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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솥 님의 서재입니다.

화이팅 김기사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중·단편

작은솥
작품등록일 :
2023.12.04 18:41
최근연재일 :
2023.12.3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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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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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맨 땅에 헤딩하는 날

DUMMY




내일이 휴무라 오늘은 4시에 차를 입고해야 하니 일도 한 시간 적게 해 수입은 어제보다 엉망이다. 몸이 지쳐 일찍 마치고 싶었는데 차라리 1시간 일찍 들어가는 게 더 낫다.

할증시간도 끝나고 승객도 없는 시간인데 돌아다녀 봐야 몸만 축난다.


오늘 회사에 출근 전, 강남 어느 호텔에서 부동산과 관련한 대기업 관계자와 회장의 2세를 만났다. 회사의 입장은 회사 사정으로 부동산 매매 일정이 계속 늦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럼 회사 부동산매매와 연계된 부동산개발업 창업과 관련된 것은 일단 뒤로 미루더라도 공인중개사로서 내가 관여한 서울 두 곳과 인천의 그 많은 물건의 서류 작업과 부동산매매계약서를 작성한 수수료라도 지급해 달라 하니 회장에게 보고하고 연락하겠단다.


최대한 그 부분이라도 회장이 승인하면 조금 더 기다려 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 또한 전향적으로 다시 생각을 해야만 한다. 큰 기대는 않지만, 후배의 베트남 영입 건으로도 이제는 조만간 뭔가의 결론을 내야만 한다.


‘일생에 세 번의 기회가 온다’라는 말이 있다.

많은 셀럽들이 다양하게 표현한 말과 글 중에 어떤 분의 글인지는 모르나 나는 이 표현을 제일 좋아한다.


1.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첫 번째 기회라면


2.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두 번째 기회이며


3. ‘나중에 내가 후손에게 물러 줄 나의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세 번째 기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기회를 찾으려 애쓰지 말고 현재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라‘는 금언으로 나는 이해한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그때가 기회였다고 과거를 후회하는 식의 어리석은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세 번째 기회는 ‘내 삶에 대한 후손의 평가’가 되겠지.

훗날 저 세상에서 후손의 평가를 듣고 웃어야 하겠지.




** 8월 7일 금요일/오전반




새벽 4시면 아직은 취객들이 남아 있어야하는데 오늘은 사람 자체가 드물다. 회사를 출발하면서 항상 달려가는 선릉역 인근에는 승객이 아예 없다.


강남역 클럽 앞으로 이동하니, 클럽 앞 제법 넓은 이면 도로에 줄을 서 대기 중인 빈차들 옆을 어슬렁거려 운 좋게 분당 오리역을 가는 아가씨 둘을 태웠다.


밤새 놀고도 아직도 힘이 남았는지 밤새 있었던 일로 수다 삼매경이다. 오리역 인근 구미동에서 내리고, 간 길 그대로 돌아 와 다시 강남역으로 오니 벌써 5시가 넘어가며 먼동이 밝아 온다. 첫 출발은 괜찮았다.


골목을 두 바퀴 돌아 다시 젊은 친구 한 명을 태워 서울대 앞으로 가 녹두거리 골목으로 들어 가 내리고는 입구로 돌아 나오니 벌써 출근하는 듯 젊은 친구가 타고는 서울대입구역으로 가잔다.


짧은 거리지만 빈차로 가는 것 보단 낫다.

6시, 출근시간이 다가오니 강남은 의미가 없다. 이 시간대 이 근처에서 늘 하는 습관대로 방배동으로 들어 가 골목을 누비지만 역시 승객이 귀하다.


1시간을 서초구를 헤집고 다녀 단타 두 팀을 태우고 나니 7시가 넘어가려 한다. 양재역에서 탄 고객이 포이동 삼호물산 앞에서 내리고 국악고교 골목으로 들어가 개포동으로 넘어가서야 삼성역 가는 고객을 만났다.


7시 30분이 지나 출근 정체가 시작되고 삼성역에서 고객이 내리고 나니 8시인데 정체 속에 갑자기 갈 데가 없다.


