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_39 베일 속 황금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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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같던 이틀 밤이 돌풍처럼 우리 두 사람을 휩쓸고 지나가 버렸다.
“언제 또 볼 수 있는 거야?”
“그건 나도 몰라. 잘 지내고 있어.”
“오빠, 혹시..”
왜 그런 상상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볼 때 이제 홍 형사도 그 정도 해괴한 짓을 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돌직구도 아닌 핵직구로 여기까지 버텨낸 나다. 돌려차기는 하지 않는다. 바로 앞차기.
톡 까놓고 앞차기로 승부수를 띄었다.
“오빠도 혹시 나 미행 붙여 놨어?”
“오빠도? 누가 너한테 사람 붙여 놨어?”
“사람이 아니고 경찰.”
“문 검사가 붙여 놨구나. 잘됐네. 걱정했는데.”
“그럼 오빤 안 붙여 놨어?”
그가 대답 대신 또 내 머릿결을 마구 헤집었다.
그 얘긴 이미 붙여 놨다는 소리다.
“인상착의라도 알려줘야지 아군인지 알지.”
“이놈이야.”
그가 핸폰에 찍힌 그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올~ 얼굴 보고 뽑았나? 왜케 잘 생겼쓰..’
“하여간 그놈의 외모지상주의. 너 놀란 거 너무 티 난다.”
“뭐래.. 개잘생긴 남자 붙여 놓은 건 오빠잖아. 내가 사전에 얼굴빨 밝힌 것도 아니고.”
“잘 생겼다고 얘랑 영화 보디가드 찍지 말고. 아군이니까 경계할 필요는 없고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도움 요청해.”
“근데 어떤 사람인데 그렇게 신임하는 거야?”
홍 형사가 무한 신임을 보내는 게 영 수상쩍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나 때문에 날아간 것도 아니고 짤린 형사야. 인지 수사 때 고위층을 너무 딥하게 캐고 다녔어. 걔 솜씨가 그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걔한테 그런 조사 시키지 않았을 텐데.”
“얼마나 솜씨가 좋았길래 영감들 심기를 후려쳤을까?”
피식
“좋아도 너무 좋더라. 재주가 얼마나 좋던지 못 물어오는 게 없을 정도로.”
“그래서 은혜 갚는 제비 하는 거야?”
“그런 것도 있고.. 말했잖아. 솜씨가 좋아도 너무 좋다고. 시키면 한 달 안에 입이 쩍 벌어지는 첩보 물어다 줄 수 있는 애야.”
“무근 재주가 그렇게 좋냐..”
부러웠다. 내게 그런 출중한 재능이 있었다면 나도 홍은하에게 발탁될지 모를 일인데.
‘하긴 저 인간이 이 위험한 일에 날 껴줄 리가 없지.’
띵동
“형님, 접니다.”
마이키의 부드럽고 구수한 목소리가 복도에 은근하게 울려 퍼졌다.
“무슨 신데렐라도 아니고 댕댕 이별의 시간이 울리면 헤어져야 하네.”
“보람아 명심해.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 그 개잘생긴 보디가드에게 여기로 데려다 달라고 해. 그리고 잊지 않았지. 703호로 오지 말고 702호로 와.”
그가 눈을 부라리며 날 선 목소리로 으름장 놓듯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등줄기가 찌릿하며 소름이 돋았다.
“절대 안 잊을 게. 근데 그 사람 이름이 뭐야?”
“그냥 보디가드라고 불러. 그리고 이거. 고민하다 주는 거야.”
그가 내민 건 차명폰이었다.
‘나도 드디어 이런 존재가 됐구나.’
“밤새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너도 이걸로 중요한 일은 통화하는 게 좋겠어. 명심해 긴박한 상황에서만 써. 다른 놈들에게 번호 따이지 않게.”
“응”
생리현상을 극복할 만큼 내 내공이 다부지지 못했다.
그가 걱정할까 봐서 의연하려고 했는데 차명폰을 받아든 손의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당연히 오빠도 눈치챘겠지. 떨고 있는 거?’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내 손을 꼭 쥐고 연민이 가득한 눈빛으로 내게 당부했다.
“미안하다. 보람아. 어쩌다 나 같은 놈하고 엮여서 이런 욕을 보는구나. 마음 단단히 먹자.”
‘아.. 내가 젤로 싫어하는 멘트 출현..’
“그 소리 내가 젤로 혐오하는 거 알면서. 이 상황에선 조금도 도움 안 되는 불필요한 군더더기야. 지방 쪽 빼고 이 난관 이겨나가자, 오빠.”
크게 팔을 벌려 그를 끌어안았지만 여친 강보람이 아닌 동지애가 앞서는 포옹이었다.
“오빠랑 엮인 게 아니고 홍은하는 내가 직접 선택한 남자야. 그리고 나 그렇게 약한 사람 아냐. 나 믿어도 돼.”
