앞에 있는데.”

“저기 봐봐.”

“어디? 창가 자리에, 사자처럼 생긴? ···뭐, 듬직하긴 하네. 남자답고.”

“난 저렇게 커다란 것보다는 잔근육이 좋아서.”

“그럼 여자친구가 왜 부러운데?”

“자리를 예약할 수 있잖아. 여기 대표님이라던 것 같던데?”


워낙 눈에 띄는 사람이 특별대우까지 받는 덕이다.

개중에는 다가오는 여자도 있었다.


“저기···,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녹호는 그 말을 들은 척 만 척 넘겼다.

귀찮다는 듯이 손만 휘적댈 뿐이다.

그러다 누군가 카페 문을 열자 화색을 띠며 일어났다.


“어머님, 어떠셨습니까?”

“그 어머님이라는 얘기는···.”

“죄송합니다.”

“아니요, 그만! 이제 사과하지 마세요!”


도대체 얼마나 사과를 해댔으면 저럴까?

아주머니가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호강하긴 했어요. 즐거웠고요.”

“그럼 다행입니다.”

“아, 저기 기다리고 있네요.”


그러다 녹호를 발견하고선 미소를 내비쳤다.


“잘 놀다 왔어? 머리도 하고, 안색도 좋아졌네?”

“그럼! 아드···, 어쨌든 덕분에 호강했어.”

“다행이네, 그럼.”


더 대화하고 싶은 눈치였다.

당연했다.

귀한 아들인데, 어떻게 안 그럴까?

하지만 도플갱어는 어머니에게서 눈을 돌렸다.


“인영아, 더 있다가 모셔다드려.”

“응? 귀가까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반응이었다.

아주머니도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얘는···.”

“친해지면 좋잖아. 겸사겸사 나도 일이 생겼고 말이야.”

“···알았어. 서로 좋다면야.”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여기서 수다라도 떨든지.”


녹호는 서류 가방 하나를 들고서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카페를 나서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보폭이 워낙 넓은 덕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뒷좌석에 타자 들려오는 말.

유송이 운전석에 앉아서 하는 얘기였다.


“그래.”

“어머님은 인영 씨가 모셔다드리기로 했습니까?”

“어. 엄마가 널 너무 좋아해서.”

“예?”

“그런 게 있어.”


서류 가방은 옆에 두고서, 팔걸이처럼 손을 얹었다.

별일 아닌 듯한 행동이긴 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의아한 느낌이 든다.

아무도 못 건들도록 앞발로 누르고 있는 모양새니 말이다.


“주시면 트렁크에 넣어두겠습니다.”

“아니야, 그냥 출발해.”

“그럼 알겠습니다.”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금방 저택까지 도착하겠지.


“교회에 가야 합니까?”

“아니. 왜?”

“현금을 쌓아둘 장소가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녹호는 그 말을 곱씹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이 가방 때문에 하는 말일 터였다.


“내가 고작 돈 몇 푼을 애지중지해서 이러겠어?”


현금이라면 희소가치가 있겠지.

물밑에서 이용하기 좋으니까.

하지만 그마저도 경계를 표할 성격은 아니었다.


“은행에 가지 않았습니까?”

“돈만 맡기는 곳이 아니거든.”

“돈이 아니면···, 수표입니까?”

“하, 참나.”


두꺼운 손이 서류 가방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냥 아무 의미도 없는 물건이야. 뭐, 감상 정도는 하겠지만.”

“감상···.”

“그래. 비디오테이프거든, 이거.”


백미러로 보이는 눈동자.

유송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표정을 지었다.


“은행은 금고 역할도 하니까. 아버지가 남긴 물건을 아들이 받을 수 있지. 문서만 갖춰지면.”

“그럼 의미 있는 물건이잖습니까? 유품이면···.”

“아니. 의미 없어.”

“음···.”

“어차피 곧 보게 될 거야. 내가 감상할 동안 시중들어야 할 테니까.”


차가 저택에 도착했다.

금세 차고에 들어가 남는 자리를 찾아간다.


“알아서 내려와.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사용인 눈에 띄지 않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녹호는 그 말만 남기고 차에서 내렸다.

