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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렉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진 내 남자의 흔적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쉬렉
작품등록일 :
2019.04.21 10:45
최근연재일 :
2020.05.14 09:32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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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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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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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부_55 세상을 설계하는 자

DUMMY

그런 홍은하의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본 김 회장의 목소리가 홍은하의 귀에 다시 들려왔다.


“그 후론 나와 내 남편은 검은 옷을 벗어본 적이 없어요. 마음도 까맣고 주변도 까맣게 보였지. 우리 두 사람에게는.”


이후 두 부부는 10년 동안 은둔 생활을 했다.


하늘이 그들을 측은하게 여겼던 것일까?


회사가 한창 잘 돌아가던 시절 성 사장은 공장 근처의 값싼 토지를 매입했었다. 당시 매가는 헐값이나 다름없어 엄청난 면적을 매입했지만 잊고 살았다.


토지가 주택 계획 단지에 편입되며 건설업자들이 주택부지로 수용한 후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보상액을 받게 됐다.


한동안 그들은 그 돈을 그냥 갖고만 있었다. 달리 쓸 곳이 없었다.


그때까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심하게 뉴스를 지켜보던 두 부부의 시선을 끄는 자가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주동자로 몰아 산송장을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한 그 기획의 우두머리가 장관 임명을 받는 뉴스였다.


그날 평소 폐가 안 좋았던 성 사장은 각혈로 하얀 이불보를 시뻘건 피로 물들였다.


두 부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여보. 우리가 억척스럽게 아니 개처럼 돈을 벌면 지금 갖고 있는 돈을 얼마로 불릴 수 있을까?”


“내가 내일 사업하는 친구들을 만나 뭘 하면 돈을 불릴 수 있는지 물어볼게. 일단은 모아보자. 나중에 개처럼 모은 돈으로 저놈을 쳐죽일 수 있을지는 가 봐야 알겠지만.”


이후 그들은 사업을 하는 이들에게 사채를 놓는 일부터 시작했다.


사업가로부터 알게 된 또 다른 루트를 개척하며 편법으로 돈을 튀길 방법을 터득한 후부터는 슬슬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권력의 속성을 꿰뚫은 그들은 홍은하와의 만남 이전부터 이미 여기저기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죄다 매수한 상태였다.


겉으로는 동맹군으로 보였지만 돈으로 산 동맹의 결속력은 실상 그리 견고하지는 못했다.


다만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쉽게 배신할 수는 없는 복잡한 네트워크로 얽혀있었다.


누군가 둑에 작은 구멍을 만들면 함께 떠내려가는 구조를 잘 알고 있으니 서로의 웃는 낯에 침을 뱉을 수는 결코 없었다.


운명의 날.


홍은하가 피투성이가 된 채 도주를 하는 모습이 녹화된 CCTV 장면이 지상파를 타고 대한민국에 전파되던 날, 두 부부도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보, 저 불쌍한 형사 젊은이도 용민이처럼 억울하게 죽게 되는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배후가 악마 같은 악질 놈이면 무슨 짓인들 못 하겠어.”


“내일 강 회장에게 부탁해서 저 형사 좀 찾아보고 도와주라고 해.”


두 부부는 이후 더는 긴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서로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홍은하와 두 부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고 세 사람 사이에는 공동의 목표와 공공의 적이 존재했다.


그들은 홍은하에게 세상을 기획하는 설계자가 될 수 있는 돈과 힘을 줄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들의 제안을 들은 홍은하가 그 기막힌 제안을 거절할 리 없었다.


애초에도 망설임이란 없었던 홍은하가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용민이의 마지막 편지를 읽는 순간 그의 결정은 화석처럼 굳어 그의 심장에 각인됐다.


그는 진정 그런 결심을 했었다.


“성용민. 네 부모님이 내 손에 모든 걸 쥐어주시겠대. 맘껏 깽판 칠 생각이야. 하늘에서 보고 있는 네 속이 시원해지도록. 오지게 한판 붙어 볼 생각이다. 네 원수와. 그러고 나면, 나도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일찍 너를 만나게 돼도 후회는 없을 거야. 이젠 당하고만 사는 등신이 아닌 미리 준비된 자. 그들처럼 나도 이 세상을 기획하는 자가 될 테니까.”


검은 옷을 입고 살아야만 했던 두 부부는 홍은하의 운명이었다.


칼자루를 쥔 홍은하의 칼끝은 성급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세상을 설계하는 자로 신중하고 치밀하게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그의 목표물에 다가갔다.



호텔 방안.


