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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곰샤 연재소설

마왕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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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곰샤
작품등록일 :
2023.05.10 15:38
최근연재일 :
2023.07.19 16:35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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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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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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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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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6_ 용사의 특별함

DUMMY

* * *

# 아일레로. 마지쿠스 가문 별장. 훈련장.


본격적으로 검술을 배우기 시작한지 어느덧 한달.

나도 이제는 검술에 제법 익숙해졌다.

평소처럼 레온형이 시범을 먼저 보이고, 따라서 장검을 수백 번을 휘두른다.


“팔을 더 들어 올려. 옳지. 그대로 빠르게 휘둘러. 더 빨리!”


레온형은 마나의 흐름에 관해서 설명하는 건 완전히 꽝이었지만, 몸을 움직이는 타이밍이나 자세, 힘 조절 등에 대해서는 꽤 잘 가르쳤다.

게다가 형이 노력하기도 했고. 내가 형한테 익숙해진 것도 있어서, 형이 두리뭉실하게 설명해도 이제는 눈치껏 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

나 스스로 배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걸 깨달을 정도였다.


검술훈련의 마지막 루틴은 레온형과 목검으로 하는 대련.

오늘도 평소처럼 목검을 집으려는데 레온형이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정우야. 이제 검술 배운지 한 달쯤 됐던가?

검 휘두르는데 많이 익숙해졌지?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대련해 보자.”


레온형이 평소에 쓰던 목검이 아니라 진검을 두 개 가져왔다.

하나는 내게 던져주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이 꺼낸다.

스릉.

내가 검을 평가할 수준은 못 되지만, 레온형의 검은 색이 시커먼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등줄기가 쭈뼛 선다.


“아니 레온 형. 내 실력에 무슨 본격적인 대련이에요? 아직 멀었구먼. 게다가 이 검은 또 뭐야. 어디서 나온 거예요?”


“검이나 뽑아봐.”


으쓱.

레온형이 시키는 대로 나도 검을 꺼내 본다.

레온 형이 쓰는 것과 같은 시커먼 검날을 가진 검.


“그래도 명색이 용사인데, 아무 검이나 쓰면 안 되지. 마지쿠스 공작님이 구해주셨다.”


“그랑이요? 역시 날 챙겨주는 건 그랑 밖에 없군. 고마운 녀석!”


내가 마음에 들어 하며 검을 살펴보는데, 레온형이 피식 웃는다.


“하하하. 방금 웃겼다. 아니. 교수님 아버지. 피에트 마지쿠스 공작님.”


피에트? 그랑의 아버지 성함이 피에트였구나.

날 소환한 장본인 중 한 명이라는데 정작 아직까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희귀 금속으로 주문 제작이라도 하지 않는 한, 이보다 좋은 검을 구하기 쉽지 않을 거야. 명검을 얻기 전까지 쓰기에 좋을 거다.

정우야. 진검 대련이니까 조심하자고. 치명상이 될 수 있는 얼굴, 심장, 급소는 공격 금지!

뭐, 회복 포션이 있으니 죽을 일은 없겠지? 다친 후 먹거나, 상처에 뿌리면 된다.”


레온형이 말을 설명해주면서 빨간 액체가 들어있는 유리병을 꺼내고 몸을 푼다.

나도 손발을 털면서 몸을 풀었다.

둘이 거리를 벌린 채 서로를 마주본다.


“자, 그러면 한번 붙어보자”


“후우... 진검 대련이라니까 되게 긴장되네. 형. 시작하죠.”


“그래. 시작!”


레온형이 검을 대각선으로 든 채 내게 천천히 걸어온다.

방어를 염두한 자세.

선공은 내게 양보할 생각인가 보다.

그럼 가볍게 시작해 볼까.


챙.

검을 힘껏 내려쳐서 서로의 검이 붙은 대치상태가 된다.


“탐색전이야?”


“시작은 탐색전부터죠. ㅎㅎㅎ”


힘으로 누르려 했지만, 역시 힘에서는 내가 밀린다.

이대로는 안 된다.

서로의 검이 맞닿은 상태에서 레온 형의 바깥 발을 걷어찬다.

레온형이 움찔하기는 하지만 버텨낸다.

다리를 걷어내 균형을 잃고 넘어트리려 한건데 타격만 주고 말았다.


