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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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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5:35
최근연재일 :
2021.05.16 06:00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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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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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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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Brave New World(1)

DUMMY

1.

리젠 현상(Regeneration Phenomenon).

그것은 10년 전 어느 날, 인류에게 불현 듯 찾아왔다.

나는 물론,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생일대의 재앙이었지.


‘살아남아라.’


2020년 7월 28일,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8시 30분 경···.

전 세계가 뒤집어졌다.

동시에 모든 인간의 머릿속에 울리던 메시지··· 언어를 초월한 어떤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누군가는 신의 계시라고도 했다.

또 혹자는 외계 지성체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라고도 했지.

그것의 정체는 아직까지도 불명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단지 그 목소리가 모든 것의 시작이란 사실뿐이었다.

직후, 세계 각지에서 출현한 미지의 생명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괴물···.

훗날 ‘몬스터’라 이름 붙여질 인류의 적이 출현한 것이다.

놈들이 나타나는 장소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최초의 급습을 인류는 대비할 수 없었다.

결국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

나의 가족도 그렇게 해서 살해당했다.

생존자들도 삶의 터전을 잃었고, 몬스터가 발생하는 구역은 철저하게 출입이 통제되었다.

한동안 인류의 활동 범위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가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많은 나라가 붕괴되고, 시장 경제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인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자, 헌터를 자청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처음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

레벨이니 스킬, 아이템···.

모든 것이 유치한 아이의 망상같이 느껴졌다.

마치 게임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시스템이 현실에 구현되어 버렸으니, 높으신 분들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

그래서 리젠 현상 초기에는 헌터들의 입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군대를 투입하고, 전략 병기를 통해서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의외로 이때까지만 해도 현대 병기들은 유효했다.

괴물들의 외피를 뚫는 데는 총알로도 충분했으며, 장갑차와 폭격기를 동원한다면 웨이브나 레이드 보스에도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었다.

그것이 2년간이나 이어졌다.

작전 규모는 점점 커져서, 레이드가 시작되는 지역이 사전에 알려지면 전술 핵병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시점에선 통하지 않게 되었다.

새롭게 주어진 세계의 룰에 따르지 않는 인류를 비웃기라도 하듯, 몬스터들은 점점 강해져갔다.

현대 병기의 화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놈들은 거기 적응해서 더욱 기괴한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잡몹에겐 총알이 통하지 않고, 보스에겐 초고열의 핵탄두조차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인류의 전력은 자연스럽게 사냥꾼들의 몫이 되었다.

놈들을 사냥함으로써 계속해서 성장해가고, 현대 병기들을 넘어서는 화력을 기대할 수 있는 건 이제 헌터의 스킬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2년이나 벌어진 격차를 메꾸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

그 결과, 세계를 총괄하는 국제 헌터 기관이 창설되었다.

수많은 싸움을 통해서 전술이 만들어졌고, 레이드를 전담으로 클리어하는 소규모 파티들도 유명세를 나타냈다.

헌터들의 생존률이 오르자 세계도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어느새 인류에게 리젠 현상은 일상이 되었다.

대규모 레이드도 여전히 경각심을 느껴야 했지만, 그것도 랭커들의 존재 덕분에 매 주기마다 일어나는 성가신 해프닝처럼 변했다.

그렇게 인류는 앞으로도 계속, 언제까지고 빌어먹을 리젠 현상과 싸워나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긴 싸움에도 끝은 있었다.

라스트 미션···.

레벨 1억대의 보스에게 지구가 괴멸당하는 처참한 결말.

바로 내가 목격한 종말이었다.

싸울 수 있는 헌터들의 전원 사망, 그리고 모든 인류의 목숨을 소모하는 권능기의 발현···.

나는 모든 것을 각오하고 레이드 보스에게 <페이탈 불릿>을 썼다.

그걸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랬었는데···.


[레이드 시작, 제 1 웨이브까지 30초 남았습니다.]


나는 또 이렇게 리젠 현상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에서 검은색 문어를 닮은 몬스터들이 소환되어 지상으로 내려오자, 해수욕장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이 그것을 막으려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허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은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빠져있었다.


“자, 121회 해신 레이드가 지금 막 게시 되었습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떠들썩한 확성기 소리···.

햇살이 내리는 하늘 위에서 한 대의 헬리콥터가 돌아다닌다.

그 안에서 아나운서로 추정되는 여성과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서로 고조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번 레이드에는 유명 헌터 분들이 여럿 참여해주셨는데요!”

“오우, 그럼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해주실까요?”

“기대하시라, 우선! 무려 대한민국 헌터 랭크 33위! <샤인 블레이드> 클래스의 김정훈 님!”


