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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天
작품등록일 :
2011.02.18 23:24
최근연재일 :
2011.02.1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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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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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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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994

작성
10.05.0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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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공작 1화-꿈도 때론 잔혹하다 reload(3)

DUMMY

"저스틴, 아침 먹거라!"

잠이 덜 깨었는지 저스틴이 눈을 비비며 1층으로 내려왔다. 잠을 험하게 잤는지 머리에는 온통 새집이 지어져 있었고 옷은 헝클어져 있었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내려온 저스틴을 본 케이는 혀를 끌끌 차더니 씻고 오기 전에는 아침이 없다는 말로 저스틴을 밖으로 내몰았다.

밖으로 나가던 저스틴은 벽난로께쯤에서 뭔가 물컹거리는 것을 밟고는 고개를 내리는 간단한 동작으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

한참을 물컹한 물체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던 저스틴은, 어제 손님이 왔다는 기억에 미치자 두리번거리며 누군가 본 사람이 없는지를 확인한 다음,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흐으으…머리가 깨질 것 같아…"

어제 결국 포도주 한 병을 다 비운 아디아스는 엄청난 숙취를 느끼며 눈을 떴다. 벽난로가 보이는 것이 그냥 여기서 잔 모양이었다.

뚜두둑

"으으…엄청나게 쑤시는군. 맨바닥에서 그냥 자서 그런가…볼은 또 왜 이리 아픈 건지…원…"

"헛소리할 시간 있으면 나가서 씻고 오기나 하게. 설마 그 꼴을 하고 아침을 먹을 것은 아니겠지? 얼굴에 그 자국은 또 뭔가? 쯧쯧…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술에 약한지 몰라…어서 씻고 오게."

아디아스는 투덜거리며 씻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 동안 케이는 상차림을 마쳤다.

셋은 둘러앉아 아침을 먹었다. 저녁처럼 푸짐하진 않았지만 아디아스로 하여금 케이의 과거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맛있는 식사였다.

아디아스가 케이의 과거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을 무렵 케이가 그에게 물었다.

"자네, 언제까지 이 집에서 민폐를 끼칠 건가?"

"분명 주방장이었을 것…아, 뭐라고요?"

케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민. 폐. 덩. 어. 리. 언제까지 민폐를 끼칠 거냐고."

"한자 한자 끊어서 말해주니 충격이 크군요…제가 그렇게 떠나길 바라셨습니까?"

"싫으면 밥값을 하던가. 그리고 자네가 있으면 저스틴의 교육상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이 가네."

아디아스는 조용히 일어서더니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알아듣지 못할 말로 한참을 중얼거렸다.

"정말 내쫒으시는 겁니까?"

"무슨 소박맞는 것도 아니고, 회자정리이니 어서어서 갈 길 가게나."

아디아스의 표정은…정말 소박맞는 표정이었다. 그는 비칠비칠 일어나더니 천천히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케이였다.

"이 사람아, 농담 좀 한 것 가지고 그렇게 삐쳐서 가긴가?"

"아닙니다, 어차피 오늘 떠나려고 했어요. 전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델로아의 암살자들이 절 추적하고 있거든요. 아, 그리고 저스틴."

그는 잠시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품속에서 두꺼운 책을 하나 꺼내어 저스틴에게 주었다.

"심심하면 읽어보거라. 재미있는 내용이 많을 거다. 그리고…다시 만날 때에는 아마 내가 너에게 존대를 할 거 같구나."

케이는 급히 떠나는 아디아스를 배웅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북풍이 둘을 흩고 지나갔다. 겨울 초입이건만 노라스 산맥의 추위는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추위에서도 웃고 있었다.

"크로아 영지의 겨울은 정말 매서웠었죠."

"난 그 대륙 최고의 만년설을 자랑하는 카라얀 산맥에서 뒹굴고 놀던 사람이야. 크로아 영지 정도면 일반적인 추위였다고."

"후후, 다른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귀한 추위'라고들 하더군요."

다시 만남을 기약할 수도 없는 둘의 재회는 여느 사람들과의 인사말과 같았다.

"제 흔적을 지우려면 고생 좀 할 겁니다. 뭐, 케이 경은 베테랑이니깐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럼, 눈꽃의 꽃말과 같은 생활이 언제나 지속되길."

"그래, 자네에게도 하얀 날개의 광영이 함께하길."

그렇게 훌쩍 삶에 끼어들었던 여행자는 왔을 때처럼 훌쩍 떠나갔다.


여행자가 떠나간 뒤로 네 번의 봄과 겨울이 찾아왔지만 저스틴과 케이의 삶은 바뀐 것이 없었다. 여행자가 남긴 발자국은 저스틴의 방에 있는 책 한권 뿐. 그 의외에는 어느 곳에도 그가 왔다가 떠났다는 흔적은 없었다. 하루는 저스틴이 그에 대해 할아버지에게 물어 봤지만, 그저 옛날 친구라는 대답만 돌아왔을 뿐이다.