“오! 뭐야 그 발차기는? 넘어트리려고 한 건가? 역시 전투 센스가 있다니까.”


“응? 형 나한테 뭐 부탁할 거 있어요? 갑자기 칭찬하니까 무섭네.”


정석으로 서로의 검이 부딪힌다.

챙챙챙.

수차례 막아냈지만, 검술이 떨어지는 내가 점차 밀리기 시작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뒤로 뛰어서 거리를 벌리고, 다른 대응 방법을 모색한다.


레온 형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 채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린다.

전형적인 상단 찌르기 자세.

각오하라는 듯 친절하게 경고 해준다.


“간다.”


이건 분명히 찌르기다.

레온 형이 찌르기를 해 오면 피하면서 옆구리를 발로 차버리고...


푸욱.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레온형이 점멸로 내 앞으로 나타났다.

레온형의 머리가 내 배꼽 정도에 올 정도로 굉장히 낮은 자세.

상단 찌르기는 내 어깻죽지에 관통했다.

무의식적으로 휘두른 내 검은, 레온형의 어깨너머의 허공을 가르고, 팔꿈치가 레온형의 어깨 쪽에 부딪혔다.

자신의 어깨와 등 쪽으로 상대방의 검을 흘려보내고

낮은 자세에서 찌르기 공격을 하는 기술이었다.


“크악! 졸라 아프네... ”


“와! 여기에 반응하다니. 한정우 너 진짜 용사구나?! 조금 전 내 기술 보고 반응해서 허공을 밴 거지?”


검을 땅에 꽂아 놓고 어깨를 부여잡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아파 죽겠는데, 레온 형은 내가 반응한 자체에 감탄하나 보다.

허공을 갈랐는데.

대련은 내 패배로 끝났다.


후우. 후우...

관통된 어깨의 아픔에 눈앞이 핑 돌았는데, 가만히 있으니 아픔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다.

생각보단 참을 만하다. 어깨를 부여잡고 회복 포션으로 걸어간다.


“공격 범위 안쪽으로 파고들어서, 어깨랑 등으로 상대방의 공격은 흘리고, 찌르기로 공격한 거잖아요. 이동은 점멸이고. 아니에요?”


“제대로 봤네. 내 필살기 중 하나야. 너보다 강한 적을 상대할 때 큰 도움이 될 거야.”


“필살기? 확실히 갑자기 점멸을 쓸 거라고 생각은 못 했지만...”


내가 납득을 못 해서 갸웃거리자, 레온 형이 자신의 어깨를 가리킨 후, 그대로 옆으로 옮긴다.

목젖 바로 아래를 가리키는 손가락.


“예고 없이. 목을 꿰뚫는 일격필살.”


그러네. 목이 뚫렸으면 그냥 죽는거다.

레온형이 날 많이 봐줬네. 어깨를 찔러주다니.

순간이동 하듯 갑자기 나타나 목에 검을 찔러 넣는데, 막을 수 있는 실력자가 몇이나 될까.

필살기라고 할 만하다.


“기술 이름은 뭐예요?”


“낙명. 멋지지? 하하하”


‘목숨을 떨어트리겠다’라. 이름값 하는 기술이다.

다만, 나는 아파 죽겠는데 좋아하니 얄밉다.

포션 뚜껑을 열어 상처에 뿌린다. 치이익.

포션이 상처에 닿자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순식간에 상처가 아문다.

상처 입은 어깨 부위를 붕붕 움직여본다. 아무렇지도 않다.

우와~ 이 포션 엄청 좋네. 고급 포션인가 보다.


“어후. 포션 바르니까 살 거 같다.”


“괜찮아? 그러고 보니 상처는 어때? 좀 보자. 어? 뭐야? 상처는?”


“응? 약 발랐잖아요? 없어지던데요?”


“회복 포션이 어떻게 상처를 없애? 회복 속도를 빠르게 해 주는 건데?”


레온 형이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응? 그런거야?


아! 뭔지 알 거 같다.

어쩐지! 술이 쌔 진 것도 그렇고, 대한민국에 있을 때랑은 몸 상태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용사로 이세계에 소환된 지 약 9개월.

나는 이제서야 용사 소환의 특전을 알아낸 거 같다.


레온 형에게 미안하지만, 용사의 특전이 뭔지는 말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내가 받은 용사 소환의 특전이 무엇인지 예상은 되지만, 당장은 숨기는 게 좋을 거 같다.


