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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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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7.03 22:59
연재수 :
2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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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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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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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5

DUMMY

여느 떄와 같이, 원정대의 지휘 막사에는 카마인이 있었다.

막사에는 방금 회의를 끝내고 오늘 안건에 대하여 정리하고 있었는데, 충직한 부하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단장님. 요새 기분 좋아 보이십니다.”

“내가 말인가?”


카마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붉은 머리 남자를 바라봤다.

붉은 머리 남자는 제 7성기사단의 부단장으로. 지금은 물자를 쌓아둔 상자에 기대어 있었다.


“역시.”


부단장은 카마인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단장님은 책상보다 전장이 체질인 것 같습니다. 신전에서 온종일 찌푸렸던 얼굴이 이토록 화사하게 피신 것을 보니 말이죠.”


얼굴 앞에 꽃받침을 한 부단장을 보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카마인은 잠시 서류 정리를 멈추고 미간을 가볍게 꾸욱 눌렀다.


“그렇게 보이나? 스스로는 하루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에이, 방금 말은 꼰대 놈들이 없어서 하는 농담이죠. 저도 단장님의 심정을 백 퍼센트 공감합니다. 이 괴상한 숲은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으니까요.”

“숲만 괴상하다면 다행이겠지.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 지레 겁먹고 길을 터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말이죠.”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날에 증오와 살의를 품은 채 찾아왔던 숲의 종족들.

이후에도 숲의 종족이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습격해 올 거라 여겼는데, 어째선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동안 습격 한번 없이 얌전했다.


“물론 좋기야 좋죠. 하지만 무언가 꺼림칙하니까 단장님도 걱정하는 거잖아요?”


끄덕. 카마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뒤로 넘겼던 하늘색 머리카락도, 이제는 지저분하게 이마를 덮었다.


“우와, 대박.”

“뭐가 말인가?”

“단장님의 출신이 범상치 않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낍니다.”

“네가 생각하는 것이 험악한 잡배가 아니길 기도하지.”


험악한 잡배라는 말에, 부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 또 그러신다. 저는 어디까지나 단장님의 맹수 같은 분위기를 말한 거였습니다. 제가 출신 가지고 뭐라 할 처지가 아니라는 거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피식. 카마인은 웃었다.

부단장이 말대로 두 사람은 뒷골목 출신이다.

기사가 되기 전까지는 안면 한 번 본적 없는 관계였지만, 같은 출신의 또래가 단장직에 나란히 앉았다는 점이 마음을 터놓기에 충분했다.


“저는 최근에 우리 무뚝뚝한 단장님의 또 다른 면모에 감탄하고 있지 말 입니다.”

“또 다른 면모?”

“이번에 동행한 용사 있지 않습니까? 굉장히 애정하고 계시고 있잖습니까.”


그 말에 가만히 있던 눈썹이 단번에 찌푸렸다.

카마인은 못 들은 척 서류를 짚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단장은 예의 그 이야기를 이어갔다.


“금발에 푸른 눈은 앱솔루트 왕가의 특징이라고 들었는데 말이지요. 솔직히 그 덩치 큰 용사님 보다, 이쪽이 왕가라는 말이 더 신용 가지 않습니까?”

“용사와 일행분이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다. 책임지지 못 할 말은 삼가도록 해라.”

“에이, 또 그러신다. 그리고 이 정도도 뭐라 하시는데. 단장님도 뭐라 할 말 처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이만 정찰조가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 불필요한 잡담은 그만두도록 해라.”


‘네에~’라고 대답한 부단장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조금 전의 대화에서 꺼림직한 부분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저기요 단장님?”

“왜 그러지?”

“혹시 용사님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찌풀. 카마인이 또다시 미간을 찡그렸다. 부단장이 어느 용사를 말하는 건지 모르지만 그가 할 대답은 하나였다.


“부단장.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확실히 해라. 이중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높으신 분들만으로 충분하다.”


형식상의 이야기를 하고 다시 서류를 확인한다.

그 모습에 부단장은 입을 쩍 벌렸다.

그가 친애하는 단장은 정말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는 건 진짜 챙기는 겁니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용사의 기를 죽여놓은 사실에 기뻐하는 줄 알았거늘!

자각하지 못한 채로 용사를 대하는 거면, 대체 그가 진심으로 미워한다면 어느 정도라는 걸까.


“부단장.”

“넵?”

“내가 따로 챙겨야 하는 게 있었나? 챙긴다는 말을 무얼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부단장은 이제 쓴 웃음을 지었다.

감각도 좋고 직감도 좋은 인간이 왜 정작 머리는 저 모양인 걸까.

야영지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단장 미소 사건’을 본인만 모르는 모습이라니.

실로 안타까워서 고개를 저었다.



*****



숲에 들어오고 열흘째.

챙겨온 식량이 동나기 시작하여 슬슬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지휘부를 담당한 막사 안에는 여러 사람의 의견이 흘러나왔다.


