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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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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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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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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DUMMY

“어쨌든 골프장 쪽은 신경 안 써도 되겠네. 어차피 취미 생활이었으니까 말이야.”

“그럼···.”

“그래, 주변 인물 관계도에서 빼고 설명해.”


두오는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갔고, 녹호는 새로운 문서를 화이트보드에 붙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인물은 가장 목사와 가까운 신도입니다. 여러모로 예배 준비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나이 53세 여성으로, 이름은···”

“됐어, 다음.”

“알겠습니다.”


슬라이드가 다시 넘어갔다.


“두 번째 인물은 방서주 양입니다.”

“내가 직접 조사하라고 했었지? 원래 높은 비중을 차지했나?”

“그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내 지시사항이랑 과거사 때문에 우선순위를 높인 거야?”

“예, 그렇습니다.”


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주는 따로 보고서로 제출해. 다음 슬라이드.”

“알겠습니다. 세 번째는 남성입니다. 가장 많은 헌금액을 냈을 거라고 추정됩니다.”

“그래봤자, 지금 상황에서잖아. 치워.”

“알겠습니다.”

“다음 인물은···”

“치워.”

“알겠습니다.”


진도는 빠르게 넘어갔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슬쩍 보고 손을 휘적댄다.


“이제 비중이 적은 인물만 남아, 목록으로 정리했습니다. 모두 예배를 불규칙하게 오는 사람입니다. 눈에만 익혀두시면 될 듯합니다.”

“그래?”

“예. 따로 목록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마치는···, 잠깐. 저기서 세 번째.”


녹호가 손끝으로 슬라이드 위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젊은 남자 사진이 있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해. 훨씬 더 자세히.”

“그렇습니까?”

“아홉 번째, 밑에서 네 번째도 추가해.”

“아니, 그것도 모자라. 몇 명이 비는데?”


사나운 얼굴에 찌푸림이 돋아났다.

뭔가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두오가 이에 조심스럽게 의문을 건넸다.


“어떤 기준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실력 좋은 흥신소에서 가져온 자료다.

교회에 쏟는 시간과 돈을 고려해서 우선순위를 뒀겠지.

하지만 녹호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중요도를 판단했다.


“김예현도 멍청한 놈은 아니었어. 교회 과포화 시장에서 나름 성과를 올리던 인간이잖아?”

“예, 사기꾼치고는 능력이 좋은 편입니다.”

“편견 빼고 말하면, 탑 클래스 사기꾼이라는 뜻이지.”

“아···.”

“하필 재수 없게 나를 만나지만 않았어도, 연금처럼 교회를 이용할 수 있었을 거야. 당연히 그 계획도 신뢰성은 높지.”

“계획 말입니까?”


녹호는 화이트보드에 붙여둔 문서를 그러모았다.

그다음, 인물 이름을 수성 매직으로 하나씩 옮겨적었다.


“그런 인간이 설마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벌여놨을까? 당연히 어떻게 규모를 키워갈지 계획도 있었지. 서주를 미끼 삼아 신도를 모으고, 부목사를 둬서 통제력을 늘리려고 했어.”

“부목사라면···.”

“신학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이 말이야. 언젠간 수족으로 쓸 씨앗도 마련해뒀지.”


필기가 끝난 후, 화이트보드를 두오에게 밀었다.


“그대로 추가 조사해서 보고서 올려.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


천선분식.

녹호와 유송이 안으로 들어간다.


“어서오세···, 또 왔네요?”

“네, 포장하고 가려고요.”

“조금 안 먹고 가고?”

“바쁜 일이 있어서요.”

“오늘은 총각도 같이 왔네요. 그나저나 좋은 일이 있었어요? 표정이 밝네요?”


예현을 확실히 처리한 덕일까?

그 말대로 녹호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쩌면 칭찬받고 싶은 어린아이 심리일지도 몰랐다.

엄마를 괴롭히는 사람을 물리치고 왔다고.


“별일은 아니고.”

“그래요? 어쨌든 웃으니까 보기 좋네요.”

“뭐···.”

“참, 내 정신 좀 봐! 뭐 주문할래요? 재료 많이 사놨는데.”


유송은 한발 앞서 주문을 시작했다.


“김말이, 떡볶이 5인분씩 포장해주세요. 아, 슬러시도 두 잔 주세요. 가면서 마시려고요.”

“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포장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분식이 으레 그렇듯, 미리 해둔 음식을 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또 줄 게 있는데···.”