“회복 포션이 회복 속도를 촉진해 주는 거예요?

아~ 그럼 용사한테는 회복 포션의 약효가 추가로 버프 되나 보다!”


“회복이 버프?!”


“형 봐봐요. 회복 포션의 효과가 회복 촉진이라면서요?

사람마다 치료되는 속도가 다를 건데, 그걸 버프 시키는 게 회복 포션이라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남들은 회복 포션을 쓰면 회복 속도가 1배 빨라지는데, 저는 용사라서 같은 포션이어도 2배의 효과가 나오는 거죠. 더 빠른 회복력이 발휘되게.

회복이 훨씬 빨라진 덕분에, 상처 하나 안 남고 순식간에 싹~!”


“아~! 그런 건가! 그러네! 관통된 상처가 약을 바르자마자 치료될 정도면...

정우야! 너는 남들보다 목숨을 추가로 가지고 있는 거랑 다를 바 없겠는데?!”


“에이~! 그 정도는 아니죠. 검에 찔렸다고 안 아픈 것도 아니고, 안 다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 회복만 빨라진 거지. 그게 무슨 여분의 목숨이에요.”


“아니지! 관통상이 한 번에 사라질 정도의 회복력이야!

그렇다면, 진짜로 죽지만 않으면 회복 포션으로 다 회복된다는 이야기잖아?

흉터가 남을 일도 없겠다 더 과감하게 훈련해도 되겠네.

과감하게 훈련하는 만큼 실력도 금방 늘 거고~ 실력이 늘수록 죽을 일은 줄어들겠네!

이건 대박이야! 내일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훈련하자고!”


레온형이 나보다 더 좋아한다.

내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믿은 거 같다. 다행이다.

어쨌든 오늘의 훈련은 이걸로 끝.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레온형이 씩 웃으며 말한다.


“정우야. 형도 이만 간다. 내일 보자고. 내일부터는 관통으로 안끝난다?”


쾅.

문을 닫고 가버리는 레온 형.

응? 형? 나를 합법적인 샌드백 취급하는거 아니지?

검에 찔려도 안 아픈 건 아니라니까?


*


내 방에 들어와서 상의를 벗고 맨몸으로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꾸준한 훈련으로 근육질이 된 내 모습.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건장해졌다.


어쩐지!

솔직히 계속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꼭 웹소설이나 웹툰을 예시로 들지 않아도 이상한 이야기다.


다른 세계의 사람을 ‘용사’라고 소환마법으로 불러낼 거라면, 특별한 점이 있어야만 한다.

능력적으로 특출난 사람을 부르던가, 특별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던가.

용사를 부르는 ‘목적’에 맞는 사람을 부르는 게 맞다.

혹시, 평범한 사람이 용사로 소환된다면 어떤 숨겨진 능력이 소환되면서 손에 쥐어져야만 한다.

그런 ‘특전’이 있는 게 이치에 맞다.

그러지 않을 거면 왕국 사람 ‘아무’와 차이가 없을 텐데 뭣 하러 용사소환의식으로 사람을 불러오겠나.


그런데 용사로 소환된 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나는 항상 그게 이상했다. 분명 ‘뭔가’가 있는데.

나한테도 특별한 능력이 있을 게 분명한데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무엇인지도 모를 형체가 없는 ‘뭔가’에 매달릴 수 없었기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이세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하니까 ‘언어’를 공부했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마법’을 내 잠 줄여가며 배우는 중이다.

이 세계에서는 마법만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길래 ‘검술’도 내 몸 다쳐가며 배우고 있다.

나름의 성과를 보고 있고, 성장하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뭔가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분명히 ‘특전’으로 뭔가 받은 게 있을 거였다. 내가 모르는 거지.


그리고 나는 오늘 내가 받은 ‘특전’이 무엇인지 눈치를 챘다.

‘회복능력’


만일을 대비해 챙겨온 회복 물약을 꺼내 거울 옆에 놓는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흉터가 남으면 남들 눈에는 ‘자해’ 하는 거로 보일 수 있으니, 옷에 가려지는 어깨 쪽에 자상을 낸다.

따끔하다.

시간을 재면서 유심히 관찰한다.

피부 표면에 생긴 얕은 상처는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피가 그치고 점차 아물기 시작한다.


하하하. 이걸 왜 이세계에 온 지 9개월이 넘은, 이제서야 알았을까!

