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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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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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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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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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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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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5화. 보호받아야 할

DUMMY

“입시?”

“네, 수능도 있고 학생부도 있잖아요. 어떤 전형으로 가야 할지 고민돼서요.”


테이는 그렇게 운을 띄웠다.

흔하게 얘기할 만한 고민이었고, 얼버무리기 좋은 소재였다.

이대로 말만 돌려대면 될 터였다.

이대로 말만 돌려대면···.


“솔직히···, 둘 다 자신 없어요. 한 번에 다 결정되는 수능도, 3년 내내 실수 한 번 하면 안 되는 내신도요. 숨이···, 막혀요.”

“그래?”

“굳이 나눈 게 의미가 있는지···. 어차피 공부 잘하는 애한테 학생부도 밀어줘요. 논술이면 따로 시간도 빼주고요. 이렇게 복잡하게 나눠봐야 결과는 비슷할 텐데, 왜 우리는···.”


최근 쌓였을 의문을 내뱉어버렸다.

계속 혼자 끙끙대다가, 갑작스레 터져 나왔겠지.


“이해가···, 안 돼요.”


테이의 아버지가 입을 닫았다.

섣불리 답하지 않고,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답을 내어놓았다.


“아빠도 잘 모르겠네.”

“아···.”


그래, 차라리 솔직한 대답이었다.

입시 정책까지 신경 쓰기엔 너무나 바쁠 테니.


“그래도 남들보다는 조금 더 낫지 않을까?”

“뭐가요?”

“원하는 직업을 얻을 수 있겠지. 돈도 더 많이 벌고, 더 편할 테고. 그냥 조금 더 낫겠지.”


이 정도가 할 수 있는 대답이겠지.

사실상 현실이기도 할 테고 말이다.


“너무 힘들면 쉬엄쉬엄해도 돼. 아빠가 더 노력하면 되니까. 우리 딸 시집갈 때까지 먹여 살릴 수 있어.”

“네···.”

“방학했다고 했지? 그럼 나가서 놀고 그래.”


그렇게 말하고선 주머니에서 구겨진 지폐 몇 장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아빠!”

“아냐, 받아. 이제 갈게.”


작업복이 뒷모습을 내보이며 멀어진다.

바쁜 듯, 종종걸음은 다급하기만 했다.

테이도 이를 멍하니 보다가 신발장에 걸터앉았다.

대답을 들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멍하게 있기를 몇십 분,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홀연히 집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꼭 뭔가를 확인하러 가듯이.



***


대낮의 길거리.

테이는 힘없이 어딘가로 향했다.

교복까지 입고 있었기에, 간혹 의아한 시선이 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사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간다.

다름 아닌, 불에 탄 건물이 있는 곳으로.


“······.”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발을 멈추었다.

멍하니 시선은 교육청으로 향했다.

무슨 생각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 테이···.”


그때, 말꼬리를 흐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아, 안녕···.”


안경을 쓴 여자아이.

자신을 괴롭혀 왔던 학생 중 한 명이다.

그래서인지 테이도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아예 몸을 돌려 자리를 피하려고도 했다.


“그···, 미안해.”


하지만 한 마디가 테이를 붙잡았다.


“무슨 말을 해도 용서가 안 되는 건 아는데···, 미안해.”

“······.”

“그냥 재밌었어. 그러면 안 되는데,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어. 미안해, 정말로.”


사과였다.

동시에 천선이 없는데도 스스로 내뱉는 중이기도 했다.

자발적으로 말이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죄를 뉘우치는 걸지도 몰랐다.


“이제야 얼마나 큰 잘못인 줄 알겠어. 미안해. 그 말밖에는···”

“역겨워.”


하지만 테이는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대꾸했다.


“역겹다고, 너 진짜.”


어금니는 꽉 깨문 채였고, 눈은 부릅떴다.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분노였다.


“너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돌덩이로 채운 가방 들게 하고, 내 머리에 우유도 쏟았어. 실수인 벽에 밀쳤어. 어떨 때는 창문 밖으로 떨어질 뻔도 했고.”

“···미안.”

“등에 생리대도 붙였잖아. 그거 알아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언제부터 붙어있었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남자 선생님이 봤을까 봐, 난 숨도 안 쉬어졌어···.”

“······.”

“또, 원조 교제한다고 소문냈잖아···. 나 더러운 애로 만들었잖아···.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정말 집이랑 학교밖에는 갈 데도 없는데···.”


안경을 쓴 여자아이가 고개를 숙였다.

그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차곡차곡 쌓인 죄는 너무나 커다랗기만 했다.


“···내가 제일 역겨운 게 뭔지 알아?”


테이는 독설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추지 못했다.


“이제 와서 사람인 척한다는 거야.”

“······.”

“미안하다고? 몰랐다고? 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는데?”


꾸역꾸역 쌓여왔던 말이다.

꾸역꾸역 쌓아왔던 말이기도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이제야 사람인 척하면 어쩌자는 건데.”


목소리에서 뜨거운 숨이 후욱 나왔다.


“정말, 이제야 사람이면 어쩌자는 건데···.”

“···미안해.”

“차라리 끝까지 사람이지 말지···.”

“······.”

“차라리 끝까지 반성하지 말지···. 이제야···, 진짜 이제야···.”


고개가 거친 숨을 뱉으며 푹 수그러들었다.

감정을 마주하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원망도 못 하게 뭐 하자는 건데···.”

“···미안해, 테이야.”


안경을 쓴 여자아이가 한 발 다가갔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울고 있기에, 반사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됐어. 따라오지 마.”


테이가 몸을 홱 돌렸다.

이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더는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은 듯했다.


눈물은 줄줄 새어 나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탓이다.