무슨 축제의 행사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헬리콥터는 지상의 한 사람에게 카메라를 비추었다.

그러자 아래에서 은빛 갑주의 덩치 큰 사내 하나가 의기양양하게 손을 들어보였다.

그는 지금 막 몬스터 하나를 대검으로 베어 죽이고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정황상 그가 샤인 어쩌고 하는 이름의 랭킹 33위인 모양이었다.


“이어서! 대한민국 헌터 랭크 39위, 요즘 최고 인기 절정의 아이돌!”

“설마, 설마!”

“그렇습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전장의 요정! <배틀 디바> 클래스의 정미미!”


호들갑스런 소개와 함께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번에는 금발 머리의 여성이다.

하늘하늘하고 펑퍼짐한 의상···.

아무리 보아도 전투에는 적합해보이지 않는 드레스 같은 것을 입은 여자가 귀여운 포즈로 헬기에 인사를 건넸다.

춤을 추는 걸로 버프를 주는 건지, 연신 허리와 엉덩이를 요염하게 흔들고 있었다.

이어서 아나운서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을 거론해나갔다.

하지만 나에겐 전부 생소한 직업들···.

나이트에 레인저, 메이지라거나 하는 이름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세계는 컨셉이 죄다 중세 판타지 RPG의 직업군인가?’


내가 살던 세계의 클래스의 명칭은 달랐다.

내 직업이 <스나이퍼>인 것과, 랭킹 1위 조나단 스위프트가 <텍티컬 커맨더>였던 것처럼··· <어썰트 슈터>, <컴뱃로이드 파일럿>같은 느낌이었지.

대부분 밀리터리나 SF스러운 이름들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보다 게임 같은 느낌으로 클래스가 정해진 듯 보였다.

어찌 보면 이쪽이 더 직관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

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레이드는 언제나 군사작전과 같은 수준으로 엄격하게 운용되어야 하는 게 보통일 텐데···.

이 분위기는 대체 뭐란 말인가?

방송국 헬기가 레이드를 취재한다고?

랭커들을 하나하나 조명하면서 호응을 끌어내?

사람들의 반응도 그렇다.

하나같이 실실 쪼게고 있어, 마치 축제나 행사를 즐기는 것만 같다.

랭커라고 소개된 사람들은 무슨 연예인처럼 소개받고 그들 또한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주 생쇼를 하고 있네.”


모두 다 레이드의 클리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모든 게 그저 장난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희생 없이 레이드를 무사히 끝내는 게 일상이란 말인가?

그 정도로 이 세계는 헌터들의 수준이 높다는 걸까?


“어이! 니 뭐꼬? 레이드 시작한지가 언젠데 와 멀뚱히 서 있는데?”

“아?”


뜬금없는 사투리가 들려왔다.

내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 사이, 누군가가 어깨를 건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나보다 머리 두 개 크기만큼 작은 키의 누군가가 서 있었다.


“늦으면 그만큼 경험치 못 먹는다!”


거친 말투, 하지만 상대는 앳된 외모의 소녀처럼 보였다.

어깨 높이로 깔끔하게 정돈한 갈색 웨이브 단발, 왼쪽 뺨에 그어진 일자 흉터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입고 있는 복장은 활동성이 좋은 레더 아머처럼 보였는데, 가지고 있는 무기가 단도 두 자루인 걸로 미루어볼 때··· 도적 비슷한 직업 같았다.


“와 가만히 있냐니까? 뭐라 말 좀 해보라 안카나? 니 설마 하이에나가?”


하이··· 뭐?

이 아이는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아씨, 참가 안 할 거면 아예 레이드존 바깥으로 나가던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녀는 도끼눈을 뜨더니.


“니 같은 아들 때문에 괜히 경험치랑 템 분배율만 더 늘어난다 아이가!”


못마땅하다는 듯 쏘아붙였다.

대충 소녀가 뭐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역시 어디에나 레이드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노리는 사람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흐응, 하는 콧소리를 내며 소녀는 나를 한참 동안이나 미심쩍게 올려다 보더니.


“아놔··· 허우대는 멀쩡해 보이는데, 설마 쪼렙이라서 이러고 있는 기가?”


쪼렙?

내가 말인가?

인류 최초로 레벨 50만을 달성하고 권능기를 해금시켰던 이 몸이?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릴 하는 거지?”


내가 아는 한, 특수한 스킬이 아니고서야 상대의 레벨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것은 파티를 하거나 길드에 들어가도 표기가 되지 않아, 직접 상태창 화면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오직 상대의 말만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내 물음에 소녀는 동문서답으로 답했다.


