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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5.08 23:16
연재수 :
19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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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3
추천수 :
127
글자수 :
1,46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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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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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90화 서큐버스 여왕

DUMMY

90화 <서큐버스 여왕>



“이야. 정말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캣니스 양.”


모험가 길드의 2층 방.

길드장 이카루스의 집무실.

오늘도 서류더미에 파묻혀있는 이카루스가 웃는 낯짝으로 반겨주었다.


“분명 제가 이틀 전에 연락을 드렸는데 이제야 찾아오다니 섭섭합니다.”


그가 말한 이틀 전의 일이란, 캣니스가 알렉산드로스와의 만남을 피해 칩거했던 날이었다.

예기치 못한 옛 스승과의 다툼 때문에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다행입니다. 사실 제 부탁을 새까맣게 까먹은 게 아닌지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캣니스는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부탁을 기억하고 찾아왔다기에는 양심이 콕콕 찔렸다.

아침에 바네샤가 찾아와서 시간 괜찮으면 모험가 길드로 오지 않겠냐고 부탁해서 찾아왔다.

그 말이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냈을 거다.


“저는 한밤중 골목길에서 일어난 사건을 덮느라 전전긍긍했는데 말이죠.”


이카루스는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며 한숨 쉬었다.

그가 신전과 왕국과 협력하여 덮었던 알렉산드로스와 다퉜던 일까지 문책하였다.

그 노력에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식은땀을 흘렸다.


“좋습니다. 미움받는 처지에 이렇게 얼굴 보는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다행히 긍정적으로 넘어갔다.

지나간 일에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 찾아오지 않은 건지에 대해서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이렇게 찾아온 이유가 제 말을 떠올려서는 아닌 것 같은데요?”


어쩌면 다 알고 있기에 묻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손깍지를 끼며 캣니스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제 이야기와 캣니스 양이 찾아온 이유가 같은 거 같은데. 어디 한 번 이야기 해 볼까요?”


서류를 한쪽에 치워두고 심상찮은 미소를 지었다.

이곳을 찾아온 이유마저 꿰뚫어 본 듯하였다.

그리고 말한 대로, 알렉산드로스가 남긴 말과 그가 캣니스를 불러서 할 말은 같았다.


“사천왕이 움직였다는 증거를 찾았습니다.”


캣니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확실히 중요한 정보였다.

사천왕.

마왕의 밑에서 일하는 네 명의 지휘관.

그들 하나하나가 국가 규모의 위험이며, 그들의 수하 세력 또한 만만히 봐서는 안 될 존재이다.


“최근 목격지는 가람 왕국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목격 장소는 이곳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

목격자는 셀레브리디 교단의 네 번째 칼 알렉산드로스 신부.

마왕이 죽으면서 대륙 정벌 목적이 사라진 가운데, 사천왕이 지금 대륙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확인된 신원은 서큐버스 여왕 릴리트입니다.”


심지어 싸움을 좋아하는 사천왕이 남는 것도 아니었다.

서큐버스 종족의 여왕. 사천왕 릴리트.

그 이름의 무게를 아는 캣니스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



가더 타나토스.

타나토스의 성씨를 받은 마족.

조금 강하다 싶은 마족이 타나토스의 성씨를 사용하는 가운데, 마신에게 직접 이름을 받은 흔치 않은 진짜였다.

그는 마왕의 제의에 속아 넘어가 마왕성 문지기로 노역했다가 근무지가 망하는 바람에 센츄어리 대륙으로 나왔다.

비록 마족이 타이타닉이 아닌 센츄어리에서 사는 법이 순탄치 않았지만. 운 좋게 인간 세상에 정통한 여사제를 주워서 어떻게든 적응하였다.

이후에는 편한 보금자리를 얻어서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있었다.

이 삶이 얼마만큼 편안하냐면. 대낮이 되었는데도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락한 삶이었다.


“이봐 꼬맹이.”


그런 편안한 시간에 이물질 같은 게 끼어들었다.

이불에 파묻혀있던 은빛 머리카락이 움찔 움직였다.


“더 잘래···.”


그러나 미상의 목소리는 그를 깨우기 역부족이었다.

더더욱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철야에 익숙한 그가 이토록 잠에 취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남성체의 몸이라면 밤을 지새워도 전혀 문제 되지 않지만, 여성체인 지금은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렇게 쓸데없이 잠이 많은 것도 불편한 점 중 하나였다.

