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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또롱 님의 서재입니다.

젤 쉬운 게 제약재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이또롱
작품등록일 :
2020.11.06 08:56
최근연재일 :
2020.12.18 12: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32,948
추천수 :
420
글자수 :
359,540

작성
20.11.14 12:20
조회
924
추천
8
글자
23쪽

14화. 대결(3)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 졸작이지만 즐겁게 읽어주시길...




DUMMY

김기준은 한참 동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번에는 수아, 은재를 차례대로 쳐다보았다.

어쩐지 더 이상 아그나와 대화를 하며 안 될 것 같았다.


“커흠, 흠! 술, 술잔 들어봐. 다 같이 한 잔 하자!”


난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다 같이 건배하기를 유도했다.


짠-

그때까지도 김기준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야, 김기준! 한 번에 털어 넣어야지. 홀짝 거리면 술 맛 떨어진다고!”


잔에 입만 대던 김기준에게 한 소리를 하자, 김기준은 마지못해 잔을 다시 들어 바닥이 보일 때까지 술을 마셨다.

난 얼른 잔을 채워 넣으며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자 이번엔 우리 스타트업 연구소 온(on)을 위해서 건배!”


다시 한 번 술을 들이키는데 목구멍 아래 점막이 닫힌 것처럼 술이 받지 않고 온몸으로 거부감이 일었다.

그래도 나는 일부러 꿀꺽 삼켰다.

취기가 빠르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다시 한 번 머리에서 말소리가 울렸다.


[베자크, 지금 내 앞에 있는 이형우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려줘.]

[넹~ 이형우는 천안 출생으로 최하위 경제력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랐어용.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 이후 21살에 어머니가 간암으로 사망했네요. 초중등과정까지는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고등학교는 공업고등학교로 진학, 졸업하자마자 군에 입대했고요.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에는 서울로 올라와 1년 동안 재수과정을 거쳤군용~ 그 결과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해서 현재 김기준 님이 알고 계시는 상황까지 되었어욤!]

[특이한 사항은 없어?]

[몇 가지 특이사항이 있어용. 인간사회에서 높지 않은 학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공부한지 1년 만에 수능 만점을 기록한 점이랑 현재 이형우는 총 13,176,028,840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데, 서울에 올라올 당시의 전 재산이 1,030만원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로또 1등에 당첨되었고, 이후 당첨금액을 모두 주식에 투자하여 지금의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보이네용.]

[주식으로 대박친 것은 알고 있었는데, 로또까지 당첨이 됐었단 말이야? 운빨이 지독히 좋은 놈이네.]

[아뇨, 아뇨~ 로또 1등 당첨과 이어서 특정 주식종목에 투자하여 이와 같은 투자 결과를 얻을 확률은 56억분의 1의 확,률,이라구요. 그래서 베자크와 같은 성체가 이형우를 도와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용.]

[너 같은 존재가 도와줬다는 건가? 그럼 현재 주위에 너 같은 존재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나?]

[성체는 동기화된 인간과의 생체정보 교환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에 확인할 수는 없어용. 다만 이형우에게 성체가 있을 가능성은 91.3%에 달하네용.]


순간 김기준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에 대한 모든 걸 파악하다니, 오싹 소름이 돋았다.

꽉 낀 스웨터를 입은 것처럼 목을 움직일 수 없고, 몸 안에서 열기가 훅 치밀어서 갑갑함이 느껴졌다.

아까 느낀 위기감이 한층 구체화된 기분이었다.


[정수아나 기은재는 특이사항 있어?]

[이 두 사람은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았어용. 평균치보다 두뇌활동이 뛰어난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인간계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행적을 보이고 있습니당~]

[그럼 너 같은 존재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이형우 한 명뿐이란 거군.]

[네네, 그렇습니다~ 또 다른 게 필요하세요, 김기준 님?]

[됐어.]

[김기준 님의 영원한 운명 파트너 베자크였습니당, 이만 총총~~]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등 뒤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언가 들어서는 안 될 거대한 비밀을 알아버린 기분이 들고, 거대한 독수리가 발톱을 세워 머리를 움켜쥐는 것 같았다.

