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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원샷오버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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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5:35
최근연재일 :
2021.05.16 06:00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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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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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8,485

작성
21.05.13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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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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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Oppression(2)

DUMMY

2.

“아, 이쪽이에요.”


여성을 따라 들어선 곳은 5분 거리의 사무실이었다.

그녀는 내가 노숙을 하려고 다리 아래에서 자리를 잡는 나를 보더니, 질겁하며 이곳까지 끌고 왔다.

소개하기론 길드 아지트라고 했지만, 주변은 그저 평범한 주택가처럼 보였다.

지하실이 딸린 3층 건물 입구에는 ‘자경단 순찰구역’이라고 쓰여 있었다.


“편하게 계세요. 오늘은 저만 숙직하는 날이라 다른 사람이 없거든요.”


건물 내부로 들어오니 손님용으로 보이는 소파와 의자가 서넛 개 정도 있었다.

여자는 나를 안내하더니 자연스럽게 소파 쪽에 앉게 했다.


“자경단이라곤 하지만 시에서 정식으로 지원받고 있어요. 절반은 국가 공인이랄까요?”


딱히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가씨는 친절하게 사정을 설명 했다.

아무래도 내가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간판을 보고 있었던 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다른 지역이랑 다르게 생소하죠? 부산은 경찰이 제대로 기능을 못해서 이런 식으로 유지해요.”


확실히 헌터가 한 지역을 머물면서 치안을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어지간히 정의감이 넘치지 않고서야 스스로 자경대를 자처하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헌터들은 욕망의 화신과도 같아서, 항상 경험치와 장비를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여성이 말하는 건 꽤나 특이한 케이스 같았다.


“휴,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예?”

“낮에 소동이요. 레이드에서 죽거나 행방불명된 헌터들이 많다고 해서··· 혹시 잘못되신 게 아닐까 걱정했어요.”

“피해가 그 정도로 심한 겁니까?”

“심하다 마다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건 근 3년 만에 처음이었거든요.”


짐작은 했지만 이상현상이었던 모양이다.

내 탓은 아니지만 뭔가 찝찝한 기분이다.

내가 이 세계로 온 직후에 시작된 레이드에서 보스의 레벨이 급격하게 올라갔다는 건···.


“당신은 이곳 출신이 아니죠?”


정확히는 이 세계 출신조차도 아니지.


“그렇게 보입니까?”

“네. 사투리를 전혀 안 쓰셔서요.”

“그러는 그쪽도 표준어를 쓰시는데.”

“아, 저는 지금 내숭떨고 있는 거랍니다? 외지 사람들한테 경상도 사투리는 기가 세보이잖아요.”


히히, 하고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살갑게 대해서 내 경계를 누그러뜨릴 생각인가보다.


“농담이에요. 저도 여기서 지낸지 좀 됐지만, 고향은 아니거든요. 태어난 곳은 경기도 쪽이죠. 사정이 있어서 친적이랑 같이 살고 있는 건데··· 실은 그쪽 분이 너무 진지해보이셔서 분위기 좀 풀어보려고 그랬어요.”


진지해 보인다라···.

비슷한 이야기는 자주 들었다.

나는 표정 관리를 잘 못해서 얼굴이 항상 굳어있으니까.

아마 이건 쓸데없이 무게를 잡고 있다는 말을 빙 둘러서 하는 말 일거다.


“어디에서 오셨죠? 수도권 쪽에서 오셨나요? 아니면 외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 아니야,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른 차원의 대한민국에서 왔다고 해봐야 믿어줄 리도 없을 테니까.


“음, 뭔가 사정이 있으신가 보네요. 죄송해요. 피곤하실 텐데 이렇게 끌고 와서···. 그치만 이것도 제 일이랍니다. 주민들이 극성이라··· 계속 귓말로 민원을 걸어요.”

“민원?”