그곳에는 간간이 들리는 홍은하의 코 고는 소리 외에는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무척이나 고요했고 그 정적이 나의 심장을 뛰게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홍은하가 전해 준 그 모든 진실이 꿈결에 들은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마치 현대사를 다룬 영화 한 편을 관람한 기분이었다.


“홍은하. 수십 년 동안 세상을 자기 손에 놓고 쥐락펴락한 그 괴물 같은 설계자처럼 정말 당신도 이 세상을 설계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거니? 그게 과연 가능할까?”


그에 대한 해답은 미래에 있었다.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어느 날 벌어질 공작들이다.


현재의 오늘에선 결코 알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미래형 사건들.


“당신이 기획한 그런 사건을 기대해도 되는 거니?”


머리가 아팠다. 무척 아팠다.




진통제 뚜껑을 여는 소리가 정적 속에 제법 크게 들렸다.


소음에 홍은하가 잠시 뒤치락거리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다행히 깨지는 않았다.


복용 후 20분 정도 지나니 살 것 같았다.


“하아..”


졸음이 쏟아졌다. 일주일처럼 느껴지던 하루였다.


영원의 시간처럼 느껴지던 저녁 시간이었다.


“홍은하, 당신 믿어도 되는 거지.”


의심은 사라지고 평온이 찾아왔다.


마침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 홍은하의 코 고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규칙적으로 잠결에 들려왔다.



다음 날.


홍은하가 검은 마녀에게 전날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부지런히 호텔을 나선 후 나는 마이키를 위해 맛있는 아점을 준비했다.


당연히 사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마이키는 그런 걸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맛있는 거만 먹을 수 있다면 장땡인 거구였으니까.


마이키는 이제 숨어서 뜨개질하지 않는다. 당당히 내 앞에서 현란한 손놀림을 자랑질하며 고난위도의 화려한 패턴을 능숙한 바늘의 움직임이 안 보이도록 재주를 부린다.


“이쁘다. 이거 뭐 뜨는 거야?”


“가디건.”


“이렇게 뜨면 가디건이 돼?”


“바보야 뒤판 뜨는 거지. 나중에 앞판하고 붙여야지. 팔도 붙이고.”


“아.. 초록색 너무 이쁘다. 실이 고급인가 봐. 색상이 너무 고급져.”


“맞아. 비싼 수입 실이야.”


“올~ 갖고 싶당. 그 가디건.”


“갖고 싶으면 밥을 열심히 해, 앞으로. 세상에 공짜는 없어.”


“정말 밥 잘하면 그거 내 거 되는 거야? 제인 거 아니었어?”


사이즈가 여자용이라서 당연히 제인 거라고 짐작했다.


“누나는 초록색 안 좋아해.”


“난 초록색 좋아하는 데. 어엉? 그럼 이거 내 거야?”


“눈치는 어디다 흘리고 다니는 건지. 여자애가 눈치가 없어.”


“우헤헤헼. 완존 대박 개좋아. 이거 앞판은 완성된 거야?”


“그래 그러니까 부지런히 밥해. 출출할 때 먹게 만두부터 쪄놔.”


“넵! 우히히힉.”


정말 날아갈 듯 좋았다. 고급 손 뜨게질 제품은 값도 비싸지만, 그보단 마이키처럼 고난위도의 패턴으로 손뜨게 하는 고수들이 점점 사라지는 자동화 세상에서 그의 작품은 50만 원을 웃도는 명작이다.


사고 싶다고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그런 명작을 날 위해 저 곰탱이가 뜨고 있다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오늘 저녁은 뭘 해주지. 저 이쁜 곰탱이를 위해?”


곰탱이는 잡채를 좋아한다. 백여시에게 재료를 부탁했더니 30분 만에 들고 나타났다.


함께 지내다 보면 그가 왜 백여시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고마워요. 잡채 되면 부를게요. 맛있어야 할 텐데.”


“형수님 타고난 손맛이 있던데요. 꼭 불러 주십시오. 아이고, 우리 형님 또 뜨개질하시네. 명상 잘 하십시오 형님. 우리 형님에게 뜨개질은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이지.”


백여시가 곰탱이를 부추겨 세우며 내게 눈을 찡긋했다.


“저러니 백여시지. 꼬리가 아홉은 달렸겠네.”


1시간 후.


한바탕 잡채 파티를 마친 후 다시 고요함 속에서 곰탱이는 정말 명상을 하듯 뜨개질을 이어갔다.