김기준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김기준이 한없이 껄끄럽게 느껴졌다.


“김기준! 넌 금수저고 검사가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도 있는데, 왜 우리 동아리에 들어온 거냐?”


김기준이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번에도 얘기한 적 있는데, 대학생활이 지루해서요.”

“개강한 지 3주밖에 안 됐는데?”

“학교생활 파악하는 데는 1주일이면 충분해요.”

“그래도 학과 친구들과 친해지고 적응하려면 부족한 시간일 텐데.”

“적응을 잘 못하는 놈들이나 그렇겠죠. 게다가 딱히 어울릴만한 수준이 되는 애들도 없구요.”

“그럼 다른 동아리나 학회는 알아봤어? 찾아보면 흥미로운 동아리도 많이 있는 것 같던데.”

“동아리 생활이 거기서 거기죠. 개미떼들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는 형은 다른 동아리를 들어갈 생각은 안 해봤어요?”

“살펴봤는데 스타트업을 연구하는 동아리는 없더라고. 그래서 아예 만든 거고. 그나저나 그런 동아리도 재미가 없다면, 우리 동아리야말로 병맛일 텐데.”

“자신이 만든 동아리를 저평가하다니 형답지 않은 발언이군요. 오히려 병맛이어서 흥미가 생겼다고 해두죠. 새로운 분야를 경험해본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나야 어차피 검사가 될 거지만 그전에 다양한 경험을 해두고 싶으니까요.”


김기준은 다리를 꼰 채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로스쿨은 어때, 수업은 따라 갈만 해?”

“수능 끝나고 개강하기 전까지 법률공부를 조금 했는데, 민법과 형법은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을 가르치고 있어서 지루하고 국제법이나 흥미로운 정도? 그런데 벌써부터 어렵다고 하는 애들은 병신들인 건지 이해할 수 없다니까요. 그 정도가 어렵다면 로스쿨은 어떻게 들어온 건지... 난 말예요, 지금까지 내 능력을 100% 발휘해본 적이 없어요. 설렁설렁 공부해도 전체 1등을 도맡아했으니까. 죽어라 노력해도 따라잡지 못하는 버러지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구요, 난. 형도 능력이 많으니 내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아니면, 누군가가 도와줬을라나?”


김기준이 히죽 웃었다.


“험험, 그래...개인마다 능력차이가 있으니 잘난 우리가 이해해줘야겠지.”

“형은 참 너그러우시군요. 난 그러질 못해서. 그런 애들은 생리가 자신이 버러지라는 걸 모르고 잘난 사람을 시기 질투하기에 바빠요. 그래서 난 그런 애들을 보면 밟아버리고 싶어요.”


김기준은 테이블 밖으로 다리를 꺼내 바닥을 비비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수능 만점에 주식투자까지 대박을 치는 그런 수준의 능력자는 몇 없는데, 원래 타고난 능력이 많았던 거예요?”

“그럴 리가. 운이 좋았을 뿐이야.”

“에이, 그런 건 운으로 되는 게 아니라구요. 주식만 해도 남들보다 다른 정보력을 갖고 있는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죠. 아니면 주위에 내부 정보를 흘려주는 조력자가 있다거나... 얘기해 봐요, 어떤 조력자가 도와줬는지.”

“그런 거 없어.”

“그렇다면 이상한데? 설마 주식으로 대박쳤다 구라친 거 아니에요? 아니면 뭔가 숨기고 있거나...”


김기준은 테이블에 팔을 괸 채 상체를 숙이며 접근했다.

지금 김기준은 나를 떠보고 있는 거다.

아그나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냐. 그런 게 있겠어?”

“에이, 우리끼리니까 얘기해보세요. 혹시 알아요? 내가 또 다른 조력자가 될지.”


김기준이 히죽 웃었다.

난감했다.

아그나에 대한 건 은재나 수아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비밀 중의 비밀이다.