그날도 저스틴은 케이의 훈련을 소화해내곤 엎어져 기진맥진하고 있었다. 이젠 15살이나 되었는데도, 여전히 훈련을 마치고 나면 기진맥진한다는 것은 훈련의 강도가 점점 세진다는 것이리라. 어느 새 어깨를 넘어버린 검은 머리가 풀밭 위로 흐트려졌다. 그렇게 헐떡이는데도, 그의 은청빛 눈은 맑게 빛나고만 있었다. 오늘 훈련은 이것으로 끝이니 방에 가서 그 책이나 봐야지, 하고 아디아스가 준 책을 떠올리고 있던 저스틴에게 케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내일은 다임 마을에 상단이 온다고 하더구나. 이번에 그 상단을 따라 라이크 마을까지 갔다 오거라. 너도 한번쯤은 다른 마을에 갔다와보는 것이 좋겠지. 아마 좋은 기회가 될 거다. 가서 생필품들을 좀 사오거라."

저스틴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던 할아버지에게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케이는 그런 눈빛을 읽고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저스틴의 옆에 앉았다.

"다임 마을은 거래가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지지. 그래서 내가 예전에 네게 화폐에 대해 설명했을 때에 네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더구나. 그러니 한 번 라이크 도시에 가서 물건도 사 보고, 이것저것 견문을 넓혀 보거라."

"할아버지는?"

"나? 집을 돌봐야지. 또 네가 쓸 새로운 수련장도 마련해야 하고. 너 요즘 마법을 익히고 있지 않더냐?"

저스틴은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제법 나이도 먹었건만 저스틴은 여전히 할아버지에게만은 반말을 썼다. 평상시 다른 어른들에게는 깍듯이 존댓말을 쓰는 저스틴이었기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디아스 그 친구가 네게 이상한 책을 건넬 때부터 알아봤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 녀석은 천생 마법사이니 그녀석이 줄 만한 것도 뻔하지."

케이는 푸근하게 웃었다. 저스틴은 모르게 한다고 한 것이 빤히 들통 나자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사실 저스틴으로서도 얼른 마법을 익혀 할아버지 앞에서 짠!하고 보여주고 싶었지만, 마법은 그리 만만한 학문이 아니었다. 독학으로 책 한권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었기에, 그 진도는 더더욱 느렸다. 아직 제대로 된 마법 하나 부리지 못해서 저스틴은 마법을 익힌다는 것을 감추고 있었지만, 케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 내일부터 다녀오거라. 한 며칠 걸어야 할 테니 짐 단단히 싸 두고."

어둠이 짙게 깔릴 무렵, 케이는 벽난로 가에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저스틴은 아마 방 안에서 책을 읽고 있으리라. 이런 산골에서 양초는 너무나 귀한 물건이었기에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저스틴을 위해 송진을 모아 관솔불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문득 피로함을 느끼며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아니, 몸이 반응하는 건지도 몰랐다.

단지 저스틴이 성인이 되는 것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케이는 자신에게 그 정도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음을 알기에 더욱 저스틴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적어도 홀로 설 수 있을 정도는 만들어둬야 했다.

이번 라이크 도시행도 그래서 결정한 것이다. 자신이 없을 때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저스틴이 걸어가야 하는 길은 험난하다는 것을 알기에, 저스틴을 키운 할아버지로서 그가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고민 속에서 꼬박 밤을 세워버린 케이는 아침을 준비했다. 저스틴이 내려왔을 때에는 이미 라이크로 갈 준비를 나름 마쳐둔 것 같았다. 처음으로 가보는 큰 마을이기에 더욱 흥분한 것 같았다. 케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얼른 씻고 오라고 했다.

아침을 먹는 내내 케이의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도시에 가서는 이런저런 거를 조심해야 한다, 항상 주의를 기울여라, 사람들과 쓸데없이 다투면 안 된다, 등등

마지막 당부는 조금 이상했지만 말이다.

"만약 집에 돌아왔을 때에 조금 이상한 일이 있거든, 벽난로를 뒤져보거라. 할아버지가 전에 네게 보여줬던 그 벽난로 속 공간 알지? 응, 그래, 거기. 거길 뒤져보거라."

"알았어, 할아버지. 갔다 올게!"

"저스틴, 그럴 때는 할아버지가 어떻게 인사한다고 했지?"

"어…고귀한 하얀 날개의 광영이 함께하길…이었나?"

"그래, 잊어버리지 않았구나. 고귀한 하얀 날개의 광영이. 잘 다녀오거라."

케이는 저스틴의 입에서 나오는 저 고귀한 인삿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저스틴은 저 인삿말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고, 케이는 그 날이 되도록이면 늦었으면 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스틴은 기운차게 발걸음을 때었다. 날은 여전히 화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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