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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곰샤 연재소설

마왕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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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곰샤
작품등록일 :
2023.05.10 15:38
최근연재일 :
2023.07.19 16:35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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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글자수 :
32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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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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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_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DUMMY

#검은산맥


길이 험하다 보니 예상보다 산맥을 넘는 데 오래 걸렸다.

무시엘에서 챙겨 온 식량이 다 떨어졌다.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건 아니다.

다들 괜찮은 대책을 생각할 때 내가 먼저 운을 뗐다.


“그나마 눈에 덜 띄는 내가 내려가서 식량을 사가지고 올까? 레온 형이 그랬잖아. 나 정도면 마족으로 오인할 만하다고.”


“처음 만났을 때 실수로 정우 공격했던 거. 이러다 평생 놀림감 되겠는걸? 하하하.

정우야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거 아니지?”


“에이, 형 아냐~ 내 눈에도 비슷해 보여서 그래.”


오며 가며 슬쩍 마주쳤을 때 보기로도 마족들은 우리 세계의 아시아인들처럼 보였다.

개개인 편차가 있다면 피부가 좀 밝기는 해도 나도 마족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야 정우야. 일단 뿔이 없는 것부터 눈에 확 띄어.

게다가 너는 마족이라기엔 피부도 하얗고, 자세히 보면 갈색 머리, 갈색 눈동자야.

마족들 눈에도 눈에 띌 거 같아. 괜히 위험 감수하지는 말자.”


“하긴. 뿔만큼은 눈에 확 띄기는 하지. 그래도 누군가는 식량을 구해와야지?

그나마 내가 낫지 않아? 그냥 로브 푹 눌러 쓰고 돈만 제대로 주면 되지 않을까?”


“... 기각한다.”


“왕세자님. 그러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 지나가다 만난 여행자나, 집으로 들어가서 빼앗을 수밖에...”


“그 수밖에 없겠지요? 동의합니다.”


“응? 여기서도 약탈은 범죄 아니야? 범죄를 저지르자고?”


“정우야. 이들은 사람이 아니야. 마족은 괴물이야. 더군다나 우리는 이들과 전쟁 중.

범죄네 아니네 그런 걸 신경 쓸 필요 없다.”


“... 아라칸 형. 그냥 돈 주고 살 방법은 없을까요? 굳이 약탈까지 할 필요가...”


“정우야. 힘 있는 자가 빼앗고, 힘없는 이들이 빼앗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야.”


“정우형 제가 봐도 지금은 약탈이 맞는 거 같아요...”


4대1

나를 제외한 모두의 의견이 같으니, 동료들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이럴 때 참 어렵다.

이들에게 내 사고방식을 강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식량을 사가지고 온다는 대안이 있음에도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선뜻 동의하기도 어렵다.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나 집을 발견하면 약탈을 하기로 결정된다.


계속 산을 타고 가다 보니, 산간벽지에 세운 꽤 고급스러운 주택이 한 채 있다.

마구간도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산속에서 동물을 기르는 집인 거 같다.

이세계에서 말과 전서구 외에는 딱히 동물을 본 적이 없어서, 어떤 동물을 키우고 있을지 궁금하다. 양이나 알파카 같은 털을 얻는 동물일까?

혹시 고라니는 아니겠지?


어느덧 어둑해진 하늘.

조심히 주택으로 다가간다.

불 켜진 집에서 ‘꺄르르’ 웃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린아이가 사는 집 같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을 약탈해 겁에 질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

한 번만 더 말해보자.


“저 주택에 가서 내가 ‘죄송하지만 먹을 그것 좀 살 수 있겠습니까’ 하면 안 돼? 금붙이 좀 쥐여주면 되지 않겠어?”


“정우야. 우리 중 마족어 할 줄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고. 돈도 다 왕국 돈이야.

누가 봐도 왕국에서 온 사람들인데, 식량을 팔 리가 있을까?

