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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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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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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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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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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수 :
65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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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6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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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3화. 날카로움

DUMMY

“안녕하세요.”


천선이 기다린 손님이기도 했다.


“그래요, 다들 별일 없었어요?”

“딱히 더 특별한 일은···. 부모님이 자리를 비운 시간이 길어져서 오히려 나오기 편해졌어요.”

“재판 때문에요?”

“네.”


도플갱어가 씌운 누명이다.

어떤 의미로는 원수라고 볼 수도 있었다.

정작 당사자에게는 와닿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올 때마다 조심해요. 어느 날 갑자기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밀지도 모르니까.”


천선은 여상스레 걱정을 표했다.


“네? 기자요? 방학까지 했는데요?”

“부모님이 경찰서랑 재판장을 오가야 하잖아요. 그럼 신변이 드러날 수도 있죠. 아무리 조심한다고는 하지만요.”

“아···.”

“범죄자 신상 정보를 괜히 보호하는 게 아니에요. 당사자한테는 아무 일 없는데, 괜히 주변인한테 불똥이 튈 수 있거든요.”


공지한다고 해도, 그걸 일일이 찾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용히 이사라도 가면 사실상 별문제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주변인에게는 아니었다.

그저 알고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관계가 파탄 나기도 한다.


“다들 연좌제에 너무 관대해요. 심지어 닮기만 해도 괴롭힘당하기 좋죠. 관상이니 뭐니 하는 말도 있으니까요.”

“관상이요?”

“네. 사회에 불만 많은 얼굴이 따로 있나 봐요.”


모두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어쨌거나 도와주려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아이가 그런 말을 꺼냈다.


“저희는 할 말 없잖아요? 아예 무관하지도 않고요.”


어쨌거나 관련자라는 뜻이겠지.

지금껏 계속 사과해왔기에, 반성이 자연스러워진 걸지도 몰랐다.


“말했잖아요. 모든 책임은 어른한테 있다고요.”

“솔직히 가혹해요. 엄마랑 아빠는 제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갑자기 방화에 휘말려서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도플갱어가 내린 복수는 그만큼이나 무심하고 불합리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경찰에 끌려가고, 비난받고 또, 사회적 생명까지 빼앗기고 말았으니.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몰랐던 것뿐인데 감옥에서 수십 년을 썩어야 한다니.”

“네, 조금 과해 보여요.”

“그런데 세상이 원래 그래요. 내가 입은 상처는 별일인데, 남한테 상처입히는 건 별일 아니에요.”


모순 같이 들리는 말이다.

결과는 중요하지만, 정작 과정은 가볍다니.


“손끝도 날카롭고 혀끝도 날카로워요. 심지어 코끝도 날카로워서, 무심한 숨에도 사람은 다쳐요.”

“잘 모르겠어요.”

“아니요, 알아요. 겪어봤어요. 그래서 상처입혀도 봤고요.”

“네? 저희가···. 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겠지.

테이에게 했던 일이 있으니까.


“알겠죠?”

“···네, 알겠어요.”

“다행이네요. 세상은 그걸 모르는 사람이 망치거든요.”


천선이 싱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마침 손님이 한 명 더 오네요.”


그 말과 함께, 모두 여우 같은 눈길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늦은 눈동자는 금세 또렷하게 당혹감을 표했다.


“···테이야?”


아담한 키와 인형 같은 얼굴, 테이였다.

방학인지라, 사복 차림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얼굴은 표정이 있는 듯 없는 듯 다소 어색하게 굳은 상태다.


무슨 용건일까?

분명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중이다.

일정 거리를 둔 채로 멈췄고, 이내 숨을 푹 내쉰다.

그러다 느릿하게 겨우 입술을 달싹인다.


“···안녕.”


인사.

당연한 소리였다.

오늘 처음 봤으니 할 만했지.

다만, 묘하게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 안녕···.”

“그···, 안녕.”

“어, 안녕···.”


뒤늦게야 정신 차리고 마저 인사를 건넨다.

낯선 상황이기도 할 터였다.

테이가 먼저 말을 걸어오다니.


무슨 상황일까?

다들 눈치를 보며 쭈뼛대고 있었다.

서로 가까워지고 싶다는 듯이 움직이다가도, 도망치듯이 멀어지기도 한다.

흔히 발만 동동 구른다고 하지.

이 모습을 보고, 작은 입술은 허망하게 달싹였다.


“···너희 정말 별거 없는 애들이었구나.”


어이없을 만도 했다.

그토록 두렵고 끔찍한 존재였는데.

아예 사람으로도 보지 않아 왔는데.

지금은 그저 소심한 애들처럼 느껴졌다.


“미, 미안.”