“아, 너무 나쁜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 뭐라고 해야 할까요? 까만 코트 차림의 처음 보는 키 큰 남자가 기웃거린다나··· 돈도 없으면서 가게에 들어오더니 이상한 것만 잔뜩 물어 본다던가?”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정보 수집을 하려고 여기저기 들렸던 게 이런 식으로 문제가 생길 줄이야.


“저는 아무 것도···.”

“아, 물론이에요. 뭘 훔쳐갔다는 보고는 아직 못 들었거든요!”


아직··· 이라는 단어가 맘에 걸린다.

나는 내버려두면 곧 훔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신고 당한 건가?

부랑아 취급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닫고 나는 이마를 짚었다.


“노숙자 관리도 자경단 업무입니까?”

“앗, 그것보다는 약자 보호라고 해주세요!”

“차이가 있나요?”


나는 살짝 날이 선 반응을 했다.

노숙자가 아니라도 나를 약자라고 지칭하고 있으니, 어느 쪽이든 깔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에이, 그렇게까지 자길 낮추지 않으셔도 되요. 레벨이 낮은 게 딱히 죄도 아닌 걸요.”


그 말에 악의는 없다.

손을 저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걸 보면 날 놀리려는 의도조차 아닌 듯하다.

하지만 내가 살던 세계에서 약하다는 건 죄였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자는 어디서든 홀대받기 마련이었으니까.


“어, 어라? 제가 뭔가 말실수라도 했나요?”


핍박 받았던 지난 일들이 떠올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 아가씨는 조금 난처한 듯 했다.

아무래도 상대의 반응을 보고 호응하는 타입인 모양이었다.

상대가 너무 불편해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기로 했다.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침이 되면 바로 부산을 뜰 테니까요.”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럼 달리 무슨 의미가 있단 거지?

상대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초보 헌터가 자립하도록 돕는 것도 저희 일인걸요.”

“자립?”

“아시다시피 헌터들이 가진 클래스는 저마다 개성이 넘치잖아요?”


클래스는 개인의 성격과 본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어디서 듣긴 했다.

그걸 개성이라고 한다면 얼추 맞는 이야기겠지.


“그런 분들 중에선 대기만성형이라고··· 충분히 성장한 다음에야 힘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잠재력은 있지만 레벨이 낮은 헌터를 지원해주는 겁니까?”

“네네! 기회가 주어지기도 전에 죽거나 다친다면 불공평하니까요.”


일종의 복지 시스템 비슷한 건가?

그렇게 묻자 여자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국가에서도 정식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전국 헌터 관리본부의 지침이랍니다. 아, 물론··· 대상자가 된 초보 헌터는 저희 길드에 가입해야 하는 게 조건이지만요.”


양손을 겹쳐서 짝, 하고 박수를 친다.


“그래도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만큼 전력도 강화되고 도시가 안전해지니까 일석이조랄까요.”


듣기엔 좋다.

그래, 단지 듣기만 좋은 소리다.

이상론이라고 느껴졌다.


“저를 키워봐야 길드가 득보는 건 별로 없을 겁니다.”


나는 본래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타인이 뭔가를 건넨 다면 항상 의심부터 하고 보는 성격이다.

거기엔 아무리 작더라도 뭔가 노리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친절을 건네려하면 도리어 의심이 간다.

뭔가 속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초보 헌터를 등록 시키면 어떤 성과제에 의해서 이득을 보는 시스템일지도 몰랐다.

오래 전에 있었던 다단계 사기처럼 개인이 할당량 비슷한 거라도 짊어지고 있는 건가?


“에이, 저희는 그런 것 때문에 사람을 돕는 게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나는 살짝 비꼬는 말투로 답했다.

그러자 여자는 살짝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미심쩍게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는 해요. 제가 봐도 초면에 지원 대상자니 어쩌고 하면 당황스러울 걸요. 실제로 어린 시절의 저도 그랬고···.”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 걸까?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쪽도 지원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까?”

“아, 맞아요. 사실은 저도 그 덕에 지금처럼 성장한 거예요.”