항상 일상생활이 버거울 정도로 몸이 나른하며, 귓가에도 시도 때도 없이 속삭이는 소리가 있다.

그건 지금도 그러했다.


‘꺼내줘··· 먹을래···’


소리의 주체는 항상 그를 삼키지 못해 아쉬워했다.

언젠가는 그 소리의 주체에게 집어삼켜질지 모르지만. 아직 그런 걱정을 한 적이 없었다.


“흐음? 분명 꼬맹이가 맞는데?”


그런데 지금 들린 목소리는 몸 내부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그 인기척이 거슬려서 결국 잠에서 깼다.

이불을 치우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뭐야. 대체 누군데 아침부터···”


피로와 관련되어 굉장히 예민해진 상태였다.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상대방이 캣니스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기에 화를 내도 뒷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이불을 걷고 상대와 얼굴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야~ 역시 꼬맹이잖아?”


방 안에서 열은 적 없던 창문이 찬바람을 들여보냈다.

대낮의 환한 빛이 낯선 존재에게 막혀 음영을 만들었다.

그 음영 안에서 낯선 이를 바라보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상대의 손이 천천히 얼굴 쪽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예쁘구나. 머리카락도 마족답지 않게 반짝거리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는 조심성 없던 본인의 행동을 후회하였다.

대낮의 환한 햇빛이 펄럭이는 커튼 사이로 빛이 내리쬈다.

그 앞에는 센츄어리 대륙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인물이 서 있었다.


“이제는 나도 없으니, 여성으로 살기로 정한 거야?”


낯선 방문자. 즉 한 여인이 침대 위로 손을 올리며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하얀 피부를 바탕으로 검붉은색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응? 왜 그렇게 놀라? 내가 못 올 곳에 온 거야?”


여인은 간지러운 목소리로 그를 훑었다.

머리카락을 코에 갖다 대며 붉은 눈을 빛냈다.


“같이 보낸 밤이 있는데 이러면 내가 서운하지 않겠어?”


가더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안 그래도 하얗던 얼굴인데 곧 죽을 사람 같았다.

여인은 그 반응이 한심하다는 듯 웃으며, 머리카락을 놓았다.


“어머? 오랜만에 만났는데 또 도망?”


가더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침대 밖으로 뛰어내렸다.

실 한오라기 걸치지 않는 나체인데도 신경 쓰지 않았다.

본인의 방인데도 낯선 침입자와 대치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는 듯이 방문을 향해 내리 달렸다.


“젠장! 열려! 열리라고!”


그러고는 방 손잡이를 과격하게 당겼다.

그런데 어째선지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몇 번이고 손잡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문을 감싼 보라색 기운이 물을 먹는 스펀지처럼 진동을 전부 흡수했다.


“후후후. 역시 살아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답이었어.”


검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서서히 방 중앙에서 멀어졌다.

가더는 겁에 질린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왜 찾아온 거야···?”


겁에 질린 루비색 눈동자가 방 안쪽을 향했다.

그 눈동자를 바라보는 얼굴이 혀를 내밀었다.


“걱정하지 마. 딱히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니까.”


검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은 제 입술을 핥았다.

유혹하는 움직임으로 그에게 다가섰다.

곧 하얀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얼굴을 밀착했다.


“그냥 우리가 자주 나눴던 인사를 하자는 거니까.”


아무런 적의 없이 순수한 감정만 담은 목소리.

겁에 질린 눈동자에 악마의 모습이 비쳤다.



*****



-그 신부가 이번 몬스터 파도에서 힘써준 게 우연이 아니에요.


캣니스는 저택으로 돌아왔다.

몸은 저택으로 돌아왔지만, 정신은 아직 이카루스의 집무실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마왕이 죽은 현시점에서 사천왕이 움직였다는 이야기.

알렉산드로스 신부가 베인 지역까지 추격했다가 놓쳤다고 한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어요.


모험가 길드와 몇몇 정보기관들은 두 번째 전쟁 가능성을 검토한다고 한다.

과연 이 시기에 사천왕이 센츄어리 대륙에서 활동한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선생님이···’


캣니스는 스승의 지난 행적을 떠올렸다.

