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_43 아군과 적군의 모호해진 경계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디링
다시 울린 전직 형사 보디가드의 벨소리.
“아. 그래? 잘됐네. 고맙다. 미처 그 생각까진 못했는데. 역시 녹슨 전직보다 날 선 현직이 백번 낫네.”
등을 돌리던 그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의 설명을 기다리는 내 시선과 마주치자 피식 웃었다.
“현장에 CCTV가 없어서 보람 씨 폭행한 여자 영상 확보 못 할 줄 알았는데 블랙박스 생각을 미처 못했네요. 후배 경찰이 주변 차량 소유주들에게 부탁해 블랙박스 영상 확보했데요.”
“아. 저도 그 생각을 못 했네요.”
바보처럼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나도 골목에서 CCTV 설치 여부만 확인했었다.
백주대로에 날 팬 그 미친년의 면상을 드디어 자세히 확인할 방법이 생긴 것이다.
“혹시 후에 절차상 필요할지 모르니까 일단 진단서부터 발급받읍시다. 턱 많이 아파요? 아까 음식을 제대로 못 씹는 거 같던데.”
“예. 입을 벌리면 턱이 아프네요. 약간 욱신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맞을 때 턱관절에 물리적 충격이 있었나 봐요. 엑스레이 찍어 봅시다.”
주변 치과도 가고 정형외과까지 들러 일단 진단서를 뗐다.
이런 걸 두고 폭행 사건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걸까 싶었지만 진단서와 함께 사건 해결 진전에 막연한 기대를 거는 나와는 달리 그는 왜 진단서를 떼라고 권유했나 싶을 정도로 덤덤했다.
“별 기대는 하지 말아요. 블랙박스로 얼굴 파악된다 하더라도 그 여자 신원파악은 어려울 겁니다. 잡혀간 놈이 그 여자와 한패라고 순순히 불리도 없고.”
“그렇긴 하죠.”
병원을 돌며 의기 충만했던 난 의기소침으로 급선회했다.
벌건 대낮에 버젓이 폭력을 휘두른 망할 년의 횡포를 이대로 슬쩍 넘겨야 하는 걸까?
억울하기도 하고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다. 순간 홍은하가 떠올랐다.
고작 2대 맞고 그저 손 놓고 있어야 하는 나 자신에게 자괴감이 드는데 죽을 뻔하고도 경찰인 자신이 은닉해야만 하는 기막힌 현실을 당한 홍은하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가 대한민국 질서를 거스르는 그 어떤 결정을 한다 하더라도 난 그의 편에 설 생각이다.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그저 사사로운 복수를 위한 결단이 아님을 그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궁금한 게 있어요?”
늘 궁금했던 아니 의심을 품어왔던 사실을 그에게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뭔데요?”
“홍은하 관련이에요.”
“-------”
“처음엔 왕마담, 제인이 오빠의 뒤를 봐주고 있단 생각을 했어요. 근데 오빠를 만난 이후 생각이 바꿨어요. 누군가 다른 뒷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
“안 가르쳐줘도 상관은 없는데.. 나 혼자 조사한답시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 일 망칠지도 몰라요.”
“지금 안 가르쳐주면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닐지도 모른다, 협박하는 거예요?”
“협박으로 들리겠지만 사실이기도 해요. 나 혼자 캐고 다닐지 몰라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제인이 소개해 준 분이 있어요. 그분이 형 뒤를 봐주고 계세요. 더는 알려고 하지 말고.”
“한 가지만 더. 정치하는 분이나 고위 관료인가요?”
“아뇨. 이것까지만 알려줄게요. 돈이 많은 분이에요. 그래서 그분 주변에 권력 남용 좋아하는 똥파리들이 많이 꼬이죠. 돈 싫은 사람 어딨겠어요. 그 진실도 영구불변하는 세상사 이치 아니겠어요. 여기까지.”
단호한 어조에 더 이상의 질문은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았다.
홍은하뿐 만 아니라 그의 주변인 대부분이 그만큼이나 강골들이었다.
찌른다고 바늘이 들어갈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날 야심 차게 들이댔던 내가 건진 첩보는 거기까지였다.
내 남자 홍은하는 추악함을 추격하고 있었고 난 그런 내 남자의 흔적을 뒤쫓고 있었다.
“오늘 밤 조사할 게 좀 있어요. 오늘 밤은 마이키가 불침번을 설 예정이니 걱정하지 말고 자요.”
“마이키?”
“안면 튼 사이 아닌가?”
“당연히 알죠.”
‘당신이 그자와 긴밀하게 내통하는 사이란 사실이 내겐 신선한 충격이란 걸 그대는 아는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는 마이키란 단어에 나로서는 아군과 적군의 분류 기준이 모호해졌다.
그와 헤어진 후 핸폰의 주소록에서 드웨인 존슨의 이름을 찾았다.
이미 유흥업소와 같은 외부에 노출된 마이키란 이름으로 내 핸폰에 저장한다는 것도 찜찜했고 실제로 그의 외모는 대한민국 몸짱이 아닌 흑형삘이었다.