게다가 아그나와 같은 존재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 같은 김기준에게 사실을 털어놓기가 영 꺼림칙했다.

김기준이 정말로 아그나 같은 존재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면 동병상련과도 같은 동지애로 더욱 가까워질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어쩐지 김기준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왜애애앵-

거친 사이렌 소리처럼 본능이 나에게 위기가 닥쳐왔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뭔 얘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하냐?”


수아와 얘기를 나누던 은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별 거 아냐.”

“그럼 이제 그만 갈까?”

“그래요. 술에 취해서 집에 가야겠어요.”


수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때다 싶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곤 애들과 헤어진 후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아그나, 내 말 들려?’


『네. 말씀하십시오.』


‘아까 김기준이 대화한 베자크라는 존재가 아그나와 같은 존재야?’


『그렇습니다.』


‘성체라고 부르던데 그건 무슨 말이야?’


『아그나나 베자크 모두 성체입니다. 모든 성체는 신의 부르심을 받아 인간의 운명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나갑니다. 제 3의 운명을 말입니다. 원래 인간은 두 갈래의 운명의 방향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테두리 안에서 한쪽 갈래의 운명을 타고 가다가 다른 갈래의 운명으로 갈아타기도 합니다. 쉼 없이 움직이고 결합하고 섞여서 양 갈래 중 한 쪽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백만 명 중 한 명꼴로 정해진 운명 너머의 변화로 나아가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를 통해 인간사회는 정체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운명을 사는 사람을 제 3의 운명자라고 말하고, 이러한 운명 변환 자체를 성스러운 변화라고 부릅니다. 때로는 운명 변환을 직접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러한 운명 변환을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모든 존재를 성체라고 부릅니다.』


‘성스러운 변화라니, 이해가 잘 가지 않는데?’


『성스러운 변화란 인간의 두 가지 운명에 제 3의 길을 부여하여 인간사회 전체의 파동을 변화시켜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물결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음... 아까 김기준이 그 베자크라는 성체와 대화하는 내용이 들리던데, 내가 들은 것이 맞는 거야?’


『네. 성체와 동기화된 인물들이 반경 3m 이내에 인접해 있는 경우, 생체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드물게 간섭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간섭이라면?’


『간섭은 두 가지 이상의 생체 파장이 서로 결합하어 새로운 파장의 형태를 나타내거나 같은 파동의 위상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생체 정보는 800Hz에서 2640Hz 사이에 형성되기 때문에 생체 정보를 서로 주고받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주파수가 혼선되는 것과도 같은 걸 말하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그럼 나에게 김기준과 베자크 성체가 대화하는 내용이 들렸다면, 마찬가지로 아그나와 내가 나눈 대화를 김기준이 엿들었을 수도 있겠네?’


『네. 잠시긴 하지만 상호 연결되었기 때문에 99.9%의 확률로 들렸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내 비밀을 알고 있다고? 김기준이!!!’

‘아냐, 아그나와 대화한 건 아주 잠깐이다. 그러니 김기준이 모든 걸 알아차리진 못했을 수도 있어.’

‘가만, 감이 좋은 애들은 찰나의 시간에도 놓치지 않고 캐치하기도 하잖아! 그리고 김기준이 베자크를 통해 나에 대해서 물어본 것이나 베자크가 나에게 성체가 있을 가능성이 91.3%에 달한다고 말하기도 했잖아! 그 모든 걸 종합해보면 김기준이 나의 비밀을 알아차렸을 거라고!’

‘...어떻게 하지?’


난 김기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아그나의 존재를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 설령 같은 성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래, 아그나가 노출되지 않도록 모른다고 최대한 잡아떼는 수밖에는 없어!’


다행히 경영대학과 로스쿨이 있는 법과대학 건물과는 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어서 학교 안에서 김기준을 만날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난 김기준과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 주 주말, 단톡방에 김기진이 메시지를 올렸다.

다음 주 발표 대상 스타트업으로 ‘마켓*리’를 선정했다는 것이다.