알렉산드로스가 그토록 과격하게 그녀를 교단의 품으로 데려가려던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하고, 언젠가 쓰임새가 필요한 일을 대비하려던 것이다

그만큼 마족과의 전쟁은 어느 부분에서라도 밀려서는 안 된다.


“어서 오게. 잘 다녀왔는가.”


정문을 열자, 브레드가 밀 포대를 들어 올리며 반겨줬다.

최근에 객식구가 많이 생겨서 식량 소비도 빨라졌다.

물론 이는 미미한 차이고 그냥 브레드가 많이 먹는 탓이 컸다.

이유야 어쨌든 캣니스는 문 앞에 쌓인 밀 포대를 바라보다가 고개 들었다.


“아이들은요?”

“글쎄. 오늘은 오지 않을 듯싶군.”


오늘은 평범한 날이지만 평소와 조금 다른 날이 될듯싶었다.

항상 몇 명은 빠져도 출석 찍듯 찾아오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새해니까 가족들과 보내지 않겠는가.”

“네? 벌써 새해예요?”


당연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놀란 반응이 돌아왔다.


“몰랐는가? 오늘이 되어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네.”


브레드는 새로이 받은 달력을 주었다.

알렉산드로스와 보낸 시간이 연말이었다는 사실에 캣니스는 충격받았다.

그녀 스스로 최근 시간 감각이 이상한 건 알고 있었지만 벌써 해가 바뀌었을 줄은 몰랐다.

어쩐지 이카루스와 헤어질 때 들었던.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던 참이다.

이제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럴 수가. 벌써 해가 바뀌었다니요.”

“이번 해는 어디 보자. 타나토스 신의 은총이 내려지는 해로군.”


해에 은총을 내리는 신의 이름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해에 은총을 담당한 신은, 사계신 중 하나인 가을의 신 아우툼누스였다.

그가 관장하는 축복은 다른 사계신과 마찬가지인 생명에 대한 은총.

유독 이번 해에 가을이 길었던 이유가 베인지역과 인접한 왕국 특유의 기온 탓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오늘 식자재 상인이 돼지 발을 주었더군. 이걸로 오늘 만찬을 만들까 생각 중이네.”

“짐승 발로 요리를요? 평범한 음식이 나올 거 같지 않은데요.”

“걱정하지 말게. 이 음식은 생각보다 평범한 측에 속하니. 이번만큼은 날 믿고 준비를 도와주게.”

“알겠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문지기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일러둘게요.”

“음. 아무래도 전갈 스튜 이후로 신용을 잃은 거 같군. 알겠네. 좋을 대로 하게. 나는 그대들의 신용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할 터이니.”


브레드는 자신감 넘치게 저녁밥을 예고하였다.

캣니스는 짧게 웃으며 이 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았다.


“아 참. 문지기님은 잠에서 일어났나요?”


이 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아직 자고 있을지 모르는 동행자의 동태를 물었다.


“적어도 내가 있는 동안에는 밖으로 나온 적이 없네.”

“그렇다면 아직 자고 있겠네요. 밥 이야기하는 김에 깨울게요.”

“그리하게. 아침에 만들어둔 샌드위치가 전부 식어서 슬픈 참이니.”


브레드는 새삼 슬픈 표정으로 농담하였다.

캣니스는 한 번 더 웃으며 이 층으로 올라갔다.


“뭐야 캣니스. 돌아왔네?”

“자일리 님도 일어나셨군요.”


방금 씻고 나와 뽀송뽀송한 자일리를 복도에서 마주쳤다.

그는 성실하다는 말에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었다.


“그야 난 여느 마법사들과 다르니까. 너희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단련해야지.”

“훌륭한 생각이세요. 이대로만 가면 조만간 마탑에서도 연락이 올 거예요.”

“에이. 거기까지는 아니야. ···그런데 너희 정말로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잘 이야기하다가 자일리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가 노심초사하는 이유는 알렉산드로스와의 만남으로 생긴 의구심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무려 교단의 주축인 팔라딘이나 되는 사람이 제자 한 명 탈선할까 봐 그렇게 화를 냈다고?”

“제가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위치라서 그럴 거예요. 저와 문지기님의 이야기가 마족과 손잡고 작당하는 걸로 오해한 거겠죠.”

“그래. 그랬겠지. 네가 보여줬던 영역은 그때 돌려줬던 성물과 연관이 있는 거고?”