처음부터 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하고 여자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시겠지만··· 지금처럼 세계가 안정화되기 전까진 모두 자기만 챙기고 약한 사람들은 뒷전이었어요. 저처럼 클래스가 그저 그런 사람들에겐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죠. 길드에서 도움을 주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은 살아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저 그런 클래스···.

쓴 웃음과 함께 자조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싫은 기억을 떠올렸다.


“저는 <디바인 가디언>이에요. 이름처럼 탱커라서··· 완전히 방어 쪽에만 모든 스킬이 몰려있어요. 부끄럽지만,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클래스죠.”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말투에는 열등감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분수를 아는 자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음울한 뉘앙스였다.

내가 오해한 것일까?

이 여자는 딱히 실득을 따지지 않고, 순전히 자신의 경험 때문에 나를 도우려 하는 모양이었다.

정말로··· 나를 지원해야할 약자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써 부산을 떠나실 필요는 없어요! 여기라면 초보자 육성 코스부터 일정 수준까지 장비 지원도 이뤄지고 있거든요.”


하여간 오지랖이 넓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다 이런가?

낮에 만났던 유안나라는 여자애도 그렇고, 자기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면 몸소 도우려고 손을 내미는군.


‘···성가셔.’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장비 지원이니, 길드 가입이니··· 나는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관심 없습니다.”

“그러시지 마시고요!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요.”

“그런 게 아니···.”

“아참, 내 정신 좀 봐! 그 전에 성함부터 여쭤봐야 했는데···.”


의도하고 말을 돌리는 건가?

일단 물어봤으니 나는 ‘강탄’ 이라고 대답해주었다.


“앗, 외자신가요?”

“예, 하지만 저는 길드 가입 같은 건···.”

“아하, 좋은 이름이네요! 기억하기도 쉽고··· 저는 가연이라고 해요. 이가연이에요.”


···라고 자신을 가연이라 소개한 여자는 자연스럽게 어떤 서류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초보 헌터 지원 사업 신청서’라고 쓰여 있었다.


“차라도 끓여올게요. 그 동안 천천히 작성해주시면 되요.”

“잠시만요. 저는 쓴다고 말 한 적 없···.”

“아참! 그러고 보니 어제 사온 안주가 냉장고에 있었지!”


뭐 이런 막무가내가 다 있나 싶었다.

경험상 이런 타입은 고집불통인 경우가 많은데, 내가 가장 대하기 힘든 부류에 속한다.

···잠깐, 생각해보니 이게 큰 손해는 아닐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 지도.

이 세계의 시스템을 파악하는 지름길로 삼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정말 단순한 지원 사업인 것 같군.’


서류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신청 자격도 별 것 아니야, 추천인이 필수이며 지역의 치안담당관이 보증하는 사람만이 그 대상이 된다고만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 외에는 장비를 대여해주는 조건··· 레어 등급의 아이템을 지급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면 반환할 것.

내용는 대부분 시덥잖다.

질서를 준수하고 다수를 위한 희생정신이 어쩌니, 하고 마음가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거 사냥을 위한 길드가 아니라 무슨 봉사 단체가 아닌가?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길드의 이름으로··· 아예 <서포터즈> 라고 쓰여 있었다.


‘설마 여기에 있는 녀석들은 전부 힐러나 보조계열 직업 뿐인건가?’


길드 마스터의 클래스는 <미스트 프리스트>, 부 길마는 <스피릿 인챈트리스>라는 이름이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름만 봐선 힐러에 버퍼일 테지.

이걸 보니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길드는 남을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애초에 돕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하는 녀석들이 모인 집단이 아닐까?


‘성가신 곳에 와버린 거 같군.’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갑자기 진이 다 빠졌다.

이 이상 자세히 읽어보려 해도 지금은 피곤해서 머리가 잘 돌지 않았다.

뭐, 어차피 서명 따윈 안하겠지만.


“음,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게 있었는데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여자는 종이컵에 티백 차를 쟁반에 내오면서 물었다.


“그 코트 말인데요. 직업 전용 장비인거죠?”

“직업 전용··· 뭐라고요?”