정체를 뚫고 다닐 자신도 없어, 차가 줄 서있는 종합운동장 앞 둑방길을 역으로 거슬러 회사 정문으로 가니 나 같은 기사가 또 있는지 문 앞에 이미 차가 한 대 서 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향도 하나 피우고 승객을 기다리나 어차피 여기서는 이 시간에 단타 밖에 없지만 나가도 도심 방향으로는 차가 막혀 시간만 잡아먹는다.


10여분 뒤, 역시 단타 고객을 태우고 나와 오전 내 강남 지역을 동네 강아지마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단타 고객들만 태워 다닌다.


오후에도 쉬지 않고 발발이처럼 다닌 덕에 35명이나 되는 고객을 태웠다. 5시까지 근무라 1시간 더 뛴 덕이지만...


새벽에 그나마 분당과 서울대 인근을 다녀 온 게 오늘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


13시간 중노동에 수입금 170,000원으로 맨 땅에 헤딩은 면했지만 뭔가를 복기하는 소소한 재미도 없는 그냥 중노동하는 노동자의 모습으로 일을 하는 것 같은 씁쓸한 기분은 이제 어쩔 수 없다.


자꾸 생각이 많아진다.




** 8월 8일 토요일/오전반




5시에 나가자마자 선릉역 인근에서 경기도 광주 가는 고객을 태웠다. 미터기 요금만 33,000원이다. 돌아오는 길 분당으로 돌아 나왔지만 인적 자체가 아예 없다.


서울로 돌아오는 새벽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왠지 오늘은 잘 풀릴 것 같은 예감 속에 기분은 상쾌하다.


다시 돌아 온 강남이지만 이미 6시가 넘어 불금에 따른 새벽 영업은 끝난 것 같고 토요일이라 그런지 거리에 어째 사람 구경하기도 쉽지 않다.


출퇴근 승객이 없어 첫 고객이 타고부터 오전 10시 30분까지 고객이라곤 5명이 전부다. 수입은 55,000원. 새벽과 달리 어째 션찮은 하루가 될 것 같은 기분이 스멀스멀 든다.


고객이 내리고 난 광화문에서 이 동네 저 동네를 기웃거리다 결국 빈 차로 강남으로 돌아왔으나 역시 승객이 없어 회사로 들어 와 그 동안 나를 도와 준 미스김을 새로운 기계로 교체하고는 다시 나가 뛰었다.


이후 6시간동안 전부 12명을 태우고 수입은 60,000원, 오늘 하루 17명의 고객에 수입은 115,000원, 드디어 맨땅에 헤딩을 한 날이 오고야 말았다.


운행거리 248km에 영업운행이 110km밖에 되지 않는다.

그 만큼 빈 차로 시내를 발발이 같이 배회만 한 것이다.


사납금 10만원 입금하고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추가 가스비도 대략 만 원 정도는 나올 것 같은데...


한심하기 짝이 없고 온 몸의 기운이 저절로 빠진다.


마감하고 회사에서 동료들과 커피를 나누는데 다들 사납금 인상에 대한 불만이 많고, 회사의 횡포라고들 하지만 아직은 나서는 사람은 없다.


나조차 서서히 관심이 줄어들고 있으니...


불과 며칠 전에 고참이 말한 “휴가철이 끝나면 승객이 적다”라고 한 얘기가 기억난다.




** 8월 9일 일요일/오전반




어제는 초보의 진면목을 보여 준 김기사 최악의 날.


거두절미하고 오늘은 290km운행에 42명을 태웠다.

김기사 최고의 기록 41명을 넘어 ‘42명 고객 모시기’를 시현했다.


오늘은 신기하게도 일요일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강북만 넘어가면 강남으로 돌아 올 때 희한하게 연결이 잘 되었다.


비록 세 번이지만 그 효과는 엄청 크다. 강남북 왕복 3번이면 단거리 고객 최소 12팀 정도의 효과로 그 만큼 일을 편하게 신나게 했다는 것이다.


모처럼 구름이 없는 맑은 날이지만 올 여름 중에 제일 더운 아니 뜨거운 날씨 같다. 고객 중엔 그 뜨거움을 피하려고 타는 사람이 많다. 자연 단타가 많을 수밖에...


수입은 어제보다 70,000원이나 많은 185,000원을 찍었다.