마켓*리라면 식자재 유통 쪽에서 뜨는 기업 중 하나다.

전날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문 앞에 배송해주는 샛별배송 배달 서비스를 실시하여 유통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주역으로, 스타트업을 연구하는 우리 동아리로서는 안성맞춤의 연구대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주 시작된 동아리 모임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마켓*리는 2014년에 설립된 신선식품 전문 쇼핑 스타트업인데, 샛별배송이라는 독보적인 서비스를 실시하여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2015년 매출 29억 원을 기록한 뒤 설립 4년 만에 매출 1560억으로 약 50배 성장했고, 회원수는 2018년 기준 200만 명으로 하루 최대 주문건수가 3만 3000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 새벽배송 시장규모도 급성장해서 2015년 100억 원에 불과했던 시장규모가 4000억 원으로 커졌고, 롯데***, 이**, 쿠* 등의 기존 유통시장의 강자들도 마켓*리를 벤치마킹하여 새벽배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김기준은 차분히 발표를 이어나갔다.


“이 같은 마켓*리의 성장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다들 알고 있는 새벽배송 서비스. 신선식품은 생산한 직후가 가장 맛있다는 생각을 샛별배송으로 사업화한 것이 그대로 적중, 현재 주 소비층인 2030세대 직장인들, 맞벌이 부부, 1~2인 가구의 장보기 패턴과 라이프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그건 그래. 우리 집은 마포인데 아침에 아파트를 나서다 보면 네다섯 집에 한 군데 꼴로 샛별배송 박스가 놓여 있다니까.”

“강남은 더 해요. 웬만한 집들은 다 샛별배송을 받더라구요.”


은재와 수아가 각기 한 마디씩 거들었다.


“네. 실제로 이러한 배송문화의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이 되는데, 한 시장조사업체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새벽배송 서비스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전체의 74.9%가 ‘만족한다’고 답했고, 특히 20대와 30대가 즐겨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마켓*리의 샛별배송으로 인해 유통시장은 기존의 D+2일, D+1일 같은 배송의 개념자체가 D+0일로 달라지게 됐고, 마켓*리가 급성장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마켓*리만의 수요예측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는 평균적으로 수확한지 48시간 이후에 진열합니다. 따라서 신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마켓*리는 제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생산 직후 유통 골든타임을 24시간 이내로 잡고, 24시간 내에 모든 주문과 배송완료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바로 상품 폐기율입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24시간 골든타임을 넘은 상품은 전량 폐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상품 폐기율을 최소한으로 낮추기 위해서 마켓*리는 소비자들이 해당 상품을 얼마나 주문하는지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집중 투자를 했습니다. 즉 각 상품팀 데이터 담당자들이 매일 신규고객 데이터와 매출, 재고회전율, 구매전환율, 상품폐기율 등을 분석함으로써 매일 발생하는 수요를 오차 없이 예측하는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구축한 것입니다.”

“수요 예측 시스템이라는 게 말이 쉽지, 해당 고객이 뭘 주문할지 어떻게 예측할 수 있다는 거야? 게다가 회원수가 200만 명이라며, 그 많은 고객 한 명 한 명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회원수는 물론 200만 명이지만, 하루 구매 건수는 3만 3000건 정도로 형성되어 있는 데다, 고객들이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품목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구매패턴을 데이터로 분석하는 것이죠. 이 고객은 주말에 장을 보고, 이 고객은 일주일에 세 번 마켓*리에 접속해서 이러이러한 물품을 구입한다,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전 회원들의 구매패턴을 분석하다 보면, 품목별로 하루에 나가는 총 수량, 즉 우유는 몇 통, 오징어는 몇 마리, 이런 데이터가 도출되는 겁니다. 실제로 이러한 수요예측 시스템을 도입한 후로 마켓*리는 총 상품 폐기율을 1% 미만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대형마트 신선식품 폐기율인 2~3%보다 훨씬 낮은 수치입니다.”


은재의 물음에 김기준이 능숙하게 답했다.


