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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또롱 님의 서재입니다.

젤 쉬운 게 제약재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이또롱
작품등록일 :
2020.11.06 08:56
최근연재일 :
2020.12.18 12: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32,861
추천수 :
420
글자수 :
359,540

작성
20.11.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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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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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8쪽

15화. 대결(4)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 졸작이지만 즐겁게 읽어주시길...




DUMMY

김기준의 이죽거림에 화가 치밀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얼른 은재가 나서서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너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놈들 때문에 그동안 소비자들이 봉 취급당하면서 억울하게 당해온 거야!”

“멀쩡한 제품을 하자 있다고 꼬투리 잡는 쓰레기 짓 하는 건 바로 형 같은 소비자들이죠!”

“이 새끼가 진짜! 우아아아~!!!”

“자자, 그만해. 형우야, 화 좀 가라앉혀. 나와 의견이 다르다 해도 존중할 건 존중해줘야지. 기준이 넌 그렇게 감정적으로 남을 자극하면 안 되지, 형우한테 사과해.”

“제가 왜요? 아~ 형도 같은 생각인가 보죠?”

“이놈이 내 말도 꼬아서 받아들이네. 너 계속 이럴 거야?”

“모두 다 그만해요! 이러다 동아리 회의 몇 번 해보지도 못하고 접겠네.”


보다 못한 수아가 일어섰다.


“두 사람 모두 일리 있는 의견이에요. 그러니까 이 부분은 누가 맞다 이 자리에서 결정짓지 말고 차후에 마켓*리가 시장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하죠. 어때요?”

“그래, 수아 말대로 하자. 그러니까 두 사람도 그만 해.”


수아와 은재의 적극적인 중재에 언쟁은 일단락이 났지만, 한 번 냉랭해진 분위기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김기준은 수아가 말을 이어갈 동안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저는 마켓*리가 덕업일치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분야를 사업모델로 삼고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니까요. 김솔아 대표는 또 유통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부분에 뛰어드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고 싶다고 밝힌 대로 몇 가지 혁신을 이어가고 있어요. 비닐이나 스티로폼 등 기존의 포장재를 100% 종이 포장재로 대체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죠. 또 최근 택배사업에도 진출했는데, ‘풀 콜드체인’(산지 생산된 신선식품을 유통 전 과정에 있어서 저온으로 운송하여 신선도와 품질을 최대한 유지시키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혁신적이죠. 기준이가 마켓*리의 부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러한 택배사업 진출은 사업다각화라는 점에서도 좋은 방안이지만 기존의 부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대응책이라고 생각해요...”


수아의 얘기를 들으며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그때였다.


[베자크, 이형우에게 너 같은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지? 그럼 이형우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알 수 있나?]

[안타깝게도 그건 알 수가 없어용ㅠㅠ]

[음... 그렇지! 바이오 기업을 설립하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으니 바이오 기업과 소원이 연관이 있겠군. 바이오 기업으로 크게 성공하겠다 같은 거 말이야. 그럼 베자크, 이형우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할 수 있나? 그러니까 이형우를 파멸시켜줘, 같은 그런 소원은 들어주질 않나?]

[네엥, 흑흑~ 그건 베자크가 할 수 없는 일이에용. 베자크는 동기화된 인간의 인생만 변화시킬 수 있으니까용.]


‘김기준이 또 성체와 대화를 주고받는군. 크, 나를 파멸시키겠다니! 잠깐 언쟁을 한 걸 갖고 복수라도 하려는 모양인데, 찌질이에 아주 못된 놈이군! 천성이 벌레처럼 흉측하고 쓰레기 같은 놈이야!’


김기준에 대한 혐오감이 확 들었다.


‘마음을 곱게 써야지. 그렇게 남을 파멸시키길 원하면 언젠가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모르나? 성체가 그따위 소원을 들어줄 턱도 없고 말이야. 그나저나 김기준은 간섭현상으로 나에게 자신의 대화내용이 들린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인데?’

