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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워치로 슬기로운 세계경영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태진
작품등록일 :
2024.04.04 15:18
최근연재일 :
2024.04.18 18:3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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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1
추천수 :
74
글자수 :
65,963

작성
24.04.08 08: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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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화 라떼 금수저

DUMMY

“여인숙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모텔이라고요?”


도현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고로 모텔이라 함은 호텔보다 살짝 낮은 급의 숙박업소를 뜻한다.

그리고 요즘 모텔은 호텔 간판을 달아도 무색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특히 최근에 지어진 모텔은 오래된 호텔보다 더 좋고 더 비싸며 서비스도 다양했다.

그런데 내일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건물이 모텔이라니.

도현준은 조금 전에 들었던 변호사의 말을 곱씹었다.


“이 건물을 정상화하고 원래대로 운영해야 현금을 받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네. 용도 변경도 안 되고 정상화 후 매각도 안 됩니다. 최소 5년은 운영하셔야 합니다.”

“그럼 정상화할 돈은 어디 있나요? 보시다시피 난 사채업자한테 쫓기는 몸인데?”


그 말을 하는 도현준의 표정에는 건물주가 된 기쁨이 아닌 막다른 길에 다다른 사람 같은 심정이 담겨 있었다.

변호사는 대답 대신 최만석 쪽을 바라보았다.

유레카!

도현준은 최만석의 팔을 붙잡았다.


“형이 제일 잘하는 걸 해보면 어떨까?”

“뭐, 뭐라는 거냐?”

“내가 이걸 잘 운영해야 형 돈도 갚을 것 아니야? 이번 기회에 사채업자가 아니라 투자자 위치로 올라가 봅시다!”

“투자자 같은 소리하고 있네. 내가 돈이 어디 있냐?”

“사채업자가 돈이 없으면 누가 돈이 있는데!”


도현준의 간절함 때문인지 최만석은 도현준의 등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열심히 해봐. 너는 내가 저번에 소개해준 노가다도 잘 했잖냐.”

“형!”

“그뿐이야? 네가 안 해본 일이 어디 있어?”

“그거 다 돈 받아가려고 형이 시킨 거잖아!”

“야! 나 같은 양심적인 사채업자가 어디 있다고 그래? 남들은 몸에다 매직 그려가며 간 얼마, 안구 얼마, 신장 얼마, 콩팥 얼마 그러는데······.”

“형, 신장이랑 콩팥은 같은 거예요. 그리고 형은 내 신체 포기 각서도 받았잖아요!”

“그건 장난이었다니까. 진짜로 쓰레기통에 버렸어.”

“······.”

“그리고 말이야. 난 직장 알아봐줘, 굶어 죽을까봐 따박따박 컵라면도 사줘, 목숨줄 붙어있는지 확인하느라 사람도 풀어. 나 같은 형님이 어디 있냐?”

“그건 맞는 말이네.”

“네가 현수 동생만 아니었으면 돈도 안 빌려······.”


순간 최만석은 아차! 싶었는지 바로 말을 끊었다.


‘도현수’


그는 도현준의 친형이자 유일한 형제였다.

하지만 도현수는 2년 전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 인해 도현준은 부모님과 형까지 모두 잃은, 세상에 핏줄 하나 없는 천애고아가 되어버렸다.

도현준이 고개를 푹 떨굴 때, 최만석은 재빨리 차량으로 향했다.

막 차가 출발하는데 앞에 앉은 놈이 입을 열었다.


“변호사를 조져서라도 돈을 받아내야 하지 않을까요?”

“놔둬.”

“오늘 날짜로 계산하면 도현준한테 받을 돈이 3억이 넘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맵게 구시면서 저놈에게는 왜 그렇게 순한 맛인데요?”

“저놈이 니들처럼 노름하느라 돈 빌린 줄 아냐? 저래 봬도 저놈, 저번 회사에서 같이 동업하던 사장 놈이 싸지른 것 치우느라 저렇게 된 거야. 그 사기꾼 새끼가 현준이 놈한테 다 씌우고 튀었잖아.”

“그래도 돈을 받으려면······.”

“그럼 저 변호사는 네가 조질래?”

“죄송합니다, 형님.”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현준이 저놈은 도망치라고 해도 안 할 놈이야.”