그리고 저들이 마왕국 병사들한테 신고라도 하면? 계속 추격대가 따라붙을 텐데? 그건 안돼.”


“그래 정우야. 계획대로 하자. 정 그러면 제압은 우리가 할 테니, 너는 문만 두들겨.”


똑똑.

내가 대표로 주택의 대문을 두들긴다.

일행은 집 옆쪽으로 돌아서 숨어서 은폐하고 있다.


“@#$^%$^&*~”


누군가를 기다렸는지, 꼬마 목소리로 후다닥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가족이 돌아오길 기다렸던 걸까? 꼬마 아이가 반가워하는 얼굴로 문을 활짝 연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처다본다.

너무 어린애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많아 봐야 일곱 살쯤 될까?

내가 망설이는데, 왕세자가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가, 아이 목을 움켜쥐고 아이를 단도로 위협한다.

실내에 있던 아이의 부모가 화들짝 놀란다.


“조용히 해!”


왕세자가 로브를 벗어 금발 머리와 푸른 눈을 드러낸다.

사태가 파악됐는지, 마족 부모 중 아버지가 왕국어로 말을 한다.

의외로 왕국어를 쓰는 마족이 많다.


“진정하십시오. 우리는 아이가 다치길 원치 않습니다.”


마족이 왕국어로 말한 뒤, 옆에 있는 부인에게 마족어로 말을 한다.

남편과 부인 둘 다 양손을 펼친 상태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우리는 당신과 싸울 의사가 없다. 봐라. 우리는 무기 따위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듯.

마족 남자가 무릎 꿇은 채 유창한 왕국어로 말한다.


“아이만 무사하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원하시는 게 뭔가요? 다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저항할 의사가 없습니다.”


끅. 끄윽.

왕세자에게 목을 잡힌 아이가 숨쉬기 힘든지 발버둥 친다.

마족 아이는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 검붉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부모로 보이는 저들은 뿔이 두 개씩 있는데, 아이는 뿔이 없다.

뿔은 마족의 2차 성징 같은 건가? 청소년기쯤 되면 돋아나는?

뿔이 없으니까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다.

우리 세계의 동아시아 ~ 동남아시아 쪽, 활달한 어린아이 같다.

반항하지 않는 이들에게 자식을 인질로 잡아야 하나...


자괴감이 든다.

지금까지 무장한 마족과 싸울 때는 이러지 않았다.

전쟁 중이었고. 적이라고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인간이 아닌 종족이라는 생각으로 싸우다 보니 죽이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마족의 집에 들어와서 살림살이를 보고,

가족을 꾸려서 사는 이들을 보니 그냥 뿔 달린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다.


아... 내 생각이 짧았다.

아무리 내가 마족과 싸우기 위해서 용사로 소환된 거라지만 이건 아니다.

마왕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 어린아이를 인질로 잡아야 한다고?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적극적으로 마왕 토벌에 참여하지 않았을 거다.

아니, 애당초 내가 용사가 됐을까 싶다.

이건 아니다. 생각하고 있는데, 왕세자가 마족 부모에게 물었다.


"너희뿐이냐? 부모에 아이 하나?"


무릎을 꿇고 양손을 들고 있는 마족 남자가 잠시 눈을 굴린다.

티가 확 났다. 반응을 봐서는 가족이 더 있는 듯 하다.


"네. 그렇습니다. 부탁입니다. 아이가 힘들어합니다. 숨쉬기 편한 정도만 풀어주십시오."


"우리는 먹을게 필요하다. 먹을만한 걸 모두 다 챙겨 와라."


"물론입니다. 다 드리겠습니다. 아이만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부인에게 음식을 챙겨오라고 말하겠습니다. #!%$#%%^"


"허튼짓할 수 있으니 아이를 잡고 있겠다. 부인만 보내서 가져오도록."


마족 부인이 남편의 말을 듣고 양손을 든 채 천천히 일어나 주방 쪽으로 간다.

왕세자가 고개를 까닥이자 레온 형이 마족 부인의 뒤를 따라 주방으로 간다.