그나마 사람이 적은 곳으로, 도망치듯이 발걸음이 향했다.

다만, 그 방향은 사건의 중심이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하아.”


교육청.

관공서이기에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도망치는 발길이 향하기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여기가···, 진짜 책임···.”


천선이 그랬지.

책임은 어른이 져야 하는 법이라고.

그 논리로 따지자면, 만악의 근원이라 볼 수 있었다.

모두 교육청이 책임을 지지 않아서 생긴 일이니까.


“저기요, 학생? 혹시 인터뷰할 수 있을까요?”


그때였다.

뒤에서 기자 한 명이 다가왔다.

벌써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고서는 말이다.


“저희가 취재를 하고 있거든요. 교육청 방화 사건 특집으로요.”

“······.”

“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죠? 사연이 있을 거 같은데, 잠시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그래, 오늘 방학식을 했지.

그런 만큼 방송국에서도 한 번 더 관심을 끌어모을 만했다.

학교에서 앞당긴 일정에, 뭔가 의도는 없었는가 하는.


테이로서는 상당히 지칠 일이다.

방금 감정을 쏟아냈는데 인터뷰라니.

얼굴에서도 드러나건만, 기자는 오히려 기회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뚜렷한 반응이 있다는 뜻은 사연이나 생각도 남다르다는 말일 테니까.


“혹시 이번 방화 사건과 관련이 있을까요?”

“···하아.”

“아, 너무 무례한 말이었죠?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학생 입장에서 봤을 때, 이번 방화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어쩌면 특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

테이도 그 손길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럴 만한 심력 따위, 진작에 소모된 터였다.


“···인과응보요.”


조각난 진심이 튀어나왔다.

기자는 그 날카로운 말에 눈을 빛내며 캐물었다.


“인과응보요?”

“우릴 괴롭힌 사람들이잖아요, 저기서 일하는 어른은.”

“어떻게 괴롭혔죠?”

“학교 안이 지옥이면, 어른이 고쳐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그냥 입시라고 구멍 하나만 뚫어놓고 말해요. 저 너머에 천국이 있다고.”


그동안 고민했던 내용.

그게 울분과 뒤섞여 튀어나왔다.


“바늘구멍 너머에 천국이 있는 것처럼 말해놓고, 학교 안이 지옥인 이유를 정당화해요. 어른이 져야 할 책임을, 우리가 감당하게 둬요. 자기들은 아무 문제도 없는 양 굴면서.”

“그래요?”

“저는···, 지금 죽을 것 같은데. 그냥 지금 어른이 필요한데요. 아무도 없어요. 그전에, 진짜 바늘구멍 너머에 천국이 있긴 한가요? 정말 이 끝에 빛이 있나요?”


지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궁지에 몰린 탓이다.


“학생, 혹시 여기에 방화를 저지른 선생님과 어떤 사이···”

“애 좀 데려갈게요.”


그때, 천선이 나타나 얇은 손목을 붙잡았다.

당장이라도 기자와 떼어놓으려는 듯했다.


“놔요!”

“가자, 테이야.”

“이거 놓으라고요!”


테이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 원망은 만만한 상대에게 향하는 법이다.

천선이 그랬다.

자신에게 친절했던 만큼, 배신감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요! 인터뷰 중이잖아요!”

“기자분은 녹화한 것 지워주시겠어요? 애가 철이 없어서요.”

“저기요! 당사자의 입장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그 말에 천선이 기자를 돌아보았다.

항상 미소를 머금던 눈은 어느새 한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애가 위험한 짓을 하면 말려야죠. 그게 어른이 할 일이고요.”

“아니, 뭐가 위험한 짓입니까? 자기 생각 정도는 말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당장 대꾸하진 않았다.

그 대신 한 쪽 방향으로 턱 짓을 했다.


“유송 씨.”

“네.”

“동영상 녹화를 켜두세요. 혹시 모르니까요.”


어느새 다가온 유송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와 동시에 기자 역시도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만요, 선생님. 이게 무슨···.”

“떳떳하다면 거리낄 것도 없겠죠. 안 그래요?”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갑자기 이쪽에서도 녹화를 시작한다니.

항상 영상과 목소리를 무기로 써왔던 만큼, 역으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생각지도 못한 흐름에, 두 눈이 빠르게 굴러간다.


“···예, 그럽시다. 그 대신 인터뷰는 허락해주시는 거죠?”


다만, 물러나지는 않았다.

어차피 질문만 하는데, 손해 볼 일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갑자기 카메라 들이밀고 캐물었던 내용이요?”

“······.”

“보호자 허락도 없이 취재 시작하고 또, 방화 사건이랑 엮은 인터뷰 말씀하시는 거죠?”


대답하기 껄끄러운 질문이다.

하지만 영상에서 살려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그 말부터 들어가야, 기승전결이 살아날 테니까.


“네. 사실 확인이 필요하니까요.”

“그게 뭐가 중요하죠?”

“시청자의 알 권리, 당연한 것 아닙니까? 이제 저도 묻겠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이 있으신 분들입니까?”


기자는 빠르게 질문했다.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예, 보호받아야 할 학생과 그 보호자죠.”

“보호입니까? 정확히 어떤 쪽입니까?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보호받아야 할 학생이라고요. 못 들으셨나요?”


‘됐다.’, 이 생각이 머리에 스쳤겠지.

애써 미소를 억누르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가해자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작가의말

지금 생각해보니 제목이 지나치게 유쾌한 듯합니다.

100화 전후로 바꿀까도 싶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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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화. 보호받아야 할 24.04.03 9 0 12쪽
84 84화. 개판 24.04.01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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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달란트 24.03.02 22 0 12쪽
64 64화. 탈출 24.03.02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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