“뭐고? 니 제대로 말할 수 있네? 벙어리인 줄 알았다.”


대화에 질려서 한숨이 나오기 일보직전, 소녀는 아예 피식 웃으면서 내 가슴을 툭 쳤다.


“레벨 말이가? 그거야 다 아는 방법이 있데이. 내 고유 스킬 중 하나가 상대의 강함을 파악할 수 있다 안카나.”


강함을 파악한다?

역시 내 통찰의 눈과 비슷한 능력인가?

하지만 내 레벨은 분명 50만이다.

그런 내가 한 수 아래도 보일 정도라면 이 소녀는 얼마나 강하단 거지?


“내 레벨이 그렇게 낮은 건가?”

“내사 모르지. 내는 내보다 아래인 수준인건 느낄 수 있어도 정확한 수치까진 모른다. 대충만 아는 기지.”


확신에 가득 찬 말투,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아, 근데 닌 약해보이거든. 멀대 같이 키는 큰 게 눈빛이 흐리멍텅해서.”


편견이 섞인 첫인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아무래도 내가 어지간히도 만만하게 보였나보다.


“마, 그럴 수도 있지. 쪽 팔리니까 대놓고 말할 수 없는 거 이해한데이?”

“하···.”

“글체,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은 있으니까는.”


초면에 이렇게까지 낯가림 없이 남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걸 뻔뻔하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넉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어째 누가 보면 오래도록 아는 사이처럼 보일 지경이다.

나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이 여자애와 더 어울려봐야 나만 손해일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방은 계속해서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야, 잠깐만! 니 허접이라고 너무 주눅들 필요 없데이.”

“나한테 상관하지 마.”

“주제에 머스마라꼬 무게잡나? 근데 이제 와서 쿨한 척 해봐야 하나도 안 통한다.”

“······.”

“에이, 잠깐 멈춰 보라 안카나!”


소녀는 빠르게 달려오더니 내 앞을 막아섰다.

이 정도로 거침이 없으면 오히려 화낼 기분도 들지 않는다.


“삐지게 했다면 사과할꾸마. 대신 내가 파티해줄 테니까 기분 좀 풀그라, 응?”


소녀는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머리 위로 커다란 텍스트와 함께 머릿속에 메시지가 울렸다.


[유안나 님께서 파티를 신청하셨습니다. (Y / N)]


나는 이 커뮤니케이션 기능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과연, 이런 시스템은 내가 있던 세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쩔 해줄게. 니는 안전한 곳에서 구경이나 하고 있으라. 대신 나중에 한턱 쏘기, 콜?”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 지나치게 뻔뻔한 소녀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이어서 ‘초보자를 이끄는 게 고수의 역할’ 어쩌고 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자신이 넘쳐보였다.

허나 나는 이 시스템에 꼼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레벨 차이가 좀 나는 헌터와 파티를 하면 경험치가 나눠지는 대신, 레이드에서 나오는 특수 아이템의 습득 확률이 조금 더 올라간다는 사실을.

내가 살던 세계에서도 그걸 적극 이용하던 랭커들이 많았다.

이 여자애는 아마 그걸 노리고 자기보다 약한 헌터를 찾아서 구하러 다니고 있었을 테지.

···하긴, 가만히 구경만 하라고 자기 입으로 말했으니, 딱히 손해는 없나?

나는 잠깐 생각하다 소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강탄 님께서 파티에 합류했습니다.]


“흐응, 이름이 ‘강탄’이가? 쪼까 특이하네.”

“그래, 이상한가?”

“아니, 좋은 거 아이가? 이름이라도 쌔보여야지.”


지 딴엔 칭찬이라고 하는 말인가?

의도가 어떻게 되었든지, 이 소녀는 남의 기분을 건드리는데 어떤 재능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좋데이, 그럼 레이드 하는 내내 잘 도망 다니고 있그라! 잘 하면 오늘 2, 3업 정도 할 수 있을 기다. 그 사이에 괜히 나대다가 뒤지지만 않으면 말이제.”


소녀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늘어놓고 몬스터들의 무리로 뛰어들었다.


“하아.”


···지친다.

조금 상대한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안 그래도 나는 남을 오래 상대하면 금방 진이 빠지는 내향적인 타입의 인간인데, 저렇게 사람을 막 대하는 버릇없는 부류는 더욱 성가시다.

그래도··· 덕분에 이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소녀와 나눈 대화로 어떤 아이디어도 떠올랐고 말이지.


‘그래, 일단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좀 더 알아야할 필요가 있어.’


아무래도 나의 상식은 여기에선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이 세계에 떨어진 이상··· 좋든 싫든 익숙해져야 하겠지.