어쨌든, 이젠 확실해졌다.

나는 이세계로 온 이후, 평범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면 좀 더 세게.

단검을 어깻죽지를 찔렀다가 뺀다.

크윽. 아프다.

피가 꿀럭꿀럭 흐르다가 점점 멈춘다. 계속 보고 있으니, 느리기는 해도 상처가 회복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약 10분쯤 만에 관통상 하나가 매워졌고 30분 정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파이어 볼”


시동어를 외워서 내 팔을 향해 마법을 사용해 화상을 낸다.

크흡. 새빨개진 피부. 물집이 생기려는지 표피와 진피 사이 피부가 점차 벌어진다.

놀랍게도 그 이상 악화하지 않는다.

붉어진 피부가 점차 가라앉고 수포도 점점 소멸한다. 한 10분 걸렸나?

자상, 관통상, 화상도 회복했다. 더 확인해 볼 것도 없다.

피부에 나는 상처는 모두 회복될 거다.


문제는 지금부터지.

이 회복능력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만약 손가락이 잘린다면? 잘린 부위에 가져다 대 놓는다고 붙을까?

손가락이 붙었다고 팔목이랑 다리도 붙을까?

그럼 목은?

마음 같아서는 실험해 보고 싶기는 하지만, 호기심 때문에 손가락 한 마디를 잃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물며, 팔목이나 다리를 가지고 실험할 수는 없지.


이걸 왕국이 알면 어떻게 나올까 생각해본다.

레온형의 반응을 봐서는 훈련 강도를 올리는 건 확정인 거 같고...

어쩌면, 유명 만화들과 같이 슈퍼솔저 프로젝트 같은 게 시작돼서 ‘불사의 군단’ 이나

진시황처럼 ‘영생’의 비밀을 찾아내겠다고 날 가지고 인체실험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내 신체를 토막 내서 붙는지 확인부터 하겠지?

용사 특전은 최대한 비밀로 하는 게 좋다.


레온 형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둘러대길 정말 잘했다.



* * *

#아를레로. 마지쿠스 별장. 인근 호수


“허억... 허억... 정우야. 뭘 보여주려는지 모르겠지만, 꼭 여기까지 와서 보여줘야 해?”


“그랑. 진짜로 보여줄 게 있어서 그래. 거의 왔잖아. 조금만 더 가자”


그랑 마지쿠스가 나를 따라서 호숫가까지 걸어왔다.

평소 책상에만 앉아 있는 녀석이라 그런지, 꽤 오랜 시간 우둘투둘한 길을 걸으니 숨차서 죽으려고 한다.

목적지였던 호숫가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땅바닥에 ‘아이쿠야’ 하면서 주저앉는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는 사제의 예가 어쩌고저쩌고 거리면서, 귀족의 품위, 체면, 예절 같은거 엄청나게 따지던 놈이 지금은 허당이 되어버렸다.


물론 나는 지금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그랑이 좋다.

저 꽃미남 얼굴로 하는 짓이 빙구 같아져서, 나중에는 콧물 묻히고 다닐까 봐 그러지...

나 때문에 멀쩡했던 얘가 망가지는 거 같아서 찔린달까.


“정우야~ 그래서 뭘 보여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뭐겠어. 내 마법 연구의 결과지. 흐흐흐”


“너희 세계의 지식과 결합하면 마법을 강화할 수 있다던 그거? 이제 연구 끝난 거야?”


“끝난 건 아닌데. 너한테 자랑할 정도는 된 거 같아.”


“하나도 안 놀랍기만 해봐. 가만 안 둔다. 진짜.”


“어쭈? 놀라면 어쩔래?”


“그건 욕심이야. 쉽지 않아. ㅎㅎㅎ”


“어쭈? 아~! 니가 날 스승님으로 모시면 되겠네. 어때? ㅋㅋㅋ”


“푸하하하. 정우야. 니가 마법에 소질이 있는 건 인정하는데, 왕국 역사상 최고의 마법 천재 소리 듣는 나도 8서클 대마법사까지 도달하는 데 15년이 걸렸어.

그런 나도 마법을 발전시켰다고 할 만한 연구결과는 아직 없고.

너는 마법 배운지 몇 달밖에 안 됐잖아. 마법의 새 지평을 연다는 건 욕심이야.”


