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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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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5:35
최근연재일 :
2021.05.16 06:00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8,773
추천수 :
667
글자수 :
88,485

작성
21.05.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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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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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
16쪽

Doomsday(2)

DUMMY

2.

권능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스킬의 성능은 터무니없었다.

‘절대 명중’은 알겠다.

‘절대 관통’도 어이가 없는 옵션이다.

‘속성 무시’까지도 그렇다 치자.

이 정도면 이름만 들어도 대충 무슨 사기 능력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반면, 인과율을 무시한다는 설명은 도대체?

···아니, 아니다.

사실 당장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명중한 적이 즉사한다는 내용부터 이 스킬이 어느 과거에서도 비교대상이 없을 만큼 강력하다는 것은 알겠다.

충분히 이해했다.

이것은 충분히 ‘권능기’ 라는 명칭에 어울린다는 것을.

하지만 가장 어이가 없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전 인류의 목숨을 대가로 권능이 담긴 탄환 한 발을 장전합니다.


어떤 악의마저 느껴질 정도의 설정이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함께 지옥으로 가자는 의도인가?

인류 전체를 소모한다는 조건···.

거기다 탄환을 쏘면 다름 아닌 나 자신마저 죽는다니?

대체 어떤 미치광이가 무슨 생각으로 이딴 걸 짜놓은 거지?

신?

아니, 이 경우에는 악마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다.

우리들을, 인간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노는 이 짓거리가 악마의 장난이 아니면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 따지고 보면 ‘몬스터’니, ‘레벨’이니 하는 것 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다.

정해진 지역마다 괴물들이 리젠되고 그걸 잡아서 경험치를 쌓는 것 따위··· 유행이 한참 지난 10년 전의 RPG 게임의 세계를 그대로 현실에 구현해 놓은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부조리하다.

납득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이것도 전부 나에겐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돌겠네, 진짜···.”


나는 어금니에서 까득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깨물었다.


“나는··· 내 목숨과 인류 전체를 희생해서 까지 저 놈을 쓰려 뜨려야 하는 건가?”


나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 걸까?

의미 없는 반문이었다.

당연히 대답은 돌아올 리도 없었다.

어차피 이 스킬을 써버리면 모든 인간은 물론 나도 죽어버린다.

그렇다면 보스를 쓰러뜨린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레이드를 끝낸다고 해도 미래에 뭐가 남는단 말인가?

엄밀히 말해서 이건 발악일 뿐이다.

그나마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명까지 길동무 삼아 떠나는 화려한 자살에 불과하다.


“X발···.”


분하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격하게 굴욕적이다.

10년간 필사적으로 살아왔던 비참한 시간들이 모두 허망하게 느껴졌다.

허나 이윽고 그마저도 곧 가라앉았다.


“···하, 진짜 개 같은 인생.”


어떤 사실을 인지해버린 그 순간, 놀라울 정도로 기분이 차분해졌다.

왜냐하면, 이해하고 말았기 때문에.

지금 나에겐 남은 것은 한 가지 뿐이었다.

유일한 선택지는 ‘권능기’를 사용하는 것 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이미 인류는 패배한 거지.”


달관한 듯 지껄이고 있었지만, 나는 납득하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스스로를 고양시키기 위해, 나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 것도 안 해도, 이대로 내버려두면 전부 죽어버릴 테고.’


나는 어느새 동해를 가르며 내륙으로 다가오고 있는 보스를 향해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끝장이라면···.”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바닥에 나뒹구는 내 전용무기를 꺼내들었다.

대물 저격총.

만티코라 30mm.

군수공장에서 찍어낸 영혼 없는 양산품.

합금과 탄소섬유로 만들어진 십수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검은색 쇳덩이 불과하지만 그래도 10년간 내 곁을 지킨 파트너였다.

나는 이 녀석과 함께 긴 시간을 살아남았다.


“마지막엔 내 마음대로 해주겠어.”


나는 평생 숙여왔었다.

언제나 비굴했지.