‘잘 됐군. 이참에 김기준이 성체와 뭐라고 하는지 자세히 들어봐야겠어.’


[동기화된 인물이 아닌 다른 인물에 대한 소원은 기본적으로 이루어드릴 수 없어요. 다만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면 가능해용~]

[목적이 아닌 수단?]

[그러니까 타인을 파멸시켜달라는 소원은 수리가 불가하지만 김기준 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영향을 끼지는 경우는 가능해용.]

[그럼 내가 이형우를 누르고 더 큰 바이오 기업을 설립할 수 있게 해줘 라고 소원을 빌면 이형우가 악영향을 받는다는 건가?]

[맞아용. 소원이 구체적일수록 타인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용.]

[그거 흥미로운데? 목적이 아니라 내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수단이 되게 하면 된다라...]

[호호. 역시 김기준 님은 인간세계에서 상위 0.1%에 드는 똑똑한 사람이라니까요~~]

[그럼 어떤 소원이 괜찮을까, 얘기 좀 해봐.]

[안타깝지만 그건 김기준 님이 직접 설정해주셔야 해용.]

[음... 이형우의 소원을 무력화시키는 방법... 이봐, 베자크! 이형우가 목표로 하는 바이오시밀러 기업을 내가 통째로 가로채게 해줘. 기업대표 자리부터 모든 기업의 권리를 내가 다 갖도록 해주란 말이야. 그리고 앞으로 이형우가 하려는 모든 사업이나 목표에 대한 성과가 다 내 몫이 되도록 해줘. 그 동안 소원 따윈 한 번도 빌지 않았으니까 이 정도는 가능하겠지?]

[그럼요. 김기준 님의 소원이라면 언제든 수락해 드립니다용. 호호. 그럼 운명 변환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당. 소원을 수리하기 위한 최단 경로를 탐색합니당... 탐색이 완료됐어요. 이제는 오차범위를 최소화할게용... 오차범위를 조정했습니당. 와우! 적중률 99.3%, 오차범위 0.5% 이내로 4년 1개월 21일 후에 실현되네용!]

[뭐야, 4년이나 걸린단 말이야?!]

[그건 이형우가 기업을 설립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이형우가 기업을 설립한 후 정확히 1년 2개월하고 8일 만에 김기준 님이 해당 기업의 대표에 등극합니당.]

[음. 그렇다면 좋아! 그 정도야 내가 참지.]

[다른 소원은 안 필요하세용?]

[다른 건 됐어. 내 힘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뿐이니까. 아무튼 이형우를 확실히 짓밟을 무언가가 필요해. 성체의 도움을 받아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쥐새끼 같은 놈을 원래 있던 시궁창으로 돌려보내야지!]


그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으로 삐익삐익!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렸다.


『경고! 경고! 수리된 소원의 달성 결과 확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89%, 88%, 75%, 61%... 달성 예측 시간이 늘어납니다. 11년 7개월, 28년 9개월, 44년 1개월, 129년 0개월...』


뭐, 뭐야?!


나는 화들짝 놀랐다.


‘방금 한 김기준의 소원 때문에 내 소원이 영향을 받는 건가?!’

‘안 된다. 무언가 대책을 강구해야 돼!!!’


나는 무의식중에 벌떡 일어났다.

한참 얘기를 하던 수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왜 그래?”

“아, 아냐. 나 잠깐 화장실 좀 갖다 올게!”


수아가 뭐라 말할 사이도 없이 부리나케 화장실로 향했다.


‘아그나,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다른 동기화된 인물의 소원이 이형우 님의 소원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변수가 작용하여 이형우 님의 소원 성공가능 시간이 늘어납니다. 현재 217년 5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로 탐색을 재설정할까요?』


‘그래, 다시 한 번 경로를 파악해줘!’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재탐색을 완료하였습니다. 오차범위를 최소화합니다... 오차범위를 조정했습니다. ◆결과 : 적중률 92.8%, 오차범위 12.0% 이내로 194년 2개월 후에 실현됩니다.』


‘경로를 다시 탐색해도 그렇게 오래 걸린단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김기준 이 개새끼!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감히 내 소원에 딴지를 걸어? 용서 못 해! 이놈을 어떻게 엿을 먹이지?!’