“돌아가야 합니다, 단장님. 애초에 이런 위험한 임무에 한 개의 소대만 데려온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어떻게 돌아갑니까? 숲은 여전히 길을 알 수가 없고, 숲의 종족은 우리에게 적대적이었다는 보고만 하라는 겁니까? 그렇게 되면 제7 성기사단의 명예가 더욱 실추되고 말 겁니다.”

“제 의견도 그와 같습니다. 비록 숲은 여전히 미궁이지만 숲의 종족이 이렇게나 잠잠했던 적이 있습니까?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는 것 또한 사실. 그들이 우리의 전력이 크게 깎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소? 차라리 나는 무방비한 상황에서 검을 맞을 바에야 한 번 빠져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오.”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동나는 식량이 뼈 아픈 구석이긴 하지만, 숲에 들어와서 열흘이나 버티고 있는 것도 놀라운 성과이긴 하였다.

잘만 되면 그동안 찬밥신세였던 제 7성기사단의 취급을 바꿀 기회. 동시에 잘못 풀리면 목숨을 잃고 전멸할 수도 있는 위험한 갈림길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런 평화가 이 시기에만 있는 일시적인 일이라면 어떡하겠소?”


한 노장의 말에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마음 놓고 정찰을 계속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위험을 무릅쓰고 현 사태를 지속할 가치가 있었다.


“일단은 1교대로 이루어지던 정찰 인원을 3교대까지 늘려야 한다고 봅니다. 비록 그들의 정찰에서 불확실성이 짙게 드러나겠지만 지금은 1분 1초라도 더 많은 시도를 해봐야 한다 생각합니다.”


부단장의 의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성과를 가져와야 했다. 만약 이 방식으로도 성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무리하거나, 도망치거나인가.”


되도록 평화적으로 일을 끝낼 수 있기를 카마인은 기대했다.

회의는 여기까지였다.


“그러면 오늘 이걸로 끝내도록 하지. 정찰 인원은 부단장이 자원자를 뽑아서 만들고 기사들에게는 비전투 상황이 길어져도 정비를 게을리하지 않게 이르도록.”

“명 받들겠습니다.”


기사들이 모두 물러가고.

카마인은 피곤한 눈으로 지도를 보았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숲. 사라지는 발자취. 온갖 탐사 장비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기이한 숲에 진심으로 탄식하였다.


“저, 단장님?”


천막이 들춰지고, 익숙한 기사가 말을 걸었다.

카마인은 머리를 쓸어올린 다음 그에게 눈짓하였다.


“용사님께서 씻으러 간답니다.”


얼마 전부터 형식적으로 받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냇가로 씻으러 가겠다는 성직자의 고집을 들어준 대가로, 그는 항상 호위를 함께하게 하였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보고하도록.”

“넵! 존명!”


툭툭. 상자로 된 탁자를 두드렸다.

생각 같아서는 그가 용사의 안위를 확실히 하고 싶지만,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지휘관은 상시 대기해야 했다.


“모르는 얼굴 반, 아는 얼굴 반인가.”


카마인은 원정대 성기사들의 반이 모르는 자들이라는 사실에 쓴웃음이 나왔다.

어린 성기사들과 저의 심복들만 이번 원정에 참여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불문이다. 당장은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해라.”


스스로 꾸짖으며 피곤한 눈가를 어루만졌다.

비록 여전히 의문이 남아도 지금은 원정대에 대한 고민이 먼저였다.

점점 뚜렷하게 보이는 문제에서 애써 고개를 돌렸다.

비록 이 선택이 최악의 결과를 불러옴에도 말이다.



*****



숲의 선물. 숲의 은총. 그것들도 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숲은 때로는 어느 때보다 잔인해질 수 있다. 그것이 생명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숲이라면 더더욱.


“제기랄! 보급품을 요청하러 간 이들이 연락이 끊겼어! 단장님, 우리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탐사를 포기할 수 없기에 보급품을 요청할 인원을 보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강가에는 물고기 한 마리도 없고, 숲에는 네발짐승도, 날갯짓하는 짐승도 없습니다. 아껴두었던 식량도 오늘로 마지막이니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부단장이 결단을 재촉했다. 카마인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확실히 지금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억지로 길을 열던지, 다시 돌아가던지.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야영지를 정리해라. 이번 정찰조의 성과에 따라서 왕국으로 복귀할지 숲 안쪽으로 들어갈지 정하겠다. 견습사제들과 다른 성기사들에게도 잘 이르도록.”

“존명!”

“그리고 부단장.”

“넵 단장님!”

“네가 용사의 준비를 도와라. 한시 빨리 움직여야 하니 뒤처지지 않게 해라.”

“네, 알겠습니다!”


-톡톡


카마인은 허술한 탁자를 건드렸다. 결국에는 지도를 가득 채우는 정찰기록이 아무런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런데. 무언가 거슬린다.’