검은 옷을 입고 사는 부부의 사연을 들은 후 난 그들이 클럽 메두사의 실소유주라 확신했다.


그러나 어쨌건 외관상으론 왕마담이 사장이었고 사실 매출과 관련한 부분은 그녀가 실소유주처럼 챙겨갔다.


궁금했다. 왕마담의 정체가.


“대체 실체가 뭐지? 김 회장과는 무슨 인연이길래 저렇게 믿고 맡기는 거지?”


슬금슬금 마이키에게 다가갔다. 그가 좋아하는 파인애플을 들고.


파인애플 한 조각을 먹으며 너무 행복한 표정이 된 마이키.


이때다. 바로 치고 들어가야 한다.


“ 뭐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뭐? 이 파인애플 맛있게 달다. 앞으로 이 브랜드만 사.”


“그러게요. 국물도 맛있어요. 마셔봐요.”


후루룩


“아흐. 정말 적당히 단 게 맛있네. 국물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행복한 표정이다.


두 번째 찬스. 얼른 본론으로 훅 치고 들어가야 한다.


“왕마담 언니는 어떻게 김 회장님을 만났데요?”


그가 잠시 파인애플 씹는 걸 멈추고 날 응시했다.


꿀꺽


매서워진 그의 눈빛에 마른 침이 절로 삼켜졌다.


“그게 왜 궁금해, 네가?”


“어제 오빠에게 김 회장님 사연을 들었어요. 그냥 제인도 왠지 사연 있는 사람 같아요.”


후루룩


달콤한 파인애플 국물에 그의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어. 다들 사연이 있지. 홍 형사님과 너. 다 사연이 깊은 거 아니냐?”


“그렇네요. 남들이 들으면 내 사연도 기가 막힌 사연이네.”


“누나가 대학생일 때 성 회장님을 만났어.”


“김 회장님 남편분이요?”


“응.”


마이키는 자기 사연을 털어놓듯 잠시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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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내 남자의 흔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7 휴우... 안타깝습니다... 20.05.14 33 0 1쪽
56 3부_56 얻어걸린 달콤한 첩보 20.05.14 16 0 9쪽
» 3부_55 세상을 설계하는 자 19.07.14 39 0 10쪽
54 3부_54 설계자 A와의 악연 19.07.14 38 0 10쪽
53 3부_53 새로운 얼굴마담의 비상 19.06.29 49 0 11쪽
52 3부_52 던져진 주사위 19.06.29 46 0 9쪽
51 3부_ 51 주먹들의 기습 19.06.23 40 0 10쪽
50 3부_50 처절하게 날아간 전 남자 19.06.23 40 0 14쪽
49 3부_49 엿 같은 세상 19.06.09 41 0 11쪽
48 3부_48 틀어쥔 정보의 위력 19.06.06 61 0 9쪽
47 3부_47 싹 쓸어버리겠어 19.06.05 51 0 10쪽
46 3부_46 발칙한 이상을 꿈꾸는 형키호테 19.06.04 43 0 12쪽
45 3부_45 이이제이 以夷制夷 19.06.03 57 0 8쪽
44 3부_44 검은 옷의 마녀 19.05.30 34 0 10쪽
43 2부_43 아군과 적군의 모호해진 경계 19.05.29 47 0 9쪽
42 2부_42 홍은하란 마법 19.05.28 93 0 9쪽
41 2부_41 괴한은 놈이 아닌 년 19.05.27 31 0 9쪽
40 2부_40 삼파전의 승자 19.05.26 35 0 10쪽
39 2부_39 베일 속 황금 날개 19.05.25 40 0 9쪽
38 2부_38 안개 속 사건 전개 19.05.24 36 0 9쪽
37 2부_37 그가 나쁜 놈들을 응징하는 방법 19.05.22 57 0 10쪽
36 2부_36 내 남자의 마지막 선택지는 말콤 엑스 19.05.21 59 0 9쪽
35 2부_35 숨 막히는 재회 19.05.19 61 0 7쪽
34 2부_34 분노로는 전복되지 않는 세상 19.05.19 38 0 9쪽
33 2부_33 오인 타살 19.05.18 40 1 12쪽
32 2부_32 자살을 당하다 19.05.16 37 0 9쪽
31 2부_31 어둠의 포식자들 19.05.15 43 0 9쪽
30 1부_30 마침내, 클럽 메두사에 입성 19.05.14 39 0 10쪽
29 1부_29 두 여인의 운명적인 첫 만남 19.05.13 35 0 10쪽
28 1부_28 마음을 읽는 자 19.05.12 41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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