화장실 안을 서성거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아니지, 김기준을 엿 먹이는 것은 나중 문제고 당장은 내 소원을 해결하는 것이 급하다.’

‘내가 목표로 하는 바이오 기업을 자신이 통째로 가로채게 해달라고 했지. 모든 사업과 목표에 대한 성과가 다 자신의 몫이 되도록 말이야.’

‘그럼 회사를 차리고 키우는 내 모든 노력의 결과를 김기준이 가져가게 된다는 말이잖아.’



‘아그나, 내 회사를 김기준에게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내 것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현재는 이형우 님의 것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해달라는 ‘조건’으로 소원을 수리했기 때문에 방법이 없습니다.』


‘김기준의 소원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내 회사를 키우겠다는 소원으로 하면 되잖아.’


『이형우 님의 의견에 따라 경로를 재탐색해보겠습니다... 재탐색을 완료하였습니다. 오차범위를 최소화합니다... 오차범위를 조정했습니다. ◆결과 : 적중률 50.3%, 오차범위 3.7% 이내로 82년 6개월 후에 실현됩니다.』


‘그래도 적중률이 낮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이형우 님의 소원과 김기준의 소원의 조건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수준의 힘을 가진 성체의 경우 파워가 대등하기 때문에 수리된 소원의 재현률도 비슷합니다.』


‘음... 줄다리기처럼 서로 팽팽하게 맞선다는 건가.’

‘그럼 아그나, 이건 어때? 내가 소원을 포기하고 새로운 소원을 들어달라고 하면?’


『기존 소원을 포기한다면 소원 수리 전 과정이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그에 따라 상대측의 소원 역시 연쇄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지! 김기준이 내가 목표로 하는 ‘바이오시밀러 기업’ 만을 가로채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잖아. 그러니까 그 소원을 포기하고 다른 소원으로 대체하면? 가령 ‘AI기업’을 설립해서 성공하게 해달라고 하면?’


『그 경우에는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럼 그 조건으로 다시 소원을 수리할까요?』


‘그래. 단 누구로부터 위협을 당하지 않고, 회사도 빼앗기지 않으며, 내 모든 사업성과를 오로지 내가 독점하는 조건으로 해줘. 특히 김기준으로부터 말이야. 그래서 AI 기업을 일궈서 국내 100위 안에 드는 기업으로 만들어줘!’


『소원이 수리되었습니다. 수리된 소원을 최적화하기 위한 모든 경로를 탐색합니다... 탐색을 완료하였습니다. 오차범위를 최소화합니다... 오차범위를 조정했습니다. ◆결과 : 적중률 98.1%, 오차범위 1.0% 이내로 9년 11개월 후에 실현됩니다.』


좋았어!


‘김기준 이 새끼에게 어떻게 복수하지?’

‘뭔가 기가 막힌 걸 생각해내는 거야!’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자 김기준은 베자크와 대화를 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베자크! 도대체 이유가 뭐야? 왜 소원 수리 결과가 N/A(Not Applicable)로 변한 거냐고!!!]

[흐흑, 김기준 님ㅠㅠ 그렇게 베자크를 다그치지 마세요. 지금 사태를 파악하고 있거든요. 아, 방금 파악되었어용. 상대방이 소원을 변경했거나 소원 자체를 없앴을 가능성이 있네용!]

[그게 무슨 말이야?]

[김기준 님 소원이 이형우의 회사를 빼앗는 것이었잖아요? 그런데 이형우가 회사 설립이 아닌 다른 것으로 소원을 변경했거나 소원 자체를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아용! 그래서 ‘해당사항 없음’이 되어버려서 자동으로 김기준 님의 소원이 해제되었습니당.]