“그럼 그동안 왜 그렇게 쫓아다니셨습니까?”

“그거야 저놈이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그런 거지.”

“헐!”

“현준이 놈은 정의감도 있고 의리도 있고 사람도 잘 따르니까, 잘 되면 꼭 갚을 거다. 저놈 원래는 금수저였어. 지금은 저래도 지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재벌집 도련님에, 번듯한 연구소까지 경영했었지. 공대 나와서 연구원하던 지 형보다 머리도 더 좋았고.”

“어쩐지 스타일이 좋긴 하더라고요. 형님 상대하는 걸 보면 머리도 좋아 보이고요.”

“쓰읍!”

“죄송합니다, 형님.”

“너 한 번 더 깐족대면 대가리를 날려버릴 줄 알아!”

“넵. 근데 도현준은 사기꾼 사장에게 어떻게 당한 건데요?”

“원래는 그 연구소가 무슨 신소재를 개발하는 곳이었는데, 사기꾼 동업자 사장이 연구비를 횡령해서 해외로 튀어버렸어. 현준이는 연구를 계속 이어가려다가 자금난에 무너진 거고. 그때 그 연구원들은 어디서 한 자리씩 한다던데······ 현준이 놈은 돈 때문에 저렇게 된 거야.”

“아!”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운이 안 좋으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더라. 현준이가 능력이 안 좋았으면 연구소 경영을 어떻게 맡았겠냐? 그 사기꾼 사장 놈만 아니었으면 현준이 놈 지금쯤 CEO가 돼 있었을 거다.”

“우리한테 돈 빌린 놈들 중에 라떼에 잘나가지 않았던 놈이 있나요? 아무리 옛날에 잘나갔어도 맨날 도망 다녔던 걸 보면 형님을 배신······.”


그 순간, 최만석은 놈의 뒤통수를 감싼 헤드레스트를 세게 쳐버렸다.


퍽!


* * *


그 시각, 도현준은 건물 주변을 맴돌았다.

이미 코를 막은 상태였는데 주변을 돌면 돌수록 눈까지 흐려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건물 외곽을 세 바퀴나 돈 후, 도현준은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끼이익!


철제로 된 현관문은 오래되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녹이 잔뜩 슬어있었다.

도현준은 겨우 몸이 빠져나갈 정도로 열린 문에 조금이라도 옷이 닿을까봐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텔이 맞긴 맞나보네.”


가운데는 프런트와 계단, 왼쪽은 레스토랑, 오른쪽은 카페테리아.

위층부터는 당연히 객실이 있을 터.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호텔이나 모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숙박업소의 정석 구조였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영업은커녕 쓰레기 처리부터 문제였다.

요즘은 쓰레기 버리는 데에도 돈이 든다. 그것도 많이.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 봐도 프런트 데스크부터 레스토랑의 테이블, 카페테리아의 의자까지 손만 대면 부서질 것 같은 수준이었다.

도현준은 휴대폰을 들었다.


“변호사님, 이 건물 명의이전은 어떻게 됩니까? 상속세도 따로 마련해야 하나요?”

[도진호 님께서 남기신 현금으로 처리하면 됩니다. 상속을 받으시겠습니까?]

“상속 포기를 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건 매우 안 좋은 선택입니다만, 그렇게 하시면 그 건물과 현금은 나라에 귀속될 겁니다. 조금 전에는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모텔을 정상화하지 못하고 6개월만 방치해도 상속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할 겁니다.]

“그럼 6개월 내에 모텔을 정상화하란 말인가요?”

[도현준 님의 당숙이신 도진호 님은 3개월이면 모텔 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셨습니다.]

“그럼 변호사님의 설득으로 3개월을 더 늘렸다는 건가요?”

[네.]

“······상속을 결정한다고 해도 시간이 걸리지 않나요?”

[도현준 님이 상속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히시면 그 즉시 상속자가 되십니다. 즉, 건물에 대한 권리가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도진호 님의 지시로 처리를 다 해놓은 상태입니다.]

“흐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떤 문제든 가까운 곳부터 살펴보면 길이 보일 겁니다.]


변호사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현준은 발에 걸리적거리는 쓰레기를 걷어차 버렸다.