이내 익숙한 발걸음으로 저택을 거닌다.

그러다 구석 평범한 벽 앞, 작게 파인 홈을 잡아당겼다.


열리는 틈.

어두운 계단이 오랜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벌써 반년이나 지났을까?

이곳을 다시 지나가는 게?


“여전하네.”


어둑한 계단을 내려갔고, 마찬가지로 캄캄한 복도를 지났다.

단단한 철문 앞, 여전히도 굳건한 공간이다.

이제는 자물쇠조차 없지만.


녹호는 상념을 깨고 힘껏 문을 열었다.

퀴퀴한 공기가 돌아온 손님을 반겨줬다.

오랫동안 오지 않았건만, 쌓이고 쌓인 먼지 외에는 변화가 없었다.


전등이 켜지고 거대한 보폭은 침대 끄트머리로 향했다.

그 위에 털썩 주저앉고서, 서류 가방 역시 맞은편에 둔다.

이내 잠금까지 해제하고 그 안을 살폈다.

이 와중에 유송도 이곳 지하실에 도착했다.


“주차하고 왔습니다.”

“일찍 왔네.”

“예. 기다리실까 봐 뛰어왔습니다. 여기 음료와 간식도 있습니다.”


비디오테이프가 한 무더기였다.

절대 며칠 사이에 찍을 양은 아니었다.


“이딴 걸 금고에 보관하다니. 악취미 한 번 알아줘야 한다니까.”

“뭔지 알고 있습니까?”

“대충은.”


녹호는 태연하게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꺼낸다.

시간상 가장 처음에 해당하겠지.


“이런 것도 찍었지. 여기에 있을 때.”


이를 구석에 있는 TV에 가져갔다.

그 밑 선반에는 재생할 장비도 갖춰져 있었다.

꼭 이때를 위해서 준비해두기라도 했다는 양.


“여기에 있을 때 말입니까?”

“아예 못 지내진 않았으니까.”

“어···.”

“괜히 안 돌아가는 머리 굴리지 마. 뭘 잘하는 거라고.”


도플갱어가 친아버지에 의해 팔려 온 직후.

TV엔 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차피 다 나올 텐데.”



***


뿌연 화면이 움직인다.

이곳 지하실의 모습이다.

분명 십여 년 전이지만, 거의 달라진 점이 없었다.

모든 가구가 색이 선명하고 깨끗했다.

이 외에도 조금씩 가구 배치가 다른 정도였다.


“우으윽···. 엄마···.”


화면이 움직이며 한 아이를 가리켰다.

너무 자그마한 아이는 헛구역질해대며, 하염없이 울고 있다.


“미안해! 물을 먼저 가져다줬어야 했는데!”


그 위로 굵은 남자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어딘가 다급하고 죄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그 미친 인간이 하필 담배를 먹여서는!”

“아저씨, 엄마 보고 싶어요···.”

“···미안해, 정말.”

“저 집에 데려다주세요. 엄마한테 데려다주세요···.”


이 당시의 도플갱어.

어른을 몇 번 복사해봤기에 지능은 높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경험만큼은 눈에 보이는 나이보다도 적었다.

겨우 몇 살에 불과했고, 뭔가를 의심하고 결정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 유달리 미숙하던 시기라고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여기가 네 집이야.”


그런 아이에게 들려온 말은 단호했다.


“아닌데···.”

“맞아. 앞으로는 이곳에서 자고 밥을 먹고 지낼 거야.”

“엄마는···.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 불러주세요···.”

“이제 그 사람은 가족이 아니야. 그리고 너도 새롭게 살아갈 거야.”


희뿌연 화면이 바닥으로 몸을 낮췄다.

아마도 캠코더를 내려둔 탓이겠지.


“산범아.”

“난 천선인데···.”

“아니야, 산범이야. 내가 실수로 널 잃었는데, 이제야 되찾고 만 거야.”

“나는···.”

“넌 산범이야. 사고로 잃은, 귀하디 귀한 내 아들···.”


다소 불편한 시야이긴 했다.

하지만 그 덕에 좋은 점도 존재했다.