“네. 제가 교단을 나올 때 몰래 챙겼던 성물이에요. 성배 형태의 성물인데 죽을 위기의 상처도 치료하고, 딱 한 번 성역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자일리는 미간을 찡그렸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는데 더 하지는 않았다.

불평이 가득한 얼굴을 원래의 거리감으로 돌렸다.


“하.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니 맞는 거겠지. 그때는 나도 정신이 없었으니 잘못 본 걸로 치자고.”


캣니스와의 대화가 질린다는 듯이 고개 저었다.

일부로 대화 안에 담긴 위화감을 모르는 척한 태도였다.

그 배려를 모를 리 없기에, 캣니스는 괜스레 죄책감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주방에 남은 샌드위치 때문에 브레드가 슬퍼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고는 머리를 헝클이며 계단을 내려갔다.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캣니스는 그가 떠난 자리에서 중얼거렸다.

혹시 목소리를 듣고 뒤돌아보지 않을까 기다렸다.

하지만 워낙 작은 목소리여서 들렸을 리 없다.

완전히 그가 사라진 모습을 보고 자리를 옮겼다.

이제는 제 방처럼 익숙해진 문 앞에 섰다.

가더의 방문 위로 손을 올렸다.


“문지기님.”


손등으로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들려올 반응을 기다렸다.


“문지기님?”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마치 이 반응은 그가 은거하기 시작했던 몇 주 전으로 돌아간 거 같았다.

스멸스멸 올라온 불안감을 가까스로 삼켜냈다.


‘설마 그럴리가.’


쓸데없는 억측이라고 여기어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이번에는 왜?’


한참 망설이다가 문손잡이를 당겨도 열리지 않았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가더와 웃으면서 내일 보자는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오늘은 방문을 굳게 잠갔다. 목소리도 들려주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 변화가 당혹스러웠다.

무언가 자신이 잘못한 게 있지 않은가 캣니스는 생각했다.


“문지기님. 혹시 선생님의 방문으로 마음 상했던 거라면···.”


방문까지 걸어 잠근 동행자의 기분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도저히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던 그때였다.


“······제발 그만···”


캣니스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가 미간을 좁혔다.

방 안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었다고 착각할만한 소리였지만,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문지기님. 무슨 일 있으세요?”


방문 앞에 서서 다시 들려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방 안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가더가 집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어디 나간 게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문지기님. 혹시 아니라면 미리 사과드릴게요.”


캣니스는 그냥 방 앞을 떠난다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다.

무려 네 번째 칼도 이겨낸 동행자이지만, 제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줄곧 그에게 도움이 될 기회를 노려왔다.

그게 만약 지금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신성력을 조율하여 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했다.

곧 물리적으로 문을 가로막은 게 아니라 어떠한 기운이 문을 막은 사실을 깨달았다.

조심스레 잠금장치를 해제한 순간, 스파크가 터지듯 두 종류의 기운이 충돌했다.


“이 기운은···!”


신성력과 강하게 반발하는 기운.

상당히 독한 마기가 담긴 마력이었다.

또한 마기에서 느낀 익숙한 기운은 옛날에도 느껴본 적 있었다.


“문지기님!”


곧장 동공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문을 가로막고 있던 사악한 기운을 몰아냈다.

캣니스는 문을 열고. 문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라? 익숙한 얼굴이네?”


그런데 다급히 들어간 캣니스를 반긴 건 가더가 아니었다.

흠뻑 젖은 얼굴을 입술로 훑는 검붉은색 머리카락의 여인이었다.


“사천왕 릴리트!”


캣니스는 소리쳤다.

상대는 사천왕 릴리트.

그녀를 칭하는 또 다른 이명인 서큐버스 여왕.

방 안에는 그녀의 이명에 걸맞은 지독한 정사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녀가 취한 만찬은 캣니스가 아끼던 사람이었다.


“뭐야. 반가운 건 알겠는데 만나자마자 소리 지르는 건 좀 아니지. 아니면 너도 달콤한 디저트가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릴리트는 혓바닥으로 젖은 입술을 닦아냈다.

자신이 아끼는 동행자가 그녀의 몸 아래에 있었다.

손과 발이 천으로 묶여 있으며, 눈가리개 밑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만남이 아닌 모습.

캣니스의 이성이 단번에 증발했다.


“그 더러운 손 당장 치워요!”