우선은 정보 수집이 급선무였다.


“<통찰의 눈>.”


나는 스킬을 발동시켰다.

통찰의 눈은 몬스터의 이름과 레벨을 파악하는 용도로 쓰지만, 필요하다면 헌터를 상대로도 측정이 가능했다.

스킬의 사용 대상은 당연히 방금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던 소녀였다.


이름 [유안나]

레벨 [78]

클래스 [베노믹 어쌔씬]


대충 클래스 이름만 보면 독을 사용하는 암살자 계열인 듯 했다.

하지만 레벨 78이라···.

기가 드센 것 치곤 저렙이군.

나더러 약하다느니 어쩌고 한 말은 전부 허세였나?

그렇다면 굉장히 수준이 낮다.

내가 있던 세계에선 사냥을 거의 하지 않는 노인조차 레벨이 1만대엔 들어갔었는데 말이다.

아니, 잠깐.

어쩌면···.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통찰의 눈을 사용해보았다.

그러자 황당한 결과가 나왔다.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둔기로 잡몹들을 시원스럽게 잡는 헌터는 레벨이 71에, 멀리서 마법 같은 것으로 몬스터들을 몰아서 한 번에 태워 죽이는 여자는 88이었다.

심지어 방송국 헬기에서 아나운서가 대한민국 랭커라면서 낯 뜨거울 정도로 띄워주던 이들도 기껏해야 159, 150에 불과했다.

뭔가가 이상하다.

다들 레벨의 수치가 왜 이렇지?

이상할 정도로 낮아, 이 세계는 레벨이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르게 수치화되는 건가?

그래, 이번엔 몬스터들을 대상으로 통찰의 눈을 써보자.


이름 [심연의 종속, 보이드 옥토퍼스]

레벨 [65]

속성 [야수, 암속성, 수속성]

약점 [머리, 뇌속성, 광속성]


상대하는 몬스터들의 수준도 고만고만하다.

이 세계에선··· 이 정도 레벨이 보통이란 말인가?

레이드를 대하는 분위기가 축제에 가까웠던 것은 모두 이런 이유에서 였던 건가?

나는 어이없는 결론에 이마를 짚었다.


‘···대충 알았다. 너희들의 레벨···.’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아니, 아니지.

이건 위험 발언이다.

게다가 나는 이미 어떤 의미론 한 번 죽었지 않은가?

고작 이딴 허탈감에 죽을 정도로 내 멘탈은 약하지 않다.

···그건 그렇고 아직 뭔가 거림직한 부분이 있다.

그 소녀는 어째서 내가 쪼렙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레벨을 파악하는 특수 스킬이 있다는 게 딱히 거짓말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앗차 싶어서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강탄>

[클래스 – 스나이퍼]

[레벨 – 1]


잠시 동안, 내 머릿속은 새하얗게 되었다.

황당하게도 레벨이 초기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조금 더 아래로 시선을 향하자 또 다른 충격이 몰려왔다.


[누적 레벨 – 499,999]

[남은 스킬 포인트 – 499,999]

[남은 스텟 포인트 – 2,499,995]


“···누적 레벨이라고?”


듣도 보도 못한 개념이다.

적어도 내가 있던 세계에서 이런 일은 전혀 겪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좀 더 나 자신의 능력치를 파악해야만 했다.

스테이터스··· 인벤토리와 스킬창을 순서대로 열었다.


[근력(STR) – 10]

[재주(DEX) – 25]

[지력(INT) – 15]


반환된 포인트들을 보고 예상한 것처럼, 스텟도 역시 초기 값인 총합 50으로 돌아와 있다.

인벤토리는 완전히 비어있다.

내 무기인 저격총은 물론, 비축해둔 전투식량과 탄창도 전부 사라져있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스킬창이었다.

기본으로 주어지는 통찰의 눈은 무사했지만··· 전반적으로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본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마탄 장전>이나 <탄 속성 부여>··· 심지어 패시브들도 전부 본 적 없는 스킬들로 넘쳤다.

머릿속이 복잡해, 나는 무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그 사이···.


“꺄아아아악!”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불길한 울림에 고개를 들자 바다 저편, 해안가에 밀집된 헌터들이 보였다.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의 왁자지껄한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보, 보스한테 사람이 죽었어!”

“멍청하긴, 어떤 허접이야?”

“선딜이 뻔히 보이는데 그걸 회피 못하는 놈도 있어?”

“제기랄! 이런 패턴은 없었다고!”


나는 이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익숙했다.

그것은 패닉, 레이드에서 반드시 일어나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

뭔가 나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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