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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또롱 님의 서재입니다.

젤 쉬운 게 제약재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이또롱
작품등록일 :
2020.11.06 08:56
최근연재일 :
2020.12.18 12:20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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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47
추천수 :
420
글자수 :
359,540

작성
20.11.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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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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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6화. 도전(1)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 졸작이지만 즐겁게 읽어주시길...




DUMMY

‘주식대박’이라는 평생에 한 번 있기도 힘든 엄청난 일이 내게 생기고 난 지 일주일,

난 여전히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다.

3거래일이 되어야만 은행계좌로 이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3일째 되던 날 아침 모조리 은행으로 이체를 했고, 원래 가지고 있던 3천만 원에 151억 8천 3백만을 합해 152억이 넘는 거금이 통장에 찍혔다.

살면서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엄청난 돈이 손에 들어왔지만, 그럼에도 나는 담담했다.

어쩌면 실감이 나질 않는다는 말이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그날 저녁, 나는 처음으로 중국집에서 유산슬이며 양장피며 오향장육 같은 코스요리를 시켰다.

그동안 중국집에서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가장 비싼 음식이 탕수육이었으니 처음으로 나름 사치를 누린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코웃음을 칠 일이었다.

돈이 있어도 쓰질 못하는 ㅂㅅ이라고 하지 않을까...


‘820마력짜리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를 사고, 드레스룸을 명품들로 가득 채우는 거야! 아, 그 전에 이 구질구질한 집에서 벗어나 강남에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야지.’

‘아니면 연예인들이 많이 산다는 청담동의 고급 빌라를 살까? 신사동 압구정역 일대에 있는 10층짜리 수익형 빌딩을 사는 건 어떨까? 건물주가 되어 인생 편하게 살면 좋잖아!’

‘날마다 클럽에도 가고 예쁜 여자랑 같이 해외여행 다니면서 마음껏 즐기는 건 어떨까? 그렇지! 크루즈도 좀 타고, 흐흐.’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계획이 떠올랐다.

생각만 해도 미소가 번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내 인생에도 꽃이 피는 구나!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런 위치에 오를 거라고 상상이라도 해본 적 있어?’

‘이젠 어느 누구를 봐도 부럽지 않아!’


진짜 마음껏 으스대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엔 22이라는 내 나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삶의 여유가 생긴 지금, 나의 미래를 편안한 마음으로 내다볼 상황이 된 지금, 무언가 내가 하고 싶은 꿈을 찾고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빛나는 20대를 가장 가치 있게 보내고 싶은 것이었다.


게다가 150억이라는 돈을 쥐게 되었다고 그 동안의 생활을 모두 바꾸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고 흥청망청 돈을 쓰다가 순식간에 망한 사람에 대한 뉴스도 보지 않았던가!

더구나 난 어릴 때부터 가난에 찌들어 살았기에 돈이 무섭고 중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돈이 생기자 오히려 경계심이 들고 신중해졌다.


‘딱 10년만 내가 하고 싶은 걸 도전해보자. 그리고 10년 후인 32살에 은퇴해서 그때부터 삶을 즐기는 거야! 건물은 그때 사도 늦지 않아!’


그렇게 마음을 굳힌 나는 일주일 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 결과 나의 인생 전부를 걸어볼만한 하나의 목표를 결정했다.


그것은, 바로...


바이오 기업을 설립하는 것!


주식투자를 위해서 기업을 공부하다 보니 바이오라는 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결국엔 암으로 돌아가셨지. 내가 바이오 기업을 만들어 어머니 같은 환자들을 완치시킬 수 있는 약을 개발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엘비처럼 신약 개발에 성공하기만 하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다.’

‘노인인구가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에 의약시장의 성장세도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많은 업종 중에 바이오 기업을 주목하여 내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다.


‘진석은 생명공학과를 다니고 있고, 서울대에 간 은재도 화학과를 다닌댔지? 좋아, 진석과 은재랑 힘을 합쳐서 우리들의 회사를 차리는 거야.’


