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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또롱 님의 서재입니다.

젤 쉬운 게 제약재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이또롱
작품등록일 :
2020.11.06 08:56
최근연재일 :
2020.12.18 12: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32,843
추천수 :
420
글자수 :
359,540

작성
20.11.0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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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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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9화. 도전(4)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 졸작이지만 즐겁게 읽어주시길...




DUMMY

담임쌤은 행정실에서 사무를 보고 있었다.


“저,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담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무슨 일이에요?”

“지금 부담임 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잖아요. 그런데 부담임 쌤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영상이 있어요.”


나는 아그나에게서 받은 영상을 재생했다.

부담임의 팔이 피해학생의 가슴에 스치는 장면과 움찔하는 모습을 여러 번에 걸쳐 자세히 보여주었다.

그 영상을 본 담임쌤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강의실 안에는 CCTV가 없는데 이 영상 어디서 난 거죠?”

“너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다가 우연히 찍게 됐어요.”


자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을 찍다가 우연히 문제되는 사건을 찍게 되었다고 나는 대충 둘러대었다.


“휴대폰으로 촬영했다는 건가요?”

“네.”

“음... 우선 이 영상을 내 휴대폰을 보내줘요.”


나는 곧바로 영상을 담임쌤의 휴대폰으로 전송했다.


“자습시간에 휴대폰을 보는 건 학원 규칙에 위반되는 걸 알고 있죠? 게다가 이형우 학생은 우리 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문제가 생길만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걸로 알고 있는데.”

“네. 죄송합니다.”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뭐, 이번 일은 사안이 중대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준 셈이니까, 이번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대신 한 번 더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땐 퇴원 조치할 거예요. 알았죠?”

“네.”

“이만 가보세요.”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나는 강의실로 돌아왔다.

사실 부담임 사건은 피해학생과 부담임이 서로 한 걸음씩 배려하고 양보하는 자세가 있었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

부담임은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한 번 더 조심했다면 생기지 않을 일이었고, 피해학생은 불쾌한 감정을 느낄 때 상대방이 진심으로 하는 행동이었는지 확인 후에 불쾌한 감정을 표출해도 늦지 않는 일이었다.

부담임은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 있음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잘못을 사과하면 될 일이고, 피해학생도 기분 나쁜 건 있지만 의도치 않은 일이니 너그럽게 용서하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라는 얘기다.

차이를 존중하고, 감정적이 아닌 합리적인 자세로 바라보는 것.

그것만 유지될 수 있다면 다른 많은 유사한 사건들도 쉽게 해결될 것이다.

아무튼 이걸로 부담임은 누명을 벗을 수 있겠지?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공부에 열중했다.



* * *



사건이 잘 마무리 된 후로 부담임이 날 보는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나와 관련된 얘기를 들었을 텐데도 편견 없이 날 대해주고, 따로 나를 불러 수능에 자주 나오는 문장이나 표현들을 정리한 자료를 몰래 주기도 했다.

지원군이 생기자 공부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16주간의 정규반 수업을 어설프지만 따라갈 수준이 되었고, 특히 영어는 부담임의 도움으로 더욱 실력을 쌓게 되었다.

부담임은 나와 정수아를 묶어서 자주 불렀는데, 같은 과를 목표로 하는 점 때문이었을까, 난 정수아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f(x) = e의 x승 + cos x일 때, x = 0에서의 접선의 방정식을 어떻게 구하는 거야?”

“바보야, f(x)의 도함수는 f'(x) = e의 x승 - sin x잖아. f'(0) = 1이니까 그래프에서 접선 기울기는 1이지. 또 f(0) = 2에서 접선의 접점은 (0, 2)니까 접선 방정식은...”


정수아는 나를 흘겨보고는 내 펜을 빼앗아 설명하기 시작한다.

내가 물어보는 질문이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정수아는 구박하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물어보는 질문에 빠짐없이 대답해주었다.

정수아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난 즐거웠다.

사실 아그나가 알려주는 게 훨씬 쉬웠고 편했지만 난 그래도 정수아게게 물어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수아의 싱그러운 머릿결 냄새를 맡는 게 좋았고, 낭랑한 목소리를 듣는 것도 상쾌해서 좋았다.


또 하나,

나에게는 새로운 공부방법이 생겼다.

그것은 아그나를 활용해 공부한 내용을 기억하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학습을 통해 얻은 다양한 정보를 각 정보의 특징이나 속성에 따라 뇌의 특정 부위에 저장이 되고, 시간 경과에 따라 저장 위치가 달라진다.