항상 움츠려들었다.

후방에 숨어서, 오직 지원 사격만 하는 그늘에 가려져있었다.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는 태생···.

기질에 의해서 결정되는 ‘클래스’의 저주에 계속 휘둘려왔다.

지금까지도 나는 망설여진다.

어쩌면 권능기를 쓰는 게 내가 아닌 편이 더 좋았을 지도 모른다고.

나 따위는 비웃을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용기 있는 헌터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그 영웅 조나단 스위프트였다면, 그가 나보다 먼저 레벨 500,000을 달성했더라면···.

랭킹 1위답게 훨씬 결단력 있게 마무리를 했을 거다.

적어도 나처럼 우유부단 하진 않았겠지.


“···제길, 이딴 식으로 죽고 싶진 않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운명의 사슬에 억지로 당겨져서 끌려가는 기분이 든다.

권능기를 쓰고 화려하게 죽어라, 하고 누군가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설사 그럴지라도 나는···.


‘나는··· 최후의 헌터다.’


하지만 그 덕에,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겁쟁이였기에, 항상 최후면에서 대기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아직 살아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단지 우연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둥 하는 자연의 법칙도 있다.

이제 와서 죽어간 동료 헌터들을 떠올려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지.

그러니까 마음을 다 잡아, 놈을··· 보스의 머리통을 조준해라.

이렇게 죽는다 해도, 시도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쏟아 붙는 거다.


“<페이탈··· 불릿!>”


나는 장전 손잡이를 당기면서 스킬의 발동어를 외쳤다.


“···으, 윽?!”


그러자 빛줄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가까운 곳에서는 도시로부터, 먼 곳으로는 바다 건너에서···.

나선의 형태를 가진 에너지의 흐름이 사방에서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수천, 수만··· 아니, 그보다 훨씬 많다.

광선이 수억의 단위로 내가 들고 있는 총의 약실로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가?

이것이 생명?

전 세계의··· 아직 살아남은 모든 인류의 목숨이 여기로 집결하고 있는 건가?

제기랄, 이걸로 돌이킬 수 없다.

나는 모든 인류를 내 잣대로 죽여 버린 희대의 살인마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모두들 최후의 순간까지 저따위 괴물에게 유린당하면서 죽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그렇다면··· 이 죄는 내가 짊어지겠다.’


눈이 부시다.

뜨겁다.

총을 잡고 있는 손바닥과 견착하고 있는 어깨가 타들어가는 것 같다.

수십 초가 지나자 이글거림은 조금 약해졌지만, 이번에는 총신 자체가 빛나기 시작했다.

본래 검은색이었을 내 저격총이··· 온통 황금색 오오라로 번쩍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형태도 완전히 달라, 스코프는 얼굴의 반을 가리는 형태로 변했고, 방금 막 당겼던 장전 손잡이도 사라졌다.

부품조립으로 만들어진 인공물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이음새도 보이지 않아, 이것은 전혀 다른 물건이 되었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얼핏 보았을 땐 무기가 아니라 예술품과도 같은 현상이다.

무기를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오!”


하지만 지금은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느새 레이드 보스의 시선이 내 쪽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놈은 좌우로 열리는 아가리로 포효하며 명백한 적의를 드러냈다.


하기야, 권능기를 쓰면서 그렇게 많은 빛이 나에게 집중되었으니 어그로가 끌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하겠지.


“하, 이제야 날 봐주는 거냐?”


어째서일까?

공포는 이미 사라졌다.

거짓말처럼 떨림이 멎어있었다.

상식을 초월하는 괴물, 레벨 1억에 달하는 초월적인 적을 마주보면서도 마음이 놀라울 정도로 냉정하다.

이유는··· 알고 있다.

나에게는 지금 수십억의 생명이 함께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말없이 총을 들어올렸다.

스코프에 오른쪽 얼굴을 붙이자 신경이 직접 연결되기라도 하듯, 시야가 확장되었다.

그것은 정면의 괴물뿐만 아니라 더 먼 곳까지 내다보는 천리안과도 같았다.