“잘못했어.”

“사과···, 시작해도 될까?”


그 말대로였다.

학교에서 보였던 모습을 여기서도 내비치고 있다.

인형 같은 얼굴은 이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역겨워야 하는데, 왜 웃기지?”

“그···, 테이야···.”

“진심으로 하는 얘기야.”


테이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살짝 새어 나온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그래···. 정말 별거 아닌 애들이었어, 너네···.”


몸을 돌렸다.

그리고 혼자서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그뿐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웃는 소리만이 분명하게 들려왔다.


“하···, 배 아프다.”

“······.”

“됐어,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


테이가 발걸음을 뗐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천선과 아이들이 있는 틈 속으로 걸어갔다.


“물론, 완전히 풀린 건 아니야. 지금도 약간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테이야···.”

“가끔 울컥 올라와서 화를 낼지도 모르겠어. 나도 사람인데, 생각은 나지.”


상처란, 억지로 잊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도 쓰라리다.

가끔 운이 나쁘게 스치기라도 하면 눈물이 주륵 새어 나오기도 한다.

괴로움은 그렇게나 짙고 여운이 남는다.


그렇기에 끝맺음이 필요하다.

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통만 더할 뿐이다.

어떤 형태로든 치료해서 흉터로 남겨둬야 한다.

도플갱어는 이를 복수라는 형태로 정했었지.


“그래도 용서할래. 딱 괜찮아진 만큼만.”


반대로, 테이는 이렇게 끝맺음을 정했다.

당장 통쾌함을 얻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어른이 되고 싶어서.


“···정말?”

“그래. 그러니까 친구로 지내.”

“괜찮은 거야?”

“나는 괜찮아. 오히려 너네가 문제지. 내가 가끔 신경질 내도 이해해줘야 할 테니까.”


아이들이 쭈뼛대면서 테이에게 다가갔다.

얼굴에는 차마 죄책감을 떨치지 못한 채였다.

개중에는 피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사람도 있었다.

당장이라도 울 듯이.


“나는 용서하지 말라고 했어요.”


서먹해질 것만 같은 분위기에, 천선이 끼어들었다.


“마지못해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어요. 원한다면 복수까지 도와준댔죠. 어떤 잔인한 일을 바라더라도.”

“···네?”

“여러분한테 어른 노릇 하려고 계속 사과하게 했잖아요? 테이한테도 마찬가지여야죠. 그래도 우선순위를 두자면, 가장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니까요.”


다들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평이라.

사실 이마저도 과분한 말이었다.

그저 손가락질당한다고 해도 억울하다 외치지 못할 텐데.


“용서는 오직 혼자서 내린 결정이에요. 그러니까 그 부분은 온전히 테이한테 고마워하세요. 저한테 말고요.”

“아···.”

“어차피 저는 굳이 그 부분이 아니어도 되잖아요?”


다들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테이에게 작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각자 쭈뼛대면서.


“그래요, 굳이 그 부분이 아니더라도 돼요. 앞으로 가르칠 내용도 많고요.”


천선은 주변을 보여주었다.

점차 사람이 모여들고 있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행사와 관련된 모양이다.


“나중에 어떻게 살지 걱정 많죠? 다들 어떻게든 사는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아, 네. 맞아요. 밖을 보면 나만 잘못 사는 것 같아서···.”

“‘잘못 산다.’ 그럼 성공 기준은 뭔가요?”

“그건···. 음···.”

“대부분 돈이죠?”


속물 같은 얘기다.

그 탓에 누구나 눈치를 보다가 꺼내는 얘기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어요. 눈에 또렷하게 보이거든요.”


그저 숫자.

하지만 뚜렷하게 눈에 보이며, 우열을 가리기 좋았다.

줄을 세우면 주르륵 정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잖아요?”

“네. 딱 거기까지만요. 그 이후에 중요한 건, 자기만족이고 정신 승리죠.”

“네?”

“당연하잖아요? 잘살아보려고 돈을 버는데, 정작 안 기쁘면 무슨 소용이에요.”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적게 벌어도 편한 일자리를 찾는 사람도 많으니까.

하지만 이마저도 비웃음을 당하기도 하지.


“안 와닿죠?”

“아니요, 아니요! 와닿아요!”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요. 사람이 어떻게 말 한마디로 바뀌겠어요? 꿈이니 열정이니, 아무래도 헛소리로 들리겠죠.”


천선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럴 때마다 느껴요. 한국은 경쟁 사회가 아니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았다.

이렇게 각박한 세상이 경쟁 사회가 아니라니.


“그럼요?”

“승자 독식 사회죠.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온갖 멸시가 쏟아지잖아요? 이겨낸 사람은 누구보다 여유로운 척하는데.”