기억이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눠져 각기 다른 뇌의 부위에 저장된다는 얘기다.

기억은 부호화, 경화, 재생과 인출과정을 거친다.

부호화(Encoding, acquisition, registration)란 새로운 정보가 그 특성에 따라 뇌의 연관 부위로 들어와 기억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모든 기억은 이 부호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경화(Consolidation)는 뇌 안에서 새로운 정보를 부호화하기 위하여 해마가 그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그 정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거나 감정반응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경화가 더욱 쉽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재생 및 인출(Retrieval)은 정보가 필요해질 때 뇌가 기억이 저장된 부위의 신경세포를 활성화시켜 저장된 정보를 꺼내는 것이다.

자주 사용하는 정보일 경우, 이미 신경세포 사이에 연결이 형성되어 있어서 정보 인출이 더욱 쉬워진다.


때문에 나는 모든 공부 방법에 이 부호화와 경화, 재생과 인출 방법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predictable이라는 영어단어가 있다면, 이 단어를 우선 머리로 부호화를 시킨 다음, 경화를 해서 장기 기억으로 넘긴다. 그 다음 재생과 인출을 해서 언제든지 이 단어를 보면 뜻이 기억날 수 있도록 해둔다.

이 과정을 아그나를 통해 부호화와 경화, 재생과 인출과정이 머릿속으로 이뤄지게끔 강제화시킨 것이다.

오늘 공부한 영어 어휘가 총 30개라면 그 어휘들을 고스란히 머릿속에 저장시켜 놓고 언제든지 필요할 때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아그나에게 지시한 것이다.

마치 한 장의 스냅 사진으로 추억을 박제해놓고 언제든 소환할 수 있게 해놓는 것처럼 말이다.


이 방법은 실로 효율적이어서 난 영어 단어를 일일이 외우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고,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할 필요도 없었다.

공부를 끝내고 난 뒤에 눈을 감고 아그나를 불러서 아까 배운 내용을 부호화, 경화시키고 재생/인출을 할 수 있도록 해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내 머리는 스펀지처럼 정보를 빨아들였고, 차곡차곡 저장했으며, 어느 때든 필요한 정보를 끄집어낼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수십 배는 빠른 속도로 실력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정복.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공부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정규반 16주 과정이 끝나는 6월말이 되었다.

남을 위해 할애할 시간 따위는 없다고 딱 잘라 말하던 수아는 말과는 달리 날 위해서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었다.

처음 찬바람이 불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어느 게 진짜 정수아의 모습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반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정규반 수업이 끝나는 마지막 날, 드디어 학원 내 모의고사가 실시되었다.


“저, 아그나! 내일 시험인데 문제지 답 좀 알려줄 수 있어?”


『안 됩니다.』


“그렇게 딱 잘라 말하지 말고, 내가 상위 50%안에 들면 소원이 예정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니깐 아그나한테도 좋은 거잖아.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해줘~”


『수리된 소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변수에는 제가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혼자 힘으로 극복하셔야 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그나한테 부탁했지만 역시나였다.


‘휴~ 역시 안 되는군.’

‘뭐, 나한테는 기적의 암기법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불안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자신은 있었다.

그동안 충분히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다.

암기나 기본적인 수준은 자신 있고, 응용문제나 심화과정이 조금 막힐 따름이다.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위 50% 안에 들어가야 한다.

나를 가르쳐준 수아를 위해서라도...


다음날, 시험이 시작되었다.

초조한 나와는 달리 차분히 문제를 살피는 다른 학생들을 보며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할 수 있다, 이형우! 집중하자!!!’


나는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고개를 숙인 채 문제에 초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든 시험이 끝이 난 후, 학원 밖으로 나갔다.

수아가 학원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문제집을 펼쳐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고 있어?”

“조금 헷갈리는 문제가 있어서 맞는지 확인하고 있었어.”

“시험 잘 봤어?”

“응. 그럭저럭. 최상은 아니지만 최고치에서 80~90% 수준은 된 거 같아. 그러는 넌?”

“나야 필사적이었지, 시험 보다가 피 토하고 죽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이거 봐봐, 눈 충혈되어 있지, 그치?”

“어머, 정말 피가 나네.”

“어디? 눈에서?”


얼른 소매로 눈 주위를 비벼서 살펴보았다.

멀쩡했다.


“아니, 입에서.”


이번에는 슥, 입을 닦았다.

소매에서 말간 침이 닦여 나왔다.


“어허, 어디서 오라버니를 놀리는 것이냐?”

“그 정도에 죽는다면 난 열 두 번도 더 죽었게? 하여튼 뻥은~ 애늙은이 꼰대!”

