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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님의 서재입니다.

고려무신 천마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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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작품등록일 :
2024.01.04 18:39
최근연재일 :
2024.02.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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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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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7,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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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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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1

DUMMY

요나라 수도 상경임황부.


석양이 드리워지고 황실이 붉게 물든다. 조금 있으면 제사가 끝난다.


궁궐에서는 천조제가 동쪽으로 절을 하며 제사의 마지막 행사를 시작했다. 흑산을 향해 절을 하고 목엽산을 향해 절을 한다.


세 번의 큰 절.


경건하고 고요하다. 수많은 신하들과 군사들, 초청받은 손님들이 숨을 죽인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고, 흑산은 영혼들이 돌아가는 곳이며, 목엽산은 요나라의 시조인 기수가한의 발상지이다.


그래서 해마다 제를 올린다.


천조제가 양팔을 펼치자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하아......"


입을 여니 뜨거운 입김이 새어 나온다. 주변을 둘러보다 소리친다.


"여기!"


싸늘하고 카랑카랑한 음성.


"하늘의 아들이자 야율억의 후손인 나 야율아과가 맹세하노니, 우리의 발걸음은 모든 곳에 닿을 것이며, 우리의 외침은 모든 곳에서 들릴 것이고, 우리는 모든 곳에 군림할 것이니."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이는 수천 년 전부터 약속된 것이며 수만전년부터 준비된 것이다."


-둥. 둥. 둥. 둥.-


북소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울리기 시작했다.


-오. 오. 오. 오. 오.-


엄숙한 울림. 천조제가 고개를 돌려 군사들을 보았다.


-척. 척. 척. 척. 척.-


자로 잰 듯이 오와 열을 맞추는 군사들. 지금까지 고요했던 것이 마치 꿈만 같았다.


"엄청나군......"


아골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런 광경을 초대받은 여진족 족장들과 함께 지켜본다. 왕 호위군인 6군이 도열한다.


-척. 척. 척. 척. 척-


한 몸인듯한 움직임.


공학, 우림, 용호, 신무, 신책, 신위. 천조제를 호위하고 반목하며 세력을 유지하는 집단. 각 100여 명의 군사로 이루어져 있으나, 한 명 한 명이 가히 일당백. 각 호위군은 상장군 한 명이 지휘하며, 신무군만이 대장군, 사마신군이 직접 관리한다.


"모두가 마력운용자인가."


양보다 질이라 했던가? 6군은 모두 마력을 운용하는 병사들이었다. 고려나 여진족에서는 '마력운용자'들은 모두 합쳐도 1000명이 넘지 않기에, 왕 호위군에만 600명의 마력운용자가 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전혀 늙지 않았군."


천조제. 요나라의 황제. 분명 노인일 진대, 무슨 짓을 한 건지 전혀 노쇠해 보이지 않았다. 창백한 피부에 여리여리한 몸.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광기가 흘렀다.


-쾅. 쾅. 쾅.-


발구름과 함께 군사들이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선다.


"황제를 받들라!"


6군을 총괄하는 장수, 신무군의 통솔자이자, 대장군 사마신군. 그가 위풍당당하게 외치자. 6군이 일시에 천조제를 향해 칼을 뽑아 든다.


-차르르릉!-


"황제를 받들라!"


사마신군이 다시 외친다. 거구의 몸집에 퍼런 안광을 뿜어내는 장수. 그 위압감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았다.


-황제를 받들라!-


이번에는 모두가 후창 한다. 번쩍이는 칼날들 속에서 천조제는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흑산과 목엽산은 다시 우리를 선택하였다. 우리 앞에 모든 오랑캐들이 고개를 숙일 것이다!"


천조제의 날카로운 음성. 천조제가 손바닥을 마주 본 채, 두 손을 번쩍 치켜든다. 그 사이로 해가 서서히 지고 있다.


순간, 어두운 자주색 빛이 세상을 뒤덮는다. 천조제를 비롯한 모든 군사들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잿빛에 가까운 자주색. 섬뜩하고 기묘했다.


"이게...... 무슨."


아골타는 눈을 비볐다. 수많은 행사에 참여했으나 이런 현상은 처음이다.


"모든 것은 천마의 뜻대로."


천조제의 날카로운 웃음소리. 천마? 아골타는 잘 못 들었나 싶었다. 그리고 순간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자신의 손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 얼마나 지났을까. 희미하게 달이 보일 때, 제사가 마무리되었다.


"모든 제사가 끝났다. 하늘과 태양. 그리고 선조의 영혼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아아아아아!-


땅을 울리는 함성.


-화르륵-


밝게 빛나는 불꽃들.