“ㅋㅋㅋ 그랑. 혓바닥이 기네. 쫄?”


“쫄? 그게 뭐야?”


“쫄았냐고.”


그랑이 쫄았냐는 내 말에 벌떡 일어난다.

캬. 역시 K어그로. 그랑이 씩씩거리며 소리친다.


“우씨! 콜. 내기해! 내가 놀랄 만큼, 마법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연구가 맞다면, 앞으로 나 그랑 마지쿠스가 용사 한정우를 마법 선생님으로 모신다. 아니면? 아니면 어쩔래?”


“그럼, 나도 선생님으로 모시지. 뭐~ 캬캬캬. 그랑 약속한 거다!?”


“한 입으로 두말 안 해! 보여줘 봐.”


그랑이 경직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본다.

팔짱을 낀 채 꼿꼿이 서 있는 자세와 굳게 다문 입 매무새를 보니 ‘나 결심했다’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음... 반쯤은 장난이었는데. 일 커진 거 아냐?

뭐... 괜찮겠지?


“그랑. 너도 알다시피 내가 너한테 5서클 마법까지밖에 못 배웠잖아. 그치?

그럼 내가 지금부터 보여주는 마법들이 5서클 수준을 넘어선다면, 마법이 강화됐다고 볼 수 있겠지? 네가 보고 나서 객관적으로 평가해줘. 마법이 강화되고 있는지 아닌지.

나는 이 마법들을 편의상 ‘혼합마법’이라고 부르고 있어.

다칠 수 있으니까 뒤로 물러나.”


그랑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뒤로 물러서고, 나는 호숫가 옆으로 간다.

그랑을 바라보면서 호수 위로 마법을 시전한다.


“일단 가장 기초적인 강화부터 보여줄게. 파이어 볼”


시동어를 외우자, 내 손위에 화염구가 만들어진다.

호수로 발사하면서, 2서클 마법인 파이어 볼에 5서클 수준의 강한 마력을 때려 넣는다.


“그리고, 이렇게 강화를 해”


파이어볼이 날아가면서 파이어 익스플로전처럼 크기와 범위가 변하며 펑 터진다.

그랑의 눈썹이 살짝 꿈틀하지만, 원래 알고 있다는 듯 입을 연다.


“마법이 시전된 상태에서 마력의 양을 늘렸네? 확실히 마법이 강화됐어.

파이어 볼을 시전했는데, 마치 파이어 익스플로전처럼 됐네.

하지만, 이런 건 마법 아카데미 학생들을 가르칠 때 시도 때도 없이 볼 수 있어.

언제? 연습이 부족해서 실수할 때.

우리는 이런 것을 수련 부족이라고 해. 이게 끝인가?”


역시 아르카디아 왕국의 천재 마법사.

파이어볼을 발사할 때 마력의 양을 때려 넣은 것을 알아보았다.


“에이~ 가장 기초적인 거라고 했잖아. 아직 더 보여줄 게 남았다고. ㅎㅎㅎ

조금 전에는 네 말대로 마력의 양을 더 늘려서 마법을 강화한 경우였어.

그리고 이번에는. 파이어 볼.”


내 오른손에 화염구가 생긴다.


“그리고. 윈드 프래셔. 볼.”


왼손에 작은 회오리바람이 생겨난다.

내가 ‘볼’ 이라는 시동어를 외우자, 기존에 생겨났던 회오리바람이 바람이 구슬처럼 뭉친다.

그랑이 살짝 놀란다.

윈드프래셔 마법을 공 형태로 형태를 바꾸는 것은 내 오리지널 개발이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파이어 볼’ 마법에서 ‘볼’ 부분만, 응용한 거라서 어려운 건 아니다.

그랑은 아마도 내가 마법 공식을 벌써 단락별로 쪼개서 응용했다는 것에 놀랐을 거다.


“그리고, 윈드프래셔 위에. 파이어 볼을 올리면”


왼손을 호숫가를 향해 앞으로 내민 채로 파이어 볼 마법을 가져다 댄다.

콰아앙!

두 마법이 시너지가 나면서, 내 앞으로 화염방사기처럼 불기둥이 방사된다.

태울 게 없는 호수 위에서 사용했으니 망정이지.

숲에다가 시전했으면 큰불이 났을 거다.


“이렇게, 전혀 다른 마법이 돼. 어때? 내 혼합마법.”


그랑이 순수하게 감탄한다.


