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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작품등록일 :
2022.05.03 17:42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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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13 회
조회수 :
2,755
추천수 :
22
글자수 :
41,972

작성
22.05.06 07:11
조회
254
추천
3
글자
6쪽

최약체들의 집합소

DUMMY

우리 마을은 두 구역으로 나뉜다. 부자들이 사는 호화로운 주택이 모여있는 아랫동네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 사는 윗동네. 세상은 높은 자가 위에 서지만 우린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언덕길을 매일같이 올라야 했다.


그곳은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의 지옥이었다. 이런 곳에서 살인 나기 딱 좋을 텐데.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동네가 바로 내가 사는 윗동네였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우린 무방비 상태로 위험에 내몰려 사냥을 당했다.


" 헉헉헉헉... "


소리가 난 곳을 내려다 보니 약 50대로 보이는 작은 남자가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좁은 골목을 내달리고 있었다.


남자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무언가를 경계하는 거 같았다.


" 사..살려주세요! "


남자는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비좁은 집들을 향해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가뜩이나 방음이 좋지 않은 곳이니 그 소릴 듣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맨 꼭대기 집에 사는 나도 들었으니 다른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누구 하나 불을 켜는 사람이 없었다.


그게 우리들만의 생존 방식이었다.


남이 당할 때는 절대 숨소리도 흘리지 마라. 그럼 다음 타켓은 바로 네가 될 것이다.


" 살려주세요! 살려달라고! X발! "


애절한 외침에도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자 남자는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내가 살고 있는 곳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비록 가로등은 없지만 환하게 밝은 달빛 덕분에 난 그들의 움직임을 전부 관찰할 수 있었다. 그게 이 위에 살면서 얻은 유일한 장점이었다.


지이이익 쿵 지이이이익 쿵


남자가 달려온 거리로 시멘트에 쇠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둔탁할 것으로 보아 일반 망치보다는 몇 배나 큰 쇳덩어리인 거 같았다.


어느 곳에서나 그렇듯 언제나 약한 자들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 살려달라고, 이 X자식들아! "


남자는 계속 욕설을 내뱉으며 단숨에 우리 집 대문까지 달음박질쳤다.


가만히 평상에 앉아 있던 난 서둘러 담벼락 뒤로 숨었다.


" 문 열어! 문 열라고!! "


남자는 문이 부서져라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난 문을 열 수 없었다. 지금 이 문을 열면 망치를 든 놈이 나까지 죽이려고 달려들 거다. 운이 좋아 오늘은 살아남아도 언제 다시 나를 찾아올지 몰랐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다른 사람들처럼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외면해야만 했다.


" 너 안에 있는 거 알아! 문 열...! "


시끄러운 남자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단단한 돌덩이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푹. 푹. 푹


그 뒤로도 익숙한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밖은 이내 조용해졌다.


난 조금 더 숨죽여 기다리다가 대문으로 다가가 녹슬어 뚫린 구멍 사이로 바깥 상황을 살펴봤다.


순간 내 눈 안으로 다른 눈동자가 들어왔다.


시끄러운 소란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침착하고 냉정한 검은 눈동자. 이게 방금 전까지 살려달라고 외치던 피해자의 눈일 리가 없었다.


그 눈동자도 날 봤을지 모르겠지만 난 재빨리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터벅 터벅


한참의 대치 상황이 끝나고 드디어 놈이 아래로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난 10분을 더 기다린 후에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다행히 이번에도 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이곳은 방심하는 순간 희생양이 되는 최약체들의 집합소였다.


난 날 지키기 위해 들고 있던 기다란 칼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드디어 잠에 들었다. 이미 오늘 하나가 죽어나갔으니 나머진 안전하게 잠들 수 있을 거다.


***


다음 날, 난 출근을 하기 위해 단정한 정장을 차려 입고 밖으로 나왔다. 대문을 열자 어제의 치열했던 흔적들이 보였고 소수의 경찰이 바리케이트를 치며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벽과 바닥이 선혈로 낭자돼 있는 걸로 보아 놈이 어제 지나치게 흥분했던 거 같았다. 그럼에도 놈은 증거를 남기지 않는 철두철미한 놈이었다. 그래서 경찰도 번번이 녀석을 놓치고 있는 거다.


" 저, 실례합니다. "


그때 한 경찰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 네. 무슨 일이시죠? "


" 혹시 어제 밖에서 무슨 소리 못 들으셨나요? "


" 글쎄요. 제가 불면증이라 수면제를 먹고 잤거든요. 근데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


" 예. 근데 다들 수면제 먹고 자느라 못 들었다고 하니까 답답하네요. "


그 말에 난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우린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은 대사를 읊으며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역시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 빨리 좀 잡아주세요. 요즘 미친놈들이 워낙 많아서 혼자 다니기 너무 무서워요. "


난 진심을 다해 그들에게 나의 안전을 부탁했다.


여긴 도어락도, 방범용 cctv도 없는 무법지대였다. 이런 곳에서 두 발 뻗고 자려면 우선 놈부터 잡아야 했다. 부디 이번에는 우리에게 안전하게 살 권리를 되찾아주길 바라며 난 다시 출근길에 나섰다.


사실 어젯밤 생존 게임보다 더 험난한 게 바로 나의 출근길이었다. 힘겹게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 평지에 도달한 다음에도 버스 정류장까지 20분을 더 걸어가야 했다. 저 아랫동네 사람들은 다들 집에 개인 자가용이 몇 대씩 있어 버스 따윈 필요하지 않았던 거다. 하여 그들은 번거로운 정류장을 마을 밖으로 치워버렸고 덕분에 우리만 더 힘들어졌다.


이렇듯 세상은 우리에게 어떠한 관심도 배려도 없었다.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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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모두가 사이코' 요약본으로 몰아보기 1] 23.09.25 16 0 11쪽
10 너의 결혼식 22.05.06 72 0 8쪽
9 역대급 민폐 하객 22.05.06 81 0 7쪽
8 내가 망가트려 줄게 22.05.06 79 0 7쪽
7 위험한 관계 22.05.06 88 1 6쪽
6 실시간 맞선 중계 22.05.06 94 1 7쪽
5 복수 대신 결혼 22.05.06 110 0 8쪽
4 저 남자만 갖는다면 22.05.06 132 2 7쪽
3 살인 예고 22.05.06 143 3 6쪽
2 안 죽일 거야 22.05.06 156 3 6쪽
» 최약체들의 집합소 22.05.06 255 3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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