고객 평균 4,800원, 그러나 강남북을 왔다 갔다 한 6팀을 빼면 평균 요금이 아마 3,500원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장거리 한 번 뛰지 않고도 일요일 오전반으로는 대단한 수입이다.


늘 일요일이면 정체되는 88대로에서 ‘도대체 저 사람들은 쉬는 날 어딜 간다고 저렇게 나왔을까?’하고 궁금했었는데 오늘은 아예 작정을 하고는 고객마다 “무슨 일로 가느냐”고 물었다.


단, 이른 아침에 클럽 인근에서 귀가하는 젊은이들과 술 내음 풍기는 이는 제외하고...

정말 군상들의 움직임은 다양하다.


누군가를 위해 사찰로 새벽 기도가는 아주머니

해가 중천인데 주청에서 퇴근하는 아주머니와 아가씨

강원도 인제 내린천에 래프팅하러 터미널 가는 청춘들

배낭 매고 산으로 가는 아저씨


동대문서 바리바리 사들고 터미널 가는 억척 아주머니

각종 시험 보러 가는 학생과 젊은이들

조조 영화 보러 일찌감치 영화관가는 젊은 부부

데이트하러 여친 남친 만나러 가는 청춘들


뜨거운 여름인데도 결혼식장 가는 하객

PC방으로 엄마를 피해 집에서 피난 가는 고교생

오전부터 경마장 가는 아저씨

11시 미사에 늦을까봐 허둥대는 성당 가는 가족


동네 교회 대신 유명 교회를 찾는 아주머니

대형병원서 퇴원해 고속터미널 가는 영감님 내외

심지어 뭔가에 쫓기듯 빨리만 가 달라는 아가씨


그 중에서 제일 많은 군상은 교회가는 아주머니들과 등산 가는 아저씨들, 그리고 데이트 가는 청춘들이다.


그렇게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다.

뜯어보면 별 것도 아닌 거 같지만 그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별 것 없는 우리들의 일상이 단지 도로에 나열되어 있는 것이지 결코 우리의 일상이 도로에 정체?된 것은 아니니 좀은 여유를 가져도 될 것 같은 일요일이다.




** 8월 10일 월요일/오전반




역시 월요일 새벽 장사가 시원찮다. 5시에 나오니 거리엔 환경미화원 뿐이다.


날이 더우니 가까운 거리만 가는 고객들만 많다.

아침 출근길에 강남에서 타고 시내 서소문에서 내린 고객이 카드로 결재한다. ‘업무용 택시비’용도가 적혀 있는 스마트카드다. 얘기로 들은 적이 있지만 처음 접하는 카드다.


관공서나 대기업체에서 차량을 줄이고 대신 택시를 이용해 차량 유지관리비를 줄이고 대중교통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만들어 진 카드인데 출퇴근 및 시내 출장 시에 사용한다.

회사나 사용자나 택시나 모두 윈윈 하는 좋은 시스템 같다.


월요일답게 출근 시간이 끝나니 승객이 없어 오늘도 발발이처럼 승객을 찾아 다녀야 하나 싶다.

어제 같이 강남북을 이어주는 그런 고객들이 어디 없나?


겨우 220km뛰었다. 31명이나 태웠지만 수입은 겨우 예전 오전반 목표금액보다 1,000원 많은 151,000원이다.

맨땅에 헤딩은 아니니 다행인가?


내일 저녁부터 모레까지 태풍 영향으로 비가 많이 온단다. 중부지방에 200mm가 예보 되었다.


마감하고 회사로 들어 와 7월 월급명세서를 찾았다.

최저임금제에 의해 고정급여를 162,000원 인상한다고 하였으나 기본급을 올리는 게 아닌 기본급과 제수당의 상승분을 모두 포함해 그 금액을 상한선으로 하여 올린다는 거였다.


당연히 최저임금 인상분은 162,000원에 못 미치는 거다.

이건 그야말로 기사들의 등골을 빼 먹는 짓이고 6월과 단순 비교해도 최소 20만원이상 소득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왜 택시 요금을 올렸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젠 그간의 많은 생각 중 하나는 매듭지어야 한다.

당연히 김기사를 이제는 접어야 하는 것이다.