키는 190cm의 장신으로 잘생겼다고 하기엔 뭔가 2% 부족한 관상이었지만 얼굴 사이즈 만큼은 주먹만 했고 피부가 깨끗한 편이라서 귀욤상이었다.
그의 어마한 근육을 논하자면 내가 그에게 드웨인 존슨이란 애칭을 하사한 게 그리 오바가 아닐 만큼 그냥 첫눈에 흑형인 외모를 지녔다.
해서 그를 드웨인 존슨으로 둔갑시켜 핸폰에 저장해 놓았다.
- 어디예요?
- 가게 뒷문에 의자 놓고 앉아서 호텔 지켜보고 있어.
“아 짜식. 끝까지 말을 놓네. 너 대체 몇 살이냐?! 내가 젤로 싫어하는 거지만 오늘은 반듯이 족보 좀 따져봐야겠네.”
- 한 데서 벌서고 있지 말고 호텔에 와서 감시해요.
- 호텔?
- 룸이요. 503이에요.
- 그럴까? 뭐 필요한 거?
- 없어요.
잠시 후 그가 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문틀의 빈공간이 빈틈 하나 남김없이 그의 몸으로 꽉 들어찼다.
‘올~ 몸뚱이 하나로 저런 진기명기도 연출할 수 있구나.’
“왜 그래?”
“아니에요. 어서 들어와요.”
신기해서 너무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을 부끄러워하는 그의 모습이 더 신기했다.
“밖에서 벌서고 있을 필요 뭐가 있어요. 아는 사인데.”
“그렇긴 하지.”
“앉아요.”
의자를 권하고 보니 심히 민망했다.
마치 딸내미 장난감 소꿉놀이 세트에 앉은 느낌이랄까?
“의자가 불편해 보이네요. 침대에 앉아서 쉬어요.”
앉으라고 했더니 벌러덩 누운 그에겐 너무 짧은 침대 밖으로 정강이 아랫부분이 덜렁거렸다.
‘참.. 재롱 대잔치네.’
“배고프면 뭐 시켜줘요?”
“돈까스 시켜 먹을까?”
핸폰을 집어 든 그가 4인분을 시켰다.
“이 집 돈까스 작아. 3인분도 얼마 안 돼. 넌 1인분이면 돼지?”
‘누가 뭐라 했나?..’
“근데 몇 살이에요?”
“왜? 반말해서 기분 나빠?”
“아니 뭐.. 그냥요. 혹시 나도 반말해도 되는 거 아닌 가해서.”
피식
“너보다 2살 위야. 근데 너도 말까고 싶으면 까. 호칭만 오빠로 하면 되지. 뭐.”
‘에휴. 이미 내 뒷조사를 해서 나이 정도는 훤히 꿰고 있었구나. 어머! 혹시 그럼 네 가족관계도?’
“혹시 제 가족 조사도 했나요?”
그는 대답이 없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만일을 대비해 도와주려는 거였지 해코지하려고 조사한 건 아냐. 너무 신경 쓰지 마.”
‘이 짜식아. 어떻게 신경을 안 쓰니..’
나 하나야 어떻게 되든, 난 이미 홍은하의 마법에 걸려든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마음 단단히 먹었지만 이런 결과는 미처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다.
‘젠장. 이래서 비리 척결이 어려운 거야. 나 하나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주변인을 줄줄이 엮으면 종국엔 변절할 수도 있겠지.’
띵동
“배고픈데 딱 맞춰왔네.”
그의 손에 올려진 돈까스 접시가 작은 보조 접시처럼 느껴졌다.
그의 산만 한 덩치 때문에 그가 하는 모든 동작이 오히려 귀엽고 우스워 보였다.
“왜 그렇게 계속 피식거려. 허파에 바람들어갔어?”
피식
차마 귀엽다고 할 수는 없어서 화제를 돌렸다.
“오늘 밤에는 누님 안 지켜도 돼요?”
“나 말고도 애들 많잖아. 거긴.”
“강 형사님하고도 잘 아는 사이예요?”
“잘은 아니지만 요즘 자주 뵀지. 형님이 이 근처에서 지낸 지 꽤 됐어. 가끔 먹을 거 사 들고 찾아뵀어.”
“아.. 근데..”
‘저 사람은 알고 있을까? 늘 누님을 호위하고 다니니 자세히는 몰라도 홍은하 뒷배의 진짜 정체를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뭐? 궁금한 거 있어?”
‘저 바닥 사람들은 기본 독심술은 다 타고난 걸까?’
내 눈빛을 읽은 그가 늘 그랬듯 핵직구로 되물었다.
“흐흠. 혹시 오빠 도와주는 분 있다고 하던데.. 돈 많은 분이라던 데 뵌 적 있어요?”
“형님이 너한테 그런 얘기까지 하셨어? 별일이네.”
빙고
‘그럴 리가! 홍은하가 그런 얘길 왜 나한테 해주겠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네가 술술 불어 봐. 그 미스터리한 뒷배에 대해서.’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