널따란 뒷모습 역시도 화면에 담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빠가 못나서 그래. 그때, 너를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 차도를 혼자 건너게 두는 게 아니었는데···.”


남자가 도플갱어를 끌어안았다.

그 행동과 말투는 분명 진심이었다.

자식 잃은 부모가 지푸라기를 잡게 됐는데, 어떻게 가식일 수 있을까?

영영 사라진 줄 알았던 혈육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가벼운 마음일 수 있을까.


“아빠?”

“···맞아. 아빠야. 아빠란 말이야. 내가 네 아빠라고.”

“···정말요?”

“그럼! 당연하지!”


넓지만 힘겨워 보이는 등.

어떤 표정일지, 절반 정도는 짐작이 간다.

분명 절박하게 일그러졌겠지.

그렇기에 더욱 형용할 수 없는 얼굴일 테고.


“엄마가 그랬어요···. 아빠도 언제가 날 받아줄 거라고.”


분명 남자는 진심이겠지.

그래서 아이는 너무나 쉽게 믿어버리고 말았다.


“맞아···! 아빠야! 내가 네 아빠야···!”

“엄마가 말한···.”

“산범아! 내 아들, 산범아···!”


모든 경험이 이를 진실이라고 가리켰다.

어머니는 언젠가 아버지도 아이를 반길 거라고 했다.

이 남자는 자신이 친부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려댔다.

아이에게는 이 외에는 다른 무언가도 배우지 못했다.


“그럼···, 앞으로 여기서 사는 거예요?”

“그래. 이제 알콩달콩 잘 지내면 돼! 그 일 따위···, 없었던 거야···!”

“엄마느···”

“예전처럼 지내면 되는 거야···! 산범이, 너는 살아있는 거야···!”


남자는 산범을 힘껏 껴안았다.

뭐라고 더 외쳤지만, 이는 듣지 못했다.

결코, 듣지 못했다.



***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지나갔다.

남은 동영상은 아직도 많았다.


“···양아버지께서도 많이 힘들긴 하셨나 봅니다.”


유송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멀리서 보기엔 분명 납치지만, 그 동기는 자식 잃은 부모의 방황이었으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나름 잘 지냈어. 오죽했으면 나중에는 컴퓨터랑 비디오 플레이어까지 설치해줬을까. 이것저것 골치 아플지도 모르는데.”

“아···.”

“언젠가 오순도순 같이 시청할 날이 있다고 생각했겠지. 당장은 감금해두긴 했었지만.”

“그럼 별관에 있는 영화관도 이것 때문에 꾸몄던 겁니까?”

“그랬을 수도 있겠네.”


잡힐 듯 말 듯, 아리송한 표정이다.

당사자가 담담하니, 동정할 표하긴 어색했다.

하지만 마냥 추억처럼 얘기하기에는 어딘가 찝찝한 구석도 있을 터였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 이제는.”


녹호는 시청한 비디오테이프를 대충 던져두었다.


“곧 저녁이네. 다들 퇴근했을 테고.”

“퇴근 말입니까?”

“미리 아저씨한테 문자 보내뒀어. 인영이도 오늘 엄마랑 저녁까지 먹는다고 그러고.”


묵직한 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다음 소리 없이 두꺼운 철문을 향해 움직였다.


“오늘은 교회에 일찍 가봐야겠어. 퇴근해, 너도.”


작가의말

정말 주기적으로 몸 상태가 안 좋습니다.

병에 걸린 건 아닌데 하루 종일 사람이 잘 수도 있네요.

저도 비축분 좀 만들고 싶은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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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천재 24.04.08 12 0 12쪽
87 87화. 복수 24.04.06 14 0 12쪽
86 86화. 도마 위 24.04.04 10 0 12쪽
85 85화. 보호받아야 할 24.04.03 8 0 12쪽
84 84화. 개판 24.04.01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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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5화. 안녕하세요 24.03.15 14 0 12쪽
74 74화. 목숨은 하나 24.03.12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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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화. 참교육? 24.03.03 19 0 12쪽
66 66화. DJ뭐야 24.03.02 23 0 12쪽
65 65화. 달란트 24.03.02 22 0 12쪽
64 64화. 탈출 24.03.02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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