[이형우 이 새끼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네. 안 되겠어.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의자에 앉아 김기준이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속으로 김기준을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철저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베자크, 이형우가 어떤 소원으로 변경했는지 알아볼 수는 없어?]

[그건 저로서는 알 수가 없어용.]

[그래?... 그럼 이렇게 하지. 이형우가 비는 모든 소원을 내가 모조리 가로챌 수 있도록 해줘.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 비는 모든 소원까지 포함해서 말야!]

[네. 이건 소원 수리가 가능해서 베자크는 기쁘답니다~~ 그럼 김기준 님의 소원을 수리하기 위한 최단 경로를 탐색합니당... 탐색이 완료됐어요. 오차범위를 최소화할게용... 오차범위를 조정했습니당. 와우! 현재 시각부터 적중률 95.0%, 오차범위 8.1% 이내로 적용됩니당!]

[큭큭! 이럼 평생 동안 빌빌거리겠지? 쥐새끼가 감히 나를 물려고 했으니 당연한 댓가다! 하하!!!]


순간,


『경고! 경고! 수리된 소원의 달성 결과 확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54, 53, 52, 51%...』


“윽! 속이 안 좋아서 다시 화장실 좀 가야겠어!!!”


난 후다닥 뛰쳐나갔다.

김기준 이 새끼가 또 다시 지랄을!!! 내 인생 전부에 태클을 걸려고 작정을 했구나!


‘아그나! 어떻게 좀 해봐!!!’


『죄송합니다. 김기준과 동기화된 성체가 아니기에...』


‘제기랄!’

‘내가 비는 소원 전부를 김기준이 가로챈다고? 그럼 앞으로도 내 소원은 쓸모가 없게 돼 버리잖아!’


‘아그나, 김기준의 소원을 바꾸게 할 방법이 정말 없는 거야?’


『네. 소원을 바꿀 수 있는 경우는 해당 성체에 동기화된 인물이 요청할 때만 가능합니다. 그 외에는 동기화가 풀어질 경우에만 소원이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씨발!

씨발!

아무리 생각해도 김기준이 소원의 ‘조건’을 저렇게 내건 이상 영향을 받지 않을 방법이 없다.

AI기업을 차리든 IT벤처를 일구든 영위 업종과 상관없이 모든 범위가 다 포함된다.

게다가 50%까지 달성 확률이 떨어졌으니 내 소원이 달성될 확률은 반반.

회사를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내 회사를 일군다 해도 김기준이 가로챌 확률이 높은 것이다.


‘1년 동안 개고생해서 서울대까지 들어왔는데 여기에서 멈추라고?’

‘그럴 순 없어! 방법을 찾아야 된다!!!’


난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순간

생각 하나가 뇌리에 번뜩였다.


가만!


‘아그나, 조금 전에 나에게 한 말을 다시 한 번 해봐!’


『네. 소원을 바꿀 수 있는 경우는 해당 성체에 동기화된 인물이 변경을 요청할 때만 가능합니다. 그 외에는 동기화가 풀어질 경우에만 소원이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동기화가 풀어진다는 건 김기준과 성체 사이의 동기화가 풀어지는 것을 말하는 거지?’


『네.』


‘동기화는 언제 풀어질 수 있어?’


『동기자가 해제를 요구할 경우에 가능하고, 이 경우에 재 동기화는 불가합니다. 또 하나의 경우는 성체가 새로운 인물과 동기화했을 시 기존 동기화는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그렇군!

한 줄기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난 마치 아그나가 옆에 있는 것처럼 속닥속닥 거렸다.


그러자,


『알겠습니다. 기존 소원을 해제하고 새로운 소원을 수리하겠습니다. 새로운 소원은 19시간 46분 후에 실행됩니다.』


‘김기준 이 새끼!’

‘사람 잘못 건드렸어!’

