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쉬렉 님의 서재입니다.

사라진 내 남자의 흔적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쉬렉
작품등록일 :
2019.04.21 10:45
최근연재일 :
2020.05.14 09:32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2,873
추천수 :
9
글자수 :
255,461

작성
19.06.29 01:20
조회
45
추천
0
글자
9쪽

3부_52 던져진 주사위

DUMMY

그날 밤.


마침내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 남자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퇴로가 없는 적진 한복판.


그는 그 아수라장으로 뛰어드는 마지막 선택지를 향했다.


현대 정치판이 혀 밑의 도끼로 적군의 목을 벨 수 있는 무기라면 내 남자가 뛰어든 전장은 21세기에도 칼로 도륙을 당하는 야만적인 세상이었다.


무엇이 그에게 그런 용기를 준 것일까?


그는 정작 상대를 홀리는 전술이 필요한 연애 전략에는 젬병이었지만 사람들을 홀리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내는 달변가인 동시에 그들에게서 동정심을 얻어내는 측은하고 고독한 투사였다.


모두가 그의 편은 아니었으나 물밑에서 은밀한 루트를 통해 내부자들만이 아는 첩보가 그의 귀에 흘러들어오는 것을 보면 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카리스마임에 틀림이 없었다.


모든 이가 평소 그의 편일 필요는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


사생결단을 내야 하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 그에게 동조하는 세력이 등장한다면 그는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받게 될 것이다.


그런 일련의 움직임을 읽었기에 그는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당돌함을 보였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쥐뿔 아무것도 없는 삼포 세대의 대명사 격인 그를 전격전의 돌격대장으로 만든 것일까?


그가 지닌 무기라곤 힘이 아닌 무모한 용기였다.


또한 그를 두려움이 없는 신인류로 만든 것은 그가 처한 현실과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는 사리 분별이 아닌 과대망상과도 같은 치밀한 전략이었다.


그의 무모한 용기와 과대망상과도 같은 원대하고도 치밀한 계획은 홍은하라는 형키호테에게 매료당한 검은 마녀로부터 비롯됐다.


대체 그 노부부는 무슨 이유로 무모한 형키호테에게 황금 날개를 달아준 것일까?


그 노부부에 관련된 첩보는 그저 돈이 많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러나 나 같은 머리로도 유추할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었다.


그런 돈이 많은 부류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방면의 세력가들과 유착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한 만고 불변의 진리 아니었나?


그런데 왜 그런 부류의 종족이 맨날 맞고만 사는 내 남자와 같은 허접한 형사 나부랭이의 뒷배를 자처한 것일까?


과연 내 남자는 자신의 배후의 실체와 그의 목적이 어디를 향하는지 파악은 하고 이 불구덩이 속으로 몸을 날린 것일까?


내전만큼 잔인한 전쟁터는 없다.


적군과 치르는 전투보다 더 악랄하고 지독하고 추악하다.


홍은하는 이제 적군과의 전투뿐 아니라 아군과의 내전을 치러야 하는 고독한 사냥꾼이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나의 고독한 사냥꾼을 그 사지로 내몬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두려움이었다.


자유가 넘쳐나는 21세기의 평화로운 세상에서 그는 부당한 억압을 체험했고 그가 누릴 수 있는 자유란 결국 무모한 용기에서만이 실현 가능하다는 뼈 아픈 진단을 내렸다.


힘의 논리는 내 남자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오로지 한길만 보이는 홍은하는 이번에 저들에게 굴복한다면 그들은 다음에도 또 다른 굴복을 요구할 것이라 확신했다.


이번 저항이 성공하든 못하든 그에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들에게 보여주길 원했다.


이 세상엔 힘의 논리에 굴복과 순종이 아닌 용기로 맞서는 별종도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운명의 그 밤, 그는 그 증명에 한 걸음 다가가고 있었다.


주변인들을 빨아들이던 그의 무모한 매력은 홍은하, 자신을 매료시켰고 이제 그는 굴복과 포기란 죽음보다도 처참한 삶이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자긍심을 포기한 비겁한 삶은 숨 쉬는 것조차 부끄럽게 만드는 비참함이라 단정했다.