진석과 은재를 끌어들이는 계획도 세웠다.


‘무엇보다 회사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경영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대학에 들어가서 경영학을 전공하자!’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10억대 자산가에게 100억대 자산을 가진 나는 부러움의 대상이겠지만 1000억대 자산가에게 나는 운 좋게 주식으로 대박 난 20대 청년백수일 뿐이다.

진골 위에 성골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같은 값이면 푼돈이나 좀 만지는 20대 백수가 아니라 명문대를 졸업한 수재 소리를 듣고 싶고, 백수가 아닌 잘 나가는 기업 CEO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하고 바이오 기업을 설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그나가 내 곁에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아그나가 있으니 내가 하고 싶은 찾아 원하는 대로 마음껏 할 수 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사업이 잘 안 되어 돈을 다 날리더라도 아그나가 있는 한 언제든 복구할 수 있고, 그 이상을 벌 수도 있다.

경마, 카지노 잭팟, 부동산, 경매 등등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의 20대를 알차게 보낼 치밀한 계산을 끝낸 후, 난 아그나한테 말했다.


“아그나, 소원이 두 개 있는데 두 가지 모두 말해도 돼?”


『소원이 여러 개인 경우, 어느 하나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소원이 인과관계에 의해 서로 연관되어 있거나 하나의 큰 소원 안에 하부소원으로써 포함되는 경우에는 여러 개의 소원 수리도 가능합니다.』


“그럼 이런 소원은 어때? 난 바이오 기업을 차릴 거야. 내가 바이오 기업의 대표가 될 수 있도록 해줘. 국내 1등 기업이 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 그냥 국내 기업 순위에서 100위 안에 드는 기업이 되기만 해도 만족할게. 그리고 또 하나의 소원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들어가고 싶어. 회사 대표가 되려면 경영학을 배워야 할 거 같거든.”


이왕 대학을 들어갈 것이라면 최고 대학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서울대를 언급했다.


『말씀하신 소원은 인과관계에 따라 병렬이 가능함으로 모두 수리 가능합니다. 다만 최단 경로 우회에 따른 왜곡률이 상승함에 따라 경로 탐색이 제한적입니다. 그럼 말씀하신 두 가지에 대한 최단 경로를 탐색합니다... 최단 경로를 확인했습니다. 오차범위를 최소화합니다... 오차범위를 조정했습니다. ◆결과 : 적중률 95.25%, 오차범위 6.75% 이내로 11년 4개월 20일 후에 실현됩니다.』


‘오차범위가 크네. 그럼 달성이 안 되거나 원하는 수준만큼 안 될 가능성도 있다는 거잖아.’

‘뭐, 어때. 그만큼 노력해서 내가 만들면 되지.’


그나저나 11년 후라... 11년이면 33살이 되는 해다.


‘어느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1만 시간을 투자하라고 했었지. 까짓것 11년 노력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달성한다면 그 정도 시간쯤이야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지.’


나는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공부해서 내년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서울대에 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공부를 하면서 회사를 차리는 거야.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바로바로 회사에 적용해서 써먹을 수 있겠지?’

‘그러자면 우선 수능공부를 해야 하는데 뭣부터 해야 할까...’

‘학원을 알아보자. 학원에서 입시반을 운영하니까 그곳을 들어가면 될 거야. 나머지 시간엔 인강을 들으면서 차근차근 공부하자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학원을 알아보았다.

학원이라면 역시 대치동.

대치역 근처의 학원들을 검색해서 특별소수정예 선착순 모집 공고가 뜬 학원을 무작정 찾아갔다.

재수학원으로 나름 유명한 곳인 모양이었다.


로비에 있는 안내데스크에서 안내를 받아 상담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정갈한 유니폼을 입은 한 여성이 상담실로 찾아왔다.


“재수 종합반을 신청하신 다구요?”