빈 막사 안을 스윽 훑었다.

부단장이 떠난 이후로 그의 직감은 연신 위험신호를 보냈다.


“단순한 기우라면 좋겠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서서히 다가오는 기분이 든다.

확인을 확실히 해서 나쁘지 않기에 지도 위의 정찰기록을 다시 살폈다.


“숲과 나무 그리고 버섯. 동물은 숲이 전부 막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쉽게 도망칠 수 없겠군.”


원정을 그만둔 때가 많이 늦은 거 같지만 대책은 생각해야 했다.

숲의 종족이 일부러 식량 부족을 계획했다면, 숲속에 며칠만 더 머물게 만드는 걸로도 원정대는 전멸하고 말 거다.

그나마 몇 가지 다행인 점은 불필요한 싸움이 없어서 상당량의 신성력을 보존하고 있다는 건데.

온전히 탈출에만 전력을 다한다는 전제하에, 입구까지 길을 열 자신은 있었다.


“역시 지금 퇴각해야 한다. 정찰대가 돌아오는 즉시······.”


생각을 완벽히 정리하기 전, 마지막으로 지도를 훑은 그때였다.


“이건···?”


카마인은 지도의 날짜 기록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직감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책상을 가득 채운 지도를 넓게 봤다.


“뭔가 이상하다.”


무언가 전제가 잘못되었다.

카마인은 지도에 표시해둔 정찰일지를 찾아서 읽었다.

마지막 정찰일지까지 읽고 나서야 그는 작은 단서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숲이 무얼 알리려고 하는가.’


카마인은 정찰일지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숲의 정찰일지에는 어느 정도 숲에 들어서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무성한 숲이 앞을 가로막던지.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하여 길을 헤매게 만드는 등 여러 방해 경험을 적어 놓았다.

그런데 항상 똑같이 보이던 정찰 1일째와 정찰 16일째의 기록. 미세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북동쪽에서 발견된 버섯이 십삼 일째부터 기록되지 않았다.”

“남동쪽에서 기록된 블러드 트리에 대한 보고가 전날에 빠져있다.”

“동쪽에 흐르던 게울 물이 삼일부터 빠져있다.”

“모든 기록은····.”


모든 기록은 한 가지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숲에 접근할 수 없게 되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오만한 너희는 스스로 종말의 길을 걷게 될 거다.


한 귀로 흘렸던 엘프의 저주.

점점 다가오는 불길한 기분이 지금껏 외면했던 의문에 힘을 실었다.


“어쩌면 숲이 우리를 막는 이유는·····.”


진실에 근접한 그때였다.


“단장님!”


카마인은 퍼뜩 고개를 들어 막사 입구를 보았다.

그곳에는 한쪽 이마가 찢어져서 얼굴을 피로 적신 부단장이 있었다.

직감 속에서 불길한 기분은 점점 더 구체적인 형태로 현실에 나타났다.


“습격입니다. 단장님.”


부단장이 불길하기 짝이 없는 현실로 그를 이끌었다.


“마족화 된 이단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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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6 22.11.29 73 0 12쪽
»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5 22.11.29 68 0 13쪽
35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4 22.11.29 75 0 10쪽
34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3 22.11.28 75 0 12쪽
33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2 22.11.28 77 0 13쪽
32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1 22.11.28 87 0 14쪽
31 30화 뒤풀이 +1 22.11.27 89 0 13쪽
30 29화 뒤풀이 22.11.26 77 0 14쪽
29 28화 뒤풀이 22.11.25 78 0 11쪽
28 27화 뒤풀이 22.11.24 80 0 9쪽
27 26화 뒤풀이 22.11.23 80 0 10쪽
26 25화 뒤풀이 22.11.22 86 0 12쪽
25 24화 뒤풀이 22.11.21 93 0 10쪽
24 23화 전야제 22.11.20 92 0 21쪽
23 22화 전야제 22.11.19 99 0 18쪽
22 21화 전야제 22.11.18 95 0 18쪽
21 20화 전야제 22.11.17 98 0 16쪽
20 19화 전야제 22.11.16 101 0 14쪽
19 18화 전야제 22.11.15 100 0 22쪽
18 17화 전야제 22.11.14 96 0 15쪽
17 16화 전야제 22.11.13 97 0 14쪽
16 15화 전야제 22.11.12 121 0 12쪽
15 14화 전야제 22.11.11 128 2 14쪽
14 13화 모험가의 활동 22.11.10 127 2 16쪽
13 12화 모험가의 활동 22.11.09 144 2 11쪽
12 11화 모험가의 활동 22.11.08 164 3 11쪽
11 10화 모험가의 활동 22.11.07 187 2 11쪽
10 9화 모험가 길드 + 외전 22.11.06 204 2 13쪽
9 8화. 모험가 길드 22.11.05 216 3 12쪽
8 7화. 모험가 길드. 22.11.04 235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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