그의 행보는 마치 퇴로 없는 전장에 들어선 결사대와 같았다.


홍은하와 결사대.


결코, 그와 그의 무리를 일컬음에 있어 비약은 없어 보이는 비유였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갇혀 있는 사무실 여기저기를 서성이다 갑갑한 마음에 방문을 빼꼼히 열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님, 사무실 밖으로 나오시면 안 되십니다.”


울림이 큰 낯선 남자의 저음이 들렸다.


“누님? 저요?”


“예. 누님이 한 발 짝도 사무실 밖으로 나오시는 일 없도록 철저히 문 앞을 지키라는 마이키 형님의 하명이 있으셨습니다.”


“답답해서 그냥 슬쩍 복도 구경 한 거예요.”


홍은하가 지나간 복도 끝을 처량하게 쳐다보자 이번엔 다른 맑은 톤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이키 형님은 곧 나오실 거예요.”


“아, 예.”


그들의 인상착의가 궁금해 흘끔거리자 두 사람이 동시에 피식거렸다.


“인사는 조금 후에 마이키 형님 나오시면 드리겠습니다. 들어가 계세요.”


“아, 예에. 근데 제게 그런 극존칭 사용 안 하셔도 됩니다.”


“형수님께 입방정 떨었다가 마이키 형님께 한 소리 듣습니다. 이게 저희는 편합니다.”


“형수님?”


“은하 형님 여친이시면 저희에겐 큰 형수님이신 거죠.”


“아, 큰 형수..”


적응 안 되는 급작스러운 상황 때문에 어색한 미소가 입가에 절로 흘렀다.

“일단 들어가 계세요. 형수님.”


반복되는 형수님 소리에 몸 둘 바를 몰라 서둘러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끼익


문을 닫으려다 다시금 빼꼼히 복도를 지키는 두 남자의 형체를 살폈다.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웃으며 어서 들어가라는 손짓과 함께 허리를 90도로 굽혀 절을 했다.




“대체 이게 뭔 일이래. 이젠 홍은하 때문에 내가 문신 아재들 형수님까지 하게 된 거야?”


급작스러운 변화였지만 분명 눈앞의 현실이 된 작금의 사태가 영 꿈만 같아 믿기질 않았다.


“이거 레알 꿈은 아닌 거지?”


혹시 꿈인가 내 살을 꼬집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집 체 만한 그림자가 등 뒤에 드리워졌다.


“팔은 왜 꼬집고 있어?”


마이키가 홍은하와 독대 후 내가 갇혀 있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 그냥 가려워서.”


“하여간 너도 가끔 남 보기에 이상한 짓 하는 거 알고 있지?”


“제가요?”


“됐다. 나도 피곤하다. 그만 호텔로 돌아가자. 은하 형님은 누님과 상의할 일이 많아. 이른 아침이나 돼야 호텔로 오실 거야.”


“네에..”


“참, 좀 전에 애들 봤지?”


“애들 요?”

“거기 둘, 잠시 들어와라.”


좀 전에 날 형수라 불렀던 두 사람이 호출됐다.


“앞으로 나 외에 얘네 둘이 네 주변을 감시하게 될 거야. 이쪽은 릴라, 이쪽은 백여시.”


“예?”


당최 이 바닥은 본명을 부르는 일이 없었다.


‘하긴 본명 까서 좋을 건 없어 보이네.’


“얘 보면 딱 떠오르는 거 없어?”


‘왜 없겠어! 척 봐도 고릴란데.’


“성은 고 씨인 거죠?”


내 대답에 세 남자가 동시에 비둘기 구구대는 소리를 내며 키득거렸다. 고릴라란 별명의 장본인까지 포함해서.


순박한 건지, 단순한 건지.


“니가 고릴라 상이긴 한가 보다. 강보람이 단방에 네 성이 고 씨인 것도 맞추고. 크큽.”


‘백여시란 별칭은 여우처럼 눈치도 빠르고 행동이 얍삽해서인가?’


백여시는 인상이 그리 가벼운 건 아니었지만 가느다란 반달 모양의 눈매로 늘 웃는 상이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작은 몸짓 하나도 날렵해 보였고 그 모습은 고릴라와는 상반된 모양새였다.