“오! 이건 좀 신선하네. 마법 두 가지를 각기 시전한 다음에 합치다니.

게다가 두 가지 마법이 시너지가 나면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마법이 되었어.

하지만! ‘파이어 볼’ 마법도 엄밀히 말하면 ‘파이어’ 마법을 ‘볼’ 마법으로 감싸서 화염구 형태가 되게 묶어 놓은 것.

‘윈드프레셔’ 와 ‘파이어’ 마법 두 가지 마법을 함께 사용하면 시너지가 난다는 새로운 발견을 한 건 맞아. 이를 응용하면 새로운 마법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그건 사실이고, 마법 경력을 생각하면 대단하지만.

마법의 새 지평을 열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내 솔직한 소감이야.”


하~ 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랑 이자식은 너무 칭찬에 인색한 새끼다.

나도 모르게 서운한 표현이 절로 나온다.


“야~ 그랑. 너무 허들이 높은 거 아니냐?”


“물론 그렇긴 해. 만약 정우 니가 용사가 아니라 내 학생이었으면,

방금 전에 A+ 학점을 받고, 졸업 후 마법 아카데미 강사직을 제의받았을 거야.

그리고 경력을 쌓자마자 교수직을 제의받았을 거고.

학자로서 매우 기대되는, 좋은 탐구 자세야.

진심으로 왕국 마법아카데미에서 학자로서 살아보는 건 어때? 적성에 맞을 거 같은데.”


“하하하. 그랑 마법 아카데미 교수님 맞긴 하네. 좀 괜찮다 싶으니 바로 강사로 쓸 생각부터 하고. 그런데 마지막으로 보여줄 게 한 가지 더 남았어.”


“어? 진짜? 더 있다고? 엄청 열심히 연구했네? 고작 마법을 9개월 배우고서, 여기서 추가로 더 보여줄 게 있다니”


“그렇다니까 그러네. 놀라지 말라고. 이번에 보여줄 것은 내 역작이니까.

시작은 공기 중의 수분을 모아서 얼리는 5서클 마법. 아이스 필드.”


호수 주변의 수분이 얼어붙기 시작하며, 내 주변의 땅 위로 눈 결정이 생성되어 내려온다.

마치 나를 중심으로 겨울이 시작된 모양새.


“그리고 얼음을 뭉칠 거야. 내 오리지널 마법. 압축.”


내 주변이었던 아이스필드의 구역이 위아래로 좁아지면서 원반처럼 얇아진다.

원반 형태의 압축된 공간이 되어버렸다.

내리던 눈들이 압축된 공간 속에서 우박이 되어 버린다.

그랑의 눈이 흔들린다. 자식 이미 엄청나게 놀랐으면서 표정 관리하기는.


“역시 내 오리지널 마법. 배열!”


냉기의 공간이 호수 위로 날아가고 점점 커진 우박이 공중에서 둥글게 배치된다.


“마지막으로. 해체!”


우박이 '펑' 하고 터지고, 산산조각이 난 얼음 조각들이 호수가 위로 후두두 떨어진다.


“어때? 8서클 천재마법사님?”


그랑이 입을 못 다문 채로 어버버 거린다.

말없이 서 있는 그랑의 어깨동무를 한다.


“자, 이제 무릎 꿇고 내 손등을 머리 위에 올리고 ‘스승님’ 해야지. 제자님?”


그랑의 두 눈에 믿을 수 없다는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다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가, 슬픈 표정을 짓는다.

모르는 사람이야 그랑이 왜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왜냐면 나는 진짜로 마법의 새 지평을 열었으니까.


그랑은 지금 ‘마법의 새로운 지평을 발견해서 기뻤고, 이를 자신이 열지 못했다는데 실망’했다.


마법을 처음 배울 때부터 될거라고 생각했다.

방금전에 보여준 내 마법들은, 마법의 ‘시동어’ 안에 녹아 들어가 있는 마법의 ‘기본공식’과 ‘고유공식’을 분리해 별도의 ‘시동어’로 사용한 마법이다.

마법을 처음 배울 때부터, 그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랑 보다 머리가 좋아서 알아 낸 게 아니다.

내가 이세계의 사람이라서 깨달은 거지.


마법 공식을 ‘메모라이즈’한 시동어를 최소단위로 분해해서 다시 ‘메모라이즈’하고, 고유공식을 가지고 있는 오리지널 마법들을 만들었다.