“네?”

“올 것 같아서 얼려뒀거든요.”


아주머니는 음식을 다 내어오고도 냉동실에서 무언가 가져왔다.

국물이라도 됐던 듯, 비닐봉지에 빨간 얼음이 꽝꽝 굳어있다.


“알탕이에요. 나눠 먹어요.”

“안 주셔도 되는데···.”

“저번에 봤을 때보다 말라보여서요. 고생이 많았나?”


유송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돈을 지불하고 음식을 집었다.



***


저녁.

인영과 서주가 마주 앉아서 식사한다.

하지만 정겨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무거운 침묵이 숨도 쉬기 힘들 만큼 끈적거렸다.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마저 없었다면, 공기가 있는 줄도 몰랐을 정도다.


“이모, 설거지는 내가 할게.”


인영이 입을 열었다.

그건 반쯤 화해 요청이었다.

계속 같이 지내왔던 만큼, 집안일 당번도 이미 정해져 있을 테니까.

뭐라고 대답하거나 고개만 끄덕이더라도, 지금보다는 나을 듯했다.


“······.”


하지만 서주는 아무런 말도 없이 상을 정리했다.

빈 그릇이 쌓이는 만큼 그걸 바라보는 표정도 좋지 못했다.


“이모, 내가 한다고.”

“······.”

“그냥 들어가서 쉬라니까?”


인영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그릇을 빼앗아 얼른 싱크대에 가져갈 생각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 진해서.


찰싹!


그 손길은 짧은 소리와 함께 어긋났다.

얼떨떨한 두 눈에는 차가운 얼굴과 튕겨 나간 손목이 담겼다.


“왜···.”


인영이 이해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입을 벌렸다.

호의가 거절당할 줄은, 도저히 몰랐던 모양이다.

서주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릇을 마저 정리했다.

그리고 작은 상을 들고 그대로 부엌으로 향했다.



***


새까만 외제차가 낡은 교회 앞에 섰다.

참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당사자로서는 최대한 수수한 선택이었을 터였다.

내린 사람이 다름 아닌 녹호였으니까.


“알아서 주차하고 와.”

“알겠습니다.”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본다.

보는 눈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내 열쇠로 문을 열자 어두운 내부가 녹호를 반긴다.


발걸음이 성큼성큼 강단으로 향했다.

평소에 예현이 예배할 때 쓰던 공간이다.

그 높은 기단 위에서 올라서서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아버지께서는 카인과 아벨에게 세상을 허락하셨다네. 그런데 어찌 제물을 받아들이셨을까? 그건 물건을 원함이 아니라 신앙심을 증명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라네.’


녹음 파일이 울려 퍼진다.

예현이 예배 중에 말했던 내용이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몰입해서 시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녹호는 동영상을 바라보지 않았다.

반대로, 신도가 앉을 의자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꼭 누군가가 그곳에 앉아있기라도 한 듯이.


“그래···, 눈으로 우러러보면 마음도 위치를 내어주는 법이지.”


두 눈에서 서늘한 빛이 서렸다.

바둑기사가 제가 둔 수를 복기하듯, 뭔가를 되뇌고 있었다.

오죽 집중했으면 누가 들어와도 모를 정도였다.


“녹호 씨?”

“···아, 그래.”


유송이 짐을 바리바리 들고 왔다.


“뭐야? 트렁크에 뭘 그렇게 넣어왔어?”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습니까? 당연히 식사도 필요할 테고 말입니다.”

“얼마나 잘 먹으려고? 아주 한 살림을 가져왔네.”


말 그대로였다.

캠핑이라도 온 듯, 각종 취사도구까지 챙겨왔다.

그냥 대충 먹는 게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한 상을 차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알탕 맛은 봐야 하실 것 같아서···.”

“뭐?”

“같이 먹으려고 가져왔습니다.”


봉투를 벌려서 꽝꽝 얼어붙은 국을 보여준다.

빨간 국물이 두 덩이로 나뉘어서, 한가득 담겨있다.

도플갱어의 어머니가 준 알탕이다.

분식이 아니라 따라 챙겨준 식사인 만큼, 그 의미는 남다를 터였다.


“···거기다가 두고 이리 와.”

“알겠습니다.”


유송이 가볍게 웃으며 짐을 내려뒀다.

그다음, 줄자와 수첩을 챙겨 들고선 총총 걸어갔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됩니까?”

“강단 뒤에 조명을 설치해야 해. 후광처럼 보이게.”