“네.”

“저희 학원은 1:1 관리시스템으로는 대치동 학원 중에서 단연 1등입니다. 우선 2원 담임 시스템을 도입해서 메인 담임선생님은 비중이 가장 높은 수학 선생님이, 서브 담임선생님은 해당 학생의 가장 취약한 과목 선생님이 맡도록 해서 유기적인 학습관리가 이뤄지게 하고 있습니다. 매일 관리표 작성을 통해 학생별로 맞춤 진도 관리에서부터 대치동 최고 수준의 수업환경과 균형 잡힌 식단 제공, 조퇴나 외출 등의 철저한 관리까지 생활 관리에서도 세심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모든 외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종합반 운영은 한 반당 12명의 학생으로 구성되는데, 이것도 학습 분위기나 학업성취도 등 20년 넘게 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의 구성을 해놓은 것입니다. 다른 학원의 경우 30명에서 50명에 달하는 학생들을 한 반으로 묶어놓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학생들을 모조리 케어하면서 관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관리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요. 학생들 수준부터 모든 것이 다 다르기 때문에 수업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소수정예로 하는 건 어떨까요? 4~5명 되는 소수정예로 운영하면 1:1 과외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한 반 운영에 필요한 최저 운영경비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경력이 뛰어나거나 이쪽 업계의 탑으로 계시는 선생님들을 모셔서 강의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한 반당 12명의 학생으로 구성해서 가장 높은 수준의 수업의 질과 관리 수준을 유지하고, 입시 경력 15년 이상의 선생님들 중에서도 강의평가 점수가 가장 우수한 선생님들만 초빙하여 학생들을 이끌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말이야 그럴 듯하게 하지만, 한 반에 30~50명 정도의 학생을 때려 넣으면 관리가 안 되고 4~5명 정도 소수정예로 반을 꾸리자니 수지가 안 맞아서 한 반을 12명으로 구성한다는 얘기네. 뭐,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으니까.’


“네 좋네요. 전 상관없습니다.”

“그럼 잠깐 사전인터뷰로 작성해주셔야 하는 양식이 있는데, 이걸 우선 작성 후에 다시 상담을 이어가도록 하죠.”


상담직원은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부모의 직업에서부터 주소, 졸업 고등학교명, 내신등급, 희망대학과 학과 등을 기입하도록 되어 있었다.

음... 나는 솔직히 작성했다.

부모님이 안 계신 걸 굳이 숨길 필요는 없으니까.

희망대학, 학과에 서울대 경영학과를 넣고 내신은 공고인데다가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1등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1등급을 적었다.

그런데 작성한 양식을 받아본 상담직원이 쭉 읽어 내려가다가 갑자기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부모님 두 분 모두 돌아가셨어요?”

“네.”

“공고를 나왔구요.”

“네.”

“...”


상담직원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직원의 표정이 무언가 변해 있었다.


“학생,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에요? 좋아요, 좋아. 공고를 나와도 대학에 들어가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 쳐요. 그런데 공고 나와서 서울대로 진학한 역사가 없어요. 서울대라니...! 학생이 보기에 이게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는 상담직원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다시 말했다.


“우리학원은 한 달 원비만 300만원이 들어요. 교재비와 식비는 별도구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사는 곳도 좋아 보이지 않고, 한 달 학원비 대기도 빠듯할 것 같은데... 학생, 학생은 우리학원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야. 이곳은 전국에서도 상위 0,1%에 들어가는 사람들만 들어오는 곳이라구요. 그러니 자신의 수준에 맞는 학원을 찾아가요.”


그 말을 끝으로 직원은 일어나 그대로 가버렸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하, 기분 더럽네! 집이 잘 살고 부모님이 돈 많은 금수저 애들만 받겠다는 거구나. 이런 학원까지 나를 개무시 하다니!’


학원을 나오면서 나는 침을 뱉었다.

아무런 빽도 없고, 못 사는 학생들은 인간 취급을 받지 않는 세상.