모레 골프모임과 다른 일을 찾는 일로 휴가를 냈다.

그 다음 날은 휴무로 모레와 글피 8/12~8/13은 두 번째 기회를 잡기 위한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제일 먼저 대기업과 관련된 부동산 관련 일을 심사숙고하여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리고 후배 회사 영입 제안에 대해서도 매듭을 지어야 한다.




** 8월 11일 화요일/오전반




비가 온다기에 은근히 기대했건만 날씨는 덥기만 하다.

늦었지만 오후엔 예보대로 비가 쏟아진다. 그 시간엔 아예 나오는 사람이 없다. 있어도 겨우 근처로만 돌 뿐이고...


어제 월급명세서를 보고 생각을 굳힌 터에 비까지 더해지니 일하는 시간보다 차를 세우고 커피에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무는 시간이 많아 졌다.


그래서 실적은 최악은 면해 겨우 22명의 고객을 태워 수입은 118,000원, 그끄제 최악보다 3,000원이나 더 많다. 다행인가?


그것도 새벽과 이른 출근시간에 강남에서 강서구 우장산역 19,000원, 서초에서 분당 서현역 12,000원, 다시 서현역에서 을지로 입구까지 간 22,000원, 이 3팀 중장거리 고객이 전체 수입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결국 이 중장거리 고객을 제외하면 고객 19명에 65,000원 수입으로, 고객 평균 3,400원 요금인 단타만 거의 10시간에 걸쳐 시간당 2명 정도의 고객을 드문드문 태우고 다녔다는 계산이 나온다.


평소와는 달리 쉬는 시간이 좀 더 많았지만 그런다고 차 세워놓고 논 것도 아닌데 기가 막히는 택시기사의 현실이다.


아직도 초보 딱지를 못 떼 그런 거라면 택시기사 할 자격이 부족한 것이라 이제는 접으면 되고, 그게 아니고 택시기사들의 중노동 저임금의 공통된 숙명이라면 역시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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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화 두 번째 기회 23.12.30 3 0 14쪽
» 43화 맨 땅에 헤딩하는 날 23.12.29 3 0 13쪽
42 42화 이 놈들 장화는 제대로 신었나 23.12.29 4 0 14쪽
41 41화 스님이 말한 기회 23.12.28 4 0 14쪽
40 40화 이별 연습 23.12.28 3 0 13쪽
39 39화 이 여름이 끝나기 전에 23.12.27 3 0 12쪽
38 38화 사람이 경우가 있어야지 23.12.27 3 0 14쪽
37 37화 세상은 주는 대로 받는 법 23.12.26 5 0 14쪽
36 36화 서산댁 보너스 23.12.26 3 0 14쪽
35 35화 실성한 여자 쌔끈한 차도녀 23.12.25 4 0 14쪽
34 34화 요즘 여자애들 23.12.25 4 0 14쪽
33 33화 부인을 찾아 차를 찾아 23.12.24 3 0 13쪽
32 32화 산에 누우나 집에 누우나 23.12.24 3 0 13쪽
31 31화 오케스트라와 반정부 집회 23.12.23 3 0 14쪽
30 30화 여자가 아무리 좋아도 토끼 냄새는 23.12.23 4 0 14쪽
29 29화 배달택시 공짜택시 23.12.22 3 0 13쪽
28 28화 해운대 밤바다 23.12.22 4 0 14쪽
27 27화 수상한 중년 커플과 요즘 아가씨 23.12.21 3 0 14쪽
26 26화 세상은 요지경 속 23.12.21 3 0 13쪽
25 25화 나만 땡 잡은 날 23.12.20 3 0 14쪽
24 24화 일본 여인들과 박카스 아줌마 23.12.20 4 0 15쪽
23 23화 왜 다리를 벌려 팬티까지 23.12.19 7 0 13쪽
22 22화 돈 많은 남자 지금 만나는 남자 23.12.19 3 0 14쪽
21 21화 합승과 그 댓가 23.12.18 4 0 14쪽
20 20화 그냥 칼도 아닌 사시미칼 23.12.18 3 0 14쪽
19 19화 야릇한 상상 23.12.17 3 0 14쪽
18 18화 차가 아닌 말과 노는 택시기사들 23.12.17 4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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