“어라? 아니에요? 저는 당연히 클래스 체인지를 안하고 그대로 계신 줄···.”

“클래스 체인지는 또 뭡니까?”

“띠용?”


이 여자, 지금 육성으로 이상한 소릴 낸 건가?

저 반응을 보니 이건 누구나 아는 상식인 모양이다.


“클래스 체인지는 일상복이랑 전투 장비를 교체할 때 쓰는 명령어잖아요?”


아, 그걸 말하는 건가?

분명히··· 어떤 스킬을 외치더니 수영복에서 갑자기 갑옷 차림이 되었었지.

마침 상대는 그걸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세요. 저는 지금 가게에서 3만원 주고 산 원피스를 입고 있지만, ‘클래스 체인지’를 하면 바로 투박한 풀 플레이트 아머로 복장이 변하거든요. 일종의 스위칭인 거죠!”


···옷의 가격을 왜 언급하는 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의미라면 나에게도 비슷한 것이 있다.

‘영총, 소피아’를 불러내는 게 나에게 있어선 ‘클래스 체인지’와 같은 개념이겠지.


“강탄 씨는 헌터로 각성한 지 얼마 안 되신 건가요?”


···사실은 리젠 현상 발발과 동시에 각성했지만 이젠 설명하는 게 귀찮다.

어떤 의미에선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야,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정말 드문 일이지만··· 늦게 각성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구나, 그래서 그러셨구나··· 하고 이 아가씨는 스스로 납득하고 있었다.

이걸로 내 신상에 대해 더 물어볼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뭔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더 동정의 눈빛으로 변한 게 영 마음에 안 들지만···.


“음, 그러면 지금 착용하고 계신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네요.”

“예, 그럴 겁니다.”

“혹시 강탄 씨의 클래스는 뭔가요?”

“스나이퍼입니다.”

“아하, 원거리 딜러 계열이군요!”


순간 상대의 눈빛이 반짝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마침 좋은 게 있답니다!”


가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바로 인벤토리를 호출하더니 허공에 손을 넣고 길고 커다란 뭔가를 바로 끄집어냈다.


“이거, 옵션은 그럭저럭 괜찮아요. 제 클래스랑은 안 맞아서 지원 물품으로 냅뒀던건데 마침 잘 됐네요!”


활이었다.

아이템 이름은 <장궁>이었다.

뭐지, 설마하니 내 클래스를 활을 쏘는 저격수라고 오인한 건가?


“아니, 저는···.”

“괜찮아요. 이건 지원이랑 별개로 그냥 제가 드리는 거니까 받아주세요.


거래창을 띄우려는 낌새도 없이, 가연은 그대로 활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장궁]

-레벨 제한 25

-공격력 10 ~ 25

-5%+ 향상된 명중률

-10%+ 추가 데미지


아이템 이름은 초록색이다.

알기 쉽게 언커먼 아이템의 바로 윗 단계인 매직 아이템인 모양이다.


‘옵션이 좋은지 모르겠는데··· 어차피 나한텐 애물단지잖아?’


딱히 착용 조건에 제한은 없지만, 아무래도 화기가 아니므로 스킬의 효과는 적용 받지 못할 것이리라.

당연히 받아봐야 처치 곤란이다.


“말씀은 고맙지만···.”

“거절은 거부할게요.”


내 대답을 차단하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압박해온다.

새삼 느끼게 된다.

호의로 포장된 선물이, 노골적인 협박보다 더 효과가 좋을 수도 있다는 걸.

상대하는게 피곤하다.

나는 당장 대충 이야기를 넘기고 조금이라도 빨리 잠을 청하고 싶었다.


“···그럼 감사히.”

“후후, 다행이네요.”


순순히 활을 인벤토리에 넣자 가연이라는 여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드물게 남에게 뭔갈 퍼주는 걸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니··· 그게 바로 내 눈앞에 있군.


“좋아요. 이제 착용하셔서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세··· 어라?”


