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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태진
작품등록일 :
2024.04.04 15:18
최근연재일 :
2024.04.18 18:30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2,267
추천수 :
74
글자수 :
65,963

작성
24.04.1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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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3화 코인판의 숨은 그림(3)

DUMMY

비밀회의가 열리는 날 새벽 3시.

모텔 주변에는 공사장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천막이 쳐졌다.

그리고 모텔 공사를 알리는 안내문이 걸렸고, 용달 한 대 정도만 들어올 수 있는 임시 출입문이 세워졌다.

보통 이러면 앞과 뒤, 좌우만 가려지게 마련인데, 도현준은 건물 옥상부터 담벼락까지 모두 다 가려버렸다.

이로써 그레이드 모텔은 안과 밖이 완전히 단절된, 하나의 섬처럼 변해버렸다.

김한주는 CCTV로 상황을 체크하며 탄성을 터트렸다.


“이틀 만에 가능한 일이라고, 이게?”


하지만 그는 탄성만 지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팀장에게 상황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모텔은 완벽히 차단되었습니다. 드라이버들에게 용달 트럭의 위치도 전달했습니다. 정말 완벽한 준비입니다.”

[정말로 모텔 측에서 준비했다는 거지?]

“네.”

[우리가 준비한 건 하나도 안 쓴 건가?]

“네. 우리 쪽에서 준비한 식사도 다 취소했습니다.”

[그쪽 식재료는 확인하지 않았는데, 괜찮을지 모르겠군.]

“이런 회의가 열릴 때마다 식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식사를 해도 빵이나 커피 종류여서 성분이나 독극물 여부는 체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창고를 살펴보니 기성 제품을 그대로 입고해서요.”

[회의를 하다보면 식사하는 것도 잊어버리기 마련이니까. 흐흠, 자네 말대로 한 번 맡겨보지.]


이후 김한주는 각 객실을 체크했다.

하지만 그의 체크리스트의 부적합 칸에 체크된 항목은 단 하나도 없었다.


“6성급 호텔도 지적사항이 나오기 마련인데, 어떻게 모텔이 이럴 수 있지?”


김한주는 도현준의 이력을 다시 보았다.

한국대학교 졸업, AI연구소 입사 후 바로 지원팀장 승진, 2년 후 연구소 운영 총괄 이사로 초고속 승진하며 실질적인 CEO 역할을 했다.

이후 연구소는 만성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고, 정부와 대기업의 AI 관련 연구를 50% 가까이 수주하는 대형 연구소로 성장했다.

만약 연구소장 횡령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국내 가전의 AI 기술 대부분을 이 연구소가 담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버지와 형님은 신소재를 연구했던데 도현준은 AI 연구소를 운영했어. 그런 사람이 이런 모텔을 운영한다는 건······.”


도현준의 과거와 현재는 완벽히 매치되는 게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도현준의 능력과 뭘 해도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감이었다.


“다음 회의도 맡겨야겠군.”


김한주는 새로운 결심을 하며 로비로 향했다.

예상대로 그곳에 도현준이 서있었다.

김한주는 그에게 스케줄표를 건네며 말했다.


“내일 로비에 저와 함께 서주시죠.”

“호스트 역할을 하라는 거군요.”

“네. 호텔 측에 이런 제안을 하는 건 처음입니다.”

“여긴 호텔이 아니라 모텔입니다.”

“아!”

“호텔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것들을 맛보게 해드리죠.”

“이번 회의는 이벤트가 어울리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닌데요?”


김한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상대에게 도현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만 보냈다.


* * *


오전이 되자 회의 참석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도현준은 김한주와 함께 그들을 맞이했다.

처음 온 참석자는 미국에서 온 남자였다.

그는 난생처음 용달을 탔다며 얼굴에서 핏기가 빠진 채 로비에 들어섰다.

도현준은 그에게 매실청이 섞인 탄산음료를 권했다.

그가 한 모금 한 후 입을 열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요. 베리 굿!!”


약 1시간 후에는 일본 남자가 들어섰다.

그도 역시 용달이 신선했다며 엉덩이가 아팠다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도시 한가운데에서 회의를 할 수 있냐며 주최 측을 질타하는 것 같은 말을 했다.

김한주의 얼굴이 붉어지는 가운데 도현준이 입을 열었다.

당연히 일본어였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도심에 있다는 느낌은 안 드실 겁니다.”

“그걸 어떻게 믿죠?”

“그건 다 끝나면 판단하게 되실 거고요. 회의 전에 사우나부터 이용하시겠습니까? 피로 회복에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 같은데요.”


도현준은 그 말을 하며 일본 남자를 남자 사우나로 안내했다.

약 30분 후, 일본 남자는 로비를 다시 찾았다.


“사우나 전경이 신기하더군요.”


그 말을 하던 그의 표정은 ‘이 정도면 좀 하네!’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우나는 지하에 자리하고 있었다.

보통 지하에 위치한 사우나의 경우, 꽉 막힌 곳에 자리한 어두침침한 곳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레이드 모텔 사우나는 사뭇 달랐다.


각 사우나의 탕 앞에는 통유리가 자리했고, 통유리 너머로는 조명과 대형 화분으로 된 조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도현준은 조경을 한쪽으로 민 후 스크린을 설치했다.

그리고 남자가 들어가자마자 일본 영화를 플레이시켰다.

인터넷이 끊기며 OTT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기존에 갖고 있던 옛날 영화를 틀었는데, 남자는 그걸 보며 긴장을 푼 것 같았다.