"헛것을 봤나...... 어쨌든 이제 시작이군."


제사가 끝나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런 행사에 여진족을 부를 이유는 없었다. 허나, 세를 과시하기 위함일지니.


"아골타여 아까 봤는가? 자주색 하늘을."


여진족 진관부 족장 함마식이 아골타에게 속삭인다. 얼굴에 눈에 띄게 많은 상처들. 주변 호전적 부족들 가운데 언제나 최강.


"함마식......그게 대체 뭐였소?"


"천마라고 들어봤나?"


"천마? 백련교의 신 같은 존재 아닌가?"


함마식은 고개를 저었다.


"허어. 잘 모르는군. 천마는 백련교의 신이 아니야. 천마는 그냥 천마야. 백련교? 애초에 그들은 추종자들일뿐이야."


"그냥...... 신화 같은 이야기 아니었나?"


아골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함마식은 기침을 몇 번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마력이 하늘에 닿아, 자줏빛으로 세상을 물들일 때, 천마가 탄생한다. 그는 만물 위에 서는 자일지니, 감히 고개 들어 쳐다보지 말라. 그는 존경을 바라지 않는다. 다스리지도 않는다. 언제나 조용히 군림할 뿐일지니."


"그게 대체 뭐요?"


아골타에겐 생소한 말들이었다.


"우리 진관부 근처에는 홍건군과 백련교가 득세하고 있어서 자주 듣는 소리야. 나도 궁금해서 좀 알아봤는데 천마라는 게 골 때리는 거더라고."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왜 그렇소?"


"천마는 불로불사야."


아골타는 피식 웃었다.


"불로불사?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소리 아니오? 예전 수많은 황제들 원했으나, 닿지 못한 염원인데."


"그렇지. 불로불사는 예로부터 모든 왕들의 소원이었지. 근데, 천마는 가능하다더라."


"그래서? 천조제가 천마다?"


함마식은 고개를 젓는다.


"아직은 모르지. 걔들이 말하는 데, 천마가 되는 법은 두 가지래."


"두 가지?"


"도를 깨우치는 법이 하나가 아니 듯, 천마가 되는 법도 두 가지라나. 첫째, 사신수의 주인이 되거나, 둘째, 인신공양하거나."


"사신수? 하나도 힘든 신수급 토템들을 모두 모으거나...... 인신공양이라 하면, 인간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인가?"


"그래. 방법에 따라 신천마, 인천마라고 부른다네. 좀 친하게 지내는 백련교 대주교가 알려주었지. 근데, 백련교는 인천마를 모시고, 인천마에서 인은 빼고, 보통 천마라고 부른다고 하더군."


"왕들은 되기 쉽겠군. 인천마는 말이야."


"아냐. 인신공양해야 되는 숫자가 상상초월이고, 기본적으로 마력운용자여야 해. 그 조건을 만족시키긴 쉽지 않아. 역사에 그런 자는 단 한 명."


"누군데?"


"중국 상나라의 마지막 황제 제신, 주왕. 아마 그가 천마가 아닐까 하더군."


"달기에 빠져 나라를 망쳤다는 황제? 무왕에게 패해 자살한 후, 시체까지 목을 쳤다 들었는데......"


"그때 주왕이 그런 소리를 했다지, '난 너희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불나라로 가는 것이다' 불나라가 천마를 뜻하는 거래."


"정신승리가 아니라? 근데, 그 대주교는 이런 이야기까지 너한테 하는 거냐?"


"좀 친해. 포왕삼 대주교라고...... 그놈이 그러길. 별로 비밀도 아니래. 관심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안다던데. 그리고 사실인지도 불분명하고."


"근데 천마라는 게, 왜 공포의 상징처럼 여겨졌지?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그런 느낌이었는데......"


"신천마는 모르겠는 데, 인천마는 100년마다 자신이 천마가 되기 위에 공양한 사람만큼 다시 공양해야 한다더라고. 그걸 위해 백련교가 있는 거고."


"특이한 전설이로군."


"글쎄. 전설이라고 보기에는 아까 자줏빛 세상이 너무 생생하지 않아? 아골타."


"그건 그렇지."


아골타는 아까 상황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천조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꺄하하하핫. 가장 기대하던 시간이 왔다."


그의 목소리에 아골타와 함마식의 표정이 변했다.


"그래. 오늘은 무슨 노력으로 날 만족시켜 줄까. 우리 족장들이."


세력이 큰 족장들을 참여시켜 행사에서는 압밥감을, 연회에서는 모욕을 주었다.


누가 감히 거역하겠는가. 요나라는 현재 명실공히 최강제국일진대.