“맞아. 처음에는 데이터가 없어서 수요 예측이 어려웠겠지만, 소비자들의 구매패턴 데이터가 쌓이면서 좀 더 정교한 분석이 가능해지고 수요 예측에 실패할 가능성도 줄어들었을 거야. 그래서 산지에서의 상품 구입이나 보관, 폐기율 측면에서 리스크가 줄어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업비용도 낮아졌을 테고. 난 이 수요 예측 시스템을 보면서 유통회사가 빅데이터나 AI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되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

“그렇구나.”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마켓*리가 급성장한 세 번째 이유는, 20~30대 청년들 특히 젊은 주부들을 위한 타겟 마케팅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100원에 상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100원 쇼핑 이벤트, 첫 구매를 한 후 한 달 동안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이나 가입 이후에 꾸준하게 주는 구매 적립금, 쿠폰을 통해 충성고객층을 넓히고 있는 것이 마켓*리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요. 무료배송을 받기 위해서는 4만 원 이상을 결제해야 하는데, 그게 부담스럽다면 월 4,500원짜리 정액제 상품을 구입해서 저가로 배송 혜택을 받는 배송비 정책도 한몫을 하구요.”

“음... 내가 볼 땐 그건 지엽적인 것이지 핵심을 정확하게 짚은 건 아니야. 난 마켓*리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대표의 사업철학 때문이라고 생각해. 마켓*리 김솔아 대표는 미디어와 인터뷰에서 자주 이런 얘기를 했어. ‘마켓*리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마켓*리에서 물건을 사면 항상 최고 품질의 상품을 보장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고. 그래서 김솔아 대표는 자사 MD들에게도 제품 컨택을 할 때 무조건 산지에 가서 제품이 실제로 어떤지 눈으로 확인하게 하고, 모든 상품에 상품리뷰위원회를 열어서 직접 먹어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건 ‘그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사고 싶은 상품만 판매하겠다’고 한 판매 철학과도 상통하는 것이지. 또 지금도 고객 클레임에 대한 응대를 자신이 직접 할 정도로 소비자의 의견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고. 대표가 이런 소비자 중심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니 회사가 안 될 턱이 있겠어?”

“아니요, 난 오히려 대표의 그러한 행보가 회사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봐요. 소비자 한 명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것 보다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모든 쇼핑, 모든 소비자를 전부 다 만족시킬 수는 없어요. 그건 이상론에 불과합니다. 난 개인적으로 김솔아 대표가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고객 클레임까지도 자신이 직접 응대하는 걸 보면 자신의 성향에 따라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확실해요. 그러면 아랫사람들은 피곤해집니다. 소비자를 위한답시고 한 소비자 중심 마인드가 지나쳐서 오히려 부서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기업 대표는 대표 자리에 맞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CS(Customer Service 혹은 Customer Satisfaction)업무는 CS 담당자에게 믿고 맡겨야지, 회사의 대표가 이거에도 나서고 저거에도 나서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혹 구멍가게라면 그런 마인드가 잘 맞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한 회사의 대표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대표는 소비자 중심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거야?”

“직원이 250명인 기업의 대표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곧 한계에 부딪힐 겁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동안 너무 기업가 중심의 마인드로 경영을 해왔어. 수요가 아닌 공급 중심, 소비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경영을 해왔다는 얘기야. 소비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그러다 보니 수많은 문제가 생겨온 것을 너도 잘 알고 있지 않아? 대표적으로 독성물질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고도 모르쇠로 일관한 옥쉬 사태처럼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어. 지금 같은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자 중심의 마인드로 전환하는 건 필수적이야. 예를 들어 기업이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어. 그건 기업이 사회적 선(善)과 공공의 이익에 공헌할수록 브랜드 가치 등 여러 측면에 있어서 기업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야. 마찬가지로 기업들이 소비자 중심 경영으로 거듭나려고 하는 것도 소비자가 가진 진정한 파워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마켓*리는 신선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소비자의 니즈를 적극적으로 수용해낸, 철저하게 소비자 중심 경영을 실시한 기업이야. 그리고 그건 김솔아라는 기업 오너의 철학이 반영되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샛별배송이나 100원 이벤트 같은 마케팅 전략들이 나올 수 있었던 거야. 소비자들은 바로 그 점에 열광에 가까운 반응을 나타낸 거고.”