김한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도 대표님 아니었으면 처음부터 진땀 날 뻔했어요. 이번 회의가 민감한 내용을 다루는 거라 다들 날이 서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의 긴장은 계속되어야 했다.

다음에 도착한 프랑스 참석자도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불만을 표출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 참석자처럼 용달이나 도심의 모텔을 지적한 건 아니었다.

한국행 비행기가 연착되고 공항에서 다른 도시를 거쳐 오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긴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비행기가 연착된 건 불가항력적인 일이고, 다른 도시를 거치느라 시간이 지체된 건 그도 양해한 일일 터.

하지만 그는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김한주는 그런 상대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 설명을 하는 건 화를 더 북돋우는 결과만 가져왔다.

도현준은 그를 룸으로 안내했다.

이미 그곳에는 재즈 음악과 함께 홍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도현준은 그에게 시가를 권했다.

그가 도현준을 힐끗 쳐다보았다.


“객실에서 시가를 피라는 건가?”

“손에 들고만 있어도 힐링이 되실 것 같아서 준비한 겁니다.”


이후 도현준은 재즈의 볼륨을 높이며 룸을 나섰다.

프랑스 남자의 입가에 비로소 미소가 머금어졌다.

재즈와 홍차, 시가.

자신의 최애가 눈앞에 있는데 짜증만 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도현준의 활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국에서 온 남자에게는 보이차와 한과를, 홍콩에서 온 남자에게는 영국산 초콜릿을 내놓았다.

홍콩 남자는 음료를 마신 후 도현준을 불렀다.

그의 표정에는 노여움이 깃들어있었다.


“내 정보를 어떻게 얻은 거죠? 혹시 미스터 김이 넘긴 건가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남자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자신의 최애 음료와 초콜릿을 어떻게 알았는지 설명하라는 눈빛이었다.


“저는 고객의 정보를 모릅니다. 그리고 고객의 식성까지 파악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댁의 캐리어에 힌트가 있더군요.”


도현준의 말에 남자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기내용 캐리어만 소지했는데, 캐리어 손잡이에 영국산 초콜릿 브랜드 스티커가 아주 작게 붙어있었다.


“그럼 음료는 어떻게 안 거죠?”

“영국 사람들은 이 초콜릿을 먹을 때 이 음료를 선호하죠.”


도현준이 나가고 남자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한 눈썰미군.”


* * *


저녁 6시가 되자 모든 고객이 도착했다.

김한주를 제외하고 총 26명으로, 나중에 온 사람들은 앞선 사람들의 비서로 보였다.

도현준은 외부로 향하는 모든 문을 닫아버렸고 회의실에서는 첫 번째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회의 시작 10여 분 후부터 고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음 시설이 된 덕분에 단어가 명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다만 처음부터 목소리가 커지는 건 이번 회의에서 다룰 문제가 각 기업을 넘어 국가 간의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건 회의 참석자들의 면면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중요한 회의에 참석해도 보통은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전하며 친목의 시간을 갖기 마련이다.

그래야 회의를 부드럽게 끌고 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오늘 온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미국인을 제외하고 긴장과 예민함만 느껴졌다.

회의 전에는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도현준은 김한주를 바라보았다.

손바닥에서 땀이 나는지 그는 연신 손을 비볐다.

도현준이 그에게 음료를 권하며 물었다.


“혹시 쉬는 시간이 따로 있나요?”

“보통은 3시간에 30분씩 휴식을 취하는데, 오늘도 그렇게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번 회의가 조기에 마감될 수도 있나요?”

“그렇게 되면 다른 종류의 회의가 열릴 겁니다.”


그 말은 주최 측이 예상하지 못한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뜻.

어떤 주제든, 회의를 한다는 건 의견 조율의 최종 마무리를 의미했다.

특히 이번 회의는 3박 4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행되는 것이었다.

그럼 이건 무슨 일이든 끝을 내겠다는 뜻으로, 만약 이 회의가 틀어지면 중요한 결정을 날리는 것을 의미했다.


신소재나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나 기업의 의뢰든, 여러 연구소가 협업하는 문제든.

이렇게 길게 회의를 할 때는 어떻게든 결과치를 내놓겠다는 뜻으로, 그때는 각 기업과 연구소, 정부 측까지 극도로 예민해졌었다.


그럴 때 연구소를 운영하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

아무리 연구소의 앞날이 바뀌고 수백~수천 억의 자금이 오가는 문제여도 최선의 결론을 낼 수 있게 분위기 자체를 리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연구원처럼 예민함과 자존심의 끝판왕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말꼬투리 하나로 주제가 벗어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수천 시간의 연구가 수포로 돌아가게 되고, 다음 연구를 수주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도현준이 과거를 생각하며 주먹을 쥘 때, 순간 영상 하나가 지나갔다.


“그럼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야겠군요.”

“······!”

“일단 이분들 저녁 식사와 아침 식사를 제 스타일대로 해보죠.”

“식사를 할 분위기가 아닐 것 같은데요?”


김한주는 걱정 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도현준은 이미 조리실로 사라지고 있었다.

김한주가 도현준을 막기 위해 막 걸음을 옮기는데 회의실 문이 열렸다.


“셧 업!”


미국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X됐다!”


김한주가 한숨조차 내지 못할 때 조리실에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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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리모델링 24.04.09 207 5 10쪽
3 3화 그레이드 모텔 24.04.09 238 4 11쪽
2 2화 라떼 금수저 24.04.08 301 6 12쪽
1 1화 상속자 24.04.08 403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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