조금은 대조적으로 보이는 그들이었지만 그런 부조화가 조화롭게 보이는 요상한 조합이랄까.


“잘 부탁드립니다.”


그들은 마이키 앞에서 보란 듯이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합창을 했다.


“부탁이야 제가 드려야죠.”


“앞으로 네 신변 보호에 각별히 신경 쓰라는 형님 오다가 계셨어. 그래서 얘들도 네 주변을 얼쩡거리게 될 거야. 눈에 안 띄게 네 주변을 감시할 거니까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


‘눈에 안 보여도 근처에 서성이는 거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부담스럽지 않겠어?’


그래도 내 안전을 위해 일해 줄 사람들이라니 우호적으로 관계 유지는 하고 싶었다.


“형님 내일 이곳에서 약속 있으셔. 호텔에서 주무실 거야. 어서 먼저 가서 눈 좀 붙이자.”


“아. 네.”


‘누구와 약속이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걱정스럽진 않았다.


이제 홍은하는 적어도 고구마 문 검사처럼 지방으로 날아가는 처지가 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어쩌면 더 한 위험이 그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난 미래에 벌어질 일들이 두렵지 않았다.


그가 잘해 낼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서기도 했다.


“내가 왜 이리 철퍼덕 당신을 믿게 된 거니? 홍은하.”


침대 위 천장이 점점 좁아지며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난 깊은 잠 속에서 내 남자가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라진 내 남자의 흔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7 휴우... 안타깝습니다... 20.05.14 33 0 1쪽
56 3부_56 얻어걸린 달콤한 첩보 20.05.14 16 0 9쪽
55 3부_55 세상을 설계하는 자 19.07.14 39 0 10쪽
54 3부_54 설계자 A와의 악연 19.07.14 38 0 10쪽
53 3부_53 새로운 얼굴마담의 비상 19.06.29 49 0 11쪽
» 3부_52 던져진 주사위 19.06.29 46 0 9쪽
51 3부_ 51 주먹들의 기습 19.06.23 40 0 10쪽
50 3부_50 처절하게 날아간 전 남자 19.06.23 40 0 14쪽
49 3부_49 엿 같은 세상 19.06.09 41 0 11쪽
48 3부_48 틀어쥔 정보의 위력 19.06.06 61 0 9쪽
47 3부_47 싹 쓸어버리겠어 19.06.05 51 0 10쪽
46 3부_46 발칙한 이상을 꿈꾸는 형키호테 19.06.04 43 0 12쪽
45 3부_45 이이제이 以夷制夷 19.06.03 57 0 8쪽
44 3부_44 검은 옷의 마녀 19.05.30 34 0 10쪽
43 2부_43 아군과 적군의 모호해진 경계 19.05.29 47 0 9쪽
42 2부_42 홍은하란 마법 19.05.28 93 0 9쪽
41 2부_41 괴한은 놈이 아닌 년 19.05.27 31 0 9쪽
40 2부_40 삼파전의 승자 19.05.26 35 0 10쪽
39 2부_39 베일 속 황금 날개 19.05.25 40 0 9쪽
38 2부_38 안개 속 사건 전개 19.05.24 36 0 9쪽
37 2부_37 그가 나쁜 놈들을 응징하는 방법 19.05.22 57 0 10쪽
36 2부_36 내 남자의 마지막 선택지는 말콤 엑스 19.05.21 59 0 9쪽
35 2부_35 숨 막히는 재회 19.05.19 61 0 7쪽
34 2부_34 분노로는 전복되지 않는 세상 19.05.19 38 0 9쪽
33 2부_33 오인 타살 19.05.18 40 1 12쪽
32 2부_32 자살을 당하다 19.05.16 37 0 9쪽
31 2부_31 어둠의 포식자들 19.05.15 43 0 9쪽
30 1부_30 마침내, 클럽 메두사에 입성 19.05.14 39 0 10쪽
29 1부_29 두 여인의 운명적인 첫 만남 19.05.13 35 0 10쪽
28 1부_28 마음을 읽는 자 19.05.12 41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