“듬직하다. 내 여친.”
띵동
“형님. 대기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기다리던 마이키가 고새를 못 참고 또 초인종을 눌러댔다.
“콱 그냥. 보채기는.”
“출입구까지 배웅해 줄게.”
“오빠 목소리 듣고 싶으면 이 폰으로 연락해도 돼?”
“너 내 연락처 모르잖아.”
“아.. 그렇네.”
“그리고 당분간은 모르고 있는 게 서로 안전해. 괜찮다고 판단 될 때 오빠가 이 번호로 연락할 게. 보고 싶어도 좀만 참아.”
“에휴..”
모든 게 내 능력 밖인 오지게 서럽고 무기력한 세상.
그 세상에선 난 그저 무기력한 관찰자일 뿐이었다.
어린아이처럼 이런 상황에서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고 칭얼댈 수도 없었다.
“기운 내. 잡초 같은 여전사라며. 강보람.”
“고럼. 제초제 헬기로 살포해도 나 끄떡없는 잡초야. 기다릴 게 전화. 오빠도 조심해.”
띵동
“아! 저 쉐리가 증말. 콱 그냥!”
“나간다.”
홍은하의 배웅을 받으며 마침내 아듀가 현실이 되는 순간 상실감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깊고 어둡고 차가웠다.
탁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홍은하와는 단절돼버리는 또 다른 이 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비운의 여친처럼 너무 인상 쓰지 말고. 보고 싶다 그러면 내가 형님께 또 전화 넣을테니까.”
“정말이죠? 그 소리라도 들으니까 살 것 같다.”
우리는 이번에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런 우리의 오바가 좀 우스꽝스러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귀가 중에 적군을 교란할 목적으로 저번처럼 두 번의 교란 전술을 펼쳤다.
“근데..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정말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넘 오바 아니에요?”
“아직 개박살 나 본 적 없구나. 언제 된통 당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함 보자.”
그 말에 바로 입을 닥쳤다.
반 팔 입은 모습을 처음 보는 데 그의 팔뚝은 온통 문신으로 덮여 있었다.
가까이서 그 문신들의 문양을 감상하던 나의 뇌리에 이 문신의 의미는 가오가 아닌 본래 목적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서 지켜보니 언뜻 보면 잘 보이지 않았던 깊고 옅은 상흔들이 빼곡했다.
‘혹시 이런 상처들을 감추기 위해서 팔뚝 전체를 문신으로 휘감았나?’
“문신 한 거 처음 봐?”
“주변에 문신 한 사람이 없어서.”
“요즘은 여자들도 멋으로 많이 하던 데..”
‘그거야 멋으로 쬐그맣게 하나 정도 하는 거지. 이 사람아..’
“문신하고 싶으면 얘기해. 나 해준 선생님 소개해 줄게. 그 쌤, 야매 아냐. 자격증도 있고 위생적이라 덧나거나 하지 않아.”
‘에그.. 내가 문신할 터프녀로 보이니? 대체 내게 저런 소릴 하다니. 눈썰미 참 없다.’
그런 잡담이라도 떠드니 싱숭생숭 심연으로 가라앉던 감정이 어느 정도는 정리됐다.
덜컹.
“다 왔네. 자. 핸폰.”
“아. 고마워요.”
“무서우면 방문 앞까지 데려다줄까?”
“아뇨. 날 지켜보는 눈 있어요. 경찰 쪽이니 그쪽이 눈에 자주 띄는 건 좋은 생각은 아닌 거 같아요..”
“아! 그랬구나. 문 검사님이 붙여 놓으신 건가?”
‘참 이쪽 사람들 붙여 놓는 거 좋아하네..’
“예. 문 검사님과 안 친한 사이잖아요.”
“고럼~ 절대 친해질 수 없는 개와 고양이 사이지.”
“고마워요. 갈게요.”
탁
차에서 내린 후 홍은하가 붙여 놓은 보디가드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어디 있는 거야?”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서질 못하자 어둠 속에서 웬 형체가 손을 흔들었다.
“뭐야?! 저 사람인 가? 푸훗. 오빠가 연락했나 보네. 서로 아군이니 잘 지내라고.”
나도 가볍게 손을 들어 시크하게 첫인사를 나누고 호텔 실내로 향했다.
문 검사와 조민에게는 사전에 안심할만한 문자를 남겨두었다.
왕마담을 만나기 전 그녀의 미스테리한 신상과 관련한 많은 의혹과 궁금증으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곤 했다.
오늘 밤.
잠을 이룰 수 없는 이유는 홍은하의 황금 날개 때문이었다.
분명 내 작두 탄 촉은 내게 속삭였다.
홍은하에게는 왕마담 정도는 ‘하찮은’으로 취급할만한 황금 날개 급 거물이 뒷배로 있는 게 분명하다는 은밀한 속삭임.
그에게서 느껴지는 그 여유는 분명 작은 힘에서부터 비롯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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