세상이 이렇게 치졸하고 엿 같다는 것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그길로 백화점에 갔다.

최고급 자켓과 상하의, 신발을 산 후 집을 알아보았다.

대치동에 있는 아파트들을 검색하자, 매물로 나온 아파트가 하나 있었다.

매매가 19억으로 대치동 학원가 바로 옆에 있는 삼성래** 아파트였다.

부동산 업자는 젊은 친구가 그것도 아무런 흥정 없이 곧바로 계약한다고 하자 놀란 눈치였다.


‘뭐, 재태크로서도 도움이 될 테니까.’


그리고 청담동의 한 자동차 전시장에서 외제차를 한 대 구입했다.

공부를 하려면 기동성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전부터 생각해둔 것이었다.

집과 자동차를 구입한 후 다시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다.

새로 찾아간 학원은 상대적으로 빌딩이 낡아보였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매우 정숙했다.

상담직원이 웃음 띤 얼굴로 맞이하며 역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나는 부모님이 캐나다에 거주하는 것으로 표시했다.

죄송해요, 엄마 아버지.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고등학교 란에 공업고등학교를 써넣고 내신등급을 적은 후 서울대라고 썼다.


“제가 공부에 취미가 없어서 고등학교를 공고를 나왔어요. 그런데 늦게라도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만큼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상담지도나 관리 같은 거 안 해주셔도 상관없어요. 그냥 수업만 듣게 해주세요. 그럼 나머지는 제가 전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학원비는 얼마가 됐든 그 두 배를 드릴게요.”


나는 가방을 열어 천만 원을 꺼냈다.

돈을 보자 직원이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면학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다른 학생들 폐 끼치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 학원 다니게 해주세요.”

“저, 저희는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도를 따라잡기가 무척 힘들 거예요. 아직 레벨 테스트를 해보지 않아서 뭐라 말씀드리기가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어려워요. 소수정예로 이뤄지다 보니 자리가 없기도 하구요.”

“그냥 한 자리만 내어주세요. 말썽을 일으킨다면 제 스스로 학원을 그만둘게요. 그리고 처음에는 따라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넣어만 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관리하고, 만일 학습 진도나 성취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도 학원 탓을 하지 않겠습니다. 각서를 쓰라면 그것도 쓸 수도 있습니다.”

“...우선 레벨 테스트를 진행하죠. 그리고 나서 다시 얘기하는 게 어때요?”


상담직원이 서둘러 캐비넷에서 종이 두 장을 꺼내었다.

영어와 수학 시험 문제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잠시 시험지를 내려다본 나는 방을 나가려는 상담직원을 불러 세웠다.

그리곤 시험지를 풀지 않고 그대로 돌려주었다.

레벨 테스트를 해도 형편없는 수준이겠지...


“중학교 때는 반에서 1등도 여러 번 했지만, 공부에 더 이상의 취미를 느끼지 못해 안 한지 오래되다 보니 중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을 거예요. 이대로는 레벨 테스트를 하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젠 공부하기로 마음먹었고 이왕 시작하는 거 정말 열심히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원 다닐 수 있도록만 해주세요.”

“에... 이런 경우가 한 번도 없어서... 우선 상담실장님께 말씀드려보고 다시 올게요.”


직원이 떠나고 난 후 잠시 후에 상담실장이라는 사람이 내려왔다.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상당히 매서운 인상이었다.

상담실장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돈다발을 보고는 안경을 쓱 밀어 올렸다.


“우리학원은 소수정예로 운영되어 철저한 관리가 이뤄집니다. 학부모님들께서 만족스러워하실 정도로 타이트하게 이뤄지고 있고, 그에 합당한 시험성적들을 거두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초가 없고 진도가 따라가기가 힘든 이형우 씨같은 학생은 우리 학원과 맞지 않아요.”