“내가 왜 애늙은이에 꼰대냐?”

“꼴랑 두 살 많은 거 갖고 사사건건 오빠 행세에, 말투는 또 어디서 본 사극톤이나 흉내 내고, 그게 애늙은이 꼰대 아니면 뭐야?”

“그러는 넌? 쫑알쫑알 잔소리 많지, 뻑하면 안 해줄 거야, 소리 지르지. 지가 무슨 츤데레인 줄 알아. 츤데레 코스프레 재밌냐?”


순간 정수아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이크! 이럴 때 조심해야 한다.

진짜 삐치니까.

난 얼른 화제를 돌렸다.


“험험, 암튼 이번 시험에서 50% 안에 못 들면 사망각인데, 어쩌지?”

“이제 오라버니 다시는 못 보겠네요. 슬퍼요.”

“나 진지하다구!”

“장난은 지가 먼저 쳐놓구서... 근데 진짜 50% 못 넘으면 학원 그만 둬야 되는 거야?”

“그렇게 각서를 썼으니까... 몰래 행정실에 들어가서 훔쳐올까?”

“어디에 있는 줄은 알고?”

“그야 모르지.”


양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요, 시험 못 본 거 위로도 할 겸 내가 맛있는 거 쏘께.”

“됐어, 나 돈 많아. 내가 쏠 테니까 근사한 데 가서 배터지게 먹자. 시험 결과 나오면 위로가 됐든 축하가 됐든 그때 한 번 더 맛있는 거 먹고, 오케이?”

“응응.”


수아와 함께 학원 근처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을 찾았다.

디너코스 요리와 스테이크 등을 시키고 마리아주로 나온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했다.

수아는 술을 잘 못하는지 금세 얼굴이 발그레 올라왔다.

그동안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며 시험에 관한 것이며 다소 두서없이 얘기가 오고가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수아가 물어왔다.


“근데 그전부터 쭉 궁금한 게 있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

“그게... 왜 서울대 경영학과만 고집하는 거야? 점수에 맞춰서 다른 대학, 다른 학과를 갈 수도 있는데 말이야.”


음... 뭐부터 설명해야 할까, 나에게는 원대한 목표가 있다는 것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내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 여러 가지를 생각한 끝에 한 가지를 결심하게 됐어. 바이오 기업을 설립하겠다는 목표 말이야. 그런데 내게는 기업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지식이 아무것도 없더라고. 그래서 경영학과를 들어가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왕 대학을 갈 바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자 마음먹은 것뿐이야. 나한테 대학은 그저 통과점 중 하나일 뿐인 거지.”


난 수아에게 굳이 숨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이나 주식으로 대박을 친 일, 그 돈으로 창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까지 남김없이 얘기했다.

친한 친구들이 있고, 그들과 함께 창업을 해서 십년 내에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 중 하나를 만들겠다는 플랜까지 얘기했다.

아그나에 대한 얘기만 빼놓고...

어쩐지 아그나에 대한 존재를 발설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빠가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았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어. 나라면 꿈에도 못 꿀 그런 스펙타클한 인생을 살았구나. 영화 속 주인공 같아.”


내 얘기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열심히 듣던 수아는 긴 이야기가 막을 내리자 휴우, 숨을 내쉬었다.


“난 오빠를 처음 봤을 때, 뭔가 독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우리 쪽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사람... 근데 비슷한 나이인데 벌써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까지 가지고 있다니, 뭔가 멋진 것 같아.”

“내가 쫌 멋지긴 하지, 흐흐. 근데 이제 오빠라고 불러주는 거야?”

“하는 거 봐서.”

“뭘 하면 되는데?”

“쉬워. 내 말 잘 들어주고, 토 달지 않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고, 모르는 문제 물어보는 건 하루에 한 번만 하고,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씩 사다주고, 또....”

“내가 집사냐?”

“어머, 시작도 안 했는데 이정도 갖고 뭘~”

“알았어! 오빠 필요 없어, 안 들을게!!!”


수아가 피식 웃었다.


“난 말야, 학교 우수반, 학원 영재반, 초등학교 때부터 7개 학원을 다니면서 부모님의 계획대로 철저하게 움직이는 삶을 살았어. 1등을 놓치지 않아야 했고, 스펙에 도움이 되는 거라면 교내 공모전에도 참여해서 상을 타야 했어. 그렇게 10년을 살았어. 그런데 처음 수능 점수를 받았을 때 엄청 충격이었어. 그토록 노력했는데 왜 점수가 이것 밖에 안 나왔을까, 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애일까... 3일 동안 울었어. 인생이 이걸로 끝이라는 생각 때문에. 내 자신이 멈춰버린 시계처럼 여겨지는 거 있지. 더 이상 쓸모도 없고, 존재 이유가 없어져버린 시계. 그래서 죽을까도 심각하게 생각했어. 근데 갑자기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런 거 아무 것도 아니라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그래서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거야. 아직 모든 감정을 극복했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야.”