이토록 화가 난 건 용사 시절에도 몇 번 없었다.

방 안에 황금빛 신성력이 파도쳤다.

타인의 기운을 전부 몰아내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향해 단숨에 도약했다.

상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음에도 배려 따위 하지 않았다.


“어머. 데빌보어처럼 저돌적인 연인은 내 취향이 아닌데.”


손 안에 만들어낸 황금빛 창을 내리꽂았다.

하지만 검은 안개로 변한 릴리트는 유유히 침대에서 빠져나갔다.

황망할 정도로 쉽게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캣니스는 적대감을 집어넣을 생각이 없었다.


“으음. 아쉬워라. 조금만 더 먹었으면 배불리 먹었을 텐데.”


여전히 음기가 담긴 눈동자가 가더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찢어진 천이 남은 손목과 눈가리개를 푼 루비색 눈동자를 보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문지기님.”


그 노골적인 모습에 캣니스는 동행자를 등 뒤로 숨겼다.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요.”


눈웃음 안에 신성력이 넘실거렸다.

입고 있던 망토를 벗어서 동행자의 몸에 둘러주었다.

희롱당한 동행자를 등지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사천왕 릴리트.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온 거죠!”


캣니스는 창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조금 전처럼 몸을 날리지는 않았다.

당장이라도 저 서큐버스를 쫓아내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지만, 싸움이 시작될 경우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현재 자신은 릴리트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아주 약간의 시간을 버는 정도밖에 되지 못했다.

가더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만 때문에 자리를 피하지 못할 뿐이었다.


“허튼수작 부리지 말아요! 제 눈을 똑바로 보세요!”


여전히 정기를 갈취할 생각인 시선을 막아섰다.

가더와 함께 있는 2 대 1 상황이어도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상대는 사천왕 릴리트.

환각과 정신 계통 마법에 있어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고 일컫는 자가 서큐버스 여왕이다.

그녀를 상대하기에는 가더와의 상성이 좋지 못했다.

과거의 캣니스라면 모를까 지금은 힘의 격차가 뚜렷했다.


“말하세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릴 습격한 건가요!”


그렇기에 어떻게든 일분일초라도 더 시간을 끌려고 시도하였다.

그런데 돌연, 릴리트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캣니스와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이 기뻐하였다.


“그래. 사실은 말이야 하얀 사제. 항상 너와 다시 만나고 싶었어.”


하지만 그 속내는 순수한 마음과는 달랐다.

실로 서큐버스 다운 얼굴이 떠올랐다.


“과연 네가 울면 어떤 모습일지. 꼭 맛보고 싶었어. 여사제!”


방 안을 채우는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캣니스는 가더의 앞을 막아서며 주변을 경계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은 안개 안에서 릴리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장소에서 궁지에 몰렸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작가의 tmi: 사천왕은 네 명 모두 생존해 있습니다. 서큐버스 여왕 릴리트, 작은 거인 다곤, 불의 지략가 페넥스, 재앙과 멸망의 레비아탄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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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04화 불신 23.10.07 9 0 19쪽
126 103화 불신 23.10.03 10 0 18쪽
125 102화 불신 23.09.30 10 0 24쪽
124 101화 불신 23.09.26 10 0 17쪽
123 100화 불신 23.09.23 12 0 15쪽
122 99화 휴식 23.09.20 13 0 13쪽
121 외전 서큐버스 여왕 23.09.16 15 0 29쪽
120 98화 서큐버스 여왕 23.09.12 14 0 13쪽
119 97화 서큐버스여왕 23.09.09 18 0 15쪽
118 96화 서큐버스 여왕 23.09.05 19 0 18쪽
117 95화 서큐버스 여왕 23.09.01 16 0 13쪽
116 94화 서큐버스 여왕 23.08.29 17 0 16쪽
115 93화 서큐버스 여왕 23.08.23 15 0 22쪽
114 92화 서큐버스 여왕 23.08.21 20 0 13쪽
113 91화 서큐버스 여왕 23.08.18 18 0 14쪽
» 90화 서큐버스 여왕 23.08.16 21 0 19쪽
111 외전 인연의 시작 終 23.08.14 16 0 22쪽
110 외전 인연의 시작9 23.08.11 20 0 18쪽
109 외전 인연의 시작8 23.08.09 17 0 17쪽
108 외전 인연의 시작7 23.08.07 20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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