보인다.

습기나 바람의 흐름, 괴물이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떨리는 대기의 진동까지··· 모든 것이 느껴졌다.


“고오오···!”


순간, 보스가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자세를 낮췄다.

이어서 전신을 경련하며 등짝의 표피를 열어젖히고 날개처럼 전개했다.

파직, 파지직.

기이한 마찰음이··· 뭔가가 찢겨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놀랍게도 괴물이 서 있는 바다 표면이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엄청난 냉기··· 숨결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차가운 공기가 여기까지 닿을 정도다.

주변의 열을 빨아들이고 있는 건가?

괴물의 벌어진 입 주변에서 심상치 않은 주홍색의 섬뜩한 빛이 감돈다.

나는 직감적으로 눈치 챘다.

이게 바로 북미 대륙과 달을 날려버린 그 기술이라는 걸.

놈은 오직 나를 죽이기 위해서 그 최흉최악의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신기하군.’


그러나 역시 두려움은 없다.

일말의 공포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어차피 버린 목숨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전 인류의 목숨이 담긴 이 탄환이 나에게 용기를 주고 있기 때문일까?

이 와중에 레이드 보스의 움직임은 느릿해 보였다.

마치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과 같았다.

어쩌면 이것도 권능기의 힘인 걸까?

하지만 마냥 기다리진 않을 것이다.

망설이고 있을 이유가 없다.

조준은 이미 옛적에 끝났다.

노리는 것은 머리.

친절하게도 쩍 벌려 속을 드러내준 저 입속에, 모든 생명을 담은 일격을 처박아줄 것이다.

나는 손가락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인생 최후의 방아쇠를 당겼다.

일순간 총구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총열을 타고, 손잡이를 거쳐 나의 팔과 몸이 증발하기 시작했다.

고통은 없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은 백광(白光)에 집어 삼켜졌다.

나의 마지막 생명조차···.

···.

······.

뭐지?

아직 의식이 있다.

나는 이걸로 죽지 않았던가?

레이드 보스는 어떻게 된 거야?

세계는?

분명히 권능기의 설명에는 사용한 자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쓰여 있었을 텐데?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움직여보려 했지만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아서 자각도 할 수 없다.

보이는 것은 빛 뿐.

어둠은커녕,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새하얀 세계가 펼쳐졌다.

설마하니 이것이 죽음인가?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죽어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상상하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주 찰나 같으면서도 굉장히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의식은 점점 더 또렷해지기만 했다.

어느 시점에서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죽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빠져나가야 해, 깨어나야 한다.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선 한 시라도 더 있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눈앞의 풍경이 변했다.

처음에는 살짝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살짝 붉은 기운을 머금은 색이 감돌았다.

아니, 아니었다.

이것은 풍경이 변한 것이 아니다.

착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저 눈꺼풀이 닫혀 있을 때의 광경이다.

나는 단지, 지금까지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었다.


“···헉!”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숨이 쉬어져··· 공기가 느껴진다.

이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괜찮으세요?”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초록색 비키니를 입은 처음 보는 여자 한 명과 그녀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랬다.

사람들이 있었다.

‘형씨, 이 더운 날씨에 코트 차림이니까 일사병 걸린 거 아냐?’ 같은 이야기로 나를 둘러싸는 중이었다.


“어, 아···?”

“갑자기 백사장에 쓰러지셔서··· 혹시나 싶어서요.”


주변에서 뭐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미 듣고 있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눈에 들어오는 모습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늘은 푸르다.

한 점의 구름조차 없이 맑은 날씨다.

파도소리··· 부산 앞바다?

북적이는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남녀 모두 하나 같이 해수욕이라도 즐기려는 것인지 수영복 차림이었다.


‘나는 대체···.’


수많은 가능성이 떠올라, 걔 중에는 유치하고 터무니없는 생각도 있었다.


‘설마, 회귀?’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것일까?

아직 리젠 현상이 일어나기 전의 평화롭던 세계로···?