“맞아요. 내가 소비자였어도 이런 기업의 상품을 더 믿고 구입했을 거예요.”


수아가 맞장구를 쳤지만 김기준은 그래도 자신의 생각을 고수했다.


“소비자는 항상 좋은 소비자, 화이트 컨슈머만 존재하는 건 아니에요. 소비자의 권리를 외치면서 개인의 이득을 위해 이를 이용하는 블랙 컨슈머도 많습니다. 또 소비자들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아요. 그저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적인 리뷰를 남기고 부정적인 여론을 일으켜요. 철저히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해서 말이에요. 그래서 해당기업이 타격을 입는 사례 역시 충분히 많죠. 소비자 중심 경영, 좋아요. 하지만 그건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이상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마켓*리가 소비자 중심의 경영을 펼친 결과가 어떤가요? 2018년 기준으로 영업 손실이 336억입니다. 매출의 규모는 커졌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적자폭도 함께 커지고 있어요. 합리적인 경영전략과 가격정책을 펼치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소비자가 우선이다라는 마인드로 접근하다가는 재정 사정이 계속 나빠져서 결국 도산하게 될 걸요. 기업은 현실적이어야 해요. 기업경영은 이론이 아닌 실제니까요. 현실이 담보되지 않는 이상은 오히려 독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 현실적이어야지. 그런데 말이야, 블랙 컨슈머가 있는 것처럼 회사들 중에서도 블랙 컴퍼니가 많다는 걸 알고 있나? 지금까지 기업은 겉으로는 소비자가 왕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정작 소비자의 눈을 속이고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행태를 보여 왔어. 게다가 니가 얘기한 블랙 컨슈머 같은 건 소수일 뿐이야. 이기심에 가득 찬 소수의 소비자들을 마치 다수의 소비자가 그런 것처럼 호도하고 정당화시키는 데 불과하다고.”

“내가 정당화시킨다구요? 오히려 형이 자신의 의견을 나한테 주입시키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 안 통하는군. 그렇게 기업가들의 논리를 대변하고 싶어? 금수저라 그런가?”

“그러는 형은요, 천안 촌놈이 서울로 올라와 운 좋게 돈 좀 만졌다고 되지도 않을 CEO놀음을 하겠다니, 회사 망하기 딱 좋겠는데?”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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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화. 대결(6) 20.11.17 733 9 19쪽
17 16화. 대결(5) 20.11.16 788 8 17쪽
16 15화. 대결(4) 20.11.15 818 7 18쪽
» 14화. 대결(3) +5 20.11.14 925 8 23쪽
14 13화. 대결(2) 20.11.13 1,019 12 19쪽
13 12화. 대결(1) 20.11.12 1,137 13 18쪽
12 11화. 새로운 시작(2) 20.11.11 1,121 17 16쪽
11 10화. 새로운 시작(1) +2 20.11.10 1,197 14 19쪽
10 9화. 도전(4) +2 20.11.09 1,215 18 18쪽
9 8화. 도전(3) 20.11.08 1,195 18 20쪽
8 7화. 도전(2) 20.11.08 1,246 16 21쪽
7 6화. 도전(1) +4 20.11.08 1,419 17 23쪽
6 5화. 투자(2) +1 20.11.07 1,433 17 19쪽
5 4화. 투자(1) +1 20.11.07 1,559 20 16쪽
4 3화. 만남(3) +1 20.11.07 1,549 18 15쪽
3 2화. 만남(2) 20.11.07 1,684 21 15쪽
2 1화. 만남(1) 20.11.07 1,964 20 20쪽
1 프롤로그. 그대 떠나고 나면 +6 20.11.07 1,940 23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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