가연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귓가에 손을 살짝 대곤, 짧은 콧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건··· 귓속말을 받을 때 나오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무슨 일이라도?”


내가 묻자 가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아, 죄송해요. 강탄 씨, 시내 쪽에 소동이 좀 있다고 하네요.”


좀, 이라고 가볍게 말하기에 가연의 얼굴은 꽤나 심각해보였다.


“저는 당장 나가봐야 할 거 같아요. 강탄 씨는 여기서 좀 기다리셔야···.”


하지만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나는 보았다.

창가 쪽에서 주홍빛이 일렁이는 것을.


“엎드려요!”

“꺄악?!”


나는 그대로 몸을 날려 가연을 팔로 감싸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그 직후, 불꽃이 건물 내부를 노리고 스며들었다.


“괘, 괜찮아요? 강탄 씨?!”


대답할 필요도 없이 나는 무사했다.

하지만 집안은 아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고개를 들어보니 창문이 있던 부분이 완전히 날아가 있었다.

불꽃이 닿은 사무실 벽면은 아예 까맣게 타들어간 흔적만 남았을 뿐이었다.


“캬, 아깝다! 그 대갈통부터 익혀주려고 했는데!”


박살이 난 벽 너머에서 비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투에는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노골적인 악의가 서려있었다.


“차라리 잘 됐네. 내려와, 개 같은 년아! 너는 내 손으로 직접 처발라줄게.”


가연은 흠칫했다.

이 더러운 악담을 늘어놓는 놈이 누구인지 아는 눈치였다.


“아는 놈입니까?”

“···최상기. 예전부터 정신이 나간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런 짓까지 할 줄이야···.”

“그쪽한테 원한이 있는 거 같군요.”

“···말씀드리지 않아서 죄송해요. 사실 저희 길드에는 적들이 좀 있어요. 저 사람은 레벨은 89에 <트리키 벤디트>라는 클래스의 불량배인데···.”


요즘 불량배는 한밤 중 건물에 테러까지 하는 건가?


“이미 그 수준은 넘어선 것 같은데요.”

“그렇네요. 원래부터 강도에 사기, 무차별 피케이··· 온갖 나쁜 짓은 골라서 하고 다니던 인간 말종이긴 했지만···.”

“다 들린다, 샹년아! 숨지 말고 당장 기어 나와!”


아래를 내려다보니 최상기라는 놈의 면상이 보였다.

과연, 경박한 입버릇만큼이나 전형적인 양아치의 생김새였다.

바짝 마른 몸에 걸친 탱크 탑과 청바지, 그리고 팔 아래로 드러나는 문신은 허세가 넘쳤다.


“당신! 이런 일을 벌이고 무사할 것 같아요? 또 감옥에 가고 싶은 건가요?”

“까고 있네. 까부는 것도 오늘로 끝이다. 너희 서포트 길드 새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척살이다.”


질서유지를 자처하는 자경단과 앞뒤 안 가리는 불량배라··· 무슨 느와르 영화라도 보는 기분이다.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지만 대충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왜 뜬금없이 무모한 습격을 감행한 거지?

갑자기 무슨 자신감이 들어서?

그 의문은 곧 양아치가 스스로 밝혔다.


“늬들은 이제 X된 거야! 이제 나한텐 이게 있거든?”

“그건···?”

“하하, 득템 했다고! 이번 레이드에서 운 좋게 말이야!”


그는 자신의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얼핏 욕을 하듯이 펼친 중지에는 기이한 모양의 반지가 하나 끼어져 있었다.

놈은 보란 듯이 그 반지의 옵션을 우리에게 공개했다.


[심연 군주의 반지(보스 유니크 아이템)]

-해신의 뱃속에서 만들어지는 결정체로 이뤄진 이형의 반지.

-이 반지를 착용한 자는 각 개체가 레벨 65의 ‘보이드 옥토퍼스’ 무리(다섯 마리)의 주인이 됩니다.

-‘보이드 옥토퍼스’ 무리의 최대 수는 착용 자의 레벨 1/3 만큼 유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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