이게 무슨, 오래 전에 유행하던 판타지 소설 클리셰도 아니고?

그래도 나에겐 확신이 필요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앞에 있는 여자에게 물었다.


“잠깐, 지금··· 오늘이 언제죠?”

“네?”

아뿔싸, 맥락 없이 이상한 질문이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질문했다.


“아니, 그게. 오늘 날짜 말입니다.”


여자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8월 11일인데요?”


이상하다.

날짜는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있던 세상과 그대로였다.


“한 가지 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올해 년도가 어떻게 되죠?”

“엥? 올해요? 그야 당연히···.”


여자는 다른 사람들과 나를 번갈아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2030년이잖아요?”

“뭐···.”

“아이참, 괜찮으세요? 정말 더위 드신 거 아니에요?”


이럴 수가, 나는 잠깐 당황했다.

년도까지 정확히 내가 살던 세계와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상이 빗나갔다.

나는 회귀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대체?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설마··· 평행세계? 다른 차원으로 전이해온 건가?’


현실성이 있는가는 이미 상관없었다.

권능기의 설명 마지막 부분에는 ‘???’ 라고 알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한 건 없었다.

하지만 당장은 이 세계가 내가 살던 세계와 얼마나 다른 지가 더 문제였다.


“자꾸 이상한 거만 물어서 미안합니다. 한 가지만 더 질문해도 될까요?”

“아니에요. 얼마든지요.”


아무래도 정말로 내가 일사병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태처럼 보였던 것인가?

아니, 설사 그렇다 해도 초면인 나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대해주다니.

이 여성은 굉장히 다정한 성격인 모양이었다.

자세히 얼굴을 보니 꽤나 미인으로,

롱 스트레이트 헤어가 잘 어울리는 유순한 인상을 가졌다.

게다가 초록색의 비키니 수영복을 소화해낼 수 있을 만큼 풍만한 몸매의 소유자···.

이렇게 가까이서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 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 미모에 살짝 멍해진 탓인지,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 온 건가요?”


아차, 또 이상한 소리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물어볼 필요가 없는 질문이지.

하지만 내가 살던 세계에서 바다에 모여서 노는 광경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언제 몬스터가 리젠 될지도 모르는 장소에서 해수욕 따위를 하는 미치광이는 없었으니까.

여자는 잠시 풉 하고 웃더니.


“에이, 그거야 당연히···.”

“미안합니다.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아니죠. 그럴 리 있나요?”

“···네?”

“누가 이럴 때에 해수욕 같은 걸 즐기려고 오겠어요?”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당연히 레이드 때문에 모인 거죠.”


여자는 어느새 시선을 바닷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슬슬 시작하겠네요. 해신 레이드.”

“해···신?”


레이드라니?

이쪽 세계에도 리젠 현상이 있는 건가?

예상을 뛰어넘는 여자의 반응에 내가 말문을 잃고 있던 사이, 갑자기 머릿속에 뭔가가 직접적으로 흘러들어왔다.

뇌에 다이렉트로 전달되는 익숙한 메시지··· 나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레이드 시작, 제 1 웨이브까지 30초 남았습니다.]


“아, 마침 하네요.”


여자는 생긋 웃어 보이더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어서 해수욕장에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도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럼 그쪽 분도 열심히 싸워 봐요! 득템 하길 빌게요.”


그리고는 오른손을 하늘로 뻗더니, 뭔가를 읊조렸다.


“<클래스 체인지>!”


그때였다. 여자의 전신에서 푸르스름한 오오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영복 차림이었던 여자는, 어느새 검과 방패··· 화려한 상아색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로 변해 있었다.

이어서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법사를 연상케 하는 로브를 뒤집어 쓴 청년, 고대의 기병처럼 미늘창과 가죽 갑옷을 입은 중년 등 특이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복장들이 이상해, 하나 같이 중세 판타지에 나올 법한 모습들이었다.

이쯤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터무니없는 세계로 빨려 들어오고 말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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