"아이한테 저항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안심하라고 말하겠습니다. #!%$#%%^"


아이가 눈을 꽉 감더니, 아무것도 안 보겠다는 듯 가만히 서 있다.


"이봐 마족. 마왕성에 숨어 들어가는 방법 중 아는 게 있나?"


마족 남편이 양손을 든 채로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 생각이 났는지 대답한다.


"마왕성. 수도에서 식당 하는 친구에게 들은 적 있습니다.

북동쪽 성벽에 쪽문이 있는데, 거기를 통해 야간 근무자들에게 음식을 배달한다고.

그 외에는 모르겠습니다."


"오. 꽤 쓸모 있는 정보군. 고맙다."


그사이 부인과 레온 형이 주방에서 음식을 챙겨서 나온다.

가방이 가득 찼는지 엄청 빵빵해 졌다.

레온형이 살짝 열어 빵과 채소, 고기 등을 보여준다.


"식량 가져왔습니다. 남김없이 챙겼고, 주로 빵과 육포, 채소들입니다."


마족 부인은 저항할 생각이 없다는 듯, 남편 옆에 다시 무릎 꿇고 앉는다.

아... 저들에게는 이게 무슨 날벼락일까.

내 집에서 내 생활을 평범하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쳐들어온 이들이 아이를 위협하며 식량을 빼앗아 간다.

끔찍한 하루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나 먼저 문으로 향했다. 가자. 이만 돌아가자.

그때, 아라칸 형이 나직하게 말한다.


"죽여"


나는 진심으로.

이 타이밍에 마족 가족을 죽이라고 할 줄 몰랐다.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정말 고개 돌리는 그사이에.

그랑도, 컬버도, 레온 형도. 마족 아이와 부부의 목을 그대로 베어 버렸다.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어 버린 실내.


약탈에 살인이라니!

내가 약탈에 살인을 저지르다니!


후우... 진정하자.

아니. 아니야. 나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지금 여기 죽은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마족이고 괴물이고 적이다.


아니 씨발.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그렇지, 사람을 이렇게 쉽게 죽여도 되나?

나는 이세계의 사람. 이쪽 세상의 법률과 상식에 적응해야 하는 건 나다.

내가 살던 세상의 법과 원칙, 상식을 이들이 배운 적도 없고,

다수가 소수에게 맞춰 줘야 할 의무도 없다.

이들이 이게 맞다고 하면 이게 맞는거다.

좋게좋게 생각하자.

빨리 마왕을 죽여야 나도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지.

내 목적을 달성하는 것만 생각하자.

그래. 마족은 인간이 아니고, 지금은 전쟁 중이다.

괜히 양심과 도덕성 찾겠다고 마왕군에게 추격을 당하면 안 된다.

마왕 암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왕국만 멸망하는 수가 있다.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전쟁에서 이겼다며 기뻐서 눈물 흘릴 왕국 사람들을 생각하자.


아. 전쟁이란 게 이런 거구나.

내가 봐왔던 수많은 영화와 소설, 만화들은 적을 너무 쉽게 죽였다.

바로 눈앞에서 이유 없이 어린이가 죽는 모습을 보고서야,

내가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법과 검술이라는 힘에 취해, 내가 잔인한 인간이 되고 있는거 아닐까?

무시엘 수복 때 공로를 세웠다고 뿌듯해한 나 자신을 쥐어패고 싶다.


왕세자의 지시에 정신을 차린다.


“목격자나 숨어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번씩 확인하고 이동하자.

그랑은 흙 마법으로 뒤뜰에 구덩이 파고, 물 마법으로 실내의 핏자국 정리하고.

레온은 시체를 집에서 꺼내 구덩이에 넣어주게.

나와 정우, 컬버가 주변을 훑도록 하지.”


왕세자의 지시에 다들 신속하게 움직인다.

혹시 있을 수 있는 목격자와 숨어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집 여기저기를 뒤진다.