아무리 냉정하게 따져 봐도 이 상태로는 영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돈이 없는 상태에서 리모델링을 시작할 수도 없고.


“쓰레기 처리부터 리모델링까지 혼자 힘으로 하라는 건데.”


도현준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런 일을 하려고 그동안 여러 직업을 가졌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태어났을 때, 도현준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금수저였다.

게다가 초등학교부터 한국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머리도 좋았다.

하지만 중견기업을 운영하시던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한 해에 돌아가시며 위기가 닥쳤다.

이후 대학생인 자신을 대신해 기업을 물려받았던 형은 삼촌이라고 불렀던 창업공신들의 손에 휘둘리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기업 사냥꾼 같았던 그들에게 있어 공대 나와서 연구원만 했던 형을 다루는 것은 식은죽 먹기였을 터.

그와 동시에 기업은 부도를 맞았고, 거주 중인 집과 차 등 모든 것을 빼앗겼다.

형의 죽음부터 부도까지는 불과 일주일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나마 그것으로 끝났으면 나았을 수 있다.

형의 죽음과 창업공신들의 농간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남아있는 현금까지 써버렸다.

그때 만난 사람이 최만석이었다.

최만석은 돈도 빌려주고 창업공신들의 뒤도 캐주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뒤만 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학 선배의 소개로 들어간 연구소는 연구비와 투자금을 횡령한 소장의 잠적으로 문을 닫아버렸다.

게다가 의리로 달았던 이사 직함 덕에 남아있던 연구원들을 챙겨야 했고, 그동안 사채만 더 늘어버렸다.


“내가 바보짓을 했지.”


도현준은 지난날을 생각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젠 과거의 일이다.

과거에 더 얽매이기도 싫고 어떤 것일지 모르는 진실을 파헤치는 것도 이젠 귀찮았다.


“그래, 그나마 이거라도 해보자. 이런 기회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도현준은 자조감 섞인 목소리를 흘리며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 * *


몇 시간 후, 로비의 쓰레기는 다 치운 것 같았다.

마스크가 검게 변하고 손톱이 뜯기고 손등에 상처가 생길 정도로 처참해졌지만, 오랜만의 노동이어서 그런지 왠지 모를 상쾌함이 느껴졌다.


“바닥이라고 느꼈을 때 지하터널이 보인다더니, 금수저였던 내가 이런 데서 희열을 느낄 줄이야.”


도현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로비에 남은 마지막 쓰레기를 치웠다.

그리고 막 2층으로 향하는데 손목에 헐겁게 채워져 있던 워치가 떨어졌다.

이후 워치는 계단 여러 개를 거치며 지하로 향했다.

도현준은 마치 공처럼 가속이 붙은 워치를 잡기 위해 빨리 걸음을 옮겼다.


“와씨! 왜 이렇게 빨라.”


워치는 도현준의 말을 들은 것처럼 속도가 더해졌고, 도현준의 걸음도 함께 빨라졌다.

잠시 후.


“어! 어어어!”


도현준은 그만 계단에서 굴러버렸다.


이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도현준은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머리를 움켜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으윽!”


그때 멀리서 워치가 보였다.

안개처럼 뿌옇게 쌓인 먼지 속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었다.

도현준은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워치 쪽으로 다가갔다.

워치 뒤쪽으로는 80년대 것으로 보이는 초대형 시계가 있었지만, 도현준에게는 오직 워치만 보일 뿐이었다.

워치를 주워 손목에 채우는데, 순간 몸이 움찔했다.

마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고, 혼이 나간 것처럼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도현준은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필름처럼 어떤 화면이 지나갔다.

순간 몸이 더 휘청거렸다.

반면 도현준의 눈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빛이 났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그런데 그때.

조금 전에 본 필름 속 화면처럼 영상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계단 바로 옆에 있는 영상, 로비에 있는 영상, 건물 밖에 있는 영상이었다.

중요한 것은 영상 속 인물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뭐야?”


그때 워치에 진동이 느껴졌고 귀가 웅웅거렸다.

도현준은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툭 두드렸다.


“도현준입니다.”

[당신은 선택받으셨습니다.]


마치 기계음 같은, 어쩌면 AI가 낸 음성 같은 목소리였다.


“누, 누구······?”


하지만 더 이상 상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도현준의 몸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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