“바로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막 굴려주세요. 불평불만 하지 않을 게요. 그리고 만족스러운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선생님이나 학원 탓을 결코 하지 않을 게요. 그건 제가 부족해서 그러는 것이지 학원 잘못이 아니니까요. 그냥 수업만 듣게 해주세요. 그럼 매월 천만원씩 드릴게요. 아니 원하시면 일년치 학원비를 선불로 드릴게요.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산이 꽤 되거든요. 한 150억쯤 될 겁니다.”


상담실장의 눈이 반짝였다.


“...진짜 원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와도 괜찮겠어요?”

“네.”

“다른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경우가 생길 시에 그 즉시 퇴원 조치를 취할 거예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네! 각서를 쓰라면 쓰겠습니다.”

“흐음...”


상담실장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알겠습니다. 그럼 E반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좌석을 하나 더 마련하는 걸로 하죠. 다만 말씀하신 1년치 선불금을 미리 주셔야 하고 각서를 쓰도록 합시다. 그리고 추가로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정규반 수업을 듣기에 앞서서 5주간 재수 선행반을 받고 이후에 정규반에서 수업을 들을 텐데, 정규반 16주 과정을 진행한 후에 방 배치고사 겸 모의고사를 실시합니다. 그때 현재 상태에서 50% 향상된 등수를 기록해야 합니다. 이형우 씨의 경우, 뭐 보나마나 꼴등에서 시작할 테니 꼴등에서 50%이상 등수가 상승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긴 전국에서 날고 긴다는 수재들만 모여 있는 곳이에요. 이곳에서 상위 50% 안에 들어가는 건 무조건 in-서울을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때요, 선행반 정규반 포함해서 약 5개월 후에 시험을 볼 텐데, 그 시험에서 상위 50%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무조건 퇴원하는 조건이에요. 아, 이 경우에는 이형우 씨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거니까 선불로 받은 학원비에 대한 환불은 없습니다. 어때요, 오케이?”

“네.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즉석에서 각서를 작성한 후 자동이체로 1년치 학원비인 1억 2천을 송금했다.

필요한 규칙과 규정, 강의시간표, 교재 등등을 받은 후 학원을 나왔다.


집 주인 할머니께 사정 얘기를 말씀드리고 1년치 월세, 물세 등의 공과금을 미리 내는 조건으로 집을 빼기로 했다.

편의점 사장님께도 대학공부를 시작하기로 해서 그만두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대치동 아파트로 이사.


짐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어서 냉장고부터 OLED 대형 TV, 에어컨, 책상 및 의자, 침대 등을 새로 장만했다.

거실 한 쪽에는 고급스러운 질감의 소파도 하나 놓았다.

그리고 책상 위에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놓아두었다.

먼지가 낀 낡은 액자.

근사한 새 액자를 사서 넣을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과거를 추억할만한 물건 하나쯤은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인터넷을 뒤져 수학과 영어 참고서를 구입했다.

문과 수능범위인 수학Ⅱ와 미적분Ⅰ, 확률과 통계가 있는 수학 기본 참고서를 구입해서 차근차근 정독했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나는 그래도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래야 나중에 수업을 들을 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학원이 개강할 때까지 5번 정독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쏟아지는 잠을 몰아내며 하나씩 달성해나갔다.

또 영어는 수능에 99% 출제된 단어, 숙어만을 모아둔 어휘집을 하루 분량을 정해두고 외우는데 집중했다.


그렇게 하기를 보름여 남짓,

12월 말이 되어 드디어 학원이 개강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8시에 등원해서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실 뒤쪽에 놓인 휴대폰 보관함에 휴대폰을 놓아두고 의자에 앉아 주위를 살펴보는데, 9명 남짓한 학생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강의실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싸늘하고 적막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주위를 살피지 않고 주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 앞에 펼쳐진 책만을 들여다보느라 간간이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마치 투명인간 집합소 같네.’