집 2층과 지하실. 각종 가구와 서랍 등.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곳은 모두 열어본다.

집은 다 뒤진 거 같다.


밖으로 나가서 마구간으로 간다.

털이 수북한 양들이 수십 마리 있다.

양은 마구간에 들어온 내게는 관심 없다는 듯 마구간을 돌아다닌다.

구석에 수북이 쌓인 볏짚에 가까이 가니 볏짚이 알아서 무너진다.

그 틈에서 사람의 눈동자가 보인다.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의 소녀가 볏짚 속에 있다.

동물과 놀거나 여물 같은 걸 주려고 들어왔다가,

실내에서 들리는 소란한 소리에 숨은 거 같다.

아... 난 진짜 어린이는 못 죽이겠다. 못 본 척하자. 그래. 다들 모를거다.

최대한 작게 아이에게 말한다. 왕국어를 몰라도 문맥만이라도 이해하길 빌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네게는 정말 미안하다. 가만히 있어야 살아남는다. 그냥 그대로 있어.”


아이가 안 보이게 볏짚을 더 두껍게 덮어준다.

마구간 밖으로 나가니 일행들이 모여있다.


“정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뭐 있어?”


“아뇨. 아무것도 없었어요. 가시죠”


“... 내가 다시 보겠다. 넌 여기서 기다려”


"..."


왕세자가 마구간으로 들어간다.


“아라칸 왕세자! 그냥 가자니까!”


레온형이 내 손목을 꽉 잡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꺄악”


소녀의 비명이 들리고, 얼굴에 핏자국이 묻은 왕세자가 밖으로 나온다.


“이만 이동하자”


씨발. 멘탈 털린다.

끽해봐야 초등학생밖에 안 될 얘들을 죽여야 했냐?!


씨발. 미안하다.

용서해라.


나도 전쟁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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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 레벤토 아르카디아 23.06.07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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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 제국 백화점 +1 23.06.05 21 0 12쪽
27 26. 제국구경 23.06.04 21 0 11쪽
26 25. 용사 안 할건데요? 23.06.03 18 0 13쪽
25 24. 용사 제국 적응기2 23.06.02 16 0 11쪽
24 23. 용사 제국 적응기1 23.06.01 15 0 11쪽
23 22. 용사 장예서 23.05.31 16 0 12쪽
22 21. 2장. 제국 용사 소환 +2 23.05.30 16 0 12쪽
21 20. 귀향 +1 23.05.29 21 2 14쪽
20 19. 마왕 로드워터2 +2 23.05.28 23 1 12쪽
19 18. 마왕 로드워터1 23.05.27 19 1 12쪽
18 17. 마왕성 습격 23.05.26 21 0 12쪽
17 16_ 흔들릴 때가 아니야 +2 23.05.25 25 3 15쪽
» 15_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1 23.05.24 31 0 12쪽
15 14_ 마왕성으로2 23.05.23 30 2 17쪽
14 13_ 마왕성으로1 23.05.22 24 2 16쪽
13 12_ 무시엘 공선전3 23.05.21 22 2 15쪽
12 11_ 무시엘 공성전2 23.05.20 27 2 15쪽
11 10_ 무시엘 공성전1 +2 23.05.19 29 1 17쪽
10 9_ 용사 출정 +2 23.05.18 29 2 15쪽
9 8_ 왕도 외출 23.05.17 29 1 14쪽
8 7_ 용사 준비 완료 23.05.16 30 2 16쪽
7 6_ 용사의 특별함 23.05.15 30 2 24쪽
6 5_ 용사훈련 23.05.14 32 1 24쪽
5 4_ 궁금증 해결 23.05.13 35 1 16쪽
4 3_ 용사 테스트 23.05.12 35 1 15쪽
3 2_ 용사 한정우 +2 23.05.11 42 1 22쪽
2 1부 1_ 왕국 용사 소환 +3 23.05.10 78 2 13쪽
1 0_ 프롤로그 +2 23.05.10 136 4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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