"오늘 모두 고생했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건배부터 하고."


천조제가 술잔을 든다.


"천세, 천세, 천천세! 만세, 만세, 만만세!"


모두가 함께 후창 하며 술을 마신다.


아골타는 불편했다. 항상 이 맘 때였다. 이상한 짓거리는 시키는 시점은.


"꺄하하하하핫!"


남자임에도 계집 같은 웃음소리. 오늘은 또 무슨 능욕을.


"오늘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여진족 족장은 팔 하나를 자를 것이다."


"......"


여진족 족장들은 사색이 되고, 요나라의 신하들은 크게 웃었다.


"무엇으로 할까? 그래. 춤이 좋겠다. 춤을 못 추는 자는 외팔이로 살아야 해. 좋지?"


오늘의 능욕은 춤이었다. 무희가 춤을 추면, 여진족 족장들이 그 춤을 따라 하는 형식이었다.


"자자. 먼저 무희들이 시범을 보이거라!"


-띵기딩. 띠띵. 띵기딩. 띠딩-


악기가 연주되고 무희들이 흥을 돋우며 춤을 춘다. 여진족 족장들은 질세라 춤동작을 땀을 흘리며 쳐다본다. 팔을 자른다고 했다면, 정말 자를 위인이다. 천조제는 미쳤다. 하지만 강하다.


거역할 수가 없다. 무희들이 우아한 몸짓으로 유려하게 추는 춤이 끝나고, 여진족 족장들의 차례가 되었다.


"자 추거라. 족장들이여! 꺄하하하하"


천조제가 웃는다. 다들 입술을 깨물며, 투박한 몸놀림으로 진지하게 따라 한다. 모두가 웃는다. 대신들이 웃고 병사들이 웃는다.


여진족 족장들은 이 치욕을 견디며 계속 춤을 춘다. 가족을 위해, 부족을 위해. 아골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춤을 멈췄다. 혼자만 멈췄다.


"너는 왜 춤을 추지 않느냐?"


"폐하. 저희도 손님입니다. 이런 방식은 옳지 않습니다."


"손님? 꺄하하하하핫!"


정신없이 웃던 천조제의 웃음이 뚝. 멈췄다. 그리고, 악귀 같은 얼굴로 소리친다.


"이놈! 네가 감히 가르치려 드는 거냐!"


순식간에 분위기가 냉각되었다.


"가르치다니요. 어찌 제가 감히. 저는 단지 폐하의 이런 방식이 반감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겁니다."


천조제는 아무 말 없이 아골타를 노려보았다. 불편한 정적.


"그래. 그래. 모두, 나를 위해 조언한 것이렸다."


"그렇습니다."


"흠. 그렇다면 상을 내려야지.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터인데...... 완안부 족장이라 했던가."


천조제가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어딘가 싸늘한 미소.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골타는 고개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었다.


"거열형."


"예?"


지금 천조제가 거열형이라고 하였다. 흉악하고 잔인한 사형방법.


"그래. 감사해야지. 거열형으로 끝내는 것을. 꺄하하하핫!"


사지를 소나 말로 묶어 분리시키는 참혹한 형벌.


"그게 무슨."


웃고 떠들던 요나라 신하들까지도 정색한다. 그래도 손님으로 왔거늘, 거열형이라니.


"웃지 않는 자들은 같은 형벌로 다스리겠노라. 짐이 맹세하지. 꺄하하하핫!"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가 웃는다. 미친 듯이 웃고, 함마식을 비롯 여진족 족장들은 웃으며 춤까지 춘다. 열과 성을 다해서.


목숨 앞에, 자존심은 이미 사소한 것.


"다들 즐거워 보이는구나. 형은 내일 집행하거라. 시장 한 복판에서. 내 친위대인 용호군이 직접 하도록 배려하마. 아골타여. 이제 감사인사를 하거라. 완안부는 멸하지 않을 테니."


아골타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툭. 툭.-


천조제의 용호군이 무언가를 던진다. 자신을 호위하던 모극부 병력들의 머리.


"꺄하하하. 짐의 검은 호랑이, 용호군들이 불필요한 호위군들을 먼저 없앴노라."


그들은, 황제 의도를 읽고 모두 제압 후, 머리를 베었으리라.


"어이. 아골타? 감사인사를 못 들었는데?"


"천세. 천세. 천천세. 만세. 만세. 만만세. 망극하옵니다. 폐하."


아골타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고개를 숙였고, 용호군은 그런 그를 짐짝처럼 끌고 갔다.


"자. 자. 계속 추거라. 여진족 족장들이여. 오늘 밤은 취해보자꾸나."


천조제는 다시 술잔을 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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