‘어디 니 인생도 완전히 망가뜨려주마!!!’


회의실로 돌아오면서 난 칼을 갈았다.



* * *



아침 일찍, 나는 경기고등학교와 강남구청 사이에 위치한 한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와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로운 소원이 발휘될 오전 9시 46분까지는 채 10분도 남지 않았다.

나는 초조하게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삐삐삐~

예정시각을 5분 남기고 드디어 알람이 울렸다.

차에서 내려 A동 현관 출입문 앞에 섰다.

혹시 몰라 1301번을 누르고 호출이 되기를 기다렸다.

역시나 아무런 응답이 들리지 않는다.

마침 중년 여자 한 명이 현관을 나서느라 자동문이 열렸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이 집에 사는 학생으로 보일 것이었다.


1301호 앞에 섰다.

현관문 도어락 번호키는 보통 이중으로 설치되어 있다.

우선 소비자가 설치하는 도어락 번호키.

생일이나 핸드폰 뒷자리 같은 자유 번호로 직접 생성하는 키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도어락 번호를 잃어 버렸을 때를 대비해 제품 출시 단계에서부터 예비 마스터키가 또 하나 생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리고 그 번호가 0000이라는 초기화 번호라는 점도.


‘예전에 디지털 도어락을 만드는 생산 공장에서 일을 한 게 이렇듯 도움이 될지는 몰랐군, 흐흐.’


나는 나지막이 웃으며 비밀번호를 눌렀다.


#0000#

#0000

*0000

*0000*


비번을 누르고 커버 내리기를 여러 번에 걸쳐 시도하는데, 순간 삐리리릭- 하고 경쾌한 소리가 울린다.

올~ 네 번째 만의 성공이군!

시계를 슬쩍 쳐다보았다.

아그나가 말한 정확한 9시 46분이다.


‘아그나, 기존에 빈 소원은 필요가 없으니 해제해줘. 지금 새로운 소원을 빌게. 내 소원은 김기준의 집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는 거야. 아무도 모르게 말이야. 그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고, 내가 김기준의 집에 들어갔을 때 아무도 없어야 돼. 알았어?’


어제 아그나한테 빌었던 소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현된 순간이다.

다른 사람의 집에 무단침입 하는 것은 범법행위다.

들키는 순간 무단침입죄나 강도로 형사 처벌을 받게 될 것이 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느긋했다.

아그나한테 들키지 않고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기 때문이다.

또 도어락이 안 열릴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우를 되돌려 생각해봤을 때 어떤 식으로든 9시 46분에 맞춰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을 테니까.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고 안을 살펴보았다.

소원을 빌 때 ‘아무도 없는 집 안’이라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에 아무도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현관에 나 있는 복도를 들어가며 주위를 살피자 왼쪽으로는 널따란 거실이 펼쳐져 있고 그 반대편에는 키친이 있다.

그리고 드레스룸과 욕실이 딸린 방이 총 3개가 있었다.


상당히 넓네.

역시 금수저답게 김기준의 집은 강남에서도 상당히 넓은 고가의 아파트였다.


‘어제 동아리를 창단하기 위해서 필요하니 주소 등의 인적사항을 적어달라고 한 게 신의 한 수였네.’

‘두고 봐라. 김기준! 멋지게 복수해주마!!!’


난 서재와 안방으로 보이는 방을 지나쳐 마지막 방으로 향했다.

별다른 장신구나 인테리어 없이 책상 하나와 침대, TV대, 장식장이 전부인 미니멀한 방이었다.

장식장에는 상패들이 주르륵 놓여 있었는데, 김기준이라는 이름이 눈에 파고들었다.


장식장을 안쪽 서랍까지 꼼꼼히 살피다가 이번에는 책장과 책상을 뒤졌다.

책상 서랍을 차근차근 열어보는데 맨 밑 서랍에 거무튀튀하고 네모난 상자 하나가 들어 있었다.


‘찾았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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