‘가만, invisible이 ‘보이지 않는, 볼 수 없는’이라는 뜻이었지. 하나 외웠네. 좋아! 이런 식으로 하자고.‘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니 왠지 기운이 솟았다.

나는 자신감에 차 얼른 수업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이 무너지는 건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수학 담임쌤은 정확히 8시 반에 들어왔다.


“이 반에 모인 여러분들은 모두 시험을 잘못 봐서 일을 그르친 실패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러분이 패배자인 것은 아닙니다. 단지 시험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헷갈리는 지문 두 개 중 하나를 잘못 찍어서, 예상보다 한 두 문제를 더 틀려서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들어가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의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 가능성을 확실한 미래로 바꿀 수 있도록 이제부터 제가 만들어드릴 겁니다. 더 이상 헷갈리지 않고 100% 정답을 고를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겁니다. 그러니까 모두 패배자의 마음을 버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까?”

“네.”

“소리가 작다. 알겠습니까?”

“네!”

“그럼 지금부터 재수 선행반을 시작하겠습니다. 앞으로 5주간, 하루 8시간씩 수학 전 과정을 집중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매 수업이 끝나고 나면 개별 클리닉 시간이 주어지는데, 수업 중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나 모르는 부분은 이때 자유롭게 질문하면 됩니다. 알겠습니까?”

“네!”

“자, 지금부터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함수 y = f(x)에서 x가 a와 같지 않으면서 a에 한없이 가까워짐에 따라 함숫값 f(x)가 일정한 값 α에 한없이 가까워질 때, 함수 f(x)는 α에 수렴한다고 합니다. 이 때, α를 함수 f(x)의 극한 또는 극한값이라 하고, x → a일때 f(x) → α 또는 lim f(x) = a라고 표현합니다...”

x->α


수학 쌤은 보드판에 그래프와 수식을 그리며 함수의 극한 부분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의실은 쌤의 움직임 하나, 판서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하는 모습으로 가득했다.

모두 실력이 출중한 애들로만 꾸려져 있다고 하더니 정말인 듯했다.

쌤이 얘기하는 것을 모두들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반면에 나는 처음부터 막혔다.

무언가 알 듯 하면서도 정확히 그려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이해할 만하더니 막상 수식을 대입해서 문제를 풀어보자 어떻게 풀어야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나름 준비했다고 했는데도 전혀 쓸모가 없자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전경준 학생, 김우진 학생...”


맨 앞줄에 앉은 학생들부터 차례대로 질문을 하던 쌤은 내 차례가 되자 나를 쳐다봤지만 곧 시선을 돌려 다른 학생을 지목했다.

쌤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가느다랗게 번지는 것이 보였다.

어차피 물어봐도 대답을 못했을 테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쌤의 보일락 말락 빠른 속도로 사라진 웃음기가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뭐야, 기분 좇 같네! 나 같은 수준 낮은 놈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겠단 건가?’

‘수업만 듣게 해달라고 내 스스로 말했으니 무시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비웃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연필을 핑그르르 돌렸다.


작가의말

오늘은 3연참갑니다!!!!

 

p.s. 리미트 함수가 수식으로 삽입이 안 돼서 조금 어설프게 들어갔어요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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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31 g1******..
    작성일
    20.12.01 23:01
    No. 1

    저런식으로 학원 다닐 필요가 있을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이또롱
    작성일
    20.12.03 09:12
    No. 2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1 투시
    작성일
    20.12.08 23:29
    No. 3

    차라리 1대1 과외하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 이또롱
    작성일
    20.12.09 09:13
    No. 4

    음. 그렇게 되면 여주의 등장이 늦춰지거나 어려워진다는 점이 있어서...^^; 학원을 꼭 다녀야 되는 이유나 학원에서의 생활을 좀 더 비중있게 다루는 식으로 학원 부분을 보완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미흡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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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화. 만남(2) 20.11.07 1,682 21 15쪽
2 1화. 만남(1) 20.11.07 1,962 2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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