수아는 잠시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난 철저한 계획 아래 변수를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살았어. 집-학교-학원, 매일 똑같은 루틴의 반복이었다구. 그러다 보니까 언젠가부터 변화가 두려워지더라. 그래서 내게는 어떤 새로운 결정을 내린다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인데, 오빤 너무도 쉽게 결정을 내리고 곧바로 행동으로 나서는 것 같아서 부러웠어. 강의시간에 중학교 책을 펴들고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남들이 다 무시하는데도 서울대를 들어가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데 오빠가 살아온 인생 얘기를 들어보니까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 같아.”

“그래서 나에 대한 존경심이 막 샘솟아?”

“풋, 그 정도는 아니고 뭐, 확실히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수아는 자신의 얘기를 좀 더 꺼냈다.

부모님이 주얼리 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그 업체를 자신이 나중에 경영하게 될 거라고 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동안 해외여행을 다니고 싶다고도 했다.

난 수아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서울대 진학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 눈 양 옆을 가리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게 만들어놓은 경마장의 말 같은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초조함과 앞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와 그러면서도 드문드문 고개를 드는 불안함 같은 것들 말이다.


‘바이오 회사를 차리면 수아도 우리 회사에 다니게 할까? 재무나 회사 살림을 관리하는 부서를 책임지게 하면 되잖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한 번 말해볼까?’

‘아냐, 지금은 진학문제로 온 정신이 팔려 있으니까 수능이 끝난 후에 얘기해보자.’


난 그렇게 마음먹고는 다시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다음 주 시험 발표 날, 학원에서는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시험 결과를 석차순으로 이름과 점수를 기재한 리스트를 학원 복도에 붙여놨는데,

20등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이다!


서울대 준비반은 한 반에 10명씩, E반까지 총 50명 정원으로 이뤄져 있다.

대부분 학교에서 공부 깨나 한다는 소리를 듣는 애들로, 최소한 서울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들이다.

그런 애들과 경쟁해서 상위 50%도 아니고, 30% 안에 들었다고?


기적이었다.


“오빠! 이렇게 공부를 잘 했어?”


모여 있는 학생들의 웅성거림 틈에서 수아가 나를 보며 놀라워했다.


“혹시 천재 아냐?”

“흐흐, 이 정도 갖고 뭘 그래~ 기다려, 몇 달 후엔 너도 따라잡을 테니까.”


수아가 전체 5등을 한 걸 보고 하는 말이었다.

난 수아에게 한껏 으스댔지만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렇게 등수가 좋게 나올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좋았어!

나는 한껏 기분이 업되었다.

서울대로 가는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머릿속으로 아그나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형우 님의 노력과 인내심, 문제해결능력, 실행력이 객관적인 지표로 검증됨에 따라 각 항목의 스킬이 +1 향상되었습니다.』


‘으응? 아그나 이게 무슨 말이야?’


난 머릿속으로 아그나에게 외쳤다.


『운명 변환 프로그램은 동기화된 인물을 평가하는 평가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습니다. 평가 항목은 인간사회의 인사평가 시스템을 모방한 것으로, 총 30가지의 지표로 동기화된 인물을 평가하게 됩니다. 이형우 님은 방금 노력, 인내심, 문제해결능력, 실행력 항목에서 각기 +1점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평가 시스템으로 나를 평가해서 점수가 높아졌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흐음, 뭔지 정확하게 이해한 건 아니지만 암튼 좋은 것 같은데. 아무렴 어때, 좋으면 됐지.’


나는 성적 등수를 확인하고 기분이 날아갈 만큼 좋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아그나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이 나중에 치명적인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리라고는 그때는 결코 알지 못했다.


작가의말

수식을 입력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수식 부분이 조금 이상합니다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51 투시
    작성일
    20.12.08 23:38
    No. 1

    상위 50퍼가아니라 상위70퍼안에 들었다니 더낮아진거아닌가요? 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 이또롱
    작성일
    20.12.09 09:09
    No. 2

    저도 그 부분이 좀 헷갈렸는데요. 다른 분의 의견을 받아 수정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상위 30퍼가 맞는 것 같습니다. 재 수정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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