‘압축’ ‘배열’ ‘해체’ ‘이동’ ‘쇄도’ 등 새로운 시동어에 ‘운동마법공식’을 새롭게 ‘메모라이즈’ 한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은, 마법을 기본 단위별로 쪼개서 ‘동작’한다는 것.

남들은 ‘파이어 볼’을 시동어로 사용해, 불구슬을 직선으로 던지는 것밖에 못 하지만, 나는 ‘파이어 볼’ 을 ‘이동’ 해서 목표에 던지거나 ‘해체’ 해서 폭발시킬 수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앞으로는 무수히 많은 응용동작이 가능해질 것이다.


게다가. 나는 방금 마법에서 새로운 ‘3차원 좌표계’를 도입했다.

기존에 그랑이 알려준 모든 마법은, 마법사를 기준으로 두 눈에 보이는 평면을 향해 마법을 시전한다. 총구가 향한 곳을 향해 총알이 날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

마법도 표적까지 직선으로 날아가는 게 기본이다.

그랑이 내게 알려준 모든 마법이 이러한 ‘2차원 좌표계’로 동작했다.


내가 방금 시전한 마법은 ‘3차원 좌표계’를 활용한 마법.

사용자를 기준점에 두고 X, Y, Z 3차원 축에 좌표를 입력한 곳으로 마법을 옮기거나, 목표로 삼을 수 있다.

이론상 지뢰 같은 함정형 설치 마법을 개발할 수도 있고, 순간이동이나 워프 게이트도 가능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랑은 분명 깨달았을 것이다.

‘2차원 좌표계’ 마법만 있는 상태에서, ‘3차원 좌표계’ 마법이 등장했다는 것은 마법의 새 지평이라는 것을.


“스승님. 불초 제자를 받아주십시오”


그랑이 무릎을 꿇고 내 손 등을 부여잡는다.

그랑이 내 손등에 키스하려고 하는데, 정신이 번쩍 든다.


얘 지금 진심으로 나를 스승으로 모시려고 한다.


“야야! 그랑. 장난친 거였어.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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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 레벤토 아르카디아 23.06.07 19 0 12쪽
29 28. 제국백화점2 23.06.06 19 0 12쪽
28 27. 제국 백화점 +1 23.06.05 22 0 12쪽
27 26. 제국구경 23.06.04 21 0 11쪽
26 25. 용사 안 할건데요? 23.06.03 18 0 13쪽
25 24. 용사 제국 적응기2 23.06.02 18 0 11쪽
24 23. 용사 제국 적응기1 23.06.01 19 0 11쪽
23 22. 용사 장예서 23.05.31 16 0 12쪽
22 21. 2장. 제국 용사 소환 +2 23.05.30 18 0 12쪽
21 20. 귀향 +1 23.05.29 24 2 14쪽
20 19. 마왕 로드워터2 +2 23.05.28 24 1 12쪽
19 18. 마왕 로드워터1 23.05.27 22 1 12쪽
18 17. 마왕성 습격 23.05.26 23 0 12쪽
17 16_ 흔들릴 때가 아니야 +2 23.05.25 26 3 15쪽
16 15_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1 23.05.24 31 0 12쪽
15 14_ 마왕성으로2 23.05.23 30 2 17쪽
14 13_ 마왕성으로1 23.05.22 24 2 16쪽
13 12_ 무시엘 공선전3 23.05.21 24 2 15쪽
12 11_ 무시엘 공성전2 23.05.20 27 2 15쪽
11 10_ 무시엘 공성전1 +2 23.05.19 33 1 17쪽
10 9_ 용사 출정 +2 23.05.18 30 2 15쪽
9 8_ 왕도 외출 23.05.17 29 1 14쪽
8 7_ 용사 준비 완료 23.05.16 32 2 16쪽
» 6_ 용사의 특별함 23.05.15 32 2 24쪽
6 5_ 용사훈련 23.05.14 34 1 24쪽
5 4_ 궁금증 해결 23.05.13 38 1 16쪽
4 3_ 용사 테스트 23.05.12 38 1 15쪽
3 2_ 용사 한정우 +2 23.05.11 45 1 22쪽
2 1부 1_ 왕국 용사 소환 +3 23.05.10 80 2 13쪽
1 0_ 프롤로그 +2 23.05.10 140 4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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