“아···.”

“그러니까 다들 주저앉아버리는 거예요. 세상이 이런데, 나서면 바보죠.”


실패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건, 도전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아무도 새로움을 들고 나서지 않는다.

사회는 그렇게 점점 죽어버리고 만다.

경쟁을 경시한 대가였다.


“물론, 이런 말도 제가 성공을 보여야 할 수 있겠죠. 승자만이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요.”

“네?”

“그냥 같이 즐기고 있으면 돼요. 신빙성은 제가 드릴게요.”


천선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다들 자연스레 운동장으로 시선이 향했다.

모여든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 어느새 이 넓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미리 불렀던 안내 용역 역시도 질서를 세우느라 바빴다.


여우 같은 발걸음은 이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다.

그렇기에 몇몇은 힐끔 눈을 돌리기도 했다.

혹시 관계자인가 싶겠지.


“···어?”


그러다 놀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당장 옆 사람을 끌어당기며 뭐라고 외쳐댄다.

물론, 그건 소란 축에도 못 끼었다.

이미 서로 잡담을 하느라 시끄러운 와중이니까.


천선만 유유히 중앙에 도착했다.

시선이 온전히 모이는 장소였다.

슬슬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려는 찰나.

기다랗고 예쁜 손가락은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휙 젖혔다.


“안녕하세요?”


얼굴을 드러내고 한 마디.

곧장 돌아온 반응은 하나였다.


“······.”


정적.

놀라움에 말이라도 잃은 듯했다.

이다음 감탄사 비슷한 것이 중구난방으로 퍼져나갔다.


“와···.”

“진짜 화면이랑···.”

“겁나 잘생겼다···.”


두서없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웅성댔다.

그건 꼭 여고에서 있었던 반응과 비슷했다.

미친 얼굴은 여기서도 똑같은 파괴력을 보였다.


“반가워요. 실제로 만나기는 처음이죠?”

“···네.”

“네에···!”


미리 준비되어 있던 마이크를 집어 든다.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와 표정은, 어리숙함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몸짓은 인상과 분위기에 꽤나 잘 어울렸다.


“꺄아아아아아악···!”


뒤늦게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벌써 열성 팬이라도 생긴 듯했다.

천선은 이번엔 정말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이크 스피커가 저기에 연결돼 있나요?”


작가의말

손끝도 날카롭고

혀끝도 날카롭고

코끝도 날카롭습니다.


손톱이 길어요. 혓바늘도 낫고요. 오똑한 콧날은 아 완전 베일 뻔.


...죄송합니다 제가 미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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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화. 날카로움 24.04.16 13 0 12쪽
92 92화. 돌아온 아들 24.04.15 9 0 12쪽
91 91화. 소년병 24.04.13 11 0 12쪽
90 90화. 비디오테이프 24.04.11 11 0 12쪽
89 89화. 어머님 24.04.09 10 0 12쪽
88 88화. 천재 24.04.08 12 0 12쪽
87 87화. 복수 24.04.06 14 0 12쪽
86 86화. 도마 위 24.04.04 10 0 12쪽
85 85화. 보호받아야 할 24.04.03 9 0 12쪽
84 84화. 개판 24.04.01 12 0 12쪽
83 83화. 외모라는 컨텐츠 24.03.30 14 0 12쪽
82 82화. 오소서, 주 예수여 24.03.28 10 0 14쪽
81 81화. 요한묵시록 24.03.27 10 0 13쪽
80 80화. 종말 24.03.25 11 0 11쪽
79 79화. 정말 몰랐을까 24.03.22 8 0 12쪽
78 78화. 유기견 보호센터 24.03.21 12 0 12쪽
77 77화. 기말고사 마지막 날 24.03.19 14 0 12쪽
76 76화. 주마줌스 24.03.18 13 0 12쪽
75 75화. 안녕하세요 24.03.15 14 0 12쪽
74 74화. 목숨은 하나 24.03.12 12 0 12쪽
73 73화. 갈굼의 시작 24.03.11 10 0 12쪽
72 72화. 책임은 어른에게 24.03.05 14 0 11쪽
71 71화. 요즘 애들 24.03.05 10 0 12쪽
70 70화. 가해자와의 조우 24.03.04 12 0 12쪽
69 69화. 범죄자 옹호 24.03.04 12 0 12쪽
68 68화. 좋은 책임자 24.03.03 14 0 12쪽
67 67화. 참교육? 24.03.03 20 0 12쪽
66 66화. DJ뭐야 24.03.02 23 0 12쪽
65 65화. 달란트 24.03.02 22 0 12쪽
64 64화. 탈출 24.03.02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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