“알겠습니다. 전선, 백열전구···.”

“벽은 흰색으로 도배해야지. 안이나 밖이나, 깔끔하게. 울퉁불퉁한 곳은 시멘트로 메우거나 해야 할 테고.”


수첩 위에 지시사항이 빠르게 적힌다.


“따라 나와.”


녹호는 그다음 밖으로 나섰다.

곧장 교회 외곽 벽, 잘 보이지도 않는 공간으로 향했다.


“개인 주차장입니까?”


차 하나 댈 수 있는 공간만 덜렁 있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도 중고로 보이는 소형 외제차였다.

예현이 무리해서 구매할 수 있었던, 최선이기도 했겠지.


“여기 벽 세워두고 전동식으로 철문이 내려오도록 만들어야 해.”

“차고처럼 말입니까?”

“그래, 오늘 내로 말이야.”

“그럼 얇은 격벽밖에는 못 세웁니다.”

“괜찮아. 곧 훨씬 넓게 교회 하나 더 지을 거니까.”


유송이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목을 굳혔다.


“설마 본격적으로 사이비 교회를 키우시려는 건···.”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이렇게 조그만 곳에 만족하겠어?”

“운영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예현은 원수나 다름없었고, 우발적으로 죽였다.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고만 생각했겠지.

적당히 알리바이를 만드는 식으로.

녹호가 되려 규모를 키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글쎄? 저렇게 재밌는 게 많은데, 굳이 포기해야 할까?”

“예?”

“일단 숨어. 뭘 하나 보게.”


녹호는 여유로운 표정과 함께 벽 뒤로 향했다.

유송 역시 입을 달싹이다가, 따라서 그 옆에 선다.


“무슨 일입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상황인지 명확히 보였다.

키가 주욱 뻗은 여자, 인영이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디 있어요? 나와 보세요! 이모 문제로 상의드릴 게 있어서 그래요!”


교회 안에서 목사를 부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지? 교회 문은 열려 있는데.”

“······.”

“문단속을 깜빡했나···.”


하지만 별 수확 없이 물러간다.

문만 열려 있을 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송은 그 뒷모습이 멀어진 후에야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이 박인영 씨입니까?”

“어떻게 알지?”

“아···, 그게···. 선배님께 여쭤봤습니다. 녹호 씨를 보좌할 때 필요할까 봐···.”


보좌라면 보좌겠지.

그 누구보다도 녹호가 악인이 되지 않길 바라고 있으니까.

막을 수 있으면 막아설 테고, 조언을 할 테지.

물론, 당사자는 허락하지 않은 보살핌이겠지만 말이다.


“하, 그럼 다 알고 있겠네. 쟤가 어떤 앤지.”

“그렇습니다만···.”

“치워버릴까?”


녹호가 장난기 서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제나 같았다.

여유롭지만 어딘가 사나웠다.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참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설득하고 싶으면, 제대로 된 이유를 대. 인정에 호소하지 말고, 내가 뭘 손해 보게 될지 말이야.”


작가의말

진짜 더럽게 나쁜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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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욥 +1 24.01.23 52 1 12쪽
26 26화. 고래 사이 새우 +1 24.01.22 51 1 12쪽
» 25화. 사이비 목사가 될 준비 +1 24.01.19 56 1 12쪽
24 24화. 벌이가 괜찮은 사이비 +1 24.01.18 61 1 12쪽
23 23화. 가정 파탄 +1 24.01.17 62 1 12쪽
22 22화. 창세기 +1 24.01.16 62 1 12쪽
21 21화. 세뇌의 시간 +1 24.01.15 72 1 13쪽
20 20화. 독대 +1 24.01.12 76 1 12쪽
19 19화. 쥐와 고양이 +1 24.01.11 76 2 14쪽
18 18화. 없는 사람 +1 24.01.10 81 2 13쪽
17 17화. 목을 조르다 +1 24.01.09 88 2 12쪽
16 16화. 천선분식 +1 24.01.08 91 2 13쪽
15 15화. 악마를 낳았다 +1 24.01.05 103 2 12쪽
14 14화. 달동네 +1 24.01.04 9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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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의심 +1 24.01.01 11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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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장난감 만들기 +1 23.12.28 146 2 11쪽
8 8화. 탐색 +1 23.12.27 163 2 13쪽
7 7화. 도둑 +2 23.12.26 177 2 12쪽
